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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이 머문 자리

이기범, 노지환


이기범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노지환 성균관대학교 건축학과


지구는, 사람이 아는 한 우주에서 생명체를 수용하는 유일한 장소이다. 하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은 생명체의 공동주택인 지구를 단순한 자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는 듯하다. 

이렇게 인간이 지구를 독점하고 있는 상황을 돌이켜보니, 비인간 생물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할 필요와 시급성을 느꼈다. 이에, 인간과 비인간이 동등한 상태에서 공존을 논하기 위해, 비인간 생물들의 관점에 이입하고자 했다. 따라서, ‘아름다운 사람이 머문 자리’ 프로젝트는 인간 위주가 아닌 비인간을 진정으로 생각한 공존을 제안해 보고자 했다. 그들은 어떤 것을 원하고 있을까?

현재 대한민국은 저출산과 수도권 인구 집중 현상으로 지방 인구소멸이 예견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이 떠나가는 상황을 비인간 생물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과거 이 땅에 살던 비인간 주민들에게 인구 증가는 위험신호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비인간 생물들에게 인간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이라 부르는 곳은 인구소멸로 인한 쾌재를 부르는 지역이지 않을까? 비인간 존재들은 인구가 사라지는 것에서 자신의 터전을 되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보았을 것이다. 

비인간 생물들은 어떻게 인간이 살던 곳을 자신의 터전으로 바꿀 수 있을까? 사람들이 자신이 살던 곳을 방치하더라도 자연의 회복력 덕에 결국 풍화와 분해를 지나 자연으로 동화될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속도는 매우 느리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위협받는 공존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선 인간의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터전 재건의 기반이 자리를 잡는데 자연의 힘만으로는 200년이 걸리나, 인간이 노력한다면 20년으로 단축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 분석의 결과이다. 인간의 공간 점유 방식의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며 이는 동식물과 지구 내에서 지속가능한 공존을 이뤄내는 방법에 필수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비인간 주민 터전 재건을 제안한 대상지인 중리마을은 낙동강 중하류에 위치한 농촌 마을이다. 이곳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농촌 마을과 마찬가지로 현재 남아있는 주민들이 떠난다면 사람이 살지 않으리라 예상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이 마을에서 인간이 편하게 살기 위해 저질렀던, 다양한 비가역적인 행위가 일어났던 곳 중 주택, 도로, 도랑, 습지, 농지에서 문제점을 알아보고 터전 회복을 위한 개선안을 제안하고자 했다. 그리고 개선안의 기반이 될 ‘자연에서 빌린 땅을 반납하기 위한 4원칙’을 세웠으며, 원상복구가 아닌 회복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고자 한다:

원칙 1. 토양은 복잡다양한 생태계의 한 부분이다.
원칙 2. 식물은 생물들의 삶의 터전이 되어주는 공동 주거이다.
원칙 3. 생태계의 위험한 요소는 제거해야 한다.
원칙 4. 모인 것을 없애는 것보다 남길 수 있는 것을 활용한다.

주택은 인간만이 살기 위한 곳으로, 자연환경에 위협이 되는 인공물, 지형의 단절, 폐쇄적인 공간 등의 문제점이 있다. 새로운 주민이 살기 위해선, 자연적으로 분해되지 않는 인공물은 적절한 절차를 통해 제거해야 한다. 하지만, 자연 일부가 될 수 있는 것들은 남길 수 있다. 일례로, 벽체를 일부 허물어 주변 지형과 연속되는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 줄 수 있다. 동물 이동과 식물 생장을 방해하는 상부의 벽은 많이 해체하며, 토양을 고정해 주며 지형 일부로 동화될 수 있는 벽체의 하부는 많이 남겨준다. 동시에, 콘크리트 기초로 막혔던 곳을 허물어 도랑으로 물이 흐를 수 있게 하는 방법을 통해 주택이 환경에 미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도로와 도랑에서도 유사하게 적용될 수 있다. 도로와 도랑은 인간의 편의를 위해 자연을 멋대로 구속했던 인공물이다. 그렇기에, 토양이 다시 건강히 숨 쉴 수 있도록 도로를 걷어내야 하며 도랑도 콘크리트로 덮였던 부분을 걷어내야 한다. 하지만, 단순 제거만으론 회복할 수 없다.

주택, 도로, 도랑뿐만 아니라 밭과 습지 모두 토양의 문제점을 해결해야 한다. 공사를 위해 제거한 토양, 농사를 위해 농약과 비료로 오염된 토양, 오염된 물이 흘러 축적된 토양처럼 인간이 자신의 편의만을 위하는 과정에서 토양은 망가졌다. 하지만, 토양은 비인간 생물들에게는 터전과 같은 곳이므로 인간이 저지른 문제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회복된 토양을 덩그러니 두는 대신 마을에 자생하는 수목을 식재한다면 비인간 생물들은 더 빨리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비인간 생물들에게 식물은 토양 못지 않게 중요한 터전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신이 살 터전을 일구기 위해 다른 이들의 터전을 파괴했다. 과연 우리 사람이 머문 자리가 아름다웠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 대부분은 인공 구조물이 사라지면 자연이 알아서 회복된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인간은 이미 생태계에 비가역적인 변화를 초래했다. 지구의 역사와 함께 형성되었던 생태계가 단순히 회복되지 않지만, 사람이 돕는다면 자연은 스스로 치료할 수 있다. 그것을 이루는 생물들과 함께.


심사위원 질의응답

조재원  들으면서 흥미로웠던 부분은, 우리가 어차피 수백 년 후에 겪게 될 변화를 인간의 개입으로 시간을 단축시켜 실현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논하는 자연이란 결국 상상 혹은 생각의 대상이기 때문에 일종의 ‘문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제안이 의미하는 바도 자연의 완전한 회복이라기보다는 자연과 관계 맺는 새로운 방식, 다시 말해 새로운 문화의 형성에 가깝다고 본다.

우리가 개발과 성장의 시대에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고민했던 것보다 더 치열하고 지적으로 생각해야하는 것이 바로 ‘사라지는 방식’이다. 이 또한 하나의 문화로서, 지속가능한 기술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관점이 매우 흥미롭고 유익하게 여겨졌다. 

개발 시대에 빠르게 구축하는 기술이 발달한 것처럼, 인간의 개입으로 사라짐을 촉진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지속가능한 기술이 필요할까? 일종의 적정기술일 수도 있겠다. 포크레인을 활용한 철거나 폭발처럼 일거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과정이라면, 미생물에 의한 분해 과정처럼 인간의 개입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만약 인적 개입이 이루어진다면 어떤 기술이 가능할지 상상해본 적이 있는가? 이는 농촌에서의 일자리 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우선 마을을 회복해야 하는 이유로는 사람이 오기 전까지는 자연 생물들이 자유롭게 살던 땅이기 때문에, 마땅히 그들에게 돌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사람들은 늘 건물을 짓는 것에 열광하였으며, 철거는 언제나 새로운 건물을 짓기 위해 자행된 일이었다. 

기존의 철거 방식은 모든 것을 부수고 걷어내는 폐기의 방식이었다. 시골 마을의 작은 주택은 사실 포크레인이 와서 몇 번 치기만 해도 금방 무너진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무너진 주택들의 이후 상황까지 생각했다. 아무리 건설폐기물이 재활용 가능하고 순환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이를 순환시키기 위해서는 결국 에너지가 필요하며, 이 순환된 자원은 결국 다른 곳에서 건물로 자리잡게 된다. 우리는 이 부수고 다시 짓는 순환 고리를 깨는 새로운 폐기의 방식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인공물 중에서 유독성이 있는 폐기물들은 적절히 처리해야 하겠지만, 콘크리트나 석재, 벽돌 등의 경우에는 유독성이 낮고, 연구 결과에 따르면 토양을 오염시킬 수 있는 중금속이나 알칼리 성분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준 이하로 내려왔다. 그렇다면 이들을 굳이 철거할 필요 없이 바위로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기존의 철거 방식을 사용하여 철거하되, 일부 벽체만 남기는 방법을 생각해보았다.

최진우  재미있게 잘 들었다. 이 제안은 물론 200년을 20년으로 줄일 수 있는 효과도 있지만, 이곳을 그대로 두지 않고 여러 개발 압력이나 새로운 부지로 변환하고자 하는 시도에 효과적으로 맞설 수 있는 전략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리와일딩을 통한 재정비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개발하지 않고 그냥 둔다고 해서 지방이 꼭 소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 가능성을 좀 더 역동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리와일딩을 촉진하다 보면, 주변에 살고 있던 야생동물들이 내려와서 거주하고 살아가는 모습도 보여줄 수 있고, 그 결과 이곳이 새로운 생태관광의 명소가 될 수도 있다. 더 나아가서는 외국의 사례처럼 선호하는 동물들을 유입하는 적극적인 조치도 가능할 것이다. 이에 대해 확장하여 고민해 본 적이 있는가?

아름다운  이 마을을 자연 상태로 되돌리기로 정한 뒤부터 이를 사람들에게 보여줄 것인지, 사람들이 찾아와 이곳을 관람하는 것이 과연 적절할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 사실 요즘에는 꼭  현장에 가보지 않아도 이러한 변화의 과정과 효과에 대한 연구를 충분히 사람들에게 공유할 수 있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음으로써 여기 서식하는 생물이나 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 철로가 지나고 옆에 다른 마을이 있더라도 이 마을은 사람들이 다시는 살지 않는 숲이나 산처럼 회복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물론 이 경우에도 사람들이 과거의 행태를 잊고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이 벽체들은 동물들에게 지형을 만들어주면서 일부는 기억으로 남아 자연에 있던 흉터이자 기억의 상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진우  이번 프로젝트는 건축하지 않은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오히려 건축을 해체해서 마을을 반납하고, 자연에서 빌린 땅을 반납하기 위한 네 가지 원칙도 선정했다. 이번 공모를 위해 기획되었다고 보기에는 건축가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향과 많이 다르게 느껴지는데,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두 분은 그간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또 어떤 책을 읽고 영감을 받아 이렇게 준비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아름다운  공존이라는 주제를 받고 나서 가장 먼저 어떤 이야기를 공유하면 좋을지를 생각했다. 이 마을은 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마을이었고, 특히 많이 참고한 책도 있었다. 인간 중심적인 사고로부터 벗어나 이 산에 본래 살고 있는 생물들이라면 사람들이 점점 사라질 때 어떤 생각을 할지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건축적 디자인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심미성보다는 주민들의 편의와 사용성을 우선적으로 고려했다. 솔직히 이전에는 이런 문제점에 대해 별로 인지하지 못했다. 이번 공모전을 계기로 비인간의 관점에서 그들이 원하는 공존을 고민하는 과정이 지금의 안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정림학생건축상 2024 ‘모두의 집: 내일의 지구를 위한 오늘의 건축’ 공개 심사 영상 / 대상 – 아름다운 사람이 머문 자리

원고화 및 편집 최정원

아름다운 사람이 머문 자리

분량5,149자 / 10분 / 도판 13장

발행일2024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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