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건축에서 100년건축으로
박인석
분량5,419자 / 11분
발행일2025년 11월 6일
유형오피니언
건축의 시대: 한국 사회의 질곡, ‘40년건축’을 넘어서
1편. ‘40년건축’으로 만든 나라 ⑤
40년건축을 100년건축으로 만들기. 이는 단순히 ‘튼튼한 건축’, ‘좋은 건축’ 만들기를 넘어서는 일이다.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매년 이 땅의 모든 건축물의 40분의 1을 헐고 새로 생산해오던 일을 대폭 줄여서 매년 100분의 1씩만 해도 되도록 바꾸는 일이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경제활동의 하나인 건설투자 활동의 효율을 두 배 이상 높이는 일이다. GDP의 6%에 이르는 낭비적 생산활동에 소모되는 시민들의 노동력과 노동시간, 그리고 구매력을 아끼는 일이고, 그 노동력과 시간, 구매력을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다른 사용가치, 즉 문화 활동이나 자기개발 활동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그러나 만만치 않은 일이다. 가장 큰 문제는 당장 건축물 한 채 한 채, 건축-도시공간 사업 한건 한건의 생산비용과 사업비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100년건축은 40년건축보다 생산비용이 높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에서 보았던 OECD 국가 평균 수준으로만 건축 공사비가 높아진다 해도 당장의 생산비용이 40% 이상 늘어난다. 이만큼의 생산비용을 갑자기 높일 수는 없는 일이니 늘리더라도 단계적으로, 긴 시간을 거쳐 서서히 늘려나가야 할 것이다. 예컨대 우선은 60년건축 수준을 일반화하는 가운데 ‘100년건축 보급 정책’ 등을 통해서 100년건축 생산을 시작하고 서서히 그 비중을 늘려가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당장 얼마간의 생산비용 상승은 불가피하다. 투입하는 건축재료의 성능 관리가 엄격해질 것이므로 재료비도 얼마간 상승할 것이고, 설계와 공사가 충실해질 것이니 소요 기간도 그만큼 길어질 것이다. 무엇보다 전문 인력 투입 증가로 인건비가 늘어나면서 설계비-공사비가 전반적으로 상승할 것이다.
이는 한국 사회가 건축생산 부문에 할애하고 있는 사회적 총 재화량의 분배 비율을 늘려야 한다는 얘기다. 소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일이다. 물론 100년건축 생산체제로 전환한다면 장기적으로는 40년건축에 비해 건축생산에 소요되는 총 재화량은 오히려 줄어들 것이므로 원칙에서의 합의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항상 문제는 당장 커지는 부담이다. 이 땅의 건축물 상당수가 100년건축으로 바뀌기 전까지는 비용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장기적 전망보다는 당장의 비용 지출 부담에 급급한 것이 인지상정이고 국가의 정책 결정 메커니즘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장기적인 효과와 명분만으로 생산비용을 늘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민간 건축은 물론이고 공공건축 역시 장기적 효과만을 내세우며 설계비와 공사비부터 높일 수는 없다. 당장 명확한 개선-해소 효과 제시가 가능한 문제 설정이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 도출에 충분한 대의명분을 갖는 문제와 개선 목표를 설정해 40년건축 체제를 벗어나는 전략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생산비용이 증가하는 것을 모두가 수용할 수 있을 만한 실천 전략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대단한 목표 설정이나 전략 연구에 따로 착수할 필요는 없다. 문제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고 답도 이미 나와 있다. 건축-도시공간 생산을 둘러싸고 난무하고 있는 숱한 불합리와 비효율이 그것이다. 어느 나라건 건축-도시 개발 사업을 둘러싸고 문제가 없는 경우는 드물지만, 한국 사회의 건축 시장은 유난하다. 잊을만하면 다시 터지는 부실 공사, 붕괴 및 안전사고, 불법 하도급, 설계-공사 입찰을 둘러싼 비리 등 한국의 건축-도시공간 생산을 둘러싼 문제는 너무도 많다. 더욱 문제인 것은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도 시민들도 모두 알고 있는 문제, 알고 있지만 고치지 못하고 있는 문제들이 건축 생산 과정에 고질화, 관행화되어 있다. 가히 ‘40년건축 체제’라 할만한 강고한 생산 관행이다.
40년건축 체제 속에 관행화한 생산방식은 이를 제도화한 관련 법령과 기준들에 의해 더욱 강고해지기 마련이다. 100년건축 만들기의 요체는 40년건축 체제를 고착시키고 있는 절차와 기준들을 바꾸고 새로 만드는 일이다.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다. 민간 감리 용역에 일임해버린 지 오래인 설계-시공 단계에서의 검사-확인 업무를 공공의 역할로 회복하는 일, 토목 중심으로 짜여 있는 건설 사업 절차와 기준을 건축과 토목 각각의 특성에 맞게 시행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구분하고 정비하는 일, 지방정부와 공공기관 등 공공 발주청의 건축-도시 사업 기획 및 운영 역량을 강화하는 일, 견실한 중소형 건축-도시 사업 주체들을 육성하고 네트워크화해 지역별 건축 생산-관리 기반을 만들고 골목경제 생태계를 촘촘히 다지는 일, 건축산업과 시장의 구조와 동향을 분석해 시장 실태 기반 건축산업 정책 수립이 가능토록 건축산업-시장 통계 체제를 구축하는 일, 건축물 보증보험제도를 통해 시장 자율적 품질관리 기능이 작동하도록 하는 일 등등. 차고 넘치는 게 할 일이다.
이 모든 일은 대부분 서로 연결되어 있다. 모든 건축-도시공간 생산과정에서 이 문제와 과제들이 연결되고 중첩되어 작동한다. 100년건축 만들기를 위한 과제가 따로 있고 이를 위한 실천의 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40년건축 체제 속에서 시행되는 모든 건축-도시 사업에는 40년건축 체제를 야기하고 고착시켜온 문제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그 문제들을 고치고 해결하는 것이 바로 100년건축 만들기의 과제고 실천이다.
따라서 공공이 수행하는 건축-도시 사업은 사업의 직접적 목표, 예를 들어 주택 100만 호 공급이나 노후 학교 건물 2,835개 동 리모델링(그린 스마트 미래학교) 등의 수치적 목표 달성에만 급급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그저 40년건축 체제를 따른 건축생산을 또 하나 해낸 것에 머물 뿐이다. 모든 건축-도시 사업은 그 사업 시행 과정 자체를 개혁하는 실천의 장이 되어야 한다. 사업의 직접적인 목표인 건축-도시공간 생산과 더불어, 그 생산 과정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는 각종 절차 기준과 제도들 속에서 사업의 성공적인 수행을 제약하는 문제를 명확히 하고 이를 개선해 나가는 일이 사업의 중요한 목표이자 과제가 되어야 한다.
예컨대 지난 몇 년 동안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들과 함께 추진했던 노후 공공건축 그린 리모델링 사업을 보자. 이 사업은 2020년 중앙정부의 한국판 뉴딜 종합계획(2020.7) 10대 대표 과제의 하나로 기획되었다. 준공 후 10년 이상 경과한 어린이집, 보건소, 의료시설 등 전국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 에너지 성능 향상 및 생활환경 개선을 목표로 리모델링 사업비를 지원하는 사업이다. 2021-2022년 2년 동안 전국 203개 지자체 및 16개 공공기관이 참여해 1,645개소의 공공건축물에 대해 리모델링 사업이 진행되었다.
이 사업은 단순히 에너지 절약을 위한 리모델링 기술만으로 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 이 사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지원 대상 건축물 선정, 설계자 선정, 설계 진행, 시공자 선정 및 공사 진행 등 사업 단계마다 적정한 기술력을 갖춘 설계자-시공자를 선정하는 능력과 각각의 업무 진행 상황을 관리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지원 대상 건축물 선정과 예산 집행, 설계 및 공사 기준 수립은 중앙정부가 주관할 수 있지만 이후 실제로 건축물을 리모델링하는 수많은 개별 사업마다 설계자 선정부터 공사 진행까지를 관장하는 주체는 지방정부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사업의 성공을 위해서는 지방정부들이 이 일련의 과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26개에 이르는 기초자치단체들, 즉 지방정부는 대부분 건축 사업 수행 경험을 갖춘 공무원 인력이 없거나 부족하다. 이 사업을 계기로, 민간 전문가를 총괄건축가나 공공건축가로 위촉하거나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하는 등 지방정부가 민간 전문 인력과 협력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적 지원을 보다 강화했어야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양질의 설계를 통해 건물 자체의 에너지 성능 개선을 넘어 주변 골목 환경까지를 개선하는 효과도 사업의 목표에 포함했어야 했다. 견실한 업체가 설계 용역 및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역마다 견실한 중소 규모 설계업체와 건설업체를 육성하는 효과도 사업의 목표 중 하나로 삼았어야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설계비나 공사비를 얼마나 낮게 부르는가를 기준으로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 아니라 능력과 질적 수준을 기준으로 설계자-시공자를 선정할 수 있도록 계약-발주 제도를 보완하고 다듬었어야 했다. 이 모든 것이 공공건축 그린 리모델링 사업의 목표이자 과제로 설정되고 추진되었어야 했다. 그래야 이 사업이 한국판 뉴딜 계획의 대표 과제인 이유와 취지가 확실해지고 그 성과 역시 기록할 만한 것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일에는 비용이 수반된다. 직접적인 생산 원가도 늘어날 것이고, 추가적인 운영 인력도 필요할 것이고, 관련 전문가-민간 주체들과의 거버넌스 구축 등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도 적지 않게 투입해야 할 것이다. 그린 리모델링 사업의 목표를 오직 ‘건물의 에너지 성능 높이기’에만 둔다면 이들 증가하는 비용은 목표 달성에는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절약해야 할 비용으로 치부될 것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지방정부의 역량 강화, 골목 환경의 개선, 견실한 중소 규모 설계-시공업체 육성까지를 정책 과제로 설정하고 사업 목표에 포함했다면 어떻게 될까? 이들 비용은 응당 예산에 포함될 것이고, 총예산은 얼마간 증가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예산 낭비가 아니다. 오히려 적은 예산으로 중요한 정책 과제들을 수행하는 효과적인 예산 집행이라 해야 한다. 이들 정책 과제들을 그린 리모델링 사업 수행 과정에서 함께 추진하는 것이, 각각의 과제를 별개 과제로 추진하는 것에 비한다면, 매우 큰 비용을 절감하는 효과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이들 정책 과제들은 100년건축으로의 진전을 위해 필수적인 과제들이다. 지방정부의 건축 사업 운영 역량, 견실한 설계업체들과 시공업체들을 선정하는 계약-발주 제도, 관련 전문가-민간 주체들과 지방정부의 거버넌스 구축, 이 모두가 100년건축을 위해 필수적이다. 따라서 증가하는 비용 역시 100년건축으로의 진전을 위한 비용으로 보아야 한다. 설령 이 때문에 건축 생산 비용이 늘어난다 해도 이를 통해 100년건축 만들기가 한 걸음 진전한다면 국민이 부담하는 총비용에서는 절대적으로 이익일 것이기 때문이다.
[연재] 건축의 시대: 한국 사회의 질곡, ‘40년건축’을 넘어서
1편. ‘40년건축’으로 만든 나라
① 부자 나라, 가난한 삶
② 재건축의 경제학
③ 한국의 건축생산비용 보고서
④ GDP의 6%를 버리는 나라
⑤ 40년건축에서 100년건축으로
2편. 부실시공, 공공책임 부재의 귀결
3편. 건축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박인석
현재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도시와 건축 및 주택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가 건축정책위원회 5기 위원과 6기 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 생산 역사』(전 3권), 『건축이 바꾼다』, 『아파트 한국 사회』 등이 있다.
40년건축에서 100년건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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