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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라는 방법의 방법

박성태

공공미술은 공공의 문화 환경과 시민들의 예술 향유권 신장을 위해 도시 곳곳의 공개된 장소에 설치되는 미술작품과 활동이다. 이를 통해 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질이 향상되고, 함께 사는 공동체를 일구는 공동의 영역을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지금, 여기의 공공미술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 가까이에 서 있다. 서울에 설치되어 있는 대다수의 공공미술 작품이 도시와 사회 변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논의를 공공의 문제로 소환하지 못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아름답지 못한 세상에 대한 저항 정신이 별로 없어 보인다. 공공미술 작품을 통해 함께 사는 아름다운 세상을 상상하고 성찰하는 공통의 무엇이기보다는 셀카 사진 수준의 안일하고, 동어 반복적이며, 지루한 상상력의 결과물이 더 많다. 아름답지 못한 세상을 초라한 상상력으로 가리 기에 급급하고, ‘대중적’이라는 가면 뒤에 숨어 오히려 공공성에 해를 끼치고 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최근 서울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주요 공공미술 프로젝트 몇 개만 살펴보아도 문제의 본질을 바로 이해할 수 있다. 대규모 도시재생이나 지역개발 계획과 함께 어김없이 등장하는 지역의 상징 혹은 랜드마크 건립에 대한 주장이나 지역성과 유리된 시민 참여 방식의 획일화 역시 공공미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다. 1995년 이후 소위 1% 법으로 불리며 건축물에 설치된 공공미술 작품 1만5천여 점 가운데 좋은 사례를 꼽기가 쉽지 않은 점도 공공미술의 사회적 의미를 훼손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공공미술 사업이 가지고 있는, 미적·윤리적 싸움은 피하고 절차적 문제만 없다면 괜찮다는 무사안일주의에 기인한다. 그러다 보니 공공미술은 지역 공동체가 함께하는 방법을 찾는 통로가 되기보다는 지역을 홍보하는 비슷비슷한 캐릭터 상품이 되어 버렸다.

공공미술 작업의 의미는 작가 한 사람의 경험을 넘어서는 ‘공통의 미’를 축적한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역사적으로 좋은 공공미술은 공동체를 함께 만드는 소중한 의무를 일깨우고, 일상적 삶의 순간순간에 새로운 깊이와 중요성을 더하는 역할을 맡아왔다. 공동체 속에서 서로를 대하는 태도,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함께 논의하는 매개체였다. 한 사회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그리고 그 복잡한 사회구조 속에서 개인들은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진지하게 묻고, 문화와 습관을 변화시키기 위한 예술적 활동이었던 것이다.

오늘날의 공공미술은 특정한 장소뿐만 아니라 특정한 시간 속의 구체적인 맥락을 드러내고 그 조건에 적응하는 일시성(temporality)의 예술로 범위가 넓어지고 있는 것도 그 이유에서이다. 공공미술이 고정된 내용은 없고 공간만 있는 물리적 오브제가 아니라 서로의 의견들이 교차하는, 따라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담론적 활동임을, 그리고 공공미술은 이를 만들어가는 열린 과정임을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동체의 관심사와 이해를 포함하거나 그에 반응하는 일종의 열린 과정으로(버지니아 막시모비츠), 공공미술이 장소 특정적 미술에서 다중적 의미의 소통 장소로서(힐데 하인), 그것을 기획하는 주체나 작가들이 대중들에게 예술을 이해시킬 수 있는 적절한 시각 언어를 찾아가는 여정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또한 수전 레이시가 주장했듯이 서로 다른 배경과 이해관계로 이루어진 균열된 공간 속에서 통합적인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의 역할임을 환기하면서,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주의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지난봄 새로운 공공미술의 가능성을 실험해 볼 기회를 갖게 됐다. 건축, 디자인, 미술, 무용 등 여러 분야의 ‘함께라는 방법’이라는 주제로 10회의 만남을 통해 8개 팀이 결성됐다. 다양한 공공미술에 대한 이슈가 제기됐고, 이를 통해 공간의 확보와 공간의 정치화 문제를 다루어 보려고 했다. 공공미술 작업에 내재된 다양한 가능성을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협력을 통해 만들어 보고자 했고, 공공 미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의미 있는 토론을 하도록 스스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는 것에도 동의했다. 공공미술은 서로 다른 의견들이 교차하는, 따라서 끊임없이 유동하는 ‘담론적 장소’임을, 그리고 공공미술은 이를 만들어 가는 열린 과정임을 스스로 확인하는 시간을 갖고자 한 것이다. 공공미술이란 공동체 구성원과의 소통에 의하여 진행되고 완성되어야 하고, 개방된 사회 네트워크와 민주주의를 어떻게 실현할 것이냐 하는 문제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가 먼저 그 길을 걸어보고자 한 것이다.

물론 이런 한시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전혀 새로운 공공미술의 장을 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 시도가 작은 씨앗을 품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올 한해를 함께 긴 작업에 동참해준 작가들과 함께 기획에 참여한 홍보라, 이재준 씨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 『월간미술』 기자와 『인서울매거진』, 『공간』 편집장을 역임했다. 페차쿠차서울, 테드엑스서울의 큐레이터로 활동했다. 베니스비엔날레 2018 한국관 예술감독에 선임됐다.

함께라는 방법의 방법

분량2,431자 / 5분

발행일2017년 12월 18일

유형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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