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성의 조각들
서재원
분량8,190자 / 16분 / 도판 6장
발행일2022년 9월 30일
유형강연록
저는 한국성을 이야기하는 일이 굉장히 설레고,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 한국성이라는 게 쉽게 정리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도 하고, 제가 느끼는 것이 한국성인지도 모르겠어요. 그저 한국에서 활동하는 한 명의 건축가로서 제가 갖고 있는 태도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현대 한국인의 분열된 삶

이 그림은 지난해 코로나19 이후의 삶에 대해 그림을 그려달라는 잡지사의 요청으로 그린 것입니다.1 자세히 보면 줌으로 수업하는 동시에 ‘필로소피’라는 제목의 책이 책상 위에 놓여 있고 아기는 밥 달라고 책상 밑으로 기어 오고 있어요. 주인공은 웹캠이 비추는 상반신만 양복을 차려입고, 아래는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있죠. 이처럼 저는 한 개인의 삶은 굉장히 얄팍하면서도 그리 단순하지도 않고, 복잡다단한 일이 동시에 여러 갈래로 펼쳐지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요. 그런데 건축가로서 제가 보는 오늘날의 건축은 그런 것들을 가능한 부정하고 마치 더 고귀하고 말끔한 무언가가 있다고 계속 설득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그 사이에서 느끼는 괴리감과 혼란스러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어요.
2013년 김환기 화백 100주년 전시에서 벽면에 크게 써 붙여진 글귀를 봤습니다. “내가 태어난 곳 나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면 결국 서양 것의 카피일 수밖에 없다.” 김환기 화백은 파리, 뉴욕, 도쿄, 서울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그 후로 나름의 한국적인 그림들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지점이 그 당시 제가 갖고 있던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연결되며 크게 와 닿았어요. 지금의 현대 건축은 서양에서 정리되었고, 서양에 의해 헤게모니가 장악된 분야입니다. 학교에서도 ‘서양건축’을 배우고요. 그러다 보니까 특별히 자각하지 않으면 그 틀 안에서 건축을 할 수밖에 없는 상태이지요. 스스로 그런 문제의식을 자각한 시점에 마침 김환기 화백의 전시를 보면서 더욱 그 문제에 파고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처한 상황들을 더듬어 가기 위해서 현실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저는 1970년대 초반생인데 한옥에서 태어난 것도 아니고 한옥에 살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제게 있어 전통건축은 완전히 타자였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습니다. 궁궐 단청이나 지붕 선이 진정으로 아름답다고 느낀다기보다, 그걸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입장입니다. 서양에서 모더니즘이 꽃피었던 1910년대부터 1930년대,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를 겪었어요. 그 후 전쟁과 군부 독재가 이어지면서 사실은 우리 자신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반추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때 당시가 실존이었던 것이죠. 정말 일상적인 것, 산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상과 삶을 다루는 것이 열등하다고 치부하고, 더 나은 것, ‘모던한 것’이 있다고 계속 계도하는 것 같아요. 그런 태도를 놓고 보면 한국 현대 건축은 오히려 포스트 모던에서 시작해서 모더니즘으로 되넘어가고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회가 빠르게 성장하다 보면 항상 부작용이 생깁니다. 이런 측면에서 한국 사회에 결정적인 장면이 여러 가지 있을 텐데 세월호 사건도 그중 하나인 것 같아요. 또, 우리나라 사람들은 굉장히 관계 지향적이면서도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항상 경쟁해야 하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이중 구속’2이 나타납니다. 이런 모순적인 상황이 지속되면 사람들에게 조울증, 정신분열증이 나타나는데요. 저는 우리나라 사회가 전반적으로 그렇다고 봅니다. 사람들이 이도 저도 할 수 없게 만들고, 힘들게 두 가지 중 무언가를 선택해도 결국 실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현상에 관해 관심이 많아지면서 일본 철학자 오구라 기조가 쓴 책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를 읽었습니다. 첫 문장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한국은 도덕 지향성 국가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한국인이 언제나 모두 도덕적으로 살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저는 이 말이 너무나 와닿았어요. 저를 포함한 우리나라 사람들은 서로가 무한한 경쟁 관계에 있기 때문에 편법을 쓰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남을 판단하거나 국가 차원의 문제를 판단할 때는 굉장히 도덕적인 잣대를 들이댑니다.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김보름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가 전 세계가 보는 카메라 앞에서 ‘왕따 주행’ 논란에 대해 엎드려 사죄했는데, 지금은 관련 소송에서 일부 승소 판결을 받은 데다 연예계에 진출하는 상황을 보며 저는 굉장히 혼란스러웠어요. 이러한 상황들이 결국 정신분열증을 일으킨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한편으론 ‘자본주의와 정신분열증’이 떠오릅니다. 이는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책 『천 개의 고원』의 부제인데요. 자본주의라는 교묘한 시스템 안에서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정신분열증을 언급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걸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들뢰즈가 정신분열증을 창작의 원천으로, 긍정적 가능성을 말했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나 불평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우리가 처한 상황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보고자 합니다.
조각들

최근 한 5년 동안 제가 출퇴근할 때, 현장 갈 때, 학교 강의 갈 때 사진으로 찍어둔, 제가 관심 있는 것들을 모아봤어요. 대단한 발견을 하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내 주변에 있는 것들, 내가 사는 집,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행동, 내가 아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한국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들이 어떠한 메타적인 연결 관계를 갖는지 확인해 보려고 했습니다.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면 제가 본 것들은 시골에 있는 흔한 집의 어떤 구성, 창을 내기도 어려운 곳에 창을 낸, 극단적인 실용주의적 장면, 르네 마그리트의 그림처럼 컨텍스트가 없는 개체들이 초현실적으로 모여 있는 상태, 미세먼지가 가득하고 안개가 뿌옇게 낀 어떤 암울한 미래 도시 같은 서울의 미학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짬짜면이 있는데요. 짬짜면은 한국 사람들의 정신을 잘 대변한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짜장면과 짬뽕 두 개를 시켜 먹으면 돈도 두 배로 들고 남의 눈치도 보이는데 짬짜면 용기를 사용하면 비용도 적게 들고 업주 입장에서는 설거지도 줄고, 여러모로 실용적이죠. 제가 볼 때는 전 세계적으로 저런 건 없을 것 같아요. 반반 치킨 같은 것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염원에 의해서 만들어낸 굉장히 중요한 결과물이라고 보고요. 동시에 관심을 가졌던 것은 다가구주택에 이식된, 서양에서 온 것 같은 장식들입니다. 다가구주택은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의지가 없죠. 지붕을 기와로 덮은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고, 불법 증축되는 이유가 있고, 나중에 폴리카보네이트로 씌우는 이유도 있고요. 어찌 보면 각자의 소여를 다하고 있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보면 병치인데, 지금까지 많은 건축가가 이런 것을 창피해했고, 저한테도 진심으로 받아들이냐고 묻는다면, 그렇게 쉽게 대답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 또한 우리의 얼굴이기 때문에 한 번은 진심으로 보듬어줘야 하고, 말을 들어주고 나서 아닌지 맞는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런 것을 부정한다면 한국성을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한국성은 저멀리 있지 않아요.
피터 페레토 교수가 쓴 책 『플레이스 서울』의 서문에 “서울의 모습은 활기 넘치고, 저돌적이며, 어수선하거나 아니면 따분하고, 궁상맞도록 실용적이거나 아니면 고약하도록 키치적이고, 긍정과 아이러니로 한껏 가득하다”고 쓰여있습니다. 이 문장을 한 단어로 정리하면 모순일 텐데요. 잘 생각해 보면 각각의 요소는 자기의 맡은 바를 하고 있지만 조화를 서로 이루려는 의지가 없으므로 모순의 상태로 나타납니다. 보도에까지 나온 춤추는 풍선 간판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죠. 이런 장면들은 초현실적이에요.
최근에 한 벨기에 건축가가 만든 『어글리 벨지안 하우스(Ugly Belgian Houses)』라는 책이 있어요. 벨기에 플랑드르 지역에서 흔히 보이는 이상한 건물들을 모아 놓은 책이에요. 하지만 그걸 굉장히 자랑스럽게 공유하고, 출판하고, 전시까지 했어요. 서두에 적은 말이 “우리는 현실적인 초현실주의자들이다. (We are realistic surrealists)”입니다. 벨기에는 르네 마그리트의 나라, 그러니까 초현실주의의 나라고, 스머프, 아스테릭스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들은 자기네가 갖고 있는 못생긴 건물들을 부정하지 않고 자기네 문화 일부로 인정하고 있어요.

지난해 콜드플레이가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 함께 ‘Higher Power’ 뮤직비디오를 만들었습니다. 영상을 보면 우리가 감추고 싶었던 도시의 단면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월곡역 브리지 위에서, 서촌 작은 골목길에서도 춤을 춥니다. 정말이지 노래방 신은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안무 자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이들의 철학은 역설적이게도 춤을 추지 않는 것이에요. 우리가 핸드폰을 보는 일상적인 행위를 춤 동작으로 만들거나 아니면 누군가를 밀어내는 동작을 정교하게 보여주죠. 그것이 춤인지 아닌지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라는 거죠. 그리고 ‘당신이 오늘 춤을 추기로 마음을 먹으면 그게 춤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춤의 완성도보다는 몸을 움직이는 정신이 중요한 것이죠. 저는 이런 결과보다는 마음가짐을 중시하는 부분에서 한국성을 느낍니다.
장기하가 최근에 ‘부럽지가 않어’라는 곡을 발표했는데, 가사를 보면 지극히 존재론적인 이야기를 해요. 한 구절을 살펴보면, ‘너한테 십만 원이 있고 내게 백만 원이 있어 그러면 상당히 너는 내가 부럽겠지’ 이런 내용입니다. 대단한 음악을 만들거나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이고, 지극히 실질적인 얘기를 하고 있어요. 그게 이제 철학일 수도 있고, 궤변일 수도 있죠. 역설적으로 잘 보이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좋은 음악이 되죠. 잘 하려고 하는 것이 보이는 순간 오히려 망한 것이 되죠. 게다가 A급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의도적으로 B급으로 표현할 때 그건 풍자가 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굉장히 의미 있다고 생각했어요.

최근에 본 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매우 감동적이었습니다. 온갖 동서양의 레퍼런스가 뒤섞여 있거든요. 심지어는 봉준호 감독의 작업도 보이고, 김신영을 캐스팅한다는가, 음악도 마찬가지로 말러의 ‘아다지에토’부터 시작해서 정훈희의 ‘안개’까지 아우릅니다. 저는 젊었을 때 만든 한껏 힘이 들어간 ‘복수는 나의 것’에 비하면 이번 영화는 스스로를 내려놓은 듯이 많은 부분에서 스탠스가 바뀌었다고 보는데, 박찬욱 감독의 위트와 여유에서 한국적인 마음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답을 내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저 현실 안에서 무언가를 찾으려고 하는 어떤 태도가 보이는 것이죠.
지금까지는 현대에 한정해 얘기했는데, 한국성을 논할 때 ‘전통과 현대는 다른 것이다.’라고 말한다면 끝도 없이 쳇바퀴를 도는 느낌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 사이에 공통된 매개가 어떻게든 분명히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고, 가능성을 찾고 싶어요. 그런 차원에서 제가 관심을 가지고 보는 것 중 하나는 분청사기입니다. 청자나 백자는 왕실에 납품하던 장인정신의 산물이었는데, 분청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15세기 말 등장한 분청사기는 섬세하게 제작된 것도 있지만, 당시에는 백자 안료가 충분하지 않았고 널리 민중들도 쓰던 물건이어서 도자기를 만들고 난 뒤 백토 안료를 아끼기 위해 반만 덤벙 담그거나 큰 귀얄 붓으로 안료를 자기 표면에 쓱쓱 문지르고 끝낸 것이 많다고 합니다. 여기에는 현대 미술이 추구하는 우연성이라든가 무작위성이 담겨 있죠. 그런데 작가 입장에서, 기껏 도자기를 잘 만들어 놓고 대충 마무리하는 일련의 과정을 상상해 보면, ‘어떤 태도가 그 사람을 그렇게 만들었을까? 그러한 정신은 무엇일까? 완전성을 추구하지 않는 것이 더 옳은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실용성 때문에 그런 걸까?’ 여러 가지 질문이 떠올라요. 재미있는 사실은 분청사기에는 어느 시대의 사기보다도 가장 주관적인 미학이 많이 표현돼 있다고 해요. 같은 시기 서양에서는 후기 르네상스의 매너리즘이 나타났는데 비슷한 경향이 동시대 한국에서도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말들을 생각해 볼까요? ‘좋은 게 좋은 거지’는 어떤 의미로 쓸까요?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서로가 적당히 봐주면서 진행한다’는 거겠죠. ‘그런 건 그냥 대충 해’는 중요하지 않은 것은 대세에 지장 없다면, 정신만 맞는다면 아주 작은 디테일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인 것 같아요. ‘두 안을 적당히 잘 섞어봐’는 책임 의식의 부재라고 생각해요. 어떤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 책임을 져야 하는데, 절충을 한다는 건 앞에서 설명한 분청사기와 맥을 같이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너무 완벽하면 정이 없지’에서 드러나는 것은, 한국 사람들이 지나치게 완벽한 것은 정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열등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세상에 모든 것이 완전체로 존재한다는 건 불가능하고, 항상 어딘가에 누군가와 소통할 곳을 만들어 놔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고 봅니다. ‘귀신이 통할 자리가 있어야 한다’는 과거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인의 특성을 키워드로 정리해본 것입니다. 이 중에서 ‘모호’는 중요한데,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나 박찬욱 감독의 회사 이름에 ‘모호’가 포함돼있어요. 요즘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이름으로 삼는 단어이므로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하겠죠. 그리고 ‘화’, 우리나라 사람들 정이 많은 한 편 다들 화가 나 있어요. ‘검이불루 화이불치’는 삼국사기 백제 본기, 백제 미학을 말할 때 쓰인 기록인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라는 뜻이죠. 어떻게 보면 중용이고, 달리 보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겁니다. 이 많은 단어 중에 ‘물질’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저는 한국이 물질과는 크게 관련 없다고 생각해요.
김수영 시인이 1964년에 쓴 ‘모더니티의 문제’라는 산문을 굉장히 감명 깊게 읽었습니다. 여기에서 특히 ‘그가 <앞섰다>면 이 <뒤떨어졌다>는 것을 확고하고 여유 있게 의식하는 점에서 <앞섰다>. 우리의 현대시가 우리의 현실이 뒤떨어진 것만큼 뒤떨어지는 것은 시인의 책임이 아니지만 뒤떨어진 현실에서 뒤떨어지지 않은 것 같은 시를 위조해 내놓는 것은 시인의 책임이다.’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걸 저는 건축에 그대로 대입해도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이 말은 우리가 처한 상황과 우리가 처한 현실을 직시하고 바라보지 않고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는 의미로 읽었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부분인 것 같습니다.
지금, 제가 보는 우리 건축은 진정으로 내가, 우리가 가진 것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아 하는 것 같아요. ‘여기 더 좋은, 고상한 것이 있어’ 그러한 계몽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게 하기보다는 끊임없이 시선을 타자로 향하게 하는 것 같고요. 물론 그러한 부분도 필요하겠지만 저는, 이제는 우리가 처한 상황들을 더 애정 어린 시선으로 살펴보고 또 그렇게 해야 할 필요도 느껴요. 그리고 이제 그럴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고 생각해요. 한국성,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키워드들은 여기 있는 모두가 한국 사람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내 안에 이미 내재해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어느 날 갑자기 ‘무위’라는 개념을 가지고 한국성을 담아봐야겠다고 마음먹는다고 해서 한국성을 발견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직시하고 그로부터 내 얘기를 하면 자연스레 한국성이 스며 나올 겁니다. 한국성은 표상으로는 절대 달성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을 하는 태도의 문제입니다. 감사합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서재원
단국대학교와 경기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서 공부했고, 현재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대표다. 현대 사회의 다면적 상황을 ‘비판적 수용’의 관점 아래 애증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부조화와 조화, 합리성과 비합리성, 풍자와 농담 등의 모순적 병치를 통해 한국 사회의 동시대성을 담고자 노력하고 있으며, 주요 작업으로 강릉 호지스테이, 서교근생, 망원동 단단집, 홍은동 남녀하우스 등이 있다. 2017년 젊은 건축가상을 수상하였고, 2022년 TSK Fellowship Award의 수혜자로 선정되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국성의 조각들
분량8,190자 / 16분 / 도판 6장
발행일2022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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