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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

김상호

2024년 여름 우리 출발지는 ‘건축 콘텐츠’라는 핀만 꽂힌 채 사방으로 트인 망망한 구역이었다. 어디로든 발걸음을 떼보기 위해 ‘공간디자인의 지적재산권’이라는 방향을 막연히 살피다가, ‘건축 분야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도착 가능한 목적지로 설정하고 경로 검색을 돌렸다. 경로가 하나 뽑혀 나왔는데, 희미한 회색이었다. 내비게이터도 참고할 정보가 희박했다. 어쨌든 길을 찾으려면 움직여봐야 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경로, 아니 약도라고 하는 게 더 어울리겠다. 아무 종이에 대충 끄적인 것 같은 약도가 말해준 내용은 이렇다. 지금까지 건축 산업에서 콘텐츠는 잘 지어진 건물뿐이었다. 건축문화 산업도 건물을 소스 삼아 파생 상품을 만들어냈다. 본격적인 21세기, 모든 것이 다음 단계,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고 있는 이 시대에, 건축 산업은 오래되고 고착된, 심지어 거의 유일한 생산품인 건물을 넘어서는 뭔가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영역들이 서로가 서로를 고도화, 분산, 재편, 합성, 통합하는 복잡한 틈바구니에서 건축은 고립되거나 흡수될 것이다. 이것이 건축 혹은 건축 산업의 현 위치다.

약도가 가리킨 다음 포인트는 게임과 웹툰이었다. 도약 혹은 비약 사이에 생략된(지워진) 생각을 채워보자면, 게임이나 웹툰 속 배경으로 등장하는 도시, 거리, 장소를 구성하는 건물과 공간과의 연관성이 연결고리다. 건물을 짓기 전에 그리는 컴퓨터 그래픽이나 도면이 건축 산업의 생산 과정에서 얻어지는 말랑한 콘텐츠로 여겨진 지는 좀 됐다. 그동안 주로 전시나 출판을 통해 가공되고 소비되던 이것들을 게임과 웹툰의 이미지 소스로 공격적으로 공급해볼 수 있지 않을까. 이 포인트로의 연결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이다음 스텝이 마땅치 않았다. 목적지에 미처 다다르지 못한 채 중간 기착지에 눌러앉는 느낌, 혹은 트랙만 늘어날 뿐 기존 순환 노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느낌이었다. 그 옆에는 소설과 영화라는 낡은 트랙이 나란히 존재했다. 약도를 읽고 나니 결국 이 영역에서의 탐색은 폭만 넓힌 폐곡선 위에서 몇 개 트랙을 오가며 뱅뱅 도는 꼴이었다.

우리는 엉성한 약도를 따라가기를 그만뒀다. 끊어진 연결고리를 찾기에도, 그려지지 않은 부분의 채우기에도 정보가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찾기’라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은 일단 접어두고, 우리를 막다른 길로 인도했던 게임이라는 표지판 밑으로 굴을 파기 시작했다. 마구 파내려간 굴에는 ‘월드 메이킹’, ‘사용자 경험 디자인’, ‘개념 공간 재생’, ‘스토리텔링’이라는 네 갈래 입구가 생겼다. 월드 메이킹은 말 그대로 게임 속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고,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게임의 플레이 방법과 규칙을 경험의 차원에서 설계하는 것이다. 다소 난해한 이름의 개념 공간 재생은 게임 속에서만 말이 되는 공간의 흐름과 전개를 모종의 형식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설명할 필요 없는 스토리텔링은 사실상 모든 게임이 발을 디디고 있는 밑바탕이다. 아무튼, 우리는 게임의 속성을 파헤쳐 다른 경로를 탐색할 준비를 마치고, 양수인을 호출했다.

양수인에게 SOS를 보내면서, 내심 원래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는 길을 계속 찾아보고 싶었다. 공모 과제를 비즈니스 모델 개발을 위한 사업 제안서나 창업 계획서 같은 것으로 설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미련이 남아 있었다. 우리가 새로 발굴해 놓은 길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것은 건축 ‘설계’ 공모라는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 기존 건축 산업이 만들어온 체제의 사이버 버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로선 어디서 무엇을 찾아야 원하는 목적지에 갈 수 있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그저 그의 혜안과 기치로 지도의 어두운 곳을 밝혀주기를 바랐다.

양수인은 오자마자 게임이라는 푯말을 뽑아버렸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게임이나 가상 세계보다 더 복잡미묘하고 흥미로우며 시의적절한 주제인 것 같다.” 양수인의 첫 반응이었다. 그는 글로우서울, 어반플레이, 플렉시티, VERS의 VIDO, 밸류맵 등이 준비하고 있는 모듈러 주택, zeroton의 reer, rovothome 등 건축의 콘텐츠/정보와 관련된 비즈니스 모델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반면, 가상공간이나 메타버스 같은 것에 대해서는 매우 회의적이었고, 게임은 건축과는 전혀 다른 생태계와 메커니즘으로 움직이는 넘사벽의 세계로 봤다. 그때 우리는 깨달았다. ‘잘못된 약도를 손에 들고 있었구나.’ 기억을 더듬어 보니, 그 약도는 서로 다른 두 지도를 겹쳐놓고 그린 것이었다. 하나는 건축 디자인 지도, 하나는 게임 그래픽 지도였다. 꼬여 있던 실마리가 드러나면서 다시 희망이 생겼다. ‘원래 가려고 했던 목적지에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정림학생건축상의 전통을 생각해봤을 때, 내가 심사위원으로 적합할지 스스로 의문이 든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 그가 가버리면 우린 이 쓸모없는 땅에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된다. 그는 “건축의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에는 너무 흥미가 있지만, 막상 그 분야에서 뭔가를 시도해보지도 성공해보지도 못한 전통적인 건축가일 뿐”이라는 점에서 그런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동안 정림학생건축상은 주제와 심사위원의 싱크로율이 굉장히 높았고, 그 점이 이 상을 매력적이고 도전적으로 만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이 주제를 자신 있게 다룰 전문성이나 경험이 자신에게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안 돼. 안 돼. 당신만큼 이 막막한 길을 뚫어줄 사람이 또 어디 있다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사실 요즘 리모델링에 관심이 많아서, 조만간 그 주제로 공모전을 열어보면 어떨지 재단에 제안을 넣어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찌 되든 간에 이렇게 인연이 닿았으니 겸사겸사 만나서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다. (이번 심사위원으론 부적합할 것 같지만) 주제는 너무 흥미롭고, (이런 대화도) 흥미로울 것 같다.”

‘리모델링?! 리모델링도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지 않나?!’ 가능성의 문은 열려 있었고, 두 번째 안내자 이상윤이 합류해주었고, 이 여정의 결말은 모두 아는 대로 해피엔딩이다.

김상호 정림건축문화재단 실장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

분량2,961자 / 6분

발행일2025년 9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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