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 나라, 가난한 삶
박인석
분량8,659자 / 19분 / 도판 5장
발행일2025년 10월 10일
유형오피니언
건축의 시대: 한국 사회의 질곡, ‘40년건축’을 넘어서
1편. ‘40년건축’으로 만든 나라 ①
한국 경제의 질주가 눈부시다. 2023년 국내총생산(GDP, 명목) 기준으로 국가별 경제 규모가 세계 14위(IMF 발표)다. 2015~2021년 기간에는 10~11위까지 오르기도 했다. 1인당 GDP는 34,165달러로 31위에 머물지만, 룩셈부르크(67만 명), 아이슬란드(39만 명), 산마리노(3만 명) 등 인구가 극히 적은 국가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천만 명 이상인 나라들로만 비교하면 세계 12위다. 60년 전인 1965년 130달러, 50년 전인 1975년 810달러로 최하위권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놀랄만하다. 세계적으로 다른 사례를 찾을 수 없을 만큼 빠른 ‘압축적 성장’임에 틀림없다. 경제 규모 팽창과 더불어 한국에 대한 세계인들의 인지와 관심도 크게 높아졌다. K팝 열풍은 세계적 현상이 된 지 오래고 외국인 관광객 증가, 외국에서 한국인 여행자에의 호의적 반응 등 한국에 대한 관심을 실감케 하는 사례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밝은 뒷면에서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빠른 성장으로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된 만큼이나 빠르게 불평등한 나라, 빈부격차가 큰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 2023년 한국의 가구당 소득 평균값은 7,185만 원인데 중앙값, 즉 중간 순위 가구의 소득은 5,681만 원이다. 중앙값이 평균값의 79%밖에 안 된다. 그만큼 소득 상위계층과 중하위 계층의 차이가 크다는 얘기다. 보유 자산의 불평등은 더 심하다. 가구당 보유 순자산 중앙값은 2억 3,995만 원으로 평균값 4억 4,894만 원의 53.4%밖에 안 된다. 불평등은 상위 계층과 하위 계층의 격차에서 보다 선명하게 확인된다. 상위 10%의 평균 소득(2억 1,051만 원)이 하위 10% 평균 소득(1,019만 원)의 20.7배이고, 상위 10%의 평균 자산(16억 2,895만 원)은 하위 10% 평균 자산(1억 2,803만 원)의 12.7배다. 그래프에서 상위 계층과 하위계층의 소득과 자산 모두 그 격차가 점점 커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한국보다 불평등이 심한 나라도 많다. 한국의 지니계수가 0.35 수준인데 아프리카나 중동, 남아메리카 등에는 0.5에 달하는 나라도 적지 않다. 프랑스의 세계불평등연구소(World Inequality Lab)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는 데이터를 OECD 국가들로 한정하여 보면, 상위 10% 계층의 소득 비중과 자산 비중에서 한국은 OECD 38개국 중 각각 16위, 9위이고, 상위 1%의 소득 비중과 자산 비중은 각각 9위, 19위다. 소득과 자산 불평등 모두 중간보다 약간 심한 정도다. 그런데 정작 문제는 불평등이 심해지는 속도다. 한국의 불평등 증가 속도는 압축성장만큼이나 빠르다. 2000~2023 기간에 상위 1% 계층과 10% 계층 모두 소득 비중 증가율이 38개국 중 1위다. 상위 1%의 소득 비중이 37위(2000)에서 9위(2023)로 뛰어올랐고, 상위 10%의 소득 비중은 36위(2000)에서 16위(2023)로 올랐다. 자산 비중 증가율 역시 모두 10위권이다. 이런 추세라면 한국은 머지않아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이 심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표보다도 더욱 우울한 것은 우리 스스로 우리 사회를 밝게 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합계출산율 0.72명(2023)이라는 믿기 어려운 낮은 수치를 기록한 저출산 상황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의 삶에 대한 만족 정도에 대한 다른 여러 조사에서 한국은 지속적으로 매우 낮은 순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엔 산하 자문기구인 ‘지속가능 발전 해법 네트워크’(SDSN)가 발표하는 세계행복보고서(World Happiness Report, 2023)를 보자. ‘현재 나의 삶이 좋다고 생각하는 정도’에서 OECD 38개국 중 35위다. 행복지수와 관련한 다른 조사 항목들도 최하위권이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친척/친구의 지원을 기대하는 정도’는 36위, ‘인생의 선택 자유에 대한 만족도’는 35위다. 이 조사에 한국이 포함된 2006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위권을 기록하고 있다. 또 다른 비슷한 조사들에서도 마찬가지다. ‘세계 가치관 조사’(World Value Survey)는 국제적 비영리 학술단체가 5년 주기로 조사하는 사회조사다. 2017~2022년 기간에 64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에서 한국은 64개국 중 52위다. OECD 국가들만 추리면 16개국 중 14위다. ‘삶의 선택 자유도’에서는 64개국 중 43위(OECD 16개국 중 13위)고, ‘요즘 삶에 대한 전체적 만족도’는 64개국 중 43위(OECD 16개국 중 14위)다.
무엇인가 삶을 빈곤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다
우리는 왜 이토록 우리 삶과 우리 사회에 비관적일까? 한국은 이미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다. 국민소득 4만 불 시대가 다가온다고 떠들어댈 만큼 소득 수준도 높아졌다. 상위 계층 부 편중이 심하긴 하지만 이는 한국만의 상황이 아니다. 포드주의 복지국가 시대가 끝난 197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제정책과 정보기술 및 금융시장 중심의 경제 팽창이 계속되면서 빚어진 세계 공통적 현상이다.
한국은 오히려 불평등 경제가 늦게 시작한 편이다. 선진 자본주의국가들의 경제가 불평등 구조로 치닫던 무렵인 1988~1997년 기간에 한국 경제는 급성장하기 시작했고 복지국가 체제가 진전되었다. 모든 계층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균등하게 증가하고 지니계수도 낮아졌다. 의료보험제도 전 국민 대상 시행(1989), 국민연금제도 10인 이상 사업체 시행(1988) 및 5인 이상 사업체로 확대(1992), 고용보험제도 도입(1995), 보육시설 9,000개소 확충(1995~1997) 등 우리나라 주요한 복지정책도 대부분 이 시기에 본격화되었다. 한국 경제가 불평등 구조로 전환하고 부의 편중이 본격화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신자유주의 경제 기조에 편입되면서부터였다. 서구 국가들에 비한다면 20년쯤 늦게 시작한 셈이다. 그 이후로 양극화가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긴 하지만 불평등 정도는, 앞에서 OECD 국가들과 비교한 바와 같이, 아직 중간보다 약간 심한 정도 수준이다.
그러나 우리들 스스로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정도,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는 줄곧 최하위권 수준이다. 계량적으로 측정되는 소득 불평등 정도에 비해 시민들 스스로 자신의 삶이 어렵고 행복하지 않다고 체감하는 정도가 더 크다는 얘기다. 무엇인가가 매일의 삶을 어렵게 만들면서 ‘삶이 어렵다’는 체감도를 높이고 있다. 소득이나 자산 규모, 양극화 등 계량적인 경제 지표만으로는 잡히지 않는(혹은 우리가 아직 헤아리지 않고 있는) ‘삶의 빈곤화 요인’이 우리 사회에 구조화 되어 있는 것이다.
삶의 질은 개인의 구매 능력과 공공정책-서비스의 양과 질 수준이 더해져서 결정된다. 예컨대 주거-의료-교육 서비스는 개인의 구매 능력에 따라 질적으로 차이가 나지만 국가의 공공주거, 공공의료 및 공교육 서비스에 의해 그 차이가 크게 완화될 수도 있다. 한국은 개별 가구당 평균적 소득 수준과 보유 자산 규모에서 이미 선진국 수준이지만 소득-자산의 상위 계층 편중 추세로 중하위 계층의 구매력이 상대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한편, 주거-교육에서 공공서비스 부족과 부실은 한국 사회가 치열한 압축성장 과정에서 소홀히 해온 지점으로 모든 국민, 특히 중하위 계층의 삶의 질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 모두가 한국 사회가 풀어야 할 중요한 문제이자 과제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이게 전부일까? 소득-자산 불평등을 완화하고, 공공서비스를 보강하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한국 사회가 오래전부터 이러한 문제 진단과 우선 과제 설정을 반복해 왔음에도 삶의 질과 행복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나아지지 않는 것은 왜일까? 진정한 개선 노력이 소홀하고 부족했기 때문에? 그게 다일까? 가뜩이나 부족한 불평등 완화 노력과 공공서비스 보강 노력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문제, 한국 사회만의 구조적 요인이 있는 것은 아닐까? 모든 사회에는 고유의 문화가 있듯이, 고유한 모순과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소득 불평등, 공공서비스 부족이라는 세계 공통적 요인과는 별도로 한국 사회에 작동하고 있는 특수한 요인이 있다. 그 유력한 답이 ‘40년건축’이다.
‘40년건축’ 르포타쥬
“유럽에서는 건축물을 100년 이상 사용하는 것이 보통인데 한국은 30년이면 부수고 재건축한다”는 말을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말은 사실일까? 팩트체크 해보자. 주택 재개발과 재건축 사업 기준과 절차를 규정한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시행령에서는 재개발, 재건축이 필요한 ‘노후 불량 건축물’을 “준공된 후 20년 이상 30년 이하의 범위에서 시도 조례로 정하는 기간이 지난 건축물”(제2조 3항 1호)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어떤 건축물이건 준공된 지 20~30년이 지나면 재개발, 재건축 대상으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해당 건축물을 준공일 기준으로 40년까지 사용하기 위하여 보수, 보강하는 데 드는 비용이 철거 후 새로운 건축물을 건설하는 데 드는 비용보다 클 것으로 예상되는 건축물”(제2조 2항 3호)이라는 조항도 있다. 우리나라에서 건축물을 “40년까지” 사용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보수, 보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40년까지” 사용하면 매우 오래 사용하는 것이니, 건축물의 수명은 보통 “30년” 이내로 보아야 한다는 얘기다. 현행 법률에서 법적 기준으로 공식화하고 있는 내용이다.
그렇다면 “유럽 국가들에서 건축물을 100년 이상 사용하는 것이 보통”이라는 것도 사실일까? 각국의 건축물 수명이 통계로 발표되지 않으므로 이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는 없다. 유사한 통계 수치를 이용하여 추정하는 수밖에 없다. [표 1-1]은 각국의 주택 통계를 뒤져서 연도별 총 주택 수를 그 해 건설한 주택 수로 나누어 ‘총 주택 교체 소요년수’를 계산한 것이다. 매년 같은 수의 주택을 건설한다면 몇 년 만에 총 주택에 해당하는 양의 주택이 새로 지어지는지 계산하고 이를 그 나라의 건축물 평균 수명으로 추정하려는 것이다. 각국이 공표하는 통계 중 가용한 범위에서 최근 7~9개년의 통계를 찾아 평균값을 계산했다. 물론 이러한 추정에는 오차가 있겠지만, 조사 대상 국가들이 모두 오래전에 주택보급률 100%를 넘은 나라들이어서 총주택 수나 신축 주택 수가 큰 변화 없이 일정한 흐름을 유지하므로 그 오차 정도는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계산된 ‘총 주택 교체 소요년수’를 주택 평균 수명으로 보고 이를 그 나라의 건축물 평균 수명으로 간주해도 크게 무리하지 않을 것이다.

결과를 보면 영국, 독일, 미국이 100년을 훨씬 넘고, 다른 서구 국가들은 대부분 80~90년 안팎으로 계산된다. “유럽 국가들의 건축물 수명이 100년 이상”이라는 말이 크게 틀리지 않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36.5년으로 이 역시 현행 법률에서 노후건축물 기준으로 삼고 있는 준공 후 경과년수 30~40년과 대체로 일치한다.
‘100년건축’ 사회와 ‘40년건축’ 사회
유럽 국가들의 건축물 수명은 100년 이상인데 한국은 40년이 채 안 된다는 사실은, 한국의 건축물이 유럽 국가들에 비해 질이 낮고 우리가 질 낮은 건축공간에서 생활하고 있다는 문제를 가리키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경제적 차원에서, 그리고 삶의 질 차원에서 훨씬 크고 중차대한 문제로 연결된다. 이 땅의 건축물 평균 수명이 40년이라는 것은, 우리는 이 땅의 모든 건축물을 40년마다 새로 지으며 살고 있다는 뜻이다. 건축물 평균 수명이 100년인 나라에서는 100년 동안 하는 일을 한국은 40년마다 해야 한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유럽 국가들은 매년 전체 건축물의 100분의 1을 새로 지으며 살고 있는데, 한국은 매년 전체 건축물의 40분의 1을 새로 지으며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유럽 사람들에 비해 집과 건축물 짓는 일에 2.5배의 노동과 돈을 들이고 있다는 얘기이고, 그럼에도 그들보다 질이 낮은 건축공간에서 살고 있다는 얘기다.
남들은 100년에 걸쳐 하는 일을 40년마다 한다면 어떤 차이가 생길까? 똑같이 건축물 1,000만 채를 갖는 두 나라 A, B가 있다고 치자. A는 수명 100년인 건축물을 짓고 B는 수명 40년인 건축물을 짓는다. 총 1,000만 채를 유지하기 위해 A는 매년 10만 채를 지어야 하고, B는 25만 채를 지어야 한다. 이 둘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생산과정에서의 효과만 생각한다면 B가 2.5배의 생산 효과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수명 차이가 있으므로 건축물 한 채 짓는 데 소요되는 노동과 재료에도 양적, 질적 차이가 있겠지만 일단 이는 무시하기로 한다. (나중 글에서 따져볼 것이다.) 투입 노동력이 2.5배이니 일자리 창출과 임금 배분 효과가 그만큼 높을 것이고, 건설장비와 건축재료 투입량도 2.5배이니 관련 산업의 시장 규모 확대와 종사자들의 일자리 및 임금 배분에도 더 많은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정작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다. 40년 후에도 100년 후에도 A와 B가 각각 건축물 1,000만 채를 갖고 있는 상태는 변하지 않는다. A는 수명 100년인 1,000만 채를, B는 수명 40년인 1,000만 채를 갖고 있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A는 매년 10만 채를 생산하고 10만 채를 폐기(건축물 수명이 100년이므로 매년 1/100을 폐기)하며, B는 매년 25만 채를 생산하지만 매년 25만 채를 폐기(건축물 수명이 40년이므로 매년 1/40을 폐기)하기 때문이다. A, B가 보유하고 사용 중인 가치의 총량은 동일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매년 새로 생산하는 가치량은 B가 A의 2.5배나 된다. 물론 매년 폐기하는 가치량(철거하는 건물의 양)도 B가 A의 2,5배다. 하지만 GDP는 현재 보유하고 사용중인 가치량이나 폐기되는 가치량은 불문에 부치고 새로 생산하는 가치량만을 기준으로 산출된다. 개별 기업의 회계라면 재고 상품 폐기는 손실, 혹은 매출원가로 처리되어 이익이 그만큼 줄어든다. 그러나 GDP 계산에서는 생산된 가치량을 산입할 뿐 폐기되는 잔존 가치량은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니다. 철거-폐기하는 데 투입되는 비용도 ‘생산’으로 더해질 것이니 GDP는 오히려 그만큼 더 늘어난다. (이 부분은 40년건축 효과에 포함하여 다루지 않았다.)
결국 매년 새로 생산하는 건축물 가치의 총량, 이에 따른 산업량과 임금 배분 효과는 B가 A보다 2.5배지만 나라 전체가 보유하고 있는 건축물의 가치 총량은 A와 B가 동일하다. B는 노동력과 건설장비와 건축재료를 A의 2.5배 투입했지만, 가치 총량에서 A와 동일한 상태다. 결국 B가 투입한 노동력-장비-재료의 60%(A의 2.5배 중 1.5배에 해당하는 양)는 가치 총량 증대에 아무런 기여 없이 소모된 것이다. 말하자면 ‘땅을 팠다가 되묻는 일’처럼 아무런 가치 없는 일을 하는데 허비하는 셈이다. A 나라, 즉 건축물 수명이 100년인 사회라면 B가 허비하는 60%의 노동량과 자본을 다른 재화 생산에 투입할 것이다. 그리고 100년 사회 국민들은 그렇게 생산된 재화의 가치를 삶의 질의 일부로 향유할 것이다.
건축물 생산이 빚어내는 이러한 차이는 곧바로 국가 경쟁력과 국민의 삶의 질 문제에 연결된다. 40년 사회는 100년 사회보다 건축물 생산에 투입하는 노동-자본량이 많은 탓에 건축물 이외의 다른 재화 생산에 투입되는 노동-자본량이 적고 생산량도 적다. 자연히 사람들이 향유할 재화의 종류와 양이 100년 사회에 비해 부족하고 비싸진다. 생필품보다는 문화-여가생활 관련 재화 생산이 부족 문제에 더 시달리기 마련이다. 기초과학이나 인성교육 투자가 부족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개인의 소비 차원에서는 그 차이가 보다 선명해진다. 건축물을 100년마다 새로 짓는 사회와 40년마다 새로 지어야 하는 사회의 차이는 결국 개인들이 여기에 지출해야 할 비용 부담의 차이로 귀결된다. 40년 사회 개인들은 100년 사회에 비해 집을 짓거나 바꾸는 데 부담하는 비용이 2.5배다. 40년 사회에서, 즉 한국에서 개인들이 평생 저축해도 (내 집이든 셋집이든) 집 마련이 쉽지 않은 일이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집 마련의 어려움’에 그치지 않는다. 집 마련에 분투하는 만큼 다른 데에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든다. 지출을 줄이려고 생필품 이외에는 지출을 억제하고 생필품도 저렴한 상품을 찾게 된다. 이 와중에 치명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십중팔구 문화-여가생활 관련 소비일 것이다. 소비가 줄어들면 생산-공급 주체의 힘도 떨어진다. 문화예술계의 기반이 약하고, 지역문화 자원에 대한 투자와 가꾸는 힘이 취약해지는 이유다.
[연재] 건축의 시대: 한국 사회의 질곡, ‘40년건축’을 넘어서
1편. ‘40년건축’으로 만든 나라
① 부자 나라, 가난한 삶
② 재건축의 경제학
③ 한국의 건축생산비용 보고서
④ GDP의 6%를 버리는 나라
⑤ 40년건축에서 100년건축으로
2편. 부실시공, 공공책임 부재의 귀결
3편. 건축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박인석
현재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명예교수. 도시와 건축 및 주택 정책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대안적인 정책을 제안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있다. 국가 건축정책위원회 5기 위원과 6기 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건축 생산 역사』(전 3권), 『건축이 바꾼다』, 『아파트 한국 사회』 등이 있다.
부자 나라, 가난한 삶
분량8,659자 / 19분 / 도판 5장
발행일2025년 10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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