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의 6%를 버리는 나라
박인석
분량3,956자 / 8분 / 도판 1장
발행일2025년 10월 30일
유형오피니언
건축의 시대: 한국 사회의 질곡, ‘40년건축’을 넘어서
1편. ‘40년건축’으로 만든 나라 ④
한국이 GDP 수준에 비해 삶의 질 수준이 낮은 데에는 ‘40년건축’이 작지 않은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았다. 물리적 수명이 100년인 건축물을 40년마다 철거하고 새로 짓는다는 것은 아직 60년이나 남은 수명, 즉 60%나 남은 건축물의 가치를 폐기한다는 것을 뜻한다. 단순화의 오류가 있겠지만 거칠게 얘기하면 전국에 있는 건축물 모두를 새로 짓는 비용의 60%를 40년마다 한 번씩 폐기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토교통부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전국의 건축물 총량이 7,421,603동, 연면적으로는 43억 1천 500만㎡에 이른다. 이것의 40분의 1, 즉 185,540동, 1억 788만㎡를 매년 새로 짓고 그 건축 비용의 60%를 매년 폐기하는 셈이다. 국토교통부가 고시한 2025년 표준건축비(과밀부담금 부과 기준) 2,380,000원/㎡를 적용하면 매년 폐기하는 비용이 무려 154조 원이다. 우리나라 2024년 GDP(2,556조 원)의 약 6%에 달한다.
우리나라 건축이 ‘40년건축’이라는 얘기는 우리 사회가 GDP의 6%에 해당하는 가치를 매년 폐기하고 있음을 뜻한다. 물론 이 폐기되는 가치는 40년 전(신축 당시) GDP에 이미 산입됐다. 생산하여 GDP에 반영된 가치를 40%만 사용하고(60%를 사용하지 않고) 버리고 다시 생산하는 ‘낭비적 생산’을 매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생산한 가치를 향유하지 않고 버리니 그만큼 삶의 질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건축물을 수명대로 다 사용하고 그간 낭비적 생산에 소모해 온 생산 요소(노동, 자본)를 건축물 아닌 다른 가치 생산에 사용했다면 국민이 사용하는 가치량은 훨씬 늘어났을 것이고 삶의 질 수준도 훨씬 높아졌을 터이다.
이쯤 되면 한국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 것으로 유명한 ‘GDP 중 건설투자 비중’ 역시 40년건축 탓이 작지 않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한국의 건설투자 비중은 1990년대 초 한때 29%에 달할 정도로 높았다가 2010년 이후 15% 내외를 유지하고 있다. OECD 국가 평균 11% 수준에 비하면 아직도 높은 편이라는 평가다. 왜 이렇게 높을까? 1990년대까지야 주택도 절대 부족하고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도 부족한 단계였으니 이를 확충하기 위한 일에 정책 비중이 두어진 탓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는? 전국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 것이 2002년이다. 수도권과 서울의 주택보급률도 각각 2010년, 2012년에 100%를 넘어섰다. 1인 가구를 가구 수에 산입하는 새로운 주택보급률1 지표로 계산해도 전국 주택보급률은 2008년에 100%를 넘어섰다. 수도권과 서울은 2023년 현재도 각각 97.2%, 93.6%로 100%에 못 미치지만, 이는 갈수록 심해지는 수도권 인구 집중과 1인 가구 증가 탓이 크다. (2024년 전국 1인 가구 비율이 35.5%인데 비해 서울은 39.3%에 달한다.) 전국 기준으로 본다면 2010년 이후로는 주택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라고는 할 수 없다. 도로, 터널, 철로 등 사회간접자본 시설도 마찬가지다. 토목공사 공공 발주 금액이 2012년부터 확연한 감소 추세를 지속하고 있다. 그런데도 건설투자 비중이 15% 내외라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는 짧은 건축물 수명, 즉 ‘40년건축’ 탓이 결정적이다. 건설투자 비중이란 GDP에서 건설투자액(건물 건설투자액 + 토목 건설투자액)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통계청 통계에 의하면 2024년 총 건설투자액은 354.2조 원, GDP의 13.9%다. (즉, 건설투자 비중이 13,9%다.)2 전체 건설투자 중 건축물 건설투자액이 251.5조 원으로 이 중 60%가 ‘40년건축’으로 폐기되는(버려지는) 것이다. 251.5조 원의 60%면 약 150조 원이다. 앞에서 기본형 건축공사비로 추정한 금액과 일치한다. 150조 원. GDP의 6%. 한국 국민은 매년 GDP의 6%를 버리면서 사는 셈이다. 한때 29%에 달했고 줄곧 15% 내외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의 높은 건설투자 비중 역시 40년건축이 빚어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건설투자 비중 15% 중 6%, 즉 3분의 1 이상이 40년건축으로 인해 버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만일 한국의 건축생산이 100년건축으로 바뀌어 간다면 한국의 건설투자 비중은 금세 10% 수준으로 낮아질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추론을 검증하기 위해 앞에서 건축물 평균 수명을 산출했던 OECD 국가들을 대상으로 건축물 평균 수명과 건설투자 비중을 비교한 것이 [표 1-3]이다. 건축물 수명이 높은 나라들이 대체로 건설투자 비중이 낮은 것을 알 수 있다. 건축물 평균 수명과 건설투자 비중의 상관계수를 계산하면 -0.6123으로 강한 역상관관계를 보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건축물 평균 수명이 높은 나라일수록, 즉 건축물의 물리적 수명이 다하도록 오랫동안 고쳐가면서 사용하고 있는 나라일수록 건설투자 비중이 낮은 경향이 강하다는 뜻이다. 일단 건축물을 지으면 물리적 수명이 다하기 전에는 건축물을 철거하지 않기 때문에(건축물에 남아있는 가치를 폐기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새로 짓는 데 쏟는 투자 비용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쓸데없이 건축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대신에 그 노력과 투자로 다른 재화를 생산하고 그만큼 국민 삶의 질이 풍족해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선진국인 것이다.

40년마다 모든 주택과 모든 건축물을 부수고 새로 짓기를 반복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40년건축’ 현상은 소모적이고 파괴적이다. 가장 비싼 재화 중 하나인 건축물을 수명의 절반도 안 쓰고 폐기하여 국민의 소중한 노동과 사회 자본을 낭비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다른 재화 생산에 투입할 노동과 자본을 부족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치와 도시정책은 이러한 소모와 파괴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재건축 안전진단을 폐지하겠다는 둥 주민 동의율을 50%로 완화하겠다는 둥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가 마치 민생을 돌보는 정책인 양 내세운다. 2022년 대선 공약으로 ‘1기 신도시 재건축 특별법’ 제정이 내걸리더니 재건축 지원-촉진 대상을 전국적으로 더 늘린 ‘노후계획도시 정비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이 등장했다. 이 법은 ‘노후계획도시’를 “조성 후 20년 이상 경과하고 100만 제곱미터 이상인 지역”으로 규정하고 있다. ‘40년건축’도 모자라 ‘20년건축’의 사회를 만들겠다는 것인가?
정작 주거 시장 안정에 필수적인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는 일, 건강한 동네 환경과 교육 환경에 긴요한 공공도서관을 늘리는 일에는 늘 예산 부족 타령이다. 전국 초등학교 6,175개 중 수영장이 있는 학교가 122개교뿐이라 세월호 참사 이후 의무화한 ‘생존 수영’ 수업이 불가능하다고 한다.3 6,175개교에 122개교면 2%도 안 되는 비율이다. 일본의 초등학교 수영장 보유율 82.3%4와 비교하면 참담할 지경이다. GDP 세계 10위를 오르내리는 나라가 왜 이렇게 공공영역 투자에 인색할까? 공공영역과 공적 가치 확충에 쓸 예산은 왜 항상 부족한 것일까? ‘40년건축’, ‘가난한 건축’이 안고 있는 낭비와 소모, 그리고 자기파괴적 모순을 곰곰이 따져 볼 일이다.
[연재] 건축의 시대: 한국 사회의 질곡, ‘40년건축’을 넘어서
1편. ‘40년건축’으로 만든 나라
① 부자 나라, 가난한 삶
② 재건축의 경제학
③ 한국의 건축생산비용 보고서
④ GDP의 6%를 버리는 나라
⑤ 40년건축에서 100년건축으로
2편. 부실시공, 공공책임 부재의 귀결
3편. 건축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박인석
현재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도시와 건축 및 주택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가 건축정책위원회 5기 위원과 6기 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 생산 역사』(전 3권), 『건축이 바꾼다』, 『아파트 한국 사회』 등이 있다.
GDP의 6%를 버리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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