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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다시 쓰기: 발굴, 발명하는 건축가

최민욱, 조세연, 이복기, 양수인, 임지환 × 이상윤

정림학생건축상 2025 연계 포럼 <건물 다시 쓰기: 발굴, 발명하는 건축가>는 ‘생존 본능’과 ‘사업 기회’로서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플레이어들의 경험과 통찰을 나누는 자리였다. 지난 4월 30일, 노말, 삶것, 제로투엔의 발표를 듣고, 이상윤 교수의 진행으로 대화를 이어갔다.

노말은 주막, 콘크리트 샌드위치, 크래커 등 소규모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들이 들려준 에피소드는 리모델링의 당혹스러운 현실 그 자체였다. 건물을 뜯어보니 기초 없이 젠가처럼 지어져 있었거나, 한옥의 나무 기둥이 썩어 있는 등 예상 밖의 난관이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지는 건축주의 요구, ‘넓게, 높게, 싸게’에 대해, 직관적인 설명과 아이디어로 돌파하는 노말의 전략을 알 수 있었다.

삶것은 수년 전부터 민간 프로젝트뿐만 아니라 공공 현상설계도 리모델링 프로젝트 위주로 도전하고 있다. 양수인 소장은 특히 기존 건물이 지어지는 데 영향을 미쳤으나 현재는 유효하지 않은 ‘할아버지 조항’을 재해석함으로써 전에 없던 가능성을 창출하는 방식에 흥미를 갖고 있다. 이런 관심을 바탕으로 새롭게 발굴, 발명한 사례로서 부산 헬리녹스 크리에이티브 센터 등을 소개했다.

서울 강남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는 제로투엔은 건축가이자 디벨로퍼를 겸하는 입장에서 경제 지수, 내부 데이터 등을 근거로 리모델링 수요 증가와 리모델링을 선택함으로써 얻는 가치를 명쾌하게 분석했다. 오블리크, 분데스 언주 등의 작업에서는 입면 디자인을 통한 인식 제고와 공간 활용도 개선 등 숫자로 증명하기 어려운 부분도 놓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어지는 내용은 포럼 대화 시간의 기록이다. 이를 통해 리모델링 프로젝트의 비중이 점차 커지는 환경 속에서 패널로 참여한 건축가들이 어떠한 태도와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건물 다시 쓰기: 발굴, 발명하는 건축가
2025년 4월 30일 오후 7:30

패널
최민욱, 조세연, 이복기(노말 대표)
양수인(삶것 대표)
임지환(제로투엔 대표)

모더레이터
이상윤(연세대학교 교수)


리모델링 교육하기?

이상윤 오늘날 건축 프로젝트에서 대수선과 리모델링은 선택이 아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설계 방식이 되었습니다. 교육 현장 역시 이러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학생 수행평가 항목(SPC)에서 리모델링과 대수선이 제외되었습니다. 이는 두 가지 이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첫째, 대수선과 리모델링은 건축가라면 누구나 기본적으로 익혀야 할 필수 역량으로 간주되기 때문에 별도의 평가 항목으로 분리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두번째 이유는, 이 영역은 접근 방식과 해법이 매우 다양하여 일률적인 기준으로 학생들의 성취도를 평가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결국 이는 리모델링과 대수선이 교육 과정 전반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야 하며, 단순한 평가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교육 내용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미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장에서 건물 다시 쓰기를 실천하고 있는 건축가로서, 학생들이 앞으로 이 영역의 연구나 사업, 실무 등의 진로를 고민하고 결정할 때, 학교에서는 어떠한 교육적 접근과 훈련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할지 실질적인 부분을 조언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임지환 리모델링은 공사를 하면서부터 새롭게 시작됩니다. 그런 면에서 과연 학교에서 리모델링을 가르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긴 합니다. 실무 대신 리모델링 사업을 이끌어 가기 위한 기초를 배우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례로 제가 학생이던 시절에는 사업성 검토 등의 교육이 굉장히 취약했거든요. 요즘 교육과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그런 건축물을 하나 짓기 위해 제반되는 비즈니스, 경영 지식을 교육하는 게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리모델링의 기술적인 부분은 실무에서 배워야 할 것 같고요.

양수인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 게, 건축(신축) 설계도 학교에서 법규 검토나 행정은 배운 적이 없듯이, 리모델링 또한 덜 실질적이더라도 재미있게 배워볼 수 있을 겁니다.

이상윤 양수인 소장님은, 작업 방식은 발굴자이면서 동시에 발명가다운 면모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러 여건상 현장 조사를 직접 하지 않고 직원을 내보낼 때도 있을 텐데요. 그럴 때는 어떤 방식으로 교육하고, 또 어떤 과업을 맡겨 보내시는지 궁금합니다.

양수인 교육으로 소화할 수 있는 문제 같진 않습니다. 오늘 제 발표 제목 ‘고고학자와 발명가와 할아버지’를 다시 보면, ‘발명가’는 건축가로서 하는 일을 말하고, ‘할아버지’는 건축가가 창의적인 율사가 돼야 한다는 생각을 담은 표현입니다. 그런데 ‘고고학자’는 제 취향 혹은 제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삶것 직원이 한 10명 되다 보니까 제가 소장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지만, 리모델링 프로젝트 현장을 처음 방문할 때만큼은 반드시 제가 가려고 합니다. 그게 다 재미있어서 그래요. 마침, 오늘 직원 두 명이 리모델링이 예정된 프로젝트를 실측하러 갔는데, 지하에 숨어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수십 평의 공간을 찾아서 비디오를 찍어 보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영상을 재생하는 것보다 공장에 직접 가서 봐야 그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생각이 떠오릅니다. 이건 연륜의 문제예요. 삶것은 제로투엔처럼 현장이 스무 개씩 있진 않고 많아 봐야 대여섯 개라, 리모델링 현장은 웬만하면 제가 가서 즐기면서 찾아보려고 노력합니다.

건축가: 건물 의사

양수인 더 앞을 내다보자면 리모델링, 의사 역할뿐만 아니라 언젠가는 장의사 역할을 가르쳐야 할 겁니다. 건물에 살 사람이 없는 상황에 이르렀을 때 버려진 건물을 어떻게 없앨 건지를 생각해 보는 게 더 의미 있지 않을까요?

해외 대학에서 설계 스튜디오를 맡았을 때 ‘웰다잉’(well-dying)을 가르친 적이 있었어요. 인구는 줄어드는데, 건물을 그냥 두면 폐허가 될 거거든요. 지금까지는 건축가가 건물 산파 역할만 했다면, 언젠가 건물 장의사 역할도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런 주제를 다뤘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리모델링은 건축가가 의사 역할을 맡은 것 같네요.

이상윤 저도 앞으로 다수의 건축사무소가 일종의 ‘건축 병원’으로 기능하게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고 생각합니다. 리모델링 작업은 사람이 골절이나 외상을 입었을 때 가는 정형외과나 성형외과를 찾는 일에 비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병원’이라는 키워드만 더해도 건축사무소의 개념이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패널 여러분의 작업 또한 시간이 지나 수십 년 후에는 필연적으로 손봐야 하거나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 생길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젊은 세대가 언젠가 여러분의 건축을  리모델링하게 되었을 때, 어떤 태도로 그 작업을 이어가길 바라는지, 또 지금 여러분이 가진 건축에 대한 태도가 미래 세대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전해지기를 바라는지 궁금합니다.

양수인 최근에 다른 발표 자리에서 침습 수술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습니다. 개복수술처럼 굉장히 침투적으로, 공격적으로 하는 수술이 침습 수술인데, 저는 그런 게 재미있습니다. 무언가를 개선하기 위해서 리모델링하는 거니까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공격적으로 작업합니다.

원래 건물 이해하기

양수인 그런데 그 전에 기존 건물을 설계한 사람이 도대체 왜 이렇게 했을까를 파악하려고 꽤 열심히 노력하는 편이에요. 부산 헬리녹스 크리에이티브 센터의 기존 건물에 역보가 쓰였는데, 원설계자가 그걸 도대체 왜 그렇게 풀었는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60도로 만나는 기둥의 위치가 어중간하고, 거기에 앵커볼트로 뚫어서 보를 정착시키는 게 말이 안 됐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게 최선이었구나’하고 이해했습니다.

이처럼 제가 리모델링한 프로젝트를 30-40년 후에 다른 분이 다시 손보게 된다면, 애초에 건물이 왜 이렇게 생겼는지를 잘 파악해야지만 살릴 부분은 살리고 바꿀 건 바꾸는 작업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가 건축주와 많은 얘기를 나누더라도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나름대로 해석해서 건축적으로 필요한 해법을 찾거나 그 의중이 무엇인가를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캐내야 하듯이, 리모델링할 때도 기존 건물을 깊이 이해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을 하면 할수록 설계가 결국 태도의 문제같이 느껴져요. 주어진 조건에 이상한 부분이 있어도 이상하다고 치부하기보다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임지환 리모델링의 관점에서 보면 내구연한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건축은 부분마다 내구연한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실내 마감재는 1년이면 유행이 지나서 없어질 수도 있고, 설비는 법적 내구연한이 15년이라서 그 기한이 도래하면 교체하거나, 배관 같은 경우에는 청소합니다. 골조는 30년에서 100년도 갈 수 있죠. 내구연한이 길수록 설계 단계에서 더 많이 고민하고, 다음에 건드리지 않아도 계속 작동하도록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깨닫고 나서는 리모델링뿐만 아니라 신축할 때도 다음에 손볼 사람이 기존 구조를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뼈대를 최대한 간결하게 만드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이복기 저희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은 기존 건물을 맹목적으로 존치하거나 존중하는 방향은 지양하고 그 건물이 갖고 있는 특성을 잘 이해하는 겁니다. 그랬을 때 더 장기적으로 건물 수명을 늘릴 수 있는 작업으로 이어갈 수 있다고 봅니다.

조세연 저희가 리모델링 의뢰받는 건물은 내진 설계를 비롯해 모든 구조 설계 기준이 확립되기 이전에 지어진지라 구조를 다시 쓸 수 없을 정도로 골조부터 잘못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요즘 지어지는 건물은 관련 법규가 강화, 적용돼 있으므로 학생 여러분이 나중에 리모델링할 때쯤이면 기존 구조를 건드리지 않고도 새로운 의미를 만드는 리모델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법 받아들이기

청중 질문 법은 사회 변화를 뒤따라오는 것이고, 그중에서도 건축법은 안전과 관련된 부분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동안 작업하면서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 법규나, 그런 법을 디자인으로 극복하면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나요?

양수인 저는 현실적인 사람이라 대면할 싸움과 피할 싸움을 빨리 정하는 편입니다. 법은 제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 법은 법이고, 그 안에서 내가 얼마만큼 잘 해석해낼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법이 제약이나 규제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을 아는 만큼 든든한 지원군이나 무기가 될 수도 있거든요. 

질문자가 ‘안전’을 언급했는데, 그것도 생명보다 ‘사유 재산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제일 커요. 그래서 제가 법에 관해 자주 하는 말은 “적법하게 하겠습니다” 입니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 법치국가에 살고 있잖아요. 그 법 테두리 안에서 모두가 최고의 자본을 추구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거죠. 다시 말하면 제가 법을 바꿀 마음은 없고, 어떤 법이 생긴다면 그 안에서 최고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게 제 기본 생각입니다.

임지환 그럼에도 할 수 있다면 주차장법을 바꾸고 싶습니다. 규모가 작은 건물일수록 1층에 주차장을 설계하는 건 너무 어렵거든요. 물론 주차장 면제 조항이 있긴 하지만, 구청에서 웬만하면 주지 않으려 해요. 근데 신사동 가로수길 같은 곳은 사실 1층이 중요해요. 그 지역에 새로 건물을 지으려면 주차장법 때문에 필로티를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1층이 비면 결과적으로 지역 활성화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죠. 그래서 만약 법을 바꿀 수 있다면, 특히 작은 프로젝트의 경우, 주차장만큼은 과감하게 설치하지 않아도 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

최민욱 저희도 주차장법처럼 마음에 안 드는 게 많지만, 법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만들어내는 것이고 저희가 법을 만드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법의 취지를 존중합니다. “법이 왜 이렇게 만들어졌을까?”를 따져보면 다 의미가 있어서 만들어진 거니까요. 그래서 법을 어떻게 해석해서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양수인 소장님 말씀처럼 적법하게 설계하는 게 제일 좋죠. 그 안에서 우리가 사회나 건축주에게 이롭게 법을 해석하는 것이 저희의 접근 방식입니다.

양수인 말씀을 듣고 보니, 법에 대한 다른 관점이 떠오릅니다. 예를 들어 에너지를 낭비하지만, 심미적인 가치를 지닌 무언가를 만들어서 사회나 인류에 기여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단열 기준 등의 강력한 규제를 설계에 적용하다 보면 여지가 사라집니다. 이런 식으로 모두가 하나의 가치만을 추구해야 한다는 가치관이 담긴 법 조항이 많아요. 결과적으로 다른 가치를 추구할 건축주의 권리를 박탈하는 거죠. 그런 부분은 우리나라 사회 전반적으로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이상윤 안도 다다오가 최근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누군가 “왜 요즘 작품에서는 선생님의 초창기 작품에 보이는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를 찾아보기 어렵나요?”라는 질문에, 그는 “예전에는 단열이 필요 없어서 좋은 결과가 나왔지만, 단열이 요구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초창기만큼의 매끈한 노출 콘크리트를 구현하기가 어렵다”라고 답했습니다. 기술적 조건과 시대적 요구가 건축 표현의 변화를 가져온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경제성 말고 다른 가치

청중 질문 오늘 발표나 대화는 대부분 경제적인 이유에 집중해서 보여준 것 같습니다. 리노베이션 프로젝트를 하다 보면, 보존과 철거를 결정해야 할텐데 이때 경제적인 이유 말고 너무 흥미롭다거나 다른 가치를 발견해서 보존한 경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복기 저희가 종로의 아주 작은 카페를 리노베이션한 적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맹목적인 존중은 피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며 작업하려고 했어요. 근데 경성 지도를 살펴보니까 그 카페 건물이 지도 위에 그대로 그려져 있었습니다. 그 발견을 한 뒤 이 건물은 손대기 어렵겠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이 역사의 한 페이지를 지우는 또 한 명의 사람이 될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옛 모습 그대로 카페가 운영되고 있습니다. 그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조세연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저희가 ‘빈집살래’ 방송 프로그램에서 주막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내부적으로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이 집을 ‘빈집 살래’로 만들 것이냐 ‘새집 살래’로 만들 것이냐.” 바깥의 구조는 실질적으로 구조 사용이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거든요. 그래도 프로그램명이 ‘빈집살래’니까 구조를 어떻게 살릴지 고민했고 구조의 흔적이라도 남기자고 결론 내렸습니다. 집을 완전히 밀고 다시 짓는 게 아니라, 외관이 꼭 기능적인 면이 없더라도 남겨둠으로써 마을 사람들이 늘 봐왔던 그 집의 기억을 어느 정도 이어가는 감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임지환 제가 했던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경제성을 떠나서 생각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도 한 프로젝트가 떠오르는데, 엘리베이터만 증축한 프로젝트입니다. 건물 입면에 마치 그랜드 피아노 같은 곡면이 있어서 주변에서는 ‘피아노 건물’로 유명했던 6층 건물인데 엘리베이터가 없었습니다. 그때 엘리베이터 코어를 어떻게 해야 기존 건물과 잘 어울릴지 고민하면서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건물에 금속 외장재를 쓴 데다 매스가 강해서 엘리베이터 외관에 조금 반투명한 느낌을 주고 그 둘을 병치시켰습니다.

양수인 저는 헬리녹스 프로젝트에서 기존 건물의 역보가 재미있어서 살렸습니다. 그리고 지금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시멘트 공장이 있습니다. 그곳에 시멘트 원료를 만들던 지름 4m 원통형 소성로가 폐기된 채 있었어요. 반으로 갈라서 놔두었더라고요. 그 소성로를 보는 순간, 제가 어렸을 때 좋아하던 작업 중에 톰 메인과 앤드루 자고의 6번가 주택(Sixth Street House)이 떠올랐어요. 그 작업은 공간에 기계를 먼저 배치하고 그 기계 주변으로 도면을 그려서 설계한 주택입니다. 그래서 저도 발견된 사물(found object)인 소성로를 먼저 가져다 놓고 그 주변으로 건물을 그린다는 생각으로 경영진을 잘 설득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걸 알약처럼 벌려서 가운데 방풍실을 넣고 새로 리모델링하는 시멘트 공장 건물의 출입구로 만드는 거죠. 이 아이디어를 관철해서 작업해 보고 싶습니다. 

관련해서 한 가지 덧붙이면, 오랜만에 졸업 설계 스튜디오를 맡게 됐습니다. 졸업 설계를 하게 되면 학생들은 대상지에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길, 천, 강을 다 찾아서 되살리려고 노력합니다. 을지로 같은 길처럼요. 학생들은 그게 어떤 의무라고 생각하는지 아니면 ‘팔림프세스트 건축’이라고 여기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논객의 관점에서 그 반대편의 시각을 상기해야 하니까, 학생들에게 더 강하게 “300년 전에 있던 길을 왜 그렇게 살리려고 하나, 그게 지금 우리에게 어떤 도움이 되나?”고 묻습니다. 지나친 노스탤지어는 경계해야 한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리모델링의 영토들

청중 질문 오늘 발표에서, 주로 민간 클라이언트, 업무 시설 프로젝트가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혹시 다른 용도나 다른 공공 프로젝트에 대한 리모델링 경험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양수인 저는 앞으로 제가 하고 싶고, 많이 할 일을 리모델링으로 정한지 몇 년 됐습니다. 공모전도 리모델링 유형만 몇 번 했어요. 근래 그중 공공 프로젝트에 당선됐고, 공사비 500억 원, 설계비 30억 원 규모의 설계를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리모델링 공모전을 할 겁니다. 공공 영역의 리모델링 공모전이 많이 나오고 있고, 리모델링 발주도 현저히 늘어나고 있어요. 

최민욱 저희는 공사비 2억 원, 설계비 2천만 원 규모의 공공건물 리모델링을 했습니다. 그게 바로 오늘 소개한 프로젝트 중 주막입니다. 다른 분야도 그렇겠지만, 시장에 대응하는 속도가 민간 부문이 빠르고 공공 부문이 느린 경향이 있습니다. 양수인 소장님 말씀처럼, 지금 공공 부문 현상 설계 공모에서 리모델링 프로젝트가 많이 늘었습니다. 몇 년 내에는 결과물도 매우 많아질 걸로 봅니다. 

이상윤 마지막으로 덧붙여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종종 공공 발주하는 리모델링 사업에서 건축 위원으로 참여해 지침이나 설계 요강 등을 검토하고 조정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청중의 질문에 이어 여쭙고 싶은 것은, 실제로 설계 공모전에 참여할 때 지침이나 설계 요강 때문에 망설이게 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 점을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양수인 원래 리모델링은 설계비 곱하기 1.5배가 규정입니다. 실제로 신축 설계하는 것보다 리모델링 설계가 훨씬 노력이 많이 들어갑니다. 같은 규모의 신축 건물에 비해서 일정 부분 1.5배 받을 정도로 가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그 규정만 잘 지켜줘도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최민욱 주막 프로젝트를 할 때 설계비 1.5배 못 받았습니다. 리모델링이 정말 설계가 어렵고 부수적인 비용도 상당히 많이 들어서 1.5배 규정이 잘 지켜져야 할 것 같습니다. 더불어서 해체에 관한 별도 비용이 추가되어야 하는데 그 부분이 간과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리모델링에 집중해서 별도 비용 청구 기준을 마련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이상윤 ‘해체 별도’, ‘구조안전진단 별도’, ‘지반보강 별도’, ‘보 구조보강 별도’ 등 같은 사항들은 이제 인식이 많이 높아져 상황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며, 공공 건축물 리모델링 규정 또한 이러한 흐름에 맞추어 신경을 써달라는 부탁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저 역시 그 방향으로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다섯 분 모시고 장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포럼에 참석한 여러분도 학교에서 듣는 수업이나 스튜디오 작업과는 또 다르게, 굉장히 생동감 있는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되었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많은 배움을 얻어갑니다. 오늘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하겠습니다.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고화 김주현 / 편집 심미선

건물 다시 쓰기: 발굴, 발명하는 건축가

분량9,558자 / 19분

발행일2025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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