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받아들여야 할 때
심미선
분량2,555자 / 5분
발행일2024년 8월 27일
유형서문
고백하자면, 공모전 기획 단계에서 기후변화와 생태위기를 다루기로 정한 순간, 덜컥 겁이 났다. 나는 이 거대한 이슈를 마주할 때마다 무력감을 느꼈다. 분리수거를 착실히 한다든가 에어컨을 높은 온도로 약하게 트는 소소한 실천과 별개로 ‘나 혼자 아무리 노력한들…’을 읊조리며 이 문제를 논하는 테이블로부터 멀찍이 떨어져 있었다. 건축계에서 이 사안에 침묵하고 있는 이유도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대부분의 건축 행위가 자원을 극도로 소모하는 일이자 생태계 파괴를 수반하는 일이므로 환경 문제를 입 밖으로 꺼내면 생업이 곤란에 처할 수도 있다. 그러니 애써 한쪽 눈을 감는 것이다. 더군다나 건축학과에서 쓰는 환경이라는 개념은 주로 ‘친환경’을 연상케 하거나 기술적 측면으로 다뤄지기에 자칫하면 참가자들이 과제를 해석하는 폭이 좁아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게다가 비인간을 고려하는 건축이라니! 아찔했다. 공모전 담당자 입장에서 여러 고민에 휩싸였다.
그러나 이제는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이루어야 할 때라는 사실에 수긍하고 금세 마음을 고쳤다. 조재원 심사위원의 말처럼 ‘지금까지의 건축이 유효하지 않은 상황’이므로 하루라도 빨리 도전해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학생들에게 공모전 주제와 과제를 들이밀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미래세대에 책임을 전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전 포럼을 준비했다. 그 누구도 쉽사리 답을 찾을 수 없는 문제 앞에서 이 공모전으로 모인 모두가 머리를 맞대어 공부하고 함께 더듬거리며 나아가자는 의도였다. 우선 ‘모두의 집’이라는 공모전 주제를 느슨하게 풀어보는 것부터 시작했다. 건축 디자인이나 인접 분야에서 환경, 생태, 기후에 대한 위기 감각을 반영하여 실마리를 찾기 위해 노력한 프로젝트를 추렸고, 참가자가 다루어야 하는 ‘모두’라는 대상의 폭을 넓혀주는 자리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심사위원의 추천과 내부 조사 과정을 거쳐 여섯 명의 연사와 함께 세 번의 포럼을 구성했다.
‘공존을 위한 실천’을 큰 타이틀로 삼아, 여섯 발제자에게 기후 위기 시대의 공존을 위해 실천하고 있는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발표를 청했다. 첫 번째 포럼 ‘다시 야생으로: 자연주의 조경과 정원활동’에서는 김현아(마인드풀가드너스 대표)와 신준호(연수당 대표)가 최근 조경, 정원 영역에 도입되고 있는 리와일딩이라는 개념과 생태, 식생 차원의 논의를 투영한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들에게는 시각적인 아름다움이나 취향에 따라 정원을 조성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서식처 기반의 식생을 연구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전제가 있었다. 그리하여 인간에 의해 터전을 잃고 밀려난 생명체들이 돌아와 자리 잡을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건축은 인접 분야의 새로운 움직임을 어떻게 수용하고 어우러질 수 있을지를 떠올려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포럼에서는 ‘공존의 환경으로서 집’을 주제로 ‘모두’ 함께 살아가는, 지속 가능한 방식의 공동체를 그려나가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생태 원칙에 기반한 퍼머컬처를 토대로 청년 공동체를 이룬 밭멍과 ‘느끼는 모두에게 자유를’을 기치로 종평등한 세상을 향해 가는 동물해방물결을 초대했고, 두 공동체의 가치관과 철학,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이 포럼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도시를 벗어난 공동체가 새 보금자리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건축의 역할을 되새겨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많은 것이 갖춰진 도시에서의 삶이 익숙하기에 건축의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역할을 잊고 지냈던 건 아니었을까? 당사자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새삼스럽게 와닿았다. 두 단체 모두 앞으로 건축계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고, 건축으로 할 일이 무궁무진함을 느낀 시간이었다.
마지막으로 ‘건축 재료 탐구: 기후 위기와 건축적 대응’ 포럼에서는 건축분야에서 환경을 다룰 때 성능과 효율을 주요 기준으로 삼아 탄소배출 저감 시공법, 고효율 설비, 친환경 자재나 신재생 에너지 등을 연구해온 논의를 확장하기 위해 고심했다. 그래서 건축을 이루는 물질, 건축재료를 생산 과정부터 디자인에 적용하는 차원까지 탐구하여 기후 환경 문제와 연결지은 프로젝트를 소개했다. 최혜정(국민대학교 교수)과 윤정원(서울시립대학교 교수)의 발제로부터 기후 위기 인식을 바탕으로 하는 건축설계와 연구의 방향성을 살펴보고 그 가능성을 생각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세 번의 포럼을 마치고 나서 이 글 첫 문단 빼곡하게 적은 우려가 싹 지워졌다. 포럼 연사는 물론이고, 포럼에 참여한 수많은 학생, 건축가, 심사위원, 주제에 관심 있는 일반 참가자 모두가 한참 대화를 나누었고, 이 자리에서 오간 수많은 말과 말들이 출품작의 아이디어로 녹아들었다. 지역에 자생하고 있는 식물과 동물을 조사하여 ‘모두’에 포함한 것은 물론이고, 이들의 생활 특성이나 반경 등을 고려한 계획을 하였으며, 건축이 자연으로 회귀하기 위해 요구되는 재료를 찾고, 그 특성을 반영한 구축법을 고안한 작업이 대다수였다. 아직은 어설프고 서투를지언정 무언가가 시작된 것이다. 머지않아 건축계를 비롯한 모두가 이 주제를 적극 받아들이고, 뜻을 모으고, 힘을 합해야 할 것이다. 각자가 마음을 여는 그 순간에 우리의 미약한 시작이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심미선 정림건축문화재단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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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24년 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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