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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신동, 격자에 녹아들다

박찬홍, 홍성민, 김가현


박찬홍 아주대학교 건축학과
홍성민 아주대학교 건축학과
김가현 아주대학교 건축학과


저희는 ‘모두’를 위한 공간을 시작으로, 앞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공존이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될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리와일딩을 이루기 위해서는 인간의 태도를 바꿔나가는 것이 첫 발걸음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이제껏 우리는 비인간종을 철저히 배제하며, 인간 중심의 도시환경을 구축해 왔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직도 비인간들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과 같은 도시들은 점차 인구감소와 노후화된 건축물이 늘어남에 따라 저밀화되어갈 것입니다. 저희는 이러한 사회 현상에 의해 머지않아 인간은 비인간과 도시환경을 공유하게 될 것으로 예측했습니다. 그렇기에 저희는 인구 밀도 변화로 인해 생기는 도시 여유 공간을 비인간에게 내어줌으로써 도시 환경을 공유하기 거부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완화시키고자 하였습니다. 

공존을 실현하기 위해서 저희는 우선 비인간과 인간 사이의 독립적인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생물종들은 확실하게 점유하는 영역 안에서 안정감을 느낍니다. 이에 따라 각자의 독립된 영역을 가지되, 서로의 영역이 접하는 곳에 완충공간을 둠으로써 거주환경을 공유하는 부담을 줄이고자 하였습니다.

나아가 비인간의 거주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려면, 비인간의 속성을 고려한 최소한의 틀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위해 인간은 기본적인 틀을 구축해 주는 것으로 비인간의 공간 형성에 관여하지만, 이후 그들의 생활과 시간에 따른 공간 변화에는 관여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형성된 영역들 사이 속성에 따라 결정되는 ‘계면’의 개념을 정의하여 ‘모두를 위한 새로운 거주 방식’을 제안합니다.

사이트는 구도심이었던 창신동에서 발견한 폐허 그리드로 선정했습니다. 창신동은 과거 채석장과 봉제 공장이 활발하게 돌아갔던 동네였으며, 인간의 점유로 인해 오랫동안 생태와 단절되어 있습니다. 현재 창신동은 인간 활동이 쇠퇴함에 따라 장기간 방치된 구조물이 생겨나고 거주 밀도가 감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황을 통해 저희는 거주의 성격이 줄어든 창신동의 여백이 비인간들의 이동과 삶을 수용할 생태통로이자 서식지로 역할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인간의 영역을 구성하는 원리 중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모듈러 시스템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듈러 시스템은 비인간의 영역을 구현하기에 정량적인 수치만을 다뤄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비인간의 공간을 형성하기 위해서 생물종의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 고유한 정성적인 요소들을 고려하여, 생물종의 체적, 식생, 서식 환경, 접근 방식을 토대로 생물종들이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을 도출했습니다.

생물종의 특성에 따라 만들어진 공간을 만들고 난 다음, 서로 생물종의 공간들이 서로 접하거나 만나는 경계를 ‘계면’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각 계면이 어떻게 상호작용할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그리드에 비인간들의 속성에 따른 재료(풍선, 아이소핑크, 수수깡)를 그리드에 삽입하고 그 상태에 석고를 부어 스터디를 진행하였습니다. 석고가 굳고 재료를 제거했을 때 자연스럽게 형성된 계면을 관찰하여 서로 다른 계면의 6가지 성격을 발견했고, 이를 모티브로 설계안에 적용했습니다. 

저희는 이 계면들을 이룰 재료로 탄산칼슘 콘크리트를 선정하여 생물의 활동과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형이 일어나게끔 하였습니다. 재료의 특성상 비로 인해 녹아내린 탄산칼슘은 종유석처럼 굳어 새로운 환경을 만들 수도, 새로운 계면을 형성할 수 있습니다. 

저희가 제안하는 공존은 주거 공간 속에 비인간과 인간의 계면을 형성하며, 그리드 속 계면의 점진적 변화를 통해 도시 환경을 공유하길 거부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완화하는 것입니다.

그리드 속에서 함께하는 삶을 살아가며 인간과 비인간이 도시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미래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이번 설계안을 통해서 거주자가 인간만이 아닌, 비인간을 포함해 서로 공존하는 삶의 방식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김정임  계면이라는 개념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계면을 도출하는 함수를 통해 동물의 영역을 파라메트릭 디자인으로 자동 추출한 디자인인가? 그리고 단면도에서 보이는 그리드와 공간은 동물이 활동하면서 경계면을 스스로 결정한다고 설정했나?

창신동  파라메트릭 디자인은 비인간의 모듈러 요소 정의부터 시작했다. 비인간의 공간은 크기와 방향으로 결정했다. 공간의 크기에 관여하는 요소로 비인간의 체적과 식생을 선정했고, 공간의 방향에 관여하는 요소는 동물의 활동 방향성과 서식 환경에 대한 데이터로 수식을 정리했다. 이 수식을 프로그램에 적용해 생물종의 체적에 맞는 기본 공간을 그리드에 적용했다. 이후에 생물종이 활동하며 인간이 만든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

김정임  수식을 도출하는 과정과 수식을 이용한 디자인의 입증보다 이러한 발상이 이 프로젝트에서 재밌는 지점이다. 지금까지 생물종에 대한 분석이 누적되었는데 이렇게 누적된 정보를 이용해 생물의 활동 반경이나 특성들을 정교하게 추출할 수 있다. 앞으로 인공 구조물을 지을 때 다차원적으로 여러 레이어의 계면을 형성해 인간만이 아닌 다른 생물도 함께 살 수 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였다.

조재원  계면을 도출하는 수식과 수식에 사용된 변수들을 선택하는 것에 가치가 부여됐지만, 공식에서 도출된 결과를 다시 정성적 또는 문화적으로 재해석하는 과정이 더 있었으면 좋겠다.

최진우  서식지 종류에 따라 충분히 변형될 수 있는 가변적 공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시나리오에 대해서 생물적인 특성을 더 고려해보며 역동적인 생태계를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인지 궁금하다. 생물 간의 상호 관계가 이루어질 수 있는지, 철새처럼 이동하는 생물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지 등 좀 더 역동적인 시나리오가 되면 좋겠는데, 이에 대해 고민한 지점이 있다면 알려달라.

창신동  먼저 인간의 가치판단을 배제하기 위해 파라메트릭 디자인을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한 후, 그 과정에서 도출된 계면을 존중하고자 했다. 최대한 생물종이 갖고 있는 속성만으로 공간을 결정했다. 그 결과 체적에 따라 다른 생물종의 공간으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또한 먹이 활동은 생물이 콘크리트를 파 공간의 크기를 키워 식생 활동까지 만족시킬 수 있다.

정림학생건축상 2024 ‘모두의 집: 내일의 지구를 위한 오늘의 건축’ 공개 심사 영상 / 입선 – 창신동, 격자에 녹아들다

원고화 및 편집 심하늘

창신동, 격자에 녹아들다

분량3,168자 / 6분 / 도판 12장

발행일2024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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