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사위원, 멘토 주제 설명에 대한 질의 응답
김정임, 박성태, 유걸, 신승현, 조한혜정
분량9,349자 / 20분
발행일2013년 12월 21일
유형좌담
Q. 건축가를 ‘기획자’라고 말씀하신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 문제를 건축가 스스로 제기할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됩니다. 이번 공모전에서 건축주를 직접 만나서 인터뷰하게 한 목적은 무엇인가요? 공모전 주제 선정의 구체적인 의도가 궁금합니다.
김정임 처음 주제를 정하면서 ‘일상’보다 ‘구체성’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일을 하면서 느낀 경험을 통해 결정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어 팔아야 하는 시행사 소속의 사람들은 일이 잘 마무리되기만을 요구할 뿐입니다. 공간을 사용할 구체적인 대상이 부재한 상태에서 만들기 때문에 구체성을 많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또 건축가 혼자만의 아이디어로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건축은 건축가와 건축주가 서로 원하는 것을 조절하는 과정의 대화에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결과물을 얻을 수 있습니다. 건축과 건축물 자체 보다는 그 안에서 사는 사람이 좋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서 건축 본래의 목적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굉장히 구체적인 요구사항과 불편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대화를 나눌 수 있으면 합니다. 대화의 과정을 통해서 그들에게 건축적인 경험을 새롭게 하고 이런 대화의 필요성을 일깨울 수 있을 것입니다. 참가자들에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박성태 주제 선정에 대한 심사위원의 말에 덧붙이자면 건축가가 건축주로 하여금 이야기를 끌어내서 건축을 할 수 있도록 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건축주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 단계 더 진보된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보통 건축주가 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건축주를 만나는 것도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평생 집을 열 번, 스무 번 짓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아주 작은 프로젝트를 계획해도 좋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욕구와 욕망을 파악할 수 있을 테고, 그런 과정에서 프로젝트를 진행시키고 발전시킬 수 있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합니다.
Q. 건축주를 설정하는 데 있어, 실제로 건물을 지을 계획이 있는 사람을 지시하는 것인지, 아니면 잠재적인 클라이언트로서 건축주도 포함하는지 궁금합니다.
유걸 건축이라는 말이 일차적으로 건물을 연상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건축의 범위를 좀 더 넓혀 생각해본다면, 그것은 ‘환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환경을 개선하는 일은 다양한 측면에서 이뤄질 수 있습니다. 벽에 그림을 걸거나, 가구의 위치를 바꾸거나, 집을 새로 짓고 동네를 계획하는 등. ‘환경을 개선한다’라고 할 때 눈에 보이는 것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 조직이나 제도를 개선하기 위해 사람들이 각자 노력하는 것과 건축도 여기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건축, 즉 환경을 개선하는 것은 건축가에게만 해당되는 일이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일이 실제로 그곳에서 생활하고 거주하는 이들에게 있습니다. 늘 환경 개선이 필요하지만 그 서비스를 건축가에게서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 부분을 우리의 가까운 곳에서부터 찾는다면, 일테면 집을 설계하지 않더라도 여러 가지 스케일에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김정임 쉽게 말하자면 이 주제에서 건축주는 공간의 사용자와 같다고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Q. 공유할 수 있는 아이디어에 가치를 부여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건축주가 원하는 것이 사회에서 공유되어야 더 의미가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건축주가 바라는 것이 지극히 개인적인 것일 수 있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개인적인 것보다 사회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에 더 무게를 두어 진행해야 하는 것인가요?
유걸 건축가가 건축의 기획과정에 참여했으면 좋겠습니다. 건축은 건축가를 위한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생활할 건축주를 위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건축주 개인만이 만족하는 건축이 좋은 건축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즐기고 공유할 수 있을 때 그 가치가 더 커질 것입니다. 건축주가 놓칠 수 있는 이슈들을 건축가가 바로 잡아줄 수 있는, 프로젝트를 함께 검토하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개인의 요구사항은 공공의 필요와 전혀 무관하게 발생하는 것이 아닙니다. 때문에 개인적인 것 사회적인 것을 분리시켜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Q. 건축주가 건축가에게 원하는 것을 제안했을 때, 건축주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끌어내어 좀 더 사회적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것인가요?
유걸 그 전에 ‘건축주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가’를 파악하는 것이 먼저 이뤄져야 합니다. 집을 짓고자 찾아오는 건축주와 나는오랜시간동안이야기를 나눕니다. 많은 질문을 던지고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으면서 건축주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지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의 생각의 합일점을 찾아나갈 때 좋은 건축에 가까워질 수 있습니다. 건축주와의 형식적인 대화, 일에 대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아닌, 서로의 생각의 합일점을 찾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Q. 유걸 심사위원님이 건축과 사회가 유리되어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건축가가 환경을 변화시키더라도 그 공간의 실소유주가 아니라는 점에서, 시공간적으로 어떻게든 분리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공모전은 그 간격을 좁혀보자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심사위원님이 생각하는 건축가와 사회의 간격은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 구체적으로 어떤 관계여야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유걸 우리 사회, 건축, 도시 환경을 놓고 생각해 보면 쉽습니다. 지금 우리는 주거 문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는 실상 부동산에 더 관심이 많고 더 중요하다고 인지합니다. 원인은 우리 사회의 가치관 때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 건축가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무지한 편에 속합니다. 그 결과로 한국 건설의 99 퍼센트는 건축가와 관계 없이 진행됩니다. 현실에서 도시 건축 환경은 건축가가 만든 건물이 아닙니다. 우리가 늘 접하는 건물도 우리의 환경인데, 그 환경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건축가가 참여하지 못했다면 괴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괴리의 많은 부분이 건축가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상적인 건축을 생각할 때 이상적인 사회를 생각하게 되는데, 그것을 상당히 옛 것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역사적인 우리의 건축 환경에서 이상을 찾으려고 할 때도 있고, 근대건축의 시발점에 있던 건축가들의 활동에서 이상을 찾으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랬을 때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건축가들의 문제와는 괴리가 생깁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사실 상당히 광범위합니다. 구체적으로 그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살고 있는 사람과 건축가들의 생각이 달랐기 때문이고, 그런 점에서 실제 살고 있는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건축가와 사는 사람의 합일점을 찾는 것이 건축의 시작이 되어야 합니다. 현실과 괴리가 있다는 점은 건축가뿐만이 아니라 건축 교육도 그런 것 같습니다.
김정임 아침에 가끔 뒷산에 올라가는데, 거기에서는 서울의 강남 시내와 한강까지 내려다보입니다. 가끔 그 풍경을 보면서 ‘여기에서 소위 건축가라는 사람들이 만든 것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과연 건축가들이 보석처럼 구석구석에 박혀있는 건축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당연히 보석 같은 건물도 필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일간에서 요즘 건축과의 졸업생도 너무 많고 건축가가 너무 많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건축가가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오히려 부족합니다.
가끔 낯선 동네나 지방을 ‘저건 건축가가 한 것이다’라는 것이 느껴지는 건축물이 있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면 진짜 알 만한 건축가가 설계한 것입니다. 과연 제가 그것을 느끼는 지점은 무엇일까요? 예뻐서는 아닙니다. 그 집만이 아니라 도시와 그 앞에 있는 길, 옆집과 동네의 관계를 잘 고려해서 좋은 해법을 제시해서 분명히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졸업 후 다양한 현장에서 여러 일들을 수행해야만 거리의 건물들이 튀는 보석 같은 건물 대신 좋은 물리적 환경이므로 조성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다양한 레벨에서 건축 서비스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회와 건축이 유리되어서 건축가의 건축물을 작품처럼 일부러 찾아가 경험하는 수준에 머무는 것 같습니다. 서비스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이런 점들이 앞으로 개선되어야 합니다.
박성태 이번 공모전은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조금 더 강조하는 의도도 있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건축을 설계하는 것 이상을 여러분에게 요구합니다. 그러다 보니 결과물 중심의 프레젠테이션이 아니라, 여러분이 과정에 어떻게 참여하였는지를 볼 것입니다. 더욱 일상적인 것에서 나올 수 있는 지점과 간극을 보고 주도적으로 참여하길 바랍니다.
Q. 이번 공모전의 의의가 단순히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가와 세상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건축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자리가 어디인가를 찾는 거라고 생각이 되는데, 제가 맞게 이해한 것인가요?
유걸 굉장히 잘 이해하신 것 같습니다. (웃음)
Q. 구체성을 말씀하셨는데, 현실적인 면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분명 집을 짓는 데는 예산을 책정해야 하는데, 학생의 입장에서는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하는지요?
신승현 건축주와 협의를 하다보면 가장 많이 협의하는 부분이 이 부분입니다. 좋은 제안을 드린 다음에 수정하는 경우의 원인 중에 이 부분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합니다. 설계를 다하고 금액이 맞지 않아 자재를 다시 교체하게 됩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건축주가 얼마를 책정해 놓았는지 꼭 물어봐야 합니다. 건축주가 범위를 제시하면 그에 맞는 재료와 공법을 찾고 적절한 시공자를 선정합니다. 이런 것들이 대화로 오가는 것이 우리가 말한 인터뷰이고, 건축주가 제시한 것을 적용하려고 방법을 모색한 것이 결과물로 나올 때, 이 둘이 한 세트가 되어서 의도와 결과물이 보여지는 상태가 됩니다.
김정임 아직 학생이어서 구체적인 시공경험이 부족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실 설계는 시간과 비용을 적정화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예산도 고려한 것이 과정에서 보이면 좀 더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유걸 예산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점이 한 가지 있습니다. 건축주를 소위 돈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돈이 많은 사람은 얼마 안 되는 반면 건축가는 굉장히 많습니다. 돈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건축가를 마음대로 선택하고, 그 일을 하기 위해 건축가들은 엄청난 경쟁을 합니다. 이것은 굉장히 잘못된 일입니다. 건축가들이 서비스를 해야 하는 대상은 돈을 많이 가진 사람도 있고, 덜 가진 사람도 있고 돈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건축가들은 돈이 없는 사람들의 환경을 어떻게 개선해 줄 수 있는가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이 작은 것부터 큰 것과 중간 크기가 있는 것처럼 건축주는 부자도 있고 중간도 있고 아주 가난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여건이 바로 우리가 마주해야 할 구체적인 현실입니다. 제가 돈이 없는 분들을 위해 프로젝트를 했던 것이 돈이 많은 사람을 위해 했던 프로젝트와 가치에 있어서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보여줄 대상, 결과물이 천차만별할 것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 우리가 공유할 수 있는 가치가 무엇이 될지 참 궁금합니다.
Q. 조한혜정 멘토님의 이야기를 듣고 새로운 사회에서 가정 밖의 공동체도 중요해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때, 가정의 역할은 어떤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조한혜정 가족의 형태는 매우 다양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은 부부 중심의 핵가족인데 예전엔 3대 가족이었습니다. 우리는 가족이 분리되는 부부중심 핵가족제를 인류사에서 가장 나쁜 가족 형태라고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개별적 노동자들이 쉽게 이동할 수 있어서 자본가 혹은 노동자를 쓸 사람에게 편리한 제도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국가에게도 편리한 제도일 것입니다. 부부중심 핵가족, 특히 연애결혼은 근대화 과정에서 굉장히 적응력이 있는 가족제도였던 것입니다. 지금의 패턴, 사회적 가족제도가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는데, 그때 가족의 30~40%가 이혼을 합니다. 경제적인 이유나 부부가 서로 자신이 주인공이기 때문에 이혼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성미산 마을 같은 곳에서 가족들이 아이를 함께 키우는 마을로 들어가면 가정이 건강합니다. 가족은 있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고립된 부부중심 핵가족이 아니라 이웃과 협력하고 아이를 함께 돌보고, 사회에 뿌리내린 그런 가족입니다.
Q. 자본주의를 대체할 만한 새로운, 체계적인 사상이 필요할 때 누구에게서 밝혀져야 할까요?
조한혜정 ‘사회 사상’이라는 것은 항상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것입니다. 아담 스미스가 봉건 영주시대의 어떤 체제를 넘어서는 사상을 만들 때에도 100년이 걸렸습니다. 지금 탈자본주의 시대, 조선일보까지 ‘자본주의 4.0’이라고 할 정도로 지금의 자본주의, 돈, 시장사회의 문제점은 모두 알고 있는데 그 다음 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때 가장 대표적인 것은 사회적 경제 -칼 폴라니(Karl Polanyi) 라는 경제사상가가 쓴 1970년대 책- 성장의 한계 등 모두 70년대에 나온 책인데 이런 언저리에서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 주체는 우리 모두이지만 금방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거의 100년쯤 걸릴 수도 있고 지금 우리는 그 와중에 있는 것입니다. 어느 줄에 서있을지는 여러분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상이 아니라 여러분의 삶 자체가 사상을 만드는 것과 연결이 됩니다. 예를 들어 핵시설을 짓는 것에 대한 반대 서명을 이공계 교수님에게 부탁했더니, “우리나라가 계획대로면 40 퍼센트 정도가 될 것이고 수출까지 할 텐데 반대를 하면 우리나라 경제에 타격이 너무 클 것 같다 안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무 전기를 많이 쓰고 있는데, 그렇게 많이 쓰면서 발전소를 없애자고 하는 것은 너무 위선적인 것 같다”고 이야기해서 제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같이 원자력을 짓지 말자고 하는 것은 협약입니다. 그리고 진짜 그렇게 협약이 되면 핵발전소를 짓지 않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함께 고민하는 것입니다. 사실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전기를 아껴 쓰는 것입니다. 우린 지금 너무 전기를 많이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독일을 갔다 와서는 해질녘까지 등을 안 켭니다. 독일에서는 컴컴할 때 일몰을 보지 왜 불을 켜냐고 하더라고요. 이처럼 생각 나름입니다. 근대초기에 가난할 때 끊임없이 뭔가 풍성해야 한다는 강박 속에서 살던 때와 달리, 여러분은 사실 그렇게 까지 하지 않아도 되는 세대입니다. 그리고 그 세대는 국가중심으로 생각하면서 우리가 한국이라는 국익을 위해서는 원자력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원전 사고가 나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전 세계적인 사고입니다. 특히 아기와 산모에게 치명적이고, 다음 세대에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질 것입니다. 인류의 문제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계속 국익으로만 생각을 합니다.
사실 제가 더 걱정하는 부분은 우리가 아주 다이내믹한 민족이면서 ‘적당하게’하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원전사고가 많은 나라중의 하나인데 기록으로는 ‘사고가 가장 없는 나라’로 나와 있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사고를 치고 남의 나라에 짐을 지우는데 그래도 되는 것인지, 이런 식의 생각들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사실 그런 전환입니다. 여러분 하나하나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전기를 덜 쓰는 집을 짓는다던가, 에너지를 내리거나 변환하는 것이 집을 지을 때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패시브하우스(Passive House)가 에너지를 거의 안 쓰지만 창문을 열어 환기를 잘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별로 적합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에너지 사용을 낮추는 방식을 만들어내면서 재생에너지나 순환에너지와 같은 변환된 새로운 에너지를 쓸 수 있는 건축을 하면 평생 즐겁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걸 사람들이 모여서 사는 형태로 마을도 있고, 도시도 있는데, 도시에 대한 생각을 한 가지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조한혜정 제가 생각한 것이 어반 빌리지 (urban village), 도시의 마을입니다. 도시라는 것이 초기 근대의 공장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까 이야기 했던 부부중심 핵가족으로 굉장히 급격하게, 거대한 새로운 근대적 도시를 만들었습니다. 그러한 도시가 다시 ‘마을’로 될 때, ‘후기 근대의 도시’가 새롭게 표출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아파트가 클라이맥스라고 생각합니다. 참 편리한데, 잠만 자고 나와 다른 곳에서 일하는 구조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 다음 단계인 도시적인 마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함께 키우고 돈을 같이 벌고 취미생활을 같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래층 공방 중심의 집인 땅콩집을 90개 정도 짓겠다고 했을 때는 신도시에 있는 땅에서 진행하는 것이었습니다. 90개의 집들이 신도시에 있는 아파트들을 도시적인 마을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후기근대에 거대도시들이 다음 단계로 진화할 때 여러분이 마을 중심의 사고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걸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제가 도시에 대해서 관심이 생기는 부분은 마을이라는 것은 아는 사람들끼리 사는 모양인 반면 도시는 모르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사는 공동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모르는 사람들도 같이 잘 살 수 있는 환경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조한혜정 사람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와서 익명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거대도시가 만들어졌을 초기에 도시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가 ‘익명성’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을 흉악 범죄라든지 시대가 너무 끔찍해져서 아이들을 키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테크놀로지를 이용해서 닫힌 공동체로 가거나, 아니면 익명성이 아닌 아는 사람들 속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도시의 익명성적 특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이 근대의 확장적 도시인가, 아니면 더 이상 확장되지 않고, 사람들이 이사를 하지 않으며 신분적 이동이 없는 도시인가입니다. 후자의 도시는 상당히 안전하고 신뢰가 있는 사회입니다. 모두가 잘 되기 때문에 남을 해칠 생각을 안 하는 것입니다. 경제가 나빠지고, 모든 사람이 스스로 벼랑 끝에 있다고 생각하고, 완전 게임만 하다가 나와서 짧은 옷을 입은 여자들의 다리를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진 도시가 후기 근대입니다. 거대함, 익명성이 어떤 의미에서는 봉건적 체제에서 억압을 받아서 탈출을 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한 해방감을 줍니다. 그런데 지금 여러분의 세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지금은 전부 원자화 되고 외톨이가 되어 해방되고 싶은 곳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자유도 굉장히 부담스럽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를 생각하면 다시 관계를 맺고 자기 삶을 풍성하게 살 수 있는 이웃을 갖는 것이고 동료를 갖는 것이고, 그 공간을 여러분이 만드는 것입니다.
심사위원, 멘토 주제 설명에 대한 질의 응답
분량9,349자 / 20분
발행일2013년 12월 21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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