건축으로 창업을 꿈꾼다면 – 공간 비즈니스
김하나, 문승규, 이상묵, 홍주석, 박성진
분량9,208자 / 18분
발행일2023년 11월 17일
유형좌담
정림학생건축상 2023 ‘취향거처, 다름의 여행’ 연계 포럼 두 번째 주제는 ‘건축으로 창업을 꿈꾼다면’이다. 건축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자신의 관심사를 사업화하여 새로운 길을 개척함으로써 건축의 경계를 넓히는 이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첫 번째 순서로 건축이라는 공통된 배경을 가진 기획자/사업가/디렉터인 김하나(서울소셜스탠다드 대표), 문승규(블랭크 대표), 이상묵(스테이폴리오 대표), 홍주석(어반플레이 대표)이 각자의 창업 경험과 사업을 소개했고, 이어진 토론 시간에는 박성진(사이트앤페이지 대표)의 진행으로 창업이라는 특정 시기와 상황, 그리고 건축 혹은 공간이 소비재로서 사람들에게 공급되고 경험되는 측면에 초점을 맞춘 공간 비즈니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축으로 창업을 꿈꾼다면
2023년 6월 27일(화) 오후 7:30-9:30, 정림건축문화재단 라운지
패널
김하나(서울소셜스탠다드 대표)
문승규(블랭크 대표)
이상묵(스테이폴리오 대표)
홍주석(어반플레이 대표)
모더레이터
박성진(사이트앤페이지 대표)
직영 모델의 의미
박성진 네 분은 여러 사업 영역을 아우르고 있는데, 특히 공간 경영과 운영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스테이폴리오, 어반플레이, 블랭크 모두 직접 개발하고 운영하는 공간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공간은 매출에 기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운영하는 곳이 있어 보입니다. 그런 공간의 필요성은 무엇인가요?
이상묵 저희는 30개 정도 공간을 직영하고 있는데, 스테이폴리오 멤버들이 선도적인 모델을 직접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관점이 제일 큽니다. 그리고 그 사업 자체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키기보다는 버전업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스테이를 직영해 보면서 비대면, 무인화, IoT 기술을 도입했었는데, 결국 사람의 관여를 최소화하거나 아예 없이 관리하되 사람의 온도를 얼마만큼 부여할 수 있는지를 실험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직영하는 모델 중에 한옥 체험 위주의 서촌유희와 어라운드 폴리가 있어요. 서촌유희는 한권의 서점에서 체크인해요. 서점 자체가 수익이 되냐고 묻는다면, 수익이 안 됩니다. 그렇지만 서점에서 체크인하는 경험은 굉장히 이색적이죠. 그런 테스트도 당연히 브랜드 관점에서 하는 것입니다. 어라운드 폴리는 코로나 이후에도 아웃도어 캠핑 관련 사업이 확장되고 있는데, 우리가 캐빈이나 에어스트림 같은 무버블한 집을 다뤄보고, 이런 모델의 수익성이나 제조 단가에 대해서도 궁리해 보는 플랫폼으로 삼기 위해서 소유하게 된 것도 있어요. 또 회사가 어려워질 때 매각하면 현금 유동성이 생기니까 위기 방어막도 될 수 있겠다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습니다.
홍주석 언제 어떤 콘텐츠가 흥행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리고 콘텐츠 하나하나는 그 자체만으로 잠재력을 발현하기 어렵고요. 그러므로 콘텐츠가 모여서 시너지를 낼 수 있게끔 큐레이션을 잘하고,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니 저희 스스로 공공 프로젝트인지 상업적인 프로젝트인지 헷갈릴 정도로 실험적인 프로젝트도 많이 시도합니다. 예를 들면, 기록상점 같은 공간은 사실 서점보다 더 돈이 안 됩니다. 경영지원팀에서 압박이 심하죠. (웃음) 하지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발굴하기 위해서는 앞장서서 그런 것을 시도해야 해요. 특히 코로나 팬데믹과 같이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가 많다 보니까 처절하게 실패하기도 하는데, 그것을 교훈 삼아서 새로운 모델을 계속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도전 정신을 가지고 계속 시도해야 회사가 조금씩 버전업하고, 앞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문승규 지역의 빈집을 거주 공간으로 전환하는 프로젝트 유휴에서 저희가 만든 모든 공간을 직접 운영하고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공공과 함께 일하기 위한 것이었어요. 공공에서는 빈집을 매입해서 1~2억 원씩 투입해 공간을 개선하는 일이 어렵지 않더라고요. 근데 운영 방법까지 마련하지를 못합니다. 우리가 그런 집을 빌려와서 주거 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으로 만들어봐야겠다고 생각하게 됐고, 지자체와 협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희가 직접 공간을 운영하지 않으면 공공을 설득하기 어렵더라고요. 저희도 일종의 투자를 하게 된 거죠. 운영도 해보고, 자부담으로 수리하면서 소비자 반응을 보기도 하고요. 이제는 자연스럽게 공공에서 먼저 제안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기획 용역이나 운영 전략을 짜는 용역도 많이 진행하고 있어요. 실제로 공유재산 사용수익허가와 같은 방식으로 공공 자산을 저렴하게 빌릴 방법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 사업을 확장해 나가고 있습니다.
공공과의 관계
박성진 각자의 사업에서 공공을 어떻게 접목시켜 포섭하는지가 사업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인 것 같습니다. 특히 김하나 대표님의 사업이 공공과 깊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사회주택은 결국 제도적 차원에서, 공공의 협력 속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사업이 흥하기도 쇠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사회주택 분야에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 궁금하고, 사회주택이나 공공과의 협력 사업에 관심이 있는 예비 창업자들이 이런 일에 뛰어들기 전에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인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김하나 제가 업으로 삼고 있는 주택 분야는 금융과 제도가 핵심인 영역입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PF를 비롯한 금융 전반을 알아야 했어요. 내가 기획하는 일이 미래에 어떤 가치를 가질지 계산하며 일을 진행하는 것이죠.
사회주택처럼 다른 유형의 주택을 만들기 위해서 무엇이 달라야 할지를 생각해 보면 결국 투자자입니다. 그런 파트너로는 공공밖에 없었던 것 같고요. 공공도 철저하게 사업성을 따지고 투자하기 때문에 반드시 공익성이나 공공성을 담보하는 주체는 아닙니다. 그런 면에서 정권의 변화 같은 요인이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업을 확장하는 데 있어서 제도가 변하지 않으면 그 어떤 새로운 것도 힘들 것 같다고 판단하고 있었고, 그 지점에서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좀더 집중을 해보자고 생각해서 사업을 꾸렸어요.
어떤 사업체보다 설계사무소가 대관 업무를 잘한다고 생각해요. 건축 일 자체가 공공과 밀접한 일이거든요. 그래서 이런 분야에 관심 있는 분들이 사용자 경험,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나 궁금한 것이 무엇인지를 조금만 생각해서 준비하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박성진 추가 질문드리면, 사회주택은 영리를 목적으로 운영할 수 없을 것 같고, 제도적으로도 영리 추구에 대한 제한이 있을 것 같아요. 서울소셜스탠다드의 수익 창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영역은 어디인가요?
김하나 최근에 클라이언트가 저희 회사를 두고 ‘너희는 페이퍼 아키텍트가 아니라 페이퍼 오퍼레이터’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희는 개발 사업의 기획 업무 컨설팅, 개발 자문으로부터 가장 큰 부가가치를 만들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회사를 안정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임대 관리 수익으로 운영해 보려 했는데, 수수료가 높아지면 임대료도 높아져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와는 멀어지기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박성진 문승규 대표님에게 묻고 싶은 것은 민간 기업의 노력만으로 지방 인구 유출, 도시 소멸이라는 이슈의 해답을 구하기는 어려울 텐데, 그런 차원에서 공공과의 파트너십을 어떻게 끌고 가는지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문승규 저희는 창업 이후 10년간 외부 투자를 받겠다고 생각하지 않고, 설계나 기획을 자체적으로 하는 프로젝트팀이 되겠다는 생각으로 일했는데, 지방 도시 소멸 이슈를 본격적으로 고민하게 되면서 공공을 비롯한 기업, 기관과 함께 협력 구도를 끌고 가지 않으면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최근에 경상북도 영주로 법인을 이전했어요. 공공과 더욱 밀접하게 일하기 위한 전략이죠. 연고도 없는 지역에 저희만 내려갔다면 고생했을 텐데, 다행히도 임팩트스퀘어라는 엑셀러레이터 팀과 SK스페셜티라는 대기업, 경북창조경제혁신센터, 영주시 등에서 공동으로 펀드레이징을 해서 STAXX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시드 투자를 받았습니다.
지역에는 저희 같은 일을 하는 플레이어가 적은 것에 비해서 지방 소멸 기금 같은 조 단위의 예산이 쏟아지고 있어요. 영주를 비롯해 장항, 해남, 강진 같은 지방 소도시 기관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특히 지역에서 그런 사업을 관리하는 분들이 ‘공간을 만드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하겠는데,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라고 하더라고요. 결국 일할 사람이 없는 거죠. 저희는 그런 것이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처럼 공간 운영을 할 수 있는 팀들이 계속 지역으로 유입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퍼스트 펭귄처럼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홍주석 저희도 초반에는 공공과 일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근데 한 3~4년 차쯤 되니까 공공에서 도시재생 같은 프로젝트를 하면서 너무 많은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민간 플레이어들이 그 예산을 훨씬 더 효율적으로 쓸 수 있게끔 협업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우리가 민간, 기업, 개인 크리에이터 사이를 조율하는 매니지먼트사 역할을 자임하게 됐어요. 지방은 점점 자체적으로 답을 찾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에 결국은 (수도권의) 민간과 협업해서 인력을 유치하는 등 새로운 형태의 생태계를 만들어야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청중분들이 앞으로 비즈니스를 할 때는 지방에서 어떤 형태의 생태계를 구축할지가 키포인트일 것 같아요.
그리고 저희 회사 직원 중에 10명 정도가 도시 연구 인력이에요. 특히 공공 연구 용역을 주로 하는데, 기존에 엔지니어링 회사들이 해왔던 도시 마스터 플랜 프로젝트가 저희에게도 옵니다. 이제는 랜드마크 시설 위주로 개발하는 방식보다 지역의 라이프 스타일 산업을 기반으로 새로운 성격의 마스터 플랜을 짜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소프트웨어 전략을 먼저 만들고 그에 맞춰서 하드웨어를 개발하거나 안 쓰는 시설을 리노베이션하여 활용하는 접근 방식이 늘어났어요. 최근에 지자체와 연구 용역을 많이 하면서 이러한 변화를 확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동네에 뿌리내리는 일
박성진 사업을 특정 분야가 아닌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성장시켜 가는 것도 눈에 띕니다. 어반플레이는 연남동과 연희동, 스테이폴리오는 서촌, 블랭크는 경북 영주에 정착했죠.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사람들이 특정 지역의 문화적 커뮤니티 혹은 행정적인 바운더리 안에 진입할 때는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동네가 갖는 특성 때문에 그곳에만 적용할 수 있는 방법론도 있을 것 같고요. 지역과 동네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궁금합니다.
이상묵 서촌은 청와대나 여러 가지 이슈 때문에 규제가 많고, 재개발이 무산된 지역이 있어서 도시계획 차원에서 그다음 단계가 무엇일지 사람들이 혼란스러워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 틈에 저희가 도시형 한옥 스테이 브랜드 서촌유희를 만들었고, 그것이 핀터레스트,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수많은 채널을 통해 지구 반대편까지 퍼져나갔죠. 그것을 기점으로 토지주분들이나 토지주가 아니더라도 여기에 땅을 하나 갖고 싶다는 분들이 찾아왔어요. 그분들은, 자식들 다 키우고 나면 서촌 지역에 들어와서 살겠다는 계획이 있으니, 그 시기가 오기 전에 우리가 살 집을 미리 지어두고 숙소로 운영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투자금도 어느 정도 회수되고 법인으로도 운영할 수 있다는 여러 장점이 있죠. 그렇게 자생적으로 확장된 모델입니다. 그리고 기존 마을과의 균형을 맞춰가기 위해서 스테이만 지나치게 늘리기보다는 서점, 상점 등 문화 공간도 조성했고요. 서촌에서 10년 정도 지속적으로 자리를 잡고 나서 얻은 여러 장점도 있습니다. 동네 분들이 저희를 부동산 세력으로 보지 않고 뭔가 재밌는 일을 해나가는 사람들이라고 바라봐 줍니다. 직원이 70명이니까 먹는 것만 해도 엄청납니다. (웃음)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드리는 차원에서도 균형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홍주석 연남동과 연희동은 어반플레이가 없어도 잘 될 동네 아니었냐는 질문을 종종 들었어요. 당연한 이야기예요. 한 주체가 특정 지역을 개발하고 운영한다고 해서 이런 붐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많은 주체가 역할 했기 때문에 가능했고, 저희는 그걸 기록하고 매니지먼트하면서 이런 움직임이 유지될 수 있도록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연희동은 도시개발 측면으로는 수익성이 거의 없는 시장입니다. 1970년대 일종의 신도시처럼 계획된 이후로 여전히 1종전용주거지역이기 때문에 단독주택 외에는 지을 수 없고, 따라서 디벨로퍼의 관심 밖에 있는 지역입니다. 그러나 개발된 지 50년이 넘어가다 보니 노후 주택의 활용성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상태고, 대부분 150평에서 200평 정도 되는 대지에 80대 노부부가 거주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집의 새로운 쓸모를 찾아야 할 시점이 온 것이죠. 그런 측면에서 이 지역에 저희의 콘텐츠 플레이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서울의 다른 동네에 비해서 지역 자원이 아직 많이 남아 있기도 하고요. 그런 한편 저희는 저희만의 서비스 모델이 있고, 클라이언트 잡이 아니다 보니까 자유롭게 지역을 선택할 수 있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문승규 저희는 최대한 뜨지 않을 동네를 찾아갔어요. 상도동은 저층 주택이 밀집한 지역이고, 어머니 모임이나 다문화 커뮤니티 등 지역 커뮤니티 활동하시는 분들이 매우 많습니다. 저희는 사람을 모이게 하는 힘, 그리고 그것이 지속되게 하는 힘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이 지역에 들어가게 됐어요. 학문적인 관심도 연관돼 있는데, 이 지역은 10년이 지나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우리 사업 방향과 잘 맞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상도동에서 거점을 확장해 나갔습니다. 최근에 영주로 이주하며 한 생각도 똑같아요. 건축 전공자들은 부석사를 알기 때문에 영주를 알지만, 대부분은 이 도시를 모릅니다. 안동 위, 단양 아래에 있는 도시라고 말해야 감을 잡는 분이 많더라고요. 그 정도로 소외된 지역인데, 그런 곳에서 오히려 혁신이 벌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고, 그런 믿음으로 지역을 선택하고 있습니다.
김하나 저는 처음에 창업할 때 사회적 기업가 육성 사업에 지원해서 시작했는데, 그때 조언한 분들 모두 동네를 하나 잡으라고 했어요. 그땐 그게 무슨 의미인지 몰랐는데 블랭크가 일하는 걸 보고 깨달았죠. 저희는 동네를 잡지 않은 대신 주택이라는 카테고리 킬러가 되었는데, 저희가 만드는 집이 환영받는 임대주택이 되기 위해서는 결국 저층부가 동네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가 정말 중요하고, 다른 계획적인 내용보다 이 부분을 훨씬 더 많이 고민하곤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만일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사업을 벌였다면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공간 비즈니스와 IT 기술
박성진 네 분의 사업 모두 IT 기술에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거나 협력하고 있는 구조로 보입니다. 공간이나 건축으로 사업을 할 때 IT 기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돼야 될까요? 본인 사업에서 IT 기술을 어떤 식으로 쓰고 있는지, 전망은 어떠한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상묵 아이폰을 처음 만났을 때 앞으로의 세상이 그려졌었고, 그때 제가 상상했던 그대로 여러분이 스마트폰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애플 다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열 기술은 테슬라가 쥐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슬라를 2년 정도 타보니, 초창기 아이폰이 갖고 있었던 잠재력의 천 배 정도가 느껴집니다. 첫 번째로 이것이 공간의 이동과 여행에 대한 관점을 바꿀 것이라는 직감이 듭니다. 그다음에 차 자체가 집과 결합해서 에너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에너지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이들이 개발하고 있는 자율주행 시스템이 집 안으로 들어올 겁니다. 일론 머스크는 AI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에 이 시스템을 적용하고 있어요. 이외에도 빅테크 기업이 집안에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연구하고 있는지 잘 아실 겁니다. 애플이 TV에, 삼성이 냉장고에 집중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그리고 애플에서 최근 비전 프로를 내놓으면서 ‘공간 컴퓨팅(Spatial computing)의 시대’를 말했습니다. (이제 메타버스라는 단어는 꺼내지도 않아요.) 그런데 스페이스 컴퓨팅 시장도 디바이스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그다음에 무엇이 나올지 모릅니다. 우리는 이렇게 디바이스 환경이 계속 변화하는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야 할지 고민하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런 것을 상상하는 능력이 정말 중요합니다. 제가 볼 때는 건축을 공부한 분들이 이런 면에 뛰어날 것 같습니다.
홍주석 저는 석사 논문1에서 북촌 지역 스마트폰 이용자와 비이용자의 행동 패턴, 도시 행태 변화를 연구했었어요. 스마트폰 이용자가 비이용자보다 골목 안으로 훨씬 깊이 침투하고, 본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즐기는 패턴이 나온다는 분석을 바탕으로,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져서 전 세대가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하면 온라인 데이터가 부동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는 소설 같은 결론을 냈어요. 악평을 많이 받았죠. 저는 그런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창업을 했고요.
앞으로도 기술 개발은 계속 이루어질 텐데, 그로 인해서 라이프 스타일이 어떻게 변하느냐를 지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랬을 때 새로운 시장이 열리기도 하고요. 우리가 기술 자체에 집중하는 기술창업을 할 것이 아니라면 결국은 기술을 도구로 이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내 비즈니스를 레버리지를 할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문승규 저도 기술은 보조적인 역할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이 생활하고 먹고 마시는 행위를 다루는 일은 기술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본질이 있다고 보거든요.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공간을 발굴하고, 고치고, 사람이 생활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은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저희는 프로젝트 실현 과정에서 기술의 도움을 받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고, 사용자 데이터를 쌓아가고 있죠. 예를 들어 유휴 프로젝트에서 빈집을 검색하거나 탐색하는 도구로 기술을 접목하고 있습니다. 최근 AI 기술에 기댄 건축 스타트업이 매우 많아지고 모듈하우스를 양산하는 업체도 생기는데, 그런 곳도 필요하지만, 좀더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김하나 기술과 관련한 저희의 ‘실패의 경험’을 말씀드리면, 먼저 사업화의 실패입니다. IoT 기술로 모든 것을 제어하고 관리하는 건 가능해요. 그런데 그것을 비즈니스 모델로 만드는 데에 실패했죠. 두 번째 실패는 다양성의 가능성을 보지 못한 것이었어요. IT 비즈니스는 롱테일(Long tail)2이 가능할 것이란 희망을 품지만, 유명한 특정 대상에 더 많은 정보와 데이터가 집중되는 쏠림 현상도 동반됩니다. 저는 시뮬레이션을 통해서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공간이 소외되고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심화될 것으로 판단했어요. 그런데 스테이폴리오를 보면서 너무 성급한 판단을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건축으로 창업을 꿈꾼다면 – 공간 비즈니스
분량9,208자 / 18분
발행일2023년 11월 17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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