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당 守步堂
김준영
분량3,044자 / 6분 / 도판 1장
발행일2015년 6월 26일
유형작업설명
김준영 광운대학교 건축학과

“그곳에는 수직 공간은 있어도 평면 공간이 없었다.”
스스로를 바라 본다. 4면이 벽으로 둘러싸인 이 방에서 방문을 열면 또 다른 벽과 마주한다. 철문을 열여야만 비로소 밖을 나설 수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순식간에 지상으로 내려온다. 편리한 기계 덩어리에 몸을 싣고 일터로 향한다. 벽들로 이뤄진 온실 속에 갇혀, 고된 일이 끝나면 또다시 편리한 기계 덩어리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온다. 순식간에 오가는 엘리베이터이지만 종종 벽으로 이뤄진 온실 속에서 이웃 아닌 이웃, 타인과 마주친다. 어색한 분위기 속 엘리베이터는 다시 벽 속에 데려다 준다. 현대인은 갈수록 치열하고 바쁜 삶을 살고 있다. 모두가 문명의 혜택으로 ‘편리’해졌다고 생각하지만 종종 더욱 바빠진 삶으로 고단함이 느껴질 땐, ‘편리’라는 말이 아이러니하게 다가온다. 우리는 과연 편리하게 살고 있고 살아갈 것인가?
복합, 몇 년 전부터 지겹도록 듣게 되는 단어다. 복합이 과연 무지개떡일까?
많은 사람이 보다 ‘잘’사는 삶을 만들기 위해 가능한 짧은 동선과 가능한 많은 프로그램이 있는 루빅스 큐브처럼 조립해 나간다. 주거 공간 안에 기능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이 배치된 것은 짧은 시간 안에 몇 걸음 걷지 않아도 편하게 닿고 이용할 수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주거공간 안에서조차 할 수 있는 게 없어져 가는 것이 아닌가 싶다.
‘편리’라는 명분 아래 삶 속에서 마땅히 해오던 그리고 해야 할 행위가 사라져 가고 그로 인한 접촉 또 접촉으로 인한 작용이 사라져 가는 것 같다. 듬성듬성 색만 입혀 놓은 참으로 무취, 무의미한 떡이다.
맹목적인 목적만을 담은 것이 아닌, 다양한 행위를 담는 공간은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그 색이 다양하게 변하고 향도 나며 맛도 있다. 이러한 공간으로 채워진 것이 바로 무지개떡이 아닐까?
사람은 사람다울 때, 집은 집다울 때 가장 빛이 난다.
1957년 보존 거리로 지정된 개성거리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아웅다웅 서로의 몸을 기대며 자리하는 한옥과 이들로 인해 생기는 아기자기한 골목 골목, 길을 따라 흐르는 개천과 수많은 텃밭 어느 하나 사람 사는 냄새가 나지 않는 것이 없다. 언젠가 이곳에도 이데올로기의 마찰과 함께 개발의 물결이 밀려올 것이다. 그 중심에 자리한 우리 건축가는 과연 어떠한 자세로 임해야 할 것인가.
대지의 지상층은 보존 거리의 분위기를 머금으며 남길 바랐다. 대지의 무늬, 기존의 대지에 위치하던 건물의 무늬를 따라 한옥 마당 구성을 근간으로 폐쇄성의 차이를 가지며 이웃들에게 할애되는 공공 마당, 사랑마당, 안마당, 뒷마당으로 구성된다.
공공건물의 공공공간이 아닌 주거건물의 공공공간에 어떤 프로그램을 담아야 하는가.
거주자를 위해 이용되어야 할 공간이 공공공간 으로 할애되는 만큼 거주자들이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어야 한다.
- 거주자가 공감할만한 가치
- 사람이 많이 모이는 대지의 접점
- 본질인 공공성에 부합
공공 공간의 일정 부분은 유동적인 아케이드 혹은 소매상의 공간으로 제공한다.
① 거주자는 모듈에 따라 일정한 금액으로 기둥을 임대해 공간을 형성하고 소매상업 공간으로 사용한다. 손쉽고 빠른 짓기와 허물기가 가능하다. (예. 포장마차)
② 이용자가 없을 시, 기둥을 뽑고 다양한 형태로 공공적인 프로그램을 연출가능하다. (예. 공연장, 화원, 전시장)
직주근접이 아닌 직주원접으로
고된 몸을 이끌고 대지에 들어서서 손에 닿을 듯한 집과 달을 바라보는 설렘, 흙 길을 밟고 흙 냄새, 풀내음을 맡는 등 자연을 느끼면서 집에 들어갔으면 한다. 원하면 엘리베이터가 아닌, 지붕 층까지 인도해 주는 슬로프를 느릿 느릿 밟으며, 달을 쫓고 타인이 아닌 이웃이 사는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향할 수도 있다. 이런 공간은 다공성에 대해 고민을 하면서 자연스레 풀렸다. 고층건물에 빼앗긴 평면 공간을 지붕 층까지 슬로프를 연결해서 되찾았고 슬로프를 연결하며 생기는 풍부한 외부 공간은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고 풍요로운 삶을 선물할 것이다.
심사평
황두진 전체 과정에서 상당히 일관성을 보인 것으로 기억한다. 다만 치밀한 분석의 과정과 다소 감성적인 내러티브가 아슬아슬하게 균형을 맞추고 있다가 (같은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최종심사 당시 결국 균형이 한쪽으로 치우쳐 작업 자체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았다. 일종의 건축적 산책로(Architectural Promenade)인 녹지의 슬로프를 통해 복합 기능들간의 연계와 다공성을 동시에 해결하려고 하는 한 점이 돋보였다.
지정우 사전조사의 밀도가 높았던 작품이었다. 도시와 블럭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출발한 이 작품은 기본 건축의 유형까지 도달하는데 설득력이 있었다. 반면 건물 유형은 비교적 단순한 나선형의 동선을 가진 매스이면서 나머지 모든 공간에 대한 연구는 온통 지면레벨에 맞춰져 있는 것이 장점이자 단점이었다. 지면레벨의 다양한 공간들과 재료, 디테일들은 어느 작품보다 훌륭했지만 이 또한 다소 도식적이지 않나 생각한다. 수상자가 실제 만져지는 공간을 설계할 미래에는 이런 경험이 더해져 큰 시너지를 얻길 바란다.
황지은 건축 이전에 우리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하는 낭만적인 감수성이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사회적 존재 이전의 생물적 존재로서 감각과 몸의 경험으로 느끼게 되는 정주에 대한 서사가 인상적이었다. 늦은 저녁 귀가 길의 아늑함과 같은 감성이 묻어 있다. 건물을 관통하는 슬로프 통행로와 작은 마당들의 분산 등을 통해 도시의 행보를 건물 내로 이어오고 있지만, 미시적인 관점에서 건축적 장치들이 의도대로 작동할 수 있을지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건축 계획을 치밀하게 보여주었거나, 공간의 장면들을 감성적으로 시각화했다면 공감도가 훨씬 높았을 것이다.
임동우 건축적 산책로를 이용하여 합리적인 프로그램보다는 감성적인 경험에 방점을 두고 이를 발전시키겠다는 생각이 인상적이었다. 최종 발표 역시, 이러한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졌다는 점이 좋았다. 단, 이러한 감성적인 경험이 건축적인 요소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찾기 힘들었고 다소 진부한 방식으로 계획을 한 점이 아쉽다. 패널의 표현 역시 감성적 경험을 표현하고자 할 때, 분석적인 액소노매트릭(Axonometric) 형식을 취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인지는 의문이다.
수보당 守步堂
분량3,044자 / 6분 / 도판 1장
발행일2015년 6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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