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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본 건축학교

길유미 × 최정원

건축학교 안에서 우리는 종종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건축 교육은 누구를 위한 것일까? 이 일이 사회적으로도 진정 의미 있는 일일까? 2023년 여름, 세종시교육청과 함께한 <세종시 여름 건축학교>는 이 질문에 작은 실마리를 던져준 경험이었다. ‘교육청’이라는 공교육의 대표 기관이, 정규 교과에 없는 ‘건축’을, ‘미래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호출한 그 배경을 살펴보면, 우리가 지향해온 ‘건축가를 키우지 않는 건축 교육’의 의미가 조금 더 뚜렷해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를 안고,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길유미 선생님(당시 세종특별자치시교육청 미래교육과의 파견교사, 현 해밀초등학교 교사)을 온라인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STEAM교육과 건축학교의 만남, 세종시 여름 건축학교 

최정원 <세종시 여름 건축학교>를 기획할 당시의 소속과 맡은 일은 무엇이었나요?

길유미 작년에는 세종교육청 미래교육과 소속 파견교사로, 융합교육 체험센터 운영을 담당했습니다. 융합 교육은 스팀(STEAM1) 교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스팀 교육의 골자는 과학 기술 기반의 융합적 사고와 문제 해결력을 함양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특히 강조하는 것이 문제 해결 과정에서의 자기주도성과 협력이고요. 정림건축문화재단의 건축학교가 이 스팀 교육의 이상적인 방법론에 상당히 가까운 교육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최정원 처음 세종시 여름 건축학교를 기획했을 때도 문제해결력이나 협동심을 기를 수 있는 교육을 기대하셨나요?

길유미 네, 그에 더해 저는 예술적인 요소가 융합교육센터의 정체성에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건축학교는 그런 요소를 포괄할 수 있는 수업이라 더 기대가 컸습니다.

최정원 아무래도 건축학교가 아르코미술관과 함께 시작했기 때문에, 수업 내에서 건축의 공학적 측면과 예술적 측면을 대략 4:6 정도의 비율로 다루고 있습니다. 이 부분을 잘 파악하신 것 같아요. 건축학교 프로그램에 대해 잘 알고 계셨던 만큼 실제로 보고 생각과는 달랐던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도 선생님의 솔직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길유미 사실 건축 자체가 예술이나 과학과는 달리 쉽게 접하기 어려운 생소한 주제이고, 또 아무래도 세종시가 수도권보다는 콘텐츠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지역이기 때문에 건축 교육이라는 걸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교육자로서 아이들이 새로운 것을 배울 때 첫인상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평소에 많이 합니다. 무용이나 음악 같은 예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첫 만남의 퀄리티가 높아야, 그리고 그것에서 오는 감동이 있어야 아이들에게 인상이 깊게 남고, 앞으로도 관심을 이어갈 수 있는 동력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하는 높은 퀄리티의 건축 교육이, 아이들이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되는 데 좋은 출발점이 되리라는 기대가 있었습니다.

건축학교에서는 건축을 업으로 삼고 계신 분들이 주강사나 예비교사라는 이름으로 ‘교육자’로 참여한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지점이라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실무 감각이 수업에 녹아들어 있고, 그 부분에서 아이들에게 영감을 준다는 것이 크게 와닿았습니다. 이 수업에 참여하고 나서 저도 학교 수업 때 건축 교육을 녹여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건축학교 수업과는 다를 수밖에 없겠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이었어요. 

기대와 달랐던 부분이라고 하면, 사실 건축 자체가 협업이 굉장히 중요한 분야인데, 아무래도 여름 건축학교는 단 이틀 동안 진행하는 수업이다 보니 협업에 대한 내용을 놓친 것이 아쉬웠습니다. 이건 건축학교 수업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당시 조건상 어쩔 수 없었던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반해 기대를 충족했던 부분은, 앞서도 말했듯이 융합교육 체험센터의 정체성과 잘 맞닿아 있다는 점이었어요. 하나의 학습 주제 안에서 기술과 인문 예술을 융합하고, 자기주도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학습 방법에 잘 들어맞는 교육이라 기획한 입장에서 무척 만족스러웠습니다. 

‘공간 감수성’을 키우는 건축 교육

최정원 현재는 융합교육체험센터를 떠나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돌아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건축 교육을 경험하신 이후에 다시 교사로서 현장에서 아이들을 만나면서, 건축 교육을 적용하기 위한 시도나 노력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길유미 건축학교를 통해 다른 누구보다 저 자신이 건축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건축에 대한 사진이나 자료를 일부러 찾아보기도 하고, 여행할 때도 건축을 더 유심히 바라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관심이 커지고, 아는 것이 많아지다보니 아이들에게 교과과정 내에서 공간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사례를 소개해줄 때에도 틀에 박힌 사례가 아니라 다양한 공간의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합니다. 이건 건축에 관심을 두게 되고, 더 열린 마음을 갖게 되었기 때문에 생긴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교과과정에서는 자신이 살고 있는 공간인 집을 탐구하는 것을 굉장히 중시합니다. 우리나라 어린이에게 가장 익숙한 주거 형태는 단연 아파트이지만, 저는 수업 때 제가 리서치한 다양한 주거의 형태를 사례로 보여주면서 아이들에게 다른 생각을 심어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학교를 통해 알게 된 덴마크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의 공동주택 사례를 보여주고, 이 건축가는 왜 이런 집을 짓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주는 등, 좀 더 풍부한 공간의 사례를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최정원 긍정적인 변화네요.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니 오히려 제가 건축학교 수업을 만들기/공작 수업의 개념으로 단순하게 접근했다는 생각이 들어 반성도 됩니다. 짚어주신 부분이, 저희가 여름 건축학교에 뒤이어 진행한 교사 연수의 주제였던 ‘공간 감수성’을 키우는 부분과도 맞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길유미 맞아요. 사실 어린이들이 자기가 사는 공간에 관심을 가지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 주변의 환경과 조화로운 건축물, 나와 이웃들이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를 고민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인간과 자연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에는 이런 건축가의 고민을 어린이들이 한번 겪어보면서,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보는 것이 건축 교육의 중요한 의의이자, ‘공간 감수성’이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정원 건축학교는 스스로 건축 교육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많은 질문을 합니다. 가장 최근에 저희가 건축학교의 역할로 정리한 문장이 바로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주변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바꿀 수 있는 책임과 가능성이 있음을 가르친다’였어요. 건축학교 수업이 참여자인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생각했었는데, 함께 기획해주신 유미 선생님께서 저희가 생각하는 건축 교육을 정말 잘 이해해주시고 실천해주시고 계신 것 같습니다. 어린이 중에서도 이런 친구들이 있으면 좋겠네요. 

길유미 저는 이런 친구가 한 명만 나와도 수업을 진행한 의미가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 세상에 건축가가 엄청 많아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1학년 전체 학생 중에 건축가가 한두 명만 나와도 많은 편 아닐까요? 하지만 실제 건축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건축가가 되는 어린이가 한 명만 나오더라도 그 친구가 만든 건물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의미 있는 교육이고, 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학교에 체육에 진심인 선생님이 계시면 좋은 게, 공부에는 어려움을 느끼지만 체육을 좋아하고 잘하는 아이는 체육을 통해 자존감을 채우고 학교를 즐겁게 다닐 수 있습니다. 과학 교육, 예술 교육도 같은 맥락이고요. 그래서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이 다양한 교육을 경험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국어, 수학을 잘하는 아이들만 행복하게 다니는 학교를 좋은 학교라고 말하기는 어렵겠지요. 저 역시 융합교육체험센터에서 근무할 때, 학교에서 다 포괄하기 어려운 다양성을 보여주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최정원 저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잘 짚어주신 것 같습니다. 학교 안에 다양한 어린이들이 있는 만큼, 다양한 교육을 제공했을 때 한두 명이라도 그것을 즐기고, 긍정적인 경험을 갖게 된다면 그게 바로 건축학교 같은 교육 프로그램이 가질 수 있는 중요한 의미가 되겠네요.

미래 교육의 핵심, ‘상상력’

최정원 그러면 조금 더 범위를 넓혀서 교육 전반에 관한 이야기도 조금 여쭤보고 싶습니다. 한때 세종시 미래교육과에 근무했고, 지금은 초등학교에서 다시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선생님이 상상하는 ‘미래 교육’의 모습이 궁금합니다. 

길유미 사실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이렇게 변화무쌍한 시대를 살아갈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가 조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상상력’을 갖는 겁니다. 아이들이 변화에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추구하는 미래에 대한 방향성을 가지고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미래를 그릴 줄 아는 상상력이 필요하니까요. 단순히 AI 기술이 앞으로 더 발전할 거니까 그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하여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단지 미래가 이렇게 변할 거니까 이런 걸 열심히 배워야 한다는 이야기보다는, 이 기술을 활용해서 무엇을 해보고 싶어? 혹은 무엇을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같은 질문을 던지는 편이에요. 융합교육체험센터에 있을 때도, 예를 들어 스마트팜에 대한 교육을 하면서는 ‘미래 농촌의 모습은 어떻게 달라질까?’, 로봇 코딩 교육을 진행할 때에는 ‘로봇의 역할은 어떻게 될까?’, ‘로봇이 돌봄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같은 좀 더 미래지향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사실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아이들이 바로 상상력을 발휘하여 답변을 내놓기는 쉽지 않지만, 계속해서 이런 자극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상상력도 훈련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에필로그

짧지만 깊이 있는 대화를 통해, 우리는 그동안 품고 있던 질문에 조금 더 구체적인 언어를 얻게 되었다. 건축가를 키우지 않는 건축 교육이란, 공간을 감각하고, 더불어 살아갈 방법을 상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라는 것. 그리고 그 시작은 특별한 지식이나 기술이 아니라, 자신이 사는 공간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작은 경험일 수 있다는 것. 건축학교는 앞으로도 이 작은 질문이 더 멀리 퍼질 수 있도록, 더 많은 이들과 건축을 나눌 수 있도록, 조용히 문을 열어두려 한다.

원고화 및 편집 최정원

밖에서 본 건축학교

분량5,212자 / 10분

발행일2025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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