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에 일상성과 공공성을 추구하기
김정임, 유걸, 신승현, 조한혜정, 박성태
분량13,313자 / 25분
발행일2013년 12월 21일
유형좌담
김정임 서로 아키텍츠 건축가
유걸 아이아크 대표건축가
신승현 아이아크 건축가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문제를 촉발시키는 기획자로서의 건축가
박성태 이 자리는 심사에 앞서 각 심사위원과 멘토를 초대해 평가 방향에 대해 논하는 시간입니다. 각자 관심을 기울여 집중적으로 살펴보고자 하는 부분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정임 건축은 사람이 중심입니다. 사람이 빠진 건축은 없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주인 없는 건축 작업을 많이 합니다. 건축이 공중에 떠서 부유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그래서 저는 참여 학생들이 건축주와의 인터뷰를 3회 이상 거치고, 이를 통해 좀 더 구체적인 디자인 프로세스와 결과물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박성태 네. 그런데 제 생각에 조한혜정 교수님은 ‘일상성’이라는 것을 ‘공동체와 마을’이라는 테마로 좀더 끌어오고 싶어하시는 것 같습니다.
유걸 물론 함께 살아가는 일상의 모습을 공동체의 모양으로 디자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경우 추상적으로 치우칠 수 있습니다. 저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마을’에 대해 이야기한다면, 제안하는 사람이 마을을 만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이제 건축가는 더 적극적으로 구체적인 현실을 응시하고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건축가가 ‘문제를 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습니다. 건축가가 ‘내게 왜 일을 주지 않지? 왜 건축을 필요로 하지 않는 거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 해결(problem-solving)’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축가는 문제를 ‘찾아주는 것’에 집중해야 합니다. 전문가이자 오피니언 리더로서 건축가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는 좋은 건축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건축의 공공성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환경에서 건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건축가는 오피니언 리더의 자세로 질문하고 해결책을 구해야 합니다.
박성태 건축가란 모름지기 사회적 아젠다(agenda) 세팅에 참여해야 한다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 공모전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단순히 클라이언트와 이야기를 나누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동네나 마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그에 따른 구체적인 대안으로서의 해결책을 제안해야 한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승현 저는 학생들이 단순히 건축에 국한되지 않고 차원을 넓히기를 바랍니다. 동네의 문제를 개선하다보면 자신의 동네와 다르다는 것을 의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 지역 사람들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어떻게 하면 더 좋게 구현할 수 있을까를 자문하며 조사(survey)해야 할 겁니다.
박성태 동감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을 통해서 건축주와의 인터뷰, 그 속에서 발견한 문제(의식), 이를 통해 도출해낸 자신의 견해 및 해결방법 등을 명확하게 밝힐 수 있어야 합니다. 프레젠테이션 과정에서 건축적인 해결책을 시각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도면과 모형, CG 등도 중요한 기준이 될 것입니다.
김정임 덧붙이자면 이제 건축가가 기획자가 되어야 하는 시대가 왔다고 봅니다.
건축가의 문제 해결 방법 제시, 어떻게 이뤄져야 할까?
유걸 건축에는 부수적으로 따르는 일이 아주 많습니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 혹은 수많은 사람들의 협력(collaboration)을 통해 한 가지 기획안을 만들어 내는 것이 건축입니다. 건축공부를 한 사람이라면 모두 이 과정을 직접 하고 있다고 봐야 합니다. 물론 건축을 전공했다고 해서 모두가 이 일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김정임 이 행사를 주최하고 심사하는 우리가 어떤 점에서 세상에 오염되어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 뭔가 시각적으로 근사한 결과물이 나오길 기대하는 마음이 있을 겁니다. 심사위원과 멘토가 어느 정도 마음을 비우고 심사에 임해야 한다고 봅니다.
신승현 좋은 말씀입니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되 결과적으로 그것을 만들었을 때 어떻게 조화롭게 풀어내느냐 역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박성태 과정 없이 결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한편으론 전체적으로 과정이 똑같이 우수하다면 결과물이 중시될 겁니다. 이외에 참가자들에게 강조할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신승현 건축을 배우는 과정을 보면, 사실 거의 대부분의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 처음 건축에 입문합니다. 사실 과정이 중심이 되면 인터뷰를 하는 모습만으로는 건축에서의 우열을 가릴 수 없습니다. 어떤 지점에서 심사의 분별성을 가질 지가 고민됩니다. 학생들도 똑같은 입장에 놓이게 되는 것 같습니다.
김정임 결국엔 어떤 문제를 찾아내느냐가 관건이 될 것 같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를 발견할 텐데 무엇을 메인 이슈로 할 것인가가 첫 번째 평가 요소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전반적인 팩트들을 나열하고 그 안에서 어떤 문제를 인식하느냐가 차이를 만들겠지요. 그것을 어떤 식으로 발전시켜나가는지 그리고 어떤 결과물을 내었는지, 이 세 가지를 주의해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성태 인식(insight), 과정(process), 결과물(production)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유걸 인식(insight)에 대해서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문제들을 발견했는지, 그것을 어떻게 발견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보고 그렇게 판단했다면 이 문제와 관련된 사람들도 합의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해야 하는 것 그리고 어떤 문제를 보고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 공유했는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정을 어떤 식으로 풀었는지를 봐야할 것 같습니다.
김정임 이런 것들을 기획자의 능력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제를 다르게 보면 결과물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해결 과정에서 기획자, 건축가가 너무 오버를 하면 사람들이 반감을 갖고 협력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것을 잘 풀어가는 것도 참고해서 볼 수도 있을 것이고요,
신승현 본인은 분명히 문제라고 판단했는데, 사실 어떤 사람에게는 크게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는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겠죠. 참가자의 문제의식이 얼마나 타당한지도 놓치지 않고 평가해야 할 것 같습니다.
유걸 참가자의 문제의식이 아니라, 그 문제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과 어떻게 공유하게 되었는지도 중요한 평가 부분입니다. 이 부분을 꼭 기록물(document)로 제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신승현 처음 어떤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의 해결 방법을 찾을 때, 인터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될 텐데요. 이야기를 듣다가 다른 문제로 전이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정임 사실 우리가 일 할 때 늘 겪는 일입니다.
박성태 사실, 제 생각에는 학생들이 그 과정에서 클라이언트와 약간의 갈등이 있으면 훨씬 더 재미있는 과정이 될 것 같습니다.
유걸 해결방안을 만드는 것에는 객관적이면서도 현실적이고 아주 구체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논리적으로 접근할 수도 있는데, 이를테면 누가 이것을 만들어내는 논리를 만들었는지, 누가 여기서 ‘자기 자신’을 드러냈는지를 살펴보면서 말입니다. 저는 이 두 가지 모두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할 때 논리를 전개하면 그것은 합리화가 되고, 논리를 전개하려고 할 때 자신의 주관이 들어가 있으면 결과적으로 엉터리가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래서 명확한 논리나 주관, 한 가지는 반드시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신승현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은, 건축계의 ‘싸이’가 되어도 된다는 이야기인 거죠? ‘나는 여기를 이렇게 할 건데, 살 사람은 누구야?’라고 물어 보는 것처럼 말입니다. 사실은 좋은 시점에서 작가주의나 자신의 작업상에서 ‘건축가’라는 말이 나오는 것인데, 그때 비로소 매력적인 작업이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하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건물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까? 아무리 건축가가 이야기를 하고 제안을 해도 아는 사람들은 ‘이것은 처음 보는 거야, 이건 본적이 없어, 이렇게 해도 될까?’라는 걱정부터 합니다.
유걸 네. 그런데 어떤 것은 한 사람만 좋아할 수도 있고 반대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좋아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두 번째 문제인 것 같습니다. 일례로 김중업 선생님이 설계한 집은 지금도 굉장히 잘 보전되어 있고 집주인이 건축가를 굉장히 신뢰하고 좋아했습니다. 그 집은 옆에 굉장히 좋은 집이 있어도 또 다른 느낌과 이야기를 갖는 것 같습니다. 설계한 사람이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자 이 말씀을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건축가가 보이는 건축이 좋은 건물이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스타건축가가 아니라도 녹이 슬어 있는 건축물을 설계해도 건축가가 건축에 있으면 좋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 한 두 사람만 좋아하는 건축물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고요.
신승현 결국은 그것을 조합하고, 문제의식을 드러내어 해결하는 사람은 건축가 본인입니다. 인터뷰를 하더라도 그 부분까지 취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말 오랜 노력을 해도 설득하는 과정에서 조합되는 것인데, 짧은 기간에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을 중요한 문제로 보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 의견을 통해서 내가 그것을 어떻게 판단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한 판단 지점이라 봅니다.
유걸 그런데 제 생각은 그때 건축가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세스가 정해져 있고 건축가가 프로세스를 거쳐 하나의 건물이 나왔다고 할 때, 가장 먼저 이뤄지는 것이 바로 건축가의 선발(selection)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건축가는 굉장히 성실하게 일을 한다는 전제가 되어있어야 하고, 그다음건축가가한것을그대로 받아들이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신승현 많은 정보를 얻어서 구체적인 것을 만드는 것이 건축가의 자유라고 보시는 건가요?
유걸 건축가의 고유한, 자유로운 권한이고 책임이라고 봅니다.
건축의 일상성과 건축의 공공성
조한혜정 제가 생각하는 문제는 우리의 모든 공간이 개별화되어서 공동으로 나눌 공간(commons)이 없다는 것입니다. 동류(同類)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동류하는 하는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논의를 이끌어서 공모전이 진행된다면 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항상 건축에서는 이런 점이 부족하기 때문에 멘토로 이 자리에 참여하게 된 것도 이를 알릴 목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더 이상 큰 이슈가 아니라고 합니다. 제가 볼 때는 이른바 그 나름의 활기를 불러주는 공간이 다 없어졌다고 봅니다.
박성태 한국 건축계에서 선생님이 말씀하신 공동건물에 대한 생각들, 공공건축 프로젝트는 여럿 있습니다.
조한혜정 그런데 공공미술 때문에 사실 공공에 접근과 태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봅니다.
유걸 상당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계신 것은굉장히다양성을위해좋은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는 건축가들이 건축의 수요자들 그리고 건축을 사용하는 사람들과의 간극이 크다고 봅니다. 이들이 사는 면면(面面)을 건축가들이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건축물을 만든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라고 보고,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야 할 것 같습니다.
김정임 사실 사람이 빠져있는 것이죠. 구체적인 사람, 이것을 참여자들에게 강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건축가들이 일을 할 때 인간을 이야기하면 굉장히 추상화된 인간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을 놓고 이야기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점에서 학생들이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피부로 느끼는 것을이야기할수있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마 조한혜정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어떤 학생들은 사회적인 이슈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풀어나갈 수도 있는데,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심사에서 열어놓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한혜정 사회학자, 인문학자의 경우는 어떤 사람을 왜 보았는지가 중요한 지점인데 건축가에서 물었을 때 단지 클라이언트가 지어달라고 해서 지었다고 하면 문제가 달라지는 겁니다. 건축가가 적극적으로 어떤 사람을 무슨 이유로 왜 만났는지를 절실하게, 구체성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만나야만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결과물이 나올 것 같습니다. 돈이 오가는 것과 상관없이 참여자에게 프로젝트를 통해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고자 합니다. 그럴 때 뭔가 예술적인 건축물을 짓고 싶다는 열망도 있겠지만, 저는 대중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김정임 한편으로 저는 굉장히 개인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가 평생 자기 집을 갖는 것이 꿈이었다면, 그런 어머니를 위한 집을 지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넓은 범위에서 가치 있는 일들이 프로젝트로 구체화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조한혜정 그런 스토리가 있는 건축이면 된다고 봅니다.
유걸 여기에서 공공성이 주체가 되는가, 그 영향 속에 있는가와 같은 차이는 있습니다. 사실 여러 사람이 사는 건축물을 지어보라고 하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면 참여자들에게 부담이 되겠죠. 실은 이것만으로도 부담이 될까 걱정됩니다.
조한혜정 여러 명이 같이 하는 프로젝트이지 않습니까? 가장 심각한 문제는, 요즘 청년들이 서로 만날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건축과도 예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수업에서 친구들끼리 싸우지 말고 적어도 서로 할 이야기 하나를 건지면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팀으로 하는 것이 굉장히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에 그 대화가 진행되는 방향이 ‘for housing’에 가까우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유걸 ‘for housing’에 대해 좀 더 설명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조한혜정 누군가를 위한 집을 짓는 것입니다. 예술적이고, 공간의 성격에 따라 집이 지어질 수도 있겠지만 다른 곳에서도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엄청난 위기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나눔(sharing)이라던가, 같이 산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가 되고 있습니다. 같이 안 살면 주거가 없기 때문에 서울시에서도 ‘나눔도시’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고요. 이러한 흐름에서 봤을 때 ‘나눔’ ‘for housing’은
중요한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제가 진행하는 ‘네트워크 사회의 문화기획’이라는 수업에서 학생들은 토론과 현장 체험을 주로 합니다. 수업 과정에서 ‘평상’을 만들게 되었는데 ‘평상’은 사실 전통적인 ‘나눔’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에서 발전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학생들이 평상을 만들고, 학교의 자투리땅에 텃밭을 만든 팀과 연결 지어서 새로운 이슈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버스킹팀과 다른 무언가를 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고요. 사실 스스로는 그런 생각을 한 번도 못한 아이들인데, ‘평상’이라는 것을 생각해봄으로써 나눔에 대한 대화로 발전된 것입니다. 그런 경험들 때문에 엄마를 위해서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그 효심이나, 자신의 엄마를 위해서 돈을 모아서 집을 사고 싶다는 그 욕망이 아주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김정임 알고 보면, 그 범위가 넓어 질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린 것뿐이고, 그게 사실은 굉장히 구체성, 구체적인 대상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조한혜정 제 이야기는, 요즘 학생들에게 가족에 대한 감각을 넣어주는 것이 중요하니까 팀의 인원을 3명 이상, 혹은 3명까지로 하기 보다는 적어도 3명이 한 팀을 이루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공모전이라는 것이 굉장히 특수한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같이’하는 것에 대한 감각이 부족한 청년들에게는 좋은 경험이 되리라 봅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포맷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것입니다. 참여 학생들이 따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같이’하고, 구체적인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일단 서로 만나야 함을 전제로 합니다. 단 둘이서 누군가의 스토리를 듣는다는 것은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유걸 조한혜정 교수님이 생각하는 것과 조금 다르긴 하지만 ‘같이’ 무엇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에는 깊은 공감을 합니다. 건축 역시, 건축가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건축주와의 조화 속에서 시작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건축주와 유리된 채 좋은 건축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 대상을 찾아서 같이 프로세스를 만들어내는 것을 참여자들에게 강조하고 싶습니다.
조한혜정 이 작업은 사실 혼자서는 못하죠.
유걸 사람들이 같이 사는 훈련이 안 되어 있다는 것에 아주 공감을 합니다.
조한혜정 사는 것뿐만이 아니라, 이제는 회의조차도 못하는 정도입니다.
유걸 특히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을 잘 못합니다. ‘같이 지낸다’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것이라고 봅니다. ‘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이야기와 관계하여 이야기를 확장 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박성태 앞서 이야기한 것이지만 건축과 학생들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학교에서 배우는 큰 건축물 중심의 교육에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야기하면서 강조한 ‘기획자’적인 건축가보다는 추상적인 건축가가 계속 재생산되고 있는 것도 이와 관계가 있다고 보입니다. 학교를 다니면서 클라이언트를 만나는 일이 없다보니 우리가 꿈속에서나 그리는 건물들을 수업시간에 그리는 것입니다. 구체적이지도 않고 공공적이지도 않습니다. 마치 건축이 그림을 하나 그리면 건물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건축상에서 가장 작은 규모로 나오는 것은 ‘집’일 것입니다. 여기에 일상성을 넣어서 집보다 더 작은것, 예를 들어서 동네에 있는 빵집을 고쳐준다던가 자기 동생의 방을 고쳐준다던가, 혹은 자기 집을 고칠 수도 있습니다.
조한혜정 이 공모전은 고치는 것만 하는 것인가요?
박성태 아닙니다. 고치는 것도 되고, 지을 수도 있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될 수 있습니다. 모두 가능합니다. 다만 그렇게 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정확하게 풀어주어야 합니다. 건축이기 때문에 결과물(production)이 정확하게 나와야 합니다. 문제의식과 작업물이 함께 가야합니다.
학생들에게 어떤 마을을 제시할 수도 있었지만, 건축가가 마을 주민들과 어떻게 프로세스를 진행했는지 데이터로 공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렇게 하자고 한 것입니다. 앞서도 이야기가 나왔지만 우리나라 건축가는 대부분 ‘해주세요’ 라고 하면 움직입니다. 그런데 건축을 배우는 학생들이 자기 집 또는 마을, 자신의 동네에서 문제를 스스로 찾아보게 하자는 것이죠. 발견한 문제를 가지고 어떤 프로세스를 거칠 것이며, 마을 주민 혹은 이웃집 사이에 구체적인 해결책을 찾아보도록 하고 싶습니다.
유걸 우리가 바라보는 시각이 건축가들의 문제에서 시작하고 있는데, 조한혜정 교수님의 문제는 우리와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사회 일반에서 시작하는 문제에서 출발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이런 것이 건축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문제를 던져줄 때, 구체적인 문제는 던져주지 말고, 그 문제를 학생들이 직접 찾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그럼 그 중에서 공공주택에 대한 이야기, 동네를 대상으로 삼는 프로젝트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여다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신승현 건축가도 사실 사회 구성원 중 한 명입니다. 함께 살면서 건축가가 느끼는 문제가 있을 수도 있고, 의사가 지나가다가 문제를 의식해서 건의할 수도 있고, 청소부가 청소를 하면서 불편한 점을 건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의견을 내는 것 자체가 공공적인 바탕에서 시작하는 것이죠. 수업에서 어떤 건축물을 만들 때 사이트 분석을 통해서 지질, 도로상황, 근린생활시설, 주거 환경 등 공공적인 부분에 대한 이야기에도 많은 부분 집중합니다.
김정임 건축의 물리적이지 않은 다른 면을 주의해서 봐야함을 참여자들에게 강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건축서비스라는 것이 어쩌면 우리 일상생활에 아주 많은 부분에 기여할 수 있는데, 서비스의 대상이 특정 계층에 국한되어 있는 면이 있습니다. 요즘 ‘동네건축가’와 같은 분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것이 훨씬 더 건강하다고 봅니다. 결국 건축사무소를 운영해야 한다는 이슈도 맞물려 있지만 사회적으로 풀어나가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건축사무소 운영이 되면서 마을 단위의 일상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이 되어야 합니다. 건축 생태계 구성원들이 다양해서 돈이 많이 투입되는 건축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일상에 기초하는 건축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한쪽으로만 치우쳐 있는 것 같습니다. 균형이 필요합니다. 학생들에게도 학교에서 가르치는 꿈같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충분히 생활인으로서 먹고 살면서 일 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줘야 한다고 봅니다. 건축가들이 다변화 되는 것이 우선적으로 필요합니다.
조한혜정 학생들에게 어떻게 어필이 되고,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를 동시에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김정임 선생님이 말씀하신 대로 ‘먹고사는 건축가’가 지금은 너무 양극화가 되어있습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중간 영역에서 좋은 일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전혀 돌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사실 일상성과 구체성은 좋은 건축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가져야 하는 것인데 잘 안 되고 있는 면이 있습니다. 이번 공모전의 실험이 ‘조금 벌고 더 행복한 건축가가 나오는 구나’라고 상상할 수 있는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으로는 공모전이 모호해서 힘들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으로 행복하게 살기, 가능할까?
박성태 프로덕션에 업무가 한정된 경향이 있습니다. 사실 기획이나 아젠다 세팅, 프로세스는 모두 다른 사람이 했던 것입니다. 심사위원, 멘토께서 말씀하신대로 수동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진다면 큰돈을 벌지 않더라도 행복하게 건축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조한혜정 그런데, 이것을 한 사람이 못한다는 것이죠. 학생들에게 ‘회사를 차려라’와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그런 훈련을 하는 것이 목표인지를 좀 더 분명히 해 두었으면 합니다.
박성태 원래 팀이 3인이고 저희가 유도한 것은 건축과와 다른 분야가 섞이는 것입니다. 지난 공모전에도 분명히 그게 의도였는데도 잘 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한 번 더 강조해서 3명이 팀이면 2명이 건축과, 한 명은 다른 전공을 하는 학생이 함께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해 보겠습니다.
조한혜정 강제로 다른 과를 섞는 다는 것 보다는 정말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for- housing’이라던가 다른 팀원과의 나눔 그리고 공공에 대해서 나아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공공성에 대한 담론은 ‘creative commons’와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는가와 같은 주제에 관심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일 때 가능할 것입니다. 참여하는 학생들의 다수가 건축을 한다고 했을 때 공모전에서의 수상이 대단한 경력, 스펙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그쳐버린다면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박성태 주최하는 저희도 같은 생각입니다. 학생들에게 과제를 주고 결과를 받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 공모전 자체가 하나의 운동 같은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조한혜정 건물을 짓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건축물 수리까지 범주에 포함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획기적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여러 가지를 넣어서 원래 의도가 제대로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은 아닐지 우려가 됩니다.
박성태 네, 맞습니다. 아주 심플하게 제시를 해도 결국은 학생들이 문의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쟁이라는 것은 자신에게 차별성이 있어야 선정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차별성을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분명히 질문할 것 같습니다.
조한혜정 그런데 건축가들의 상이고, 나름의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 하는 이유가 크죠. 때문에 우리 아까 이야기 한 평상을 만드는 친구들이 이 공모전에 지원을 하기에는 뭔가 맞지 않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박성태 프로덕션이 중요하기 때문에 한 팀에 건축가가 있어야 합니다.
조한혜정 구체성이라는 것은 역사성을 이야기하는데, 제가 탈식민을 이야기한 것도 그 이유에서입니다. 일상성에는 자신이 정말 관계가 있는지(engage) 여부와 서사(epic)가 있어야 합니다.
박성태 건축계에서 보면, 소위 ‘동네건축가’라는 이름을 단 건축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북촌에서 작업하는 한 동네건축가의 경우, ‘우리마을사람들이커피를마실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의뢰를 받기도 합니다. 그러면 동네건축가는 마을 사람들에게 커피를 마실 수 있고 점심을 먹을 수 있으며, 때때로 수다를 떨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조한혜정 성미산에 있는 ‘소행주’는 공공주거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사람들이 함께 살고, 회의도 하고, 또 고양이도 돌봐주니까 여행도 다닐 수 있고,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죠. 저는 이런 곳이 구체성과, 일상성과 공공성이 들어있는 건물이라고 봅니다.
박성태 처음에 구체성과 일상성을 놓고 대상이 동네도 되고 사회가 될 수도 있고 심미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고 보았습니다. 건축주가 공간을 풀어쓰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우리가 만든 규격화된 공간이 사람을 억압하는 비인간적인 공간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을 풀었는데 오히려 자신이 행복해 질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한 스토리가 정확하게 맞아서 학생들이 설득력이 있도록 전달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이것이 꼭 사회적인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공공성 또한, 공공성 안에 개인적인 것도 포함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유걸 공공주거 건물 말고도 개인의 집에서도 공공성이 상당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행복주택을 짓더라도 이웃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이 필요합니다. 건축가가 생각해야 하는 환경에 대한 문제는 결국에 주변 환경과 관계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했으면 합니다.
김정임 조한혜정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공공성은 굉장히 범위가 넓습니다. 공공미술에서 이야기하는 공공성은 추상적이고 허황된 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개인의 집을 지어도 결국 건축은 공공성이라는 성격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공성이라는 것을 틀에 넣어서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신승현 제 생각에는 나와 남의 관계, 관계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공공성에 대해 이야기 하는 데 있어 더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걸 미국의 전형적인 집 앞에는 포치(porch)가 있습니다. 포치 앞의 길을 지나가는 사람과, 흔들의자에 앉은 사람이 마주하는 모습이 마치 사랑방과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집이 담으로 쌓여있고 대문이 있어서 완전히 고립이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공공성을 이야기 할 때 이렇게 작은 것에서부터 공공성이라는 이슈를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공공성, 즉 ‘같이 사는 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김정임 저는 이런 이야기에 건축가들이 너무 나이브하게 접근하는 것 같았습니다. 담을 허물면 해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담을 왜 짓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대도시에서 익명성이 생기면서 사람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에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조한혜정 지금은 건축의 핵심이 ‘완벽한 보안’에 있기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집이 아닌 것이 됩니다. 이런 이유로 마을 만들기도 중산층이 아닌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 빗장을 열지 않으면 사회에 공동체, 공공성이 자리잡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 이 좌담은 2012년 10월 18일에 진행된 <일상의 건축> 공모전 심사를 위한 심사위원, 멘토의 사전미팅의 대화를 옮긴 것입니다.
건축에 일상성과 공공성을 추구하기
분량13,313자 / 25분
발행일2013년 12월 21일
유형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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