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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디네이터의 기록

송상은, 윤예솔, 조희정

건축학교의 코디네이터는 단순한 실무 보조나 현장 지원 인력이 아니다. 프로그램의 기획과 실행, 수업의 준비와 운영, 회고와 평가까지 교육의 전 과정을 실질적으로 연결하고 조율하는 사람이다. 아이들과 교사 사이, 기획과 실행 사이, 예측과 돌발 사이에서 코디네이터는 흐름을 읽고, 장면을 설계하며, 배움의 경험을 완성해 나간다. 이 글에는 서로 다른 시기에 건축학교와 함께한 세 명의 전임 코디네이터가 직접 기록한 에세이를 모았다.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운영과 교육의 경계에서 만들어지는 감각과 성찰을 들여다본다.

가까워지는 시간

건축학교에 들어오기 전, 건축은 ‘건물’을 짓는 일인 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으로 건축과 공간이 가까웠다는 걸 알게 된 건 2019년 건축학교 씨앗꿈 과정에서부터입니다. 미취학 아동 대상인 씨앗꿈 과정에서 만나게 된 여섯 아이는 서로가 기둥이 되었고, 파란색 천의 모서리는 열두 개의 고사리 손으로 꽉 메었습니다. 아이들은 천을 위아래로 흔들고 들춰가며 우리 팀의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곤 서로의 공간 안에서 펄럭이는 파란 물결을 보며 “바닷가 건물이다!”라고 외쳤습니다.

바닷가와 건물. 저에게 두 단어 사이의 공간은 가까워질 수 없는 사이였습니다. 건축과 공간. 이 두 단어 역시 하나로 연결 짓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건축학교에서 코디네이터로 수업을 보조하며 단어들의 사이는 줄어들었습니다.

건축학교의 코디네이터 경험은 ‘가까워지는’ 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학생들과 가까워지고, 건축과 가까워지고, 세상과 가까워지는 시간으로 요약됩니다. 교육에 관심이 많았던 석사과정이 끝난 후, 내디뎌본 첫 교육 현장이 건축학교였습니다.

첫 출근날, 서촌의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실에서 수업 재료를 준비하며 현장을 틈틈이 상상해봤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어떤 학생들일지, 얼마나 즐거워할지, 지루해하지는 않을지, 수업에 방해되게 떠는 학생들이 있으면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명찰에 들어갈 이름표를 오리며 이름과 어울리는 얼굴들도 떠올려 봤습니다. 그렇게 첫 수업 당일, “아무도 찡그리는 사람 없이 무사히 수업이 끝났다”는 문구를 오랜만에 들춰본 일기장에서 발견했습니다.

학생들과의 관계가 쌓이자, 어떤 수업이 도움 될지 고민하게 됐습니다. 미술을 전공했기에 건축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수업을 통해 얻어갔으면 하는 점은 있었습니다. 모든 학생이 ‘내가 생각하는 건축학교는 무엇인지’ 한 단어로 정리해 보는 것이었습니다. 신체 활동이 많았던 씨앗꿈 과정, 재료의 다양성을 경험해 볼 수 있었던 새싹꿈 과정, 공간을 재해석해볼 수 있었던 푸른꿈 과정에서 여러 가지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대답은 ‘그냥 재밌는 시간’이라는 초등학생 서준이의 말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시간이 쌓여 공간이 되고, 이 공간은 말 그대로 건축학교가 되는 것이 아닐지 생각했던 순간이 기억납니다.

초등학생 고학년이나 중, 고등학생들을 만날 땐 건축학교 수업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구체적인 방향들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중고등학생들은 건축가가 되고 싶은 이유로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어서’라든지, ‘건축은 공공예술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기 때문’이라는 얘기들을 들려주었습니다. 단순히 기술이나 재미만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쓸모를 고민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학생들에게 전달될 건축학교의 의미들을 다져가고자 했습니다. 우리 사회와 자주 연결하고 도움이 되는 방법들을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금 세상과 가장 맞닿은 일을 하는 것은 아닐지 모르겠습니다.

물론 실패로 정의할 시간도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함께 수업을 꾸려가 준 예비교사 선생님들, 학생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2019년 한 해는 새로운 관점 그리고 지금도 든든한 친구가 되어주고 있는 많은 사람을 얻은 해입니다. 지금도 생각을 확장하고, 시야를 더 넓혀 사안을 봐야 할 때 파란 천을 흔들던 아이들을 이따금 떠올립니다. 이제는 ‘바닷가 건물’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윤예솔(2019년 건축학교 코디네이터, 국민일보 사회부 기자)


벽을 넘어 보이는 것들

가장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건축학교를 만났다. 그래서 내 자신의 한계와 마주하는 일이 꽤 자주 있었다. 벽에 부딪혔으면 도중에 포기할 법도 한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악과 깡으로 버텼다. 희한하게도 건축학교를 정도껏, 적당히 하기란 쉽지 않았다. 사실 ‘적당히’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모르겠고, 매 순간이 진심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참으로 무모했고, 서툴렀다. 건축학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하다. 그게 동기부여일 수도, 혹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일 수도 있겠지만, 그 힘은 강력하다. 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버티길 정말 잘했다.) 

지금은 밥벌이하는 직장인이지만, 잠시 현생에서 벗어나 건축학교와 함께한 시간을 떠올려본다. 나에겐 대단한 글솜씨가 없기에 일기장에 써 내려간 문장들을 하나씩 들춰보며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더듬어보려 한다. 경험을 회고하는 것 이상으로 좋은 방법을 떠올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 3년 동안 나는,

  • 건축을 전공하긴 했는데 설계는 하기 싫고, 그렇다고 건축을 포기하자니 5년의 세월이 아까워 몸부림치던 휴학 시절에 건축학교를 만났을 때. 안도했다.
  • 오래전부터 ‘건축을 통한 교육’이라는 멋지고 흥미로운 일을 기획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부러웠다.
  • 예상과는 달리, 당시 모집 중이었던 <예비교사 교육 과정>을 아이돌 콘서트 티켓팅 마냥 엄청난 속도로 클릭해서 겨우 신청할 수 있게 되었을 때. 당황했다.
  • <점, 선, 면> 수업 중 5mm 두께의 플라베니아를 60도 칼로 자르면서 ‘건축학도에게 이 정도는 껌이지’라고 우쭐대다 내 엄지손가락을 그어버려 정적이 흘렀을 때. 도망치고 싶었다.
  • 몇 차례 수업을 겪으면서 큰 의미 없이 내뱉은 말과 행동에 아이들이 쉽게 영향을 받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겁이 났다.
  • 정신없는 세 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들과 맛난 간식을 먹으면서 서로의 후기를 나눌 때. 따뜻했다.
  • <My Own Art Center> 수업 중, “선생님, ‘튜브에 잡아먹히는 기분’은 어떻게 만들어요?”라는 질문에 말문이 막혔을 때. 부끄러웠다.
  • 단호하지만 따뜻하고, 무심한 듯하지만 모든 걸 꿰뚫어 보고 계시는 선생님들을 바라볼 때. 경이로웠다.
  •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는다고, 아이들이 내 행동으로 인해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바에는 차라리 폼보드에 칼라 백업을 편하게 붙일 수 있도록 책상 위에 테이프를 준비해 주는 게 낫겠다며 속으로 생각했을 때. 비겁했다.
  • 다소 멋쩍은 표정으로 건축학교 선생님에게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요?”라고 질문드리고 나서 “그럼요! 오히려 더 좋은데요?”라며 긍정적인 지지를 얻었을 때. 안도했다.
  • 모두를 위한 건축, 올바른 교육이 대체 무엇인지, 전문가도 오랜 시간과 연구 끝에 얻은 답을 내가 찾으려고 발버둥 쳤을 때. 무기력했다.
  • <겹겹의 문> 수업 중 서로 처음 만난 초등학생 3학년 둘이 멱살을 잡고 주먹 다툼을 하려던 순간을 막아섰을 때. 울고 싶었다.
  • “모른다는 건 잃을 게 없는 상태다. 그러니 주저하지 말고 나아가도 괜찮다”라는 문장을 책에서 발견한 후, 운이 좋게 코디네이터로 일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감격했다.
  • 재단으로 출근하고, 집으로 퇴근하는 쿰쿰한 1호선 전철 안에 서 있을 때. 뿌듯했다.
  • 수업마다 어떤 아이들이 오는지 예측할 수 없으므로 준비물을 어느 정도 구매해야 할지 알파 남대문 본점에서 고민할 때. 진지했다.
  • 코디네이터 첫 근무로 LG 아트센터 내 회의실에서 <춤추는 건축가> 교안을 기획하다가 갑자기 다큐멘터리 제작 이야기를 주고받았을 때. 어리둥절했다.
  • 건축학교는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사업’이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을 상기했을 때. 어려웠다.
  • 기획이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불만족스러운 것은 바꾸고 좋은 것은 더 발전시키는 과정임을 배웠을 때. 뜨거웠다.
  • 운영진 입장이 된다면 예비교사일 때보다 건축과 교육의 경계를 훨씬 쉽게 파고들 수 있을 거로 생각한 내가 오만했음을 깨달았을 때. 좌절했다.
  •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나를 보더라도 100가지의 의견이 나올 수 있다는 부분을 간과했을 때. 긴장했다.
  • 주제 설정, 교안 아이디어 회의, 몇 차례의 샘플 제작, 타임테이블 구성, 교안 디자인, 재료 구매, 서류 작성, 홍보물 제작 등 일련의 수업 기획 과정을 바로 옆에서 경험했을 때. 놀라웠다.
  • 기획하다 보면 막히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며,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무책임보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 명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함을 느꼈을 때. 반성했다.
  • 선생님이 어느 분야의 전문가라 하더라도 코디네이터인 내 생각과 맞지 않을 수 있음을 느꼈을 때. 아리송했다.
  • 건축학교 운영진의 일상을 재밌게 담아내고자 전철에서 노트북으로 브이로그를 편집할 때. 즐거웠다.
  • 오랜만에 코디네이터에서 예비교사가 되어 이전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아이들과 대화를 나눌 때. 행복했다.
  • 건축학교 나이트에서 뱅쇼를 끓이고, 무작위로 선물을 뽑고, 서로에게 관심을 두고,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뭉클했다.

에피소드를 나열하니 추억이 생겼고, 감정들을 곱씹어보니 소중하다. 나의 이야기를 들은 누군가는 4주, 원데이 수업을 하면서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냐고 물어볼 수 있겠다. 처음 건축학교를 시작했을 때 거대한 포부나 목표가 있었던 게 아니다. 다만 다른 분야에 있고, 다른 생각을 하고, 다른 온도의 사람들과 진심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오글거린다고 말하기엔 꽤 진지했고, 이 정도면 되지 않겠느냐고 쉽게 넘기기엔 결코 가벼운 순간이 아니었다.

이러한 마음들이 아이들에게 닿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는 괜찮다. 모든 순간, 흔들림 없는 지지와 따뜻한 격려, 묵직한 믿음을 보내주신 감사한 분들과 함께였다. 계속 동행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조희정(2023년 건축학교 코디네이터, C3 편집디자이너)


나의 성장기

건축학교에 예비교사로 처음 활동할 당시의 나는 건축학부를 졸업하고 설계사무소를 다닐 것인지 다른 어떤 일을 할 것인지 갈피를 못 잡은 채로 그저 즐거움을 찾고 싶었다. 한편으로, 대중이 건축을 부동산 가치로만 소비하기보다 문화로써 소비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건축학교에서 하는 수업은 활력 그 자체였다. 나에게는 건축이 익숙하지만, 백지와 같은 어린이들에게 건축을 재밌게 알려주는 수업을 할 수 있다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마치 내가 어릴 적 미술학원, 피아노학원, 합기도 학원에 다녔듯이 어린이들이 건축학교와 나를 매개로 건축에 가볍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예비교사로서 첫 수업은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씨앗꿈이었다. 6, 7세 아이들에게 건축 개념을 녹인 수업을 알려주는 것은 어렵고도 심오했다. 아이들이 건축 용어를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길 바라며 이렇게도 말해보고 저렇게도 말해보았다. 본인 이름 쓰기도 어려워하는 아이들 대신 글을 쓰고, 가위질하기 어려워해서 대신 자르고, 그림을 그리며 결과물을 만들었다. 몸을 쓰니 생각이 명쾌해지는 시간이었다.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새싹꿈과 초록꿈1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들 역시 자기 생각을 건축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어려워했다. (그런 교육을 받은 적이 없으므로 당연하다.) 예비교사는 아이들과 직접 부대끼며 고생하는 위치이지만, 그만큼 아이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했고 즐겁게 지냈다. 4주간의 수업이 끝나면 아쉬움이 좀 느껴졌다.

예비교사는 건축학교 운영진에게 수업 피드백을 주는 옵서버(observer)의 역할도 수행한다. 당시 여러 수업 교안을 경험할 수 있었는데, 운영진이 해마다 교안과 수업 과정을 바꿔나가는 모습을 좋게 보았고, 수업의 질 개선을 위해 여러 아이디어를 내려고 노력했다. (나중에 코디네이터로 활동하면서 예비교사 시절에 너무 쉽게 얘기했다는 생각이 살짝 들기는 했다.) 건축학교는 건축의 대중화라는 확실한 목표를 지향하며, 지속적인 변주를 통해 건축 교육을 이어나간다. 예비교사로 수업마다 참여하다보면 성취욕이 별로 없는 사람도 ‘목표를 이루었다’는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알찬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친구들을 만나면 항상 추천하게 된다.

코디네이터로서 활동하던 시점은 코로나 시기였기에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건축학교 역시 상황에 맞춰 비대면 수업을 했고, 줌에서 학생들을 만났다. 그래서 학생들의 수업 만족도를 알기가 어려웠고, 내가 건축학교에 얼마나 기여했는지 항상 궁금했다. 하지만 여러 친구가 온라인 강의실에서 결과물을 공유하는 방식만큼은 효과적이었다. 대면 수업에서는 학생들의 결과물을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들과 같이 보기 어려운 물리적 한계가 있다. 그러나 비대면 수업에서는 화면에서 확대해서 보여주니 작업 하나하나를 더욱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선생님 또한 학생들의 활동을 한 화면에서,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코디네이터는 운영진과 함께 프로그램 기획을 하기도 한다. 나는 여건상 경험하지 못해 아쉽다. 기회가 있었다면 건축학교의 성장을 도울 수 있었을 텐데, 더 적극적으로 해볼 걸 하는 아쉬움을 뒤로 하고 코디네이터 일을 마치고 다른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지금의 나는 새싹꿈 주강사로 수업하곤 한다. 직장인이 토요일 늦잠을 포기하면서까지 건축학교 수업에 가는 이유가 뭘까. 나도 잘 모르겠다. 예비교사 시절에는 4주 내내 수업을 나갔는데, 지금은 한 번만 일찍 일어나면 되니까 할 만하다 싶다가도 주강사를 하지 않으면 그조차도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동시에 한다. 그렇다면 난 왜 이 일을 하는 것일까? 재밌기 때문이다. 앞의 ‘잘 모르겠다’는 대답은 아마 이 뻔한 대답을 하기가 부끄러워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덜 부끄럽게 왜 재밌는지에 대해서 좀 덧붙여야겠다. 건축 개념을 대중들에게 쉽게 설명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 바라만 봐도 귀여운 어린아이들,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동종업계 종사자들과의 만남이 재밌다. 이 재미를 건축학교에 참여하는 사람들만 느낄 수 있다니. 이 충만함과 즐거움을 더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건축학교가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

송상은(2020-2022년 건축학교 코디네이터)

코디네이터의 기록

분량6,915자 / 14분

발행일2025년 6월 27일

유형에세이

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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