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3
김일현 × 김상호
분량4,142자 / 8분
발행일2013년 12월 21일
유형인터뷰
김일현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교수
인터뷰 김상호 《다큐멘텀》 편집장
김상호 요즈음 건축을 비롯하여 많은 분야에서 일상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김일현 아무래도 우리의 삶 자체가 피폐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우리의 삶은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듯 커다란 공장 같은 도시에서 기계적으로 반복되는 생활과 다르지 않다. 일상이라는 담론을 계속 이야기하는 것은 그런 틀에 박힌 삶 이상의 것을 느끼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김상호 건축에서 ‘일상성’이란 무엇일까요?
김일현 건축가는 건물을 설계할 때 미래의 상황을 머릿속에서 구현한다. 대부분의 경우 건물이 지어진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일상성이라는 범주를 조금 달리 볼 필요가 있다. 설계 과정에서 보는 일상이라는 것은 여러 시간의 켜가 존재할 뿐 아니라 다중 인격적인 측면이 있다. 건축가가 어떤 건물을 설계할 때 건축주의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거기에 올 사람, 임대할 사람, 지나가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들을 고려하기 마련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일상을 하나로 이야기할 수 없듯이 복잡한 사고 과정을 오가는 설계 과정에서도 일상을 하나의 균질한 것으로 압축시키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게 건축에 내재하는 속성이기도 한데 이를 인지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김상호 건축의 일상성을 주제로 삼는 수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일현 작년부터 수업 시간에 학생들과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자신의 개인사와 인류사의 관계에 대한 리서치 과제다. 그 수업의 첫 단계는 자기 자신의 이동 경로를 맵핑하는 것이다. 태어난 때부터 지금까지 이사한 집을 검은 색으로, 자주 갔던 장소를 파란 색으로, 기억에 남는 장소를 빨간 색으로 표시하도록 한다. 그렇게 완성된 지도에는 한 개인이 움직였던 흔적이 시공간을 넘어 한
번에 보여준다. 이를 통해 기억을 통해 장소를 달리인식하는체험을하게된다.이작업은 어떻게 보면 국제상황주의자(International Situationist)들이 했던 심리지리학 (psycho- geography) 지도 그리기와 유사하다. 이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중심으로 여러 장소의 의미가 교차되는 체험을 해보는 것이 주요한 목적이 된다. 그 경험은 연대기적 경험과 다르다. 지금 시점에서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 특정 장소와 여러 번 교차하면서 두께를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일상의 공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수업을 하게 된 이유는 학생들에게 자기 자신을 존중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건축학과 학생들은 안도 타다오가 키우는 개 이름이나 알바로 시자가 아버지와 갔던 여행지는 알면서 정작 자기 자신이 뭘 좋아하고 어딜 여행했는지는 기억하지 못한다. 학생들에게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갖게 해주고 싶었다.
김상호 일상성을 시간이나 개인의 경험과 연관 지어 바라보는 관점이 흥미롭습니다.
김일현 일상은 현재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시간에 대한 태도로 봐야한다. 도시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시간성을 배제해서는 안 되며, 개인사와 장소성이 누적된 발자취와 단편들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도시는 동시대 사람들의 분신이다. 오르한 파묵이 “도시를 진정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은 자신도 사랑하지 못 한다”고 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물리적인 도시 환경은 그 사람들의 반영체다. 건축의 일상성에 개인의 체험과 기억을 개입시킬 때 학교 앞 떡볶이 집이나 문방구, 편의점, 학원도 내 집이 되고 더불어 건축의 개념도 확장된다. 도시는 일상의 공간이 된다.
개인사에 대한 재고찰을 우리 현대사에 동일하게 적용해보면 현대사가 일어난 곳이 현재 우리의 일상 공간이다. 이때 일상의 문제는 개인에 국한되지 않고 집단으로 확장된다. 현대사라는 보다 큰 범주에서 일상은 하나의 유산이다. 식민지, 전쟁, 압축 성장을 연속해서 겪으면서 상실한 정체성 역시 우리의 일상을 이해하는 기반이 된다.
김상호 개인의 경험을 도시 공간 속에 맵핑하는 과정을 통해 결과적으로 어떤 건축적 결과물을 이끌어내고자 하시나요?
김일현 리서치 결과를 건축과 연관시키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수업의 초점은 결과물 보다는 ‘세상의 경이로움을 어떻게 재발견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관찰 훈련에 있다. 아주 사소한 것들이 우리 일상을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단서가 된다. 예를 들어,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 중 하나로 간판을 선택해서 간판의 역사를 추적해 보는 것만으로도 도시의 역사를 관통해 볼 수 있듯이 말이다.
김상호 결과적으로 얻고자 하는 것이 추상적인 것에 머문다면 구체성을 토대로 삼는 일상성과는 멀어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실을 세심하게 살펴서 구체적인 해법을 만들어 내는 것을 일상의 건축이라고 보는 것과는 상반되는 관점인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일현 건축가가 프로그램을 통해서 모든 것을 만족시키는 답을 구하는 것은 개인 주택에서나 가능할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접촉하는 건축에서는 돌발적이고 변덕스러운 요소들까지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에서 이미 오래 전에 의도했던 것이다. 작가가 갖다 놓은 단순한 의자 하나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해석된다. 일종의 “열린 작품”이다. 그걸 건축적으로 구현한 일례로 알도 반 아이크(Aldo van Eyck)가 계획한 암스테르담의 어린이 놀이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철봉, 삼각형의 낮은 벤치, 벽 하나 정도가 공간을 구성하는 전부지만 아이들은 그 공간을 놀이터로 마음껏 사용한다.
모든 것을 기획해서 인과론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방식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거기에 저마다의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방식으로 건축을 생각해야 한다. 공간이 궁극적으로 사람의 행태에 의해 생성된다고 본다면 거기에서 머물고 활동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건물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
김상호 요즘 일상의 건축과 관련해 언급되는 대부분의 사례들을 보면 주택이나 근생 건물과 같이 작은 크기를 넘어서지 못합니다. 어쩌면 ‘열린’ 계획보다는 구체성에 집중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데요. 보다 큰 규모의 건축에서 일상성을 구현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김일현 배려가 필요한 것 같다. 사실 어려운 일이다. 부동산을 커다란 재화로 보는 자본주의 위에 세워진 도시에서는 익명의 사람들을 포용하기 위한 논의가 부족했다. 배려라는 기준으로 건축을 바라보면 해답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개인사의 중요한 요소로 만들려면 수익 수단으로서의 건축이 아니라 배려하는 수단으로서의 건축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환대성(hospitality)의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배려의 정도는 다양할 수 있다. 깡통에 꽃을 심어 놓든, 시선을 반쯤 열어두는 루버(louver)로 영역을 구분하든 어떤 식으로든 타인에 대한 배려를 염두에 두면 된다. 거주자와 행인으로 단순하게 분리시켜 설계를 해 온 것을 되돌아봤을 때, 어쩌면 배려라는 것은 건축에서 의도적으로 무시했던 주제 중에 하나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에 대한 존중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면 일상의 건축에 대한 논의는 굉장히 피상적으로 흘러갈 수 있다. 자기에 대한 인식 그리고 시간에 대한 인식이 교차하는 매체로서의 공간에 대한 인식이 전면적으로 수정되어야 하는 시점이다.
김상호 ‘배려’가 일상의 건축을 위한 내부 조건이라고 본다면 그동안 일상의 건축이 자리 잡지 못한 외부적 요인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일현 청계천, 피맛골, 새만금, 4대강, 세종시 개발로 이어지는 개발지상주의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작게는 가판대 디자인 정비, 캐릭터 산업, 경관 조명 사업들 역시 마찬가지다. 거기에는 시간이 부재하고, 폭력적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다. 특히 심의 과정에서 심사위원들이 자신들과 연관된 회사를 소개해주는 내부 거래가 모든 것을 망쳐놓았다. 또한 건설, 디자인, 건축을 둘러싸고 있는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와 부정부패들도 심각한 문제다. 부조리 자체가 체계화되어 있는 것 같은 상황에서 일상의 공간은 하찮은 것일 뿐이다. 단기적 수익만 쫓아 개입한 모든 주체들이 이런 총체적 난국을 만든 공범이라고 생각한다.
지역과 장소에 대한 배려와 공사를 끝낸 이후에 대한 고려가 충분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면 이런 상황은 나아지기 힘들다. 일상의 건축이라는 말이 피상적인 의미로 쓰이지 않기 위해서 그만큼 먼저 장소와 시간에 대한 폭력적이고 몰상식한 태도를 깊이 반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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