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탈 디자인
박중현
분량4,851자 / 10분 / 도판 4장
발행일2023년 11월 17일
유형작업설명
지랩은 올해로 10년 된 회사입니다. 지금까지 했던 프로젝트의 대부분이 스테이 프로젝트입니다. 지금까지 44개를 오픈했고 진행 중인 것까지 합치니까 55개째 설계하고 있습니다. 스테이라는 것이 이렇게까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가 될 줄은 몰랐는데, 돌이켜보니까 이렇게 한 가지에 집중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랩과 스테이폴리오는 같이 만든 회사입니다. 두 회사가 하나로 시작했지만, 이제 지랩은 디자인을 주로 하고 스테이폴리오는 운영과 마케팅, 또 스테이폴리오만의 디자인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서 지금은 각자 좀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랩이 만든 스테이 중에 스테이폴리오가 직영하는 스테이는 ‘지스테이(Z_STAY)’라는 브랜드에 속합니다. ‘지스테이’는 스테이폴리오가 운영하는 과정에서 받는 피드백이나 노하우를 지랩의 노력으로 기술, 운영, 프로그램 등에 계속 반영하고 발전시키면서 만들어 나가고 있습니다.
지랩이 처음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추구하고 있는 ‘토탈 디자인’이라는 개념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희는 기획과 브랜딩, 스타일링, 마지막으로 스테이가 오픈하는 과정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완성해야 하나의 공간 브랜드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스테이 프로젝트는 건축, 인테리어, 브랜딩이 개별 단위로 일이 끝나는 것이 아니고 오픈 이후에도 하나의 비즈니스, 하나의 브랜드로 굴러가야 하거든요. 그래서 이 전체 프로세스를 토탈 디자인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랩은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떤 것을 고민하나요?’ 같은 질문을 받으면 결국 땅이 가지고 있는 자원, 그리고 클라이언트(호스트)가 운영하고 싶은 프로그램, 마지막으로 이게 의미 있는 비즈니스로 지속되기 위한 예산입니다. 이런 기준들 속에서 프로젝트를 풀어가고 있습니다.
일을 진행하는 방식은, 하나의 프로젝트가 1년 동안 진행된다면 초반 한 달 동안은 아이디어 PT를 준비합니다. 그 기간 내에 팀원들이 집중적으로 고민한 결과를 정리하고 이미지까지 준비해서 클라이언트에게 보이는 것이죠. 그리고 나머지 기간 동안 건물을 완성합니다. 건축 파트에서 설계와 감리 프로세스를 거친 다음, 브랜드 디자인과 경험 디자인이 뒷받침하면서 하나의 공간 브랜드를 만들어 가는 프로세스를 거치고 있습니다. 여기까지 끝나면, 마지막으로 공간을 세팅하고 마지막 스타일링까지 마친 다음 사진을 찍습니다. 사진 모델, 포즈도 같이 고민하고요. 사람들에게 어떤 이미지의 공간으로서 인식되면 좋을지 종합적으로 고민해서 오픈하는 과정까지 스테이폴리오와 손발을 맞춰가면서 하고 있습니다.
잔월
잔월은 상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저희에게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스테이라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잔월이 위치한 명월리라는 동네가 요즘은 돼지 농장이 있고 냄새나고 아무도 찾지 않는 동네라고 인식되고 있지만, 옛날에는 선비들이 살았던 마을이라고 합니다. 명월이라는 지명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청풍명월이라는 사자성어가 여기에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선비들이 이 주변에서 달과 바람, 풍류를 즐겼던 모습에서 따온 말이에요. 사이트로 들어가면 팽나무 군락지와 명월대라는 장소가 있습니다. 이곳에는 제주의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었던 큰 나무들이 많았어요. 그리고 낮은 담과 집들이 있어서 여기는 정말 여유로운 선비들이 살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마을이었습니다.
프로젝트 담당자가 ‘여기서 과연 우리는 어떤 것들을 경험했으면 좋을지’를 선비의 마음으로 글을 써가면서 네 가지 콘셉트를 만들었습니다. 첫 번째가 제주를 느낄 수 있는 집, 두 번째가 나무를 품은 집, 다음은 청량한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집, 마지막으로 밝은 달빛이 드는 집입니다. 이렇게 네 가지의 스토리로 공간을 디자인하기 시작했습니다.
주택을 지을 때와 달리 스테이는 결국 이름을 붙여주면서 또다른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스테이를 과연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고민하다가 잔월, 잔잔하게 비추는 달빛이라는 이름을 짓게 되었어요.
그다음으로 여기서 어떤 경험을 할 건지를 스토리로 연결하는 작업들을 하게 되는데요. 앞단에서 건물을 만들 때 고민했던 청풍명월이라는 스토리를 차와 바람과 빛과 목욕 등을 통해서 경험으로 연결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건축 프로젝트인데 이런 것까지 하나 싶을 정도로 섬세하게 진행했던 작업을 말씀드리면, 이 공간에서 느꼈으면 하는 감정이 차 맛으로도 느껴질 수 있도록 다실과 함께 차를 개발했습니다. 최종적으로는 클라이언트 추천으로 차는 상황에 맞추어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영상 감독님인데, 이분이 직접 소리를 채집해서 바람 소리와 파도 소리 같은 백색 소음 플레이 리스트를 제작했습니다. 이 공간에 처음 들어가면 이 백색 소음으로 가득 채워집니다. 그리고 향으로도 바람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조명으로는 달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패브릭 작가와 의논하면서 이 공간과 가장 어울리는 작품들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들고 다닐 수 있는 조명을 놓아서, 각자 원하는 공간에서 머무르면서 빛을 즐길 수 있도록 경험을 디자인하기도 했습니다. 욕실까지 가는 여정에도 이야기를 했으면 해서 목욕 바구니를 만들었고, 그 안에 바람을 직접 즐길 수 있는 부채라든지 목욕을 즐길 수 있는 설명서까지도 세세하게 디자인해서 경험하도록 준비했고요.
저희는 사용자가 물리적인 틀 안에 어떤 것들이 채워져 있는지를 생각해 주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잔월에 오면 옛 선비들이 그 동네에서 누렸던 풍류를 지금의 내가 경험할 수 있도록 준비했고, 이곳에서 1박 2일을 보내고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삶에 새로운 영향을 주기를 바라는 생각으로 완성했습니다.


한옥에세이 서촌
서촌은 참 매력적인 동네입니다. 그중에서도 누하동은 한옥이 정말 많은 동네예요. 동네를 다니다 보면 벽돌, 기와 등 다양한 재료들이 섞여 있고 많이 개조됐지만 결국 그 바탕은 한옥입니다. 한옥에세이 서촌이 될 집을 처음 만났을 때도 지붕만 한옥이지, 한옥이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로 많이 고쳐진 집이었습니다.
저희는 한옥 프로젝트를 할 때 ‘이 시대의 한옥은 어때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으로 생각하고 고민합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방식들을 한옥에 조금 더 녹여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클라이언트가 처음부터 이름을 ‘한옥에세이’로 짓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저희는 한옥에세이를 어떻게 공간의 브랜드로 녹여낼지 고민했습니다. 저희가 이 클라이언트에게 굉장한 매력을 느꼈던 것은 ‘취향을 가진 50대 남성’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태까지 우리가 스테이의 메인 타겟으로 생각해 온 20~30대의 젊은 여성을 중심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50대 남성이 초대하는 스테이는 어때야 하는가를 질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저희에게 요청한 것은 ‘환대’였습니다. 사실 스테이에 가면 방문객을 환대하는 사람이 없어요. 공간이 환대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공간이 환대하는 경험을 풀어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서촌에서 50대 남성이 할 수 있는 환대가 무엇일까에 대한 답으로 찾아낸 하나의 단어는 ‘사랑’입니다. 조선 시대에는 집안의 남자 어른들이 손님을 집에 초대하면 사랑채에서 맞이합니다. 사랑채에 오는 분들에 대한 예를 갖추고, 서로 다양한 문화를 교류하고, 그 문화들을 같이 즐겼죠. 저희의 숙제는 오늘날 서촌에 있는 한옥에서 사랑이라는 키워드와 경험을 하나의 브랜드와 공간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었어요.
환대의 시퀀스를 맞이하고, 대접하고, 휴식하고, 배웅하는 총 4가지 과정으로 디자인했어요. 대문을 한옥식으로 다시 살려냈습니다. 겉보기에는 작은 한옥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넓고 큰 창과 손님을 맞아주는 마당과 라운지가 있고요. 환대의 시퀀스 중에 휴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 정말 넓은 침대와 탕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고, 다양한 다기, 조명, 그리고 약간의 화분으로 공간을 구성해서 디자인을 했습니다. 저희가 만드는 공간은 대부분 탕이 침대 옆에 있어요. 침대 옆에 목욕탕이 있다는 것 자체가 비일상적이고, 작은 한옥에서 다양한 경험을 풀어내는 장치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방명록입니다. 저희는 꼭 방명록을 만듭니다. 그러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방명록을 적어놓고 가요. 거기에는 스테이가 좋았다는 얘기도 있지만,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깁니다. 특히 이 공간의 이름이 한옥에세이이다 보니까 이 에세이들이 모여서 하나의 책을 만들어 간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1박 2일의 경험을 마치고 배웅의 공간인 마당을 지나 문을 열고 나가면 서촌이 맞아주는 모든 과정을 디자인해서 마무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스테이의 공간을 속속들이 즐기길 바란다는 겁니다. 스테이를 여행하는 것과 일반 관광지를 여행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어요. 저를 비롯한 많은 디자이너가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고민하며 스테이를 만들고 있으니까 그런 공간을 충분히 경험하길 바랍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지랩
박중현은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사(건축공학), 석사(도시계획)를 마치고 동 대학원 박사 과정(도시계획 전공)을 수료했습니다. 서울연구원에서 실무 후 2013년 노경록, 이상묵과 함께 지랩(Z_Lab)을 창업했습니다. 현재 지랩의 대표이자 브랜드 디자인 및 스타일링을 총괄하고 있습니다. 지랩은 개인의 이야기를 기반으로 공간과 장소를 만드는 디자인 그룹입니다. 지랩의 영역은 기획, 브랜딩, 건축설계, 공간 디자인, 스타일링을 아우르며 머무는 곳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생각을 제시하려 합니다. 대표작은 어라운드 폴리, 오월학교, 잔월, 브리드호텔 양양 등입니다. http://z-lab.co.kr
토탈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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