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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가 되어간다는 것

이재준

함께와 혼자 사이

사람은 원래 ‘혼자’다. 하지만, 사회 안에서 혼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 할 누군가, 무언가, 어딘가를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러한 결핍을 ‘가족’이라는 오래된 공동체 속에서 ‘함께’라는 방법으로 치유하며 살아왔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파란만장한 삶 속에서도 원하면 언제든 혼자 또는 함께가 될 수 있었다. 마치 공기처럼 우리의 삶 곳곳에서 따뜻한 만남과 헤어짐으로 존재했었다. 

80년대 이후, 급격한 도시화에 따른 자본주의의 팽창은 이 아름다운 가치를 무력화시키기 시작했다. 전문화를 앞세워 사회의 모든 것을 세분화하였다. ‘개인’을 최고의 가치로 소비시키고, 무엇이든 ‘혼자’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자아에 도취되어 혼자를 선택한 사람들은 점차로 ‘함께’의 따뜻함을 멀리하고, 심지어 거부하게 되었다. 뒤늦게 혼자의 외로움을 깨닫는 순간, 함께를 향한 거리는 되돌릴 수 없을 만큼 멀어져 있었다.

혼자라는 불안을 벗어나고 싶지만, 함께를 만날 기회는 점점 사라졌고, 함께가 낯설고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어색함을 극복하여 따뜻함을 얻기보다, 손쉽게 혼자를 선택하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 노력한다. 멀리 보기를 두려워하고 가까운 것들의 손짓에 반응한다. 혈연이 아닌 지연에 의한 ‘새로운 가족’의 등장은 이들의 불완전한 현재를 해결해 주기 위해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고차원 적인 신상품 전략일 뿐이다. 그들이 진짜 원하는, 그들에게 진짜 필요한 무엇이 아니다.

잃어버린 ‘방법’을 찾아서

사실, 사회 안에서 존재하는 한 우리는 완전한 혼자가 될 수 없다. 혼자의 여백을 즐기기 위해 함께라는 시간이 필요한 것이지, 함께가 싫어서 혼자를 선택해서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자본화된 세상은 지속적인 노출을 통해 ‘자랑스러운 혼자’가 되길 종용한다. 복잡한 관계 속에서 혼자를 충분히 경험하면, 함께를 불편하게 생각하고 멀리하게 된다. 사회는 이들의 미래를 위해 강제적, 논리적이 아니라, 유연하고 비논리적으로 ‘함께’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마주침의 순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함께를 잃어버린 사회는 물이 말라버린 호수와 같다. 온전히 채우기 위해 너무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한다. 우리 사회가 ‘혼자’의 문제를 ‘1인 가구’의 확대로 단순 치환하면 안 되는 이유이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혼자와 함께 사이에서 잃어버린 ‘경험’을 만들고 ‘방법’을 찾는 것이다. 예술의 유연성을 통해 작품을 설치하는 것이 아닌 실체적 활동으로 관계를 만들고 ‘혼자’를 ‘함께’로 전환되는 다양한 가능성의 지점을 만들어야 한다. 예술이 만드는 물리적 가교와 심리적 매개의 역할을 사람들이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적어도 보이지 않았던, 경험하지 않았던 무언가를 만지고 느끼게 되는 계기를 만들어 줄 것이다. 혼자는 불가능하지만, 함께라면 가능한 세련된 예술적 방법이 필요하다.

‘함께’를 닮아가는 방법

함께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마주침의 순간이 모이고, 만남의 시간이 쌓이고, 대화의 폭이 넓어지면 그때야 비로소 함께라는 가치를 느끼게 된다. 이때부터는 반드시 다음의 네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한다. 첫째, 취향이 같거나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하나의 장소를 공유 하면서 함께 공감하기. 둘째, 따로 또는 같이 공간을 점유하면서 함께 사용하기. 셋째, 하나의 공간을 소유하고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함께 경험하기. 넷째, 하나의 공간을 소유하고 공동의 경험을 쌓아가면서 함께 살아가기. 중요한 것은, 이 과정들이 결코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삶은 점점 더 인스턴트해지고 더 소프트해진다. 말초적이고 변화무쌍한 소셜미디어 덕분에 우리는 점점 더 가짜를 진짜의 경험이라고 말하고, 보고, 듣는다. 하지만, 직접 만나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지 않는 한 어떤 경험도 ‘함께’라고 말하기 어렵다. 예술의 가치는 개인 또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문제와 가치를 드러내는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함께라는 방법’을 통해 얻어내는 유, 무형적 프로젝트들이 혼자를 거부하는, 혼자를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행동의 지침서, 생각의 안내서가 되길 바란다. 삶은 따뜻해야 한다. 삶에 필요한 것은 타의가 아닌 자율적 선택과 거부의 순간들이다. 따로 또 같이, ‘함께’의 가치를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내고, ‘함께’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함께’라는 따뜻한 기억을 만드는 일. 우리가 ‘함께라는 방법’을 통해 ‘공동’의 기억을 재생하고자 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이재준

건축가, 전시기획자. 건축공학 및 실내건축디자인을 공부했다. ‘집’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전시, 공공예술, 건축, 인테리어, 출판 등 다양한 분야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TED×SEOUL에서 ‘공정주거를 디자인하다’는 주제를 발표하고 ‘새동네’와 ‘이문238’ 프로젝트를 통해 이를 실천해 가고 있다. 현재 만리동에서 기획과 출판을 하는 리마크 프레스를 운영하고 있으며, 새동네 연구소장을 겸하고 있다.

‘함께’가 되어간다는 것

분량2,409자 / 5분

발행일2017년 12월 18일

유형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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