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bk-ai-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양파건축 가이드북

김동현, 박소희, 장하린


김동현 한양대학교 철학과
박소희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장하린 한양대학교 실내건축디자인학과


도시 곳곳에는 소리 없는 건축가들이 활동한다. 그들은 건물이 망가지면 철거하거나 이사하는 대신 수리하고 덧대며 지속시키려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한 다시 쓰기가 아닌 계속 쓰기이다. 그들은 건물을 비우지 않고 정주하며 조금씩 바꾸어 나가고 성장시킨다. 건물을 다듬으며 생겨난 흔적들은 시간이 쌓이며 건물의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이러한 덧대기와 계속 쓰기가 실천된 건물을 발굴하고, 앞으로의 새로운 계속 쓰기 방법을 제안하고자 한다.

건물의 흔적을 발굴하다

발굴 대상 건물로, 노후도가 높은 저층 주거밀집 지역이자 다양한 덧대기를 엿볼 수 있는 보광동의 한 단독 주택을 선정했다. 대상 건물을 양파의 껍질을 벗기듯이 바깥에서부터 한 겹씩 벗겨가며 분석했다. 이를 통해 가장 바깥 겹인 마당과 대문부터 내벽과 계단실까지, 총 30개의 요소를 도출했다. 이 요소들은 단순한 구조물이 아니라, 건물이 살아온 방식이자 시간의 흔적이었다.

양파의 껍질을 벗겨낼수록 드러나는 요소들은 각기 다른 의문점을 끝없이 만들어냈다. 우리는 그러한 요소들을 여섯 가지 범주로 나누고 분석했다. 그 과정에서 발견한 공통점은, 요소들의 대부분이 처음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필요에 따라 덧붙여졌다는 사실이었다.

사람들은 건물을 보다 잘 사용하기 위해 ‘채워넣기, 접붙이기, 도려내기, 유지하기’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건물의 겹을 쌓아왔다. 그리고 이는 거창한 규모의 작업이 아닌 사람들이 건물에 살아가며 필요에 따라 일상에서 실천한 것들이었다.

양파처럼 키워내는 건물

당대의 시대적 상황과 법규를 바탕으로 요소들이 덧대어진 이유를 분석해 보며 건물이 지금껏 살아온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게 되었다. 처음 건물이 지어진 이후로 사람들은 마치 양파를 키우듯 흔적을 겹겹이 쌓아가며 건물을 키워왔다. 변화하는 사회적 환경과 삶의 방식에 맞춰 필요한 요소를 덧대며 대규모 개조가 아닌 일상 속 작은 실천들로 건물을 지속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양파건축 가이드북은 이러한 방식을 발전시켜 더욱 유연하고 지속가능한 계속 쓰기를 실천하기 위한 제안이다. 껍질을 벗겨내며 드러나는 것은 단순히 낡아져 버린 겹이 아니다. 겹겹이 쌓인 배관, 뒤죽박죽 샷시 속에는 시간이 남긴 흔적과 보이지 않는 과거가 숨어 있다. 우리는 이 안에서 무엇을 보존하고 무엇을 걷어낼지 선택해야 한다.

우리에게 발굴 조사는 단순한 해체가 아니라, 건물이 품고 있는 기억을 되새기고, 보지 못했던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양파건축 가이드북

양파건축 가이드북은 먼저 양파의 건강하지 않은 부분을 도려내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본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노후한 공간과 변화한 환경 속에서 더 이상 쓰이지 않는 공간을 도려낸다.

이를 바탕으로 간이창고, 외부 화장실, 내부 계단실과 후면 계단을 도려낸다. 특히 내부 계단은 건물 전체를 성장시키는 새로운 심지 역할로 전환하고자 한다. 폐쇄된 채 남아있는 계단실은 단독주택에서 다가구주택으로 전이된 건물들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계단실이 사라지고 생겨난 공간에 접붙여진 새로운 심지는 단순히 빈 공간을 메우는 것이 아니라 건물 전체에 영양을 공급하고 다양한 가능성을 심어낸다.

덧대기 시스템은 이러한 새로운 가능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다. 덧대기 시스템은 과거 공간을 확장할 때 많이 쓰이던 샷시의 구조에서 착안했다. 홈이 있는 프레임에 기둥과 패널을 끼우고 조인트로 결합해 쉽게 조립하고 분해할 수 있으며 구조를 보강하는 역할도 겸한다. 또한 다양한 소재와 구성의 패널을 통해 필요에 맞는 공간 구성이 가능하다. 사람들은 덧대기 시스템을 통해 덧대기를 보다 용이하게 실천함으로써 새로운 공간과 더불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된다.

앞으로 사람들은 어떻게 양파건축을 실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양파건축이 적용된 마을은 어떤 모습일까? 앞선 발굴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도려내기와 접붙이기 과정을 거친 뒤, 사람들은 공간에 머무르는 동안 필요에 따라 새로운 겹을 붙여나가기 시작한다. 차곡차곡 쌓여간 겹은 서로 다른 형태와 의미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와 시간을 만들어낸다. 

양파건축은 건물을 단번에 완성하지 않고 조금씩 바꾸어가며 지속시킨다. 양파건축이 적용된 건물은 사람들의 생각에 따라, 필요에 따라, 생활 방식에 따라 다양한 겹이 쌓이고 성장하며 서로 다른 양파로 재탄생한다. 이러한 양파건축은 건물이 지어지고 사라지는 주기를 늘려 건물의 가능성을 끌어올릴 뿐만 아니라 건물을 살아 숨 쉬는 존재로 변화시킨다. 이렇게 양파가 된 여느 주택들이 모여, 도시 속에 다양한 층위와 이야기가 어우러진 동네를 만들어 낸다.


심사위원 질의응답

이상윤 ‘양파건축’이라는 타이틀이 굉장히 잘 구상된 것 같다. 발표 내용 중 ‘겹의 겹’이라는 건 어떤 시간성을 의미하는 것인가, 아니면 노후성을 의미하는 것인가? 시공 순서를 거꾸로 봤을 때 발굴 착수의 겹이 적용된 것인가? 

양파건축 처음 발굴을 시작할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가정이었다. 시간 순서도, 시공 순서도 모르는 상태에서 바깥부터 한 겹씩 안으로 들어갔다. 중요한 요소들은 하나의 ‘겹’을 형성하는 주제로 삼고, 안쪽으로 들어가며 더 파고들었지만, 시간성이나 시공 순서는 고려하지 않고 겹을 만들었다.

이상윤 결과적으로 유사한 프로젝트가 많았지만, 이 프로젝트가 최종 선정된 이유는 스토리텔링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레이어, 시공 단계, 노후화 등을 보편적인 언어로 쓸 수 있었는데, ‘양파 껍질’이라는 단어가 하나로 묶어주었다. 이후 제안된 덧씌우기나 부가적인 요소들이 단순한 외관 변화뿐만 아니라, 내부까지 반영되어 개념과 잘 어우러졌다고 본다. 다만, 덧붙이는 것이 너무 유형화돼서 기존 건물의 형태를 크게 바꾸지 못하고 가설물 같은 것이 첨부되는 느낌이 있었다. 결국 기존 건물의 힘을 유지하는 것 같은데, 의도한 건가? 아니면 레이어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건축이 될 가능성도 고려하였나?

양파건축 우리는 처음부터 ‘도려내지 않아야 할 부분’을 굳이 제거하지 않으려 했다. 그래서 ‘기존 건물이 너무 많이 남아있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네 번째, 다섯 번째, 열 번째, 백 번째 겹까지 쌓이다 보면 마치 ‘테세우스의 배’처럼 원래 부재가 하나도 남지 않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내부 벽이 떨어져 나가거나, 가설 건축물 형태가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주택이 단 한 겹의 리모델링이 아니라, 과정을 밀도 있고 세심하게 쌓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양수인 구성품 사용설명서를 보면 왼쪽에 A, B, C, D 부재가 있다. 이것들이 알루미늄 프로파일 같은 기성 부재인지, 아니면 가이드북만 제시하는 것인가? 제품도 판매하는 건가?

양파건축 제품도 제시한다. 알루미늄 프로파일 형태는 많이 판매되고 있지만, 강성이 약해 하중을 충분히 견디기 어렵다. 우리는 강철로 제작하는 것을 생각했고, 기존 샤시처럼 홈을 만들어 유리나 패널을 끼울 수 있게 설계했다. 다양한 패널과 단열 플레이트를 끼워 벽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처음부터 제작했다.

양수인 그러면 여러분이 발명가로서 몇 가지 예시나 가이드를 제시할 수도 있고, 사용자가 스스로 디자인해서 이 부재들로 자유롭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인가?

양파건축 그렇다. 제시한 세 가지 형태는 최소한의 유닛이고, 사람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만드는 것이 이상적인 방향이다.

양수인 이렇게 덧붙여지는 ‘양파 겹’이 소위 말하는 불법 증축에 해당하진 않나?

양파건축 우리가 바로 그 지점을 가장 우려했다. 많은 이가 불법 증축을 부정적으로 보지만, 우리는 ‘왜 사람들이 불법 증축을 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 행위에는 자기 욕구도 있겠지만, 오래된 건물의 단열 보강, 세대 증가에 따른 확장, 비막이 공간 추가 등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유닛을 사용하면 용적률을 완화해 합법적으로 만들고, 법제를 조금씩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양수인 덧붙여진 요소가 소소하고 가볍고 간단하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내가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 와 보니, 살기 전엔 생각 못 했던 필요한 것들이 매일 생긴다. 이처럼 건물을 짓고 나서 이사하면, 분명 뭔가 필요하지만, 아직 모르는 요소들이 생길 것이다. 마치 건설공사의 ‘예비비’처럼 말이다. 예비비는 ‘혹시 무슨 일이 있으면 쓰기 위한 비용’이 아니라, ‘반드시 쓰일 테지만 아직 어디에 쓰일지 모르는 비용’이다. 그런 것처럼 이게 마치 ‘예비 공간’ 같은 느낌이다. 그런 맥락에서 ‘반드시 생길 것이지만 아직 모르는 증축’으로 이해하면 아주 흥미롭다.

양파건축 말씀하신 부분이 우리가 기대하는 것이다. 겹은 시간뿐 아니라 사람에 의해서도 쌓인다. 우리는 형태보다 ‘행동’에 집중했다.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다양한 저층 주거지를 다녀보니, 지역마다 추구하는 덧대기, 증축 방식이 다르다는 걸 확인했다. 사람마다 필요한 공간이 다르게 겹쳐지고, 그 행동이 드러나는 건물이 되길 바랐다.

정림학생건축상 2025 ‘고고학자와 발명가’ 공개 심사 영상 / 대상 – 양파건축 가이드북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양파건축 가이드북

분량4,519자 / 9분 / 도판 15장

발행일2025년 9월 8일

유형작업설명

태그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