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건축생산비용 보고서
박인석
분량3,836자 / 8분 / 도판 1장
발행일2025년 10월 23일
유형오피니언
건축의 시대: 한국 사회의 질곡, ‘40년건축’을 넘어서
1편. ‘40년건축’으로 만든 나라 ③
앞에서 말했듯이 40년건축, 즉 수명이 아직 많이 남은 건축물을 폐기하고 새로 짓는 재건축사업은 ‘새로 짓는 건축물의 교환가치가 ‘기존 건축물의 잔존 교환가치와 새 건축물 건축 비용의 합’보다 클 때’라는 조건 아래 추진된다. 이 조건이 성립되려면 ① 새로 짓는 건축물의 교환가치가 가급적 커야 하고 ② 새 건축물 건축 비용은 가급적 작을수록 좋다. ①을 위한 방법은 고밀도 개발과 상품 성능 쇄신이다. 한편 ②가 훌륭하게 충족될수록 ①이 한결 수월해지고 그 효과도 커진다. 한국에서 재건축사업이 이토록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상황은 ①을 위한 방법만큼이나 ②를 위한 비결, 즉 건축생산 비용을 작게 만들고 있는 비상한 메커니즘도 작동하고 있음을 짐작게 한다. 40년건축의 다른 한 축, 한국의 건축생산 비용을 살펴보자.
네덜란드의 설계-엔지니어링 컨설팅 업체인 ARCADIS가 매년 조사-공표하는 세계 주요 100개 도시 건축공사비 조사 결과(2025)에 의하면, 서울은 100개 도시 중 71위이고, OECD 국가에 속하는 도시로만 비교하면 70개 도시 중 62위다. 건축공사비가 가장 높은 제네바, 런던, 뮌헨, 뉴욕의 40~50%, 도쿄의 66% 수준이다. 70개 도시 전체 평균(130.1)과 비교해도 70%에 그치는 매우 낮은 수준이다. 같은 국가에서도 도시별로 차이가 심해 한국(서울)이 최하위 수준이라고 못 박기는 어렵다. 그러나 흔히 건축물을 100년 이상 사용한다고 거론되는, 100년건축 국가의 도시들보다 매우 낮은 수준인 것은 분명하다.

자료: ARCADIS International Construction Cost Index 2025)
앞 장들에서는 유럽의 100년건축과 한국의 40년건축의 교환가치나 사용가치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하고 서술했다. 그러나 이것은 서술의 편의상 그랬을 뿐이다. 100년건축과 40년건축의 생산비용이나 성능-질적 수준이 동일할 리 없다. 이미 보았듯이 나라별로 건축물 생산비용에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다. 나라별 공사비 차이는, 나라별 물가 수준, 노동 숙련도 및 인건비 차이 등으로 인해 변수가 있을 수는 있지만, 따라서 공사비 차이가 성능-품질 수준 차이와 정확히 비례하지는 않지만, 공사비 수준이 높은 나라들의 건축물 성능-품질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보는 것이 상식이다. 건축물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는 어떨까?
어느 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건축물 생산비용이 적고 성능-품질이 낮더라도 사용가치는 낮지 않을 수 있고 오히려 더 높을 수도 있다. 건축물은 지리적 유통이 곤란한 부동산 상품이라는 특성 때문에 더욱 그렇다. 주택공급이 부족한 나라라면 주택의 사용가치는 그만큼 높을 것이다. 한 나라 안에서 건축물의 사용가치는 그 나라 건축 상황에 좌우된다.
그러나 교환가치는 그렇지 않다. 건축물에 투입된 공사비에 일정한 이윤이 더해져서 건축물의 교환가치, 즉 가격이 된다. 교환가치가 공사비와 다르게 통용되는 일, 즉 공사비가 낮은데 건축물의 교환가치는 높은 상황이 가능할까? 만일 그렇다면 건축생산 이윤율이 다른 상품에 비해 유난히 높다는 것인데 이런 일은 잠깐의 이상 현상이라면 몰라도 지속될 수는 없다. 나라별 공사비 차이도 마찬가지다. 나라별로 공사비에 차이가 난다면 건축물 가격도 그만큼 차이가 난다.
당장 의문이 따를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건축공사비가 OECD 국가 평균의 70% 수준이니 건물 가격 역시 70%밖에 안 된다는 얘기인가? 이토록 비싼데? 다른 나라는 건축물 가격이 이보다 더 비싸다는 말인가?’ 당연하다. 그만큼 더 비싸다. 문제는 건축물의 교환가치, 즉 가격은 건축물 대지 가격, 즉 땅값과 묶여서 결정되고 거래되므로 건축물만의 가격을 정확히 가려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설사 공사비 투입이 적어서 건축물의 교환가치가 낮더라도 땅값이 오르면 건축물의 낮은 교환가치가 드러나지 않은 채 ‘건축물 가격 + 땅값’으로 교환가치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일견 나라마다 건축물의 가격이 공사비 투입량과 일치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한 나라에서도 대도시와 지방의 건축물 매매 가격 차이가 심한 것과 같은 이치다.
따라서 땅값을 뺀 건축물만의 교환가치는 건축물 생산비용, 즉 공사비로 가늠할 수 있다. 앞에서 보았듯이 한국의 건축공사비가 OECD 국가 도시 평균의 70% 수준이라면 건축물의 교환가치 역시 이에 비례한다 할 수 있다. 앞 장에서 40년건축과 100년건축의 가치가 동일하다고 간주하고 계산한 수치도 다소 수정되어야 한다. 한국의 40년건축의 교환가치를 100년건축의 70%라고 한다면 100년 주기로 건축을 생산하는 국가에 비해 40년 주기로 건축을 생산하는 한국은 건축 생산활동을 통해 1.75배(70% × 2.5 = 175%)의 교환가치를 생산하는 결과가 된다. 즉, 수명 100년 건축물을 40년만 사용하고 폐기하는 한국의 건축 생산활동은 5분의 3(60%)이 무용한 생산활동이고 생산한 건축물의 질도 100년건축보다 낮다. 그러나 국민총생산(GDP) 등 경제활동의 양을 측정하는 지표에서는 100년건축 국가의 1.75배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경제 지표만 부풀려질 뿐인 무익한 투자-생산-소비 활동에 모든 국민이 매달려 바쁘게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건축공사비가 매우 낮다는 사실은 40년건축 생산체제의 한 축을 드러낸다. 공사비가 낮다는 것은 수명 100년인 건축물을 40년만 사용하고 부수고 다시 짓는 일이 그만큼 용이함을 뜻한다. 건축 생산비용이 적은 만큼 건축의 품질도 (100년건축에 비해) 좋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사용가치는 사용자가 불만족할 정도로 낮은 편은 아니다. 한국이 40년건축을 자연스럽게 여기는 것은 건축의 품질 수준이 낮고 사용이 불편하거나 수명이 짧아서가 아니다. 아직 수명이 많이 남은 건축물의 가치를 폐기해 버려도 될 만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건축물을 부수고 새로 짓는 비용, 즉 건축물을 새로 설계하고 시공하는 비용이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건축 설계비와 공사비가 (100년건축 국가들에 비해) 너무 낮기 때문이다.
가격이 낮은 상품은 아끼고 고쳐 쓰기보다는 버리고 새로 사려 하기 십상이고, 기술과 디자인 수준을 높여 성능-품질-매력도를 높이려는 노력보다는 대량생산으로 단가를 더욱 낮추는 데 집중하기 마련이다. 낮은 설계비, 낮은 공사비에 익숙한 40년건축 생산체제에서는 건축물을 가꾸고 고쳐 쓰며 가치를 연장하는 일보다는 건축 물량을 계산하고 규모와 비용을 따지는 일이 중요해진다. 설계나 기술의 수준-품질보다는 대가기준이나 낙찰률 등 행정적 기준을 통해 설계비와 공사비를 낮추는 일에 관심과 노력이 집중된다. 설계와 공사의 품질은 기본 성능 충족을 따지는 수준에 머문다. 건축을 한낱 소모품처럼 다루는 행정이 만연하고, 이는 다시 가치와 수명이 아직 한참 남은 건축물을 폐기해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사회적 태도를 부추긴다. 40년건축이 체제화한 연유다.
[연재] 건축의 시대: 한국 사회의 질곡, ‘40년건축’을 넘어서
1편. ‘40년건축’으로 만든 나라
① 부자 나라, 가난한 삶
② 재건축의 경제학
③ 한국의 건축생산비용 보고서
④ GDP의 6%를 버리는 나라
⑤ 40년건축에서 100년건축으로
2편. 부실시공, 공공책임 부재의 귀결
3편. 건축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박인석
현재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도시와 건축 및 주택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가 건축정책위원회 5기 위원과 6기 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 생산 역사』(전 3권), 『건축이 바꾼다』, 『아파트 한국 사회』 등이 있다.
한국의 건축생산비용 보고서
분량3,836자 / 8분 / 도판 1장
발행일2025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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