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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건축의 경제학

박인석

건축의 시대: 한국 사회의 질곡, ‘40년건축’을 넘어서
1편. ‘40년건축’으로 만든 나라 ②


‘40년건축’이 한국 사회에서 성립하고 통용되는 양상은 아파트단지 재건축 사업에서 명징하게 드러난다. 한국에서 아파트단지는 준공 후 30년이 넘어설 즈음이면 당연하다는 듯이 재건축 과정에 돌입한다. 분당, 일산 등 1990년대 준공한 1기 신도시 아파트단지들이 2020년대에 들어서면서 재건축 논의가 불붙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급기야 정치권까지 나서서 1기 신도시 아파트단지 재건축을 서두르기 위한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2023.12 제정)이라는 신박한 법률까지 만들어냈다. 이를 보도하는 언론의 태도도 “그럴만하다”는 듯 별다른 이의 제기가 없다. 아파트 건축물 수명이 30-40년이라는 것을 온 사회가 수긍하고 있는 것이다.

아파트 건축에 관한 한 세계 최고 수준임을 자부하는 한국 건설업체가 건축한 철근콘크리트조 아파트 건축물의 수명이 기껏 40년이라는 데에는 누구도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지은 지 30년만 지나면 헐고 새로 짓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사회이니 일부 건축물은 처음부터 허술하게 지어지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정상적으로 시공된 건축물이라면 설비 배관은 몰라도 철근콘크리트 골조 수명은 100년은 넘어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대부분의 생각이다.

여기서 ‘100년’은 건축물의 물리적 수명이고 ‘30년’은 사회적 수명이다. 물리적 수명이란 건축물의 구조 내력이나 사용 재료의 성능이 유지되는 기간이다. 철근콘크리트 등 구조체의 수명은 100년 이상으로 길지만 마감 재료나 설비 배관과 배선 재료의 수명은 이보다 훨씬 짧다. 따라서 ‘건축물 수명이 100년’이라는 것은 그 100년 동안 마감 재료나 설비 배관과 배선을 여러 차례 보수하거나 교체해가면서 사용함을 전제로 하는 얘기다. 작게는 벽지 도배나 화장실 도기 및 벽타일 교체에서부터 크게는 내부 칸막이 벽체 변경, 건물 외장재 및 창호 전면 교체까지 크고 작은 리모델링 공사를 계속하며 사용하는 것이다. 결국 건축물의 물리적 수명은 곧 건축물 구조체의 수명을 말하는 것이다. “아파트 건물 수명이 100년은 넘는다”는 말은 이런 맥락에서 하는 얘기다.

그러나 건축물의 물리적 수명이 제아무리 길어도 40년 만에 철거해버린다면 그 건축물의 수명은 40년이다. 이것을 건축물의 사회적 수명이라고 한다. 물리적 수명이 한참 남은 건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이유는 다양하다. 기존 건물이 공간 구조상 쓰임새가 안 좋아지거나 건물의 형태나 재료가 마음에 안 들어서일 수도 있고, 그 땅에 더 크고 높은 건물을 짓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기 때문인 경우도 있다. 대부분 이 두 요인이 섞여 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건 물리적 수명이 남아 있는 건물을 철거하고 다시 짓는 것은 기존 건물의 남아 있는 가치를 포기한다는 얘기다. 기존 건물의 공간구조나 형태에 대한 불만족으로 재건축하는 경우라면 만족할 만한 쓰임새나 형태를 갖는 건축물을 얻으려는 욕구-필요가 기존 건물의 잔존 가치를 포기할 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파트단지들이 30-40년 만에 재건축되는 이유는 대부분 경제적 이익 때문이다. 기존 건물의 잔존 가치를 포기하고 여기에 ‘철거 및 재건축’ 비용 부담을 더하더라도, 더 높은 용적률로 더 많은 면적을 건축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가치(시장가격)가 이 모두를 합산한 것보다 클 것이라는 기대 속에 재건축이 진행된다.

우리나라 아파트 건물의 물리적 수명을 유럽과 마찬가지로 100년이라 한다면 40년 만에 사회적 수명을 마치고 철거되는 재건축사업을 가치 측면에서 살펴보자.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어 인플레이션이나 땅값 상승은 없는 시장 균형 상태를 가정한다. 100년건축 사회인 유럽 어느 나라에서 총비용 1,000을 투입해 물리적 수명 100년인 아파트를 지었다고 하자. 신축 당시 가치 1,000인 아파트는 100년 후 가치 0이 된다. 이를 철거한 후 다시 총비용 1,000을 들여 재건축한다면, 100년간 생산한 가치량은 1,000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물리적 수명 100년 가치 1,000인 아파트를 40년 만에 철거하고 비용 1,000을 들여 재건축한다. 수명이 아직 60년이나 남았으니 잔존 가치가 600이다. 가치가 아직 600이나 남은 아파트를 철거해 버린 것이다. 새 아파트로 가치 1,000을 생산했지만, 철거한 아파트의 잔존가치 600을 폐기해 버린 것이니 실제로 한국 사회가 재건축을 통해 증가시킨 가치는 1,000이 아니라 400이다. 재건축은 40년마다 이루어지니 100년간 2.5회 재건축이 반복된다. 2.5회 재건축을 통해 100년간 생산하는 가치는 1회당 1,000씩 총 2,500이지만 실제로 증가시키는 가치는 1회당 400씩, 총 1,000뿐이다. 기존 아파트에 남아 있던 가치 1,500을 철거-폐기해버리기 때문이다. 40년건축 사회는 100년간 100년건축 사회의 2.5배인 2,500의 가치를 생산하지만 실제로 보유하고 사용하는 가치는 1,000으로 100년건축 사회와 동일한 것이다.

아마도 이런 지적이 있을 것이다. “아파트를 60년이나 더 사용하려면 크고 작은 보수공사와 리모델링을 여러 차례 거듭해야 한다. 그러니 100년건축이라고 해서 100년에 한 번만 생산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당연한 지적이다. 그러나 40년건축이라고 해서 보수-리모델링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익히 알듯이 아파트는 이사할 때마다 크고 작은 보수-리모델링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다. 2023년 주거실태조사(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거주기간이 8년이니 아파트는 신축 이후 40년 후에 철거될 때까지 평균 네 차례의 보수-리모델링을 겪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100년 사용하는 아파트는 설비 배관 교체 등 규모가 큰 보수공사가 있을 터이니 보수-리모델링 공사량에 차이가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 차이가 대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재건축만 놓고 본다면 한국은 자신이 생산하는 가치량의 40%만을 실제 삶에서 사용하고 나머지 60%는 폐기하면서 살아가는 사회다. 명목상의 총생산(GDP)과 소득(GNI)에 비해 실제 향유하는 가치와 이에 따른 삶의 질은 여기에 한참 못 미치는 사회라고 할 수 있다. 1인당 소득 3만 불을 넘긴 지 오래고 GDP 세계 10위권을 넘볼 정도로 약진하는 국가인데, 모든 사회 구성원들 매일의 일상이 점점 더 바빠질 뿐 삶의 질이나 행복도는 높아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기존 아파트를 물리적 수명이 다할 때까지 60년 더 사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열심히 바쁘게 일하는 한국인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100년간 생산하는 총가치량이 2,500인 것은 마찬가지일 터이다. 재건축은 100년에 한 번만 하면 되니까 재건축으로 생산하는 가치량은 1,000이고 나머지 1,500은 다른 재화로 생산될 것이다. 한국 국민들이 유럽 사람들에 비해 더 열심히 더 바쁘게 일하고 생산하는 총가치량이 많다면 그만큼 실제 생활에서 사용하는 가치도 커질 것이다. 생산하는 가치량(GDP, GNP)이 큰 만큼 실제 사용하고 향유하는 가치도 풍성한 사회, 열심히 일한 만큼 더 높은 삶의 질을 누리는 사회가 될 것이다. ‘40년건축’이 가로막고 있는 꿈이다.

이런 명백한 부조리와 불합리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아파트단지 재건축사업이 성행하는 것은 왜일까? 수명 100년 이상인 아파트를 30-40년 만에 철거하면서까지, 즉 아직 60%나 남아 있는 가치를 포기하면서까지 추진하는 재건축사업의 메커니즘을 살펴보자. 재건축사업은 새로 짓는 아파트의 교환가치가 ‘기존 아파트의 잔존 교환가치와 새 아파트 건축 비용의 합’보다 클 때 추진된다. 앞에서의 가정대로, 40년 만에 재건축하는 기존 아파트의 잔존 가치를 600이라 하고 재건축 비용을 1,000이라고 한다면, 새로 짓는 아파트의 교환가치가 1,600을 초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건축 비용 1,000을 투입한 아파트가 어떻게 1,600 이상의 교환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이는 높은 건축 밀도와 상품 성능 쇄신을 통해 달성된다. 재건축된 아파트단지는 기존 아파트단지보다 훨씬 높은 용적률로 건축되어 총 바닥면적이 크게 늘어나기 마련이다. 이와 함께 단위주거 평면, 부대시설, 외부공간 구성과 형태를 세련화하고 고품질 재료를 사용하는 등에 의해 아파트의 상품성 또한 높아진다. 늘어난 바닥면적만큼, 높아진 상품성만큼 총 교환가치도 증가한다. 이렇게 증가한 교환가치는 곧 땅값에 반영되면서 땅값 자체가 비싼 아파트단지가 된다. 곧이어 여건이 비슷한 주변 아파트단지의 땅값 역시 같이 오른다.

결국 아파트단지 재건축사업은 고밀화와 상품 성능 쇄신을 통해 총 교환가치량을 크게 늘릴 수 있다는 계산 아래 아직 수명이 60년이나 남은 아파트를 폐기해버리는 자기 파괴적 경제활동이다. 그 결과로 자신은 물론 주변 지역 땅값을 상승시키는 경제활동이다. 다른 재화의 생산에 사용할 수도 있었던, 그럼으로써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었던 사회적 자산과 노동력을 [기존 가치 폐기 – 초과 교환가치 생산 – 땅값 상승]이라는 소모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생산활동에 낭비하기를 반복하고 있는 악순환이다.


[연재] 건축의 시대: 한국 사회의 질곡, ‘40년건축’을 넘어서
1편. ‘40년건축’으로 만든 나라
① 부자 나라, 가난한 삶
② 재건축의 경제학
③ 한국의 건축생산비용 보고서
④ GDP의 6%를 버리는 나라
⑤ 40년건축에서 100년건축으로
2편. 부실시공, 공공책임 부재의 귀결
3편. 건축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박인석

현재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도시와 건축 및 주택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가 건축정책위원회 5기 위원과 6기 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 생산 역사』(전 3권), 『건축이 바꾼다』, 『아파트 한국 사회』 등이 있다.

재건축의 경제학

분량4,785자 / 10분

발행일2025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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