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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교의 건축 교육

김보현

정림건축문화재단의 건축학교는 2010년대 건축 전시, 건축 강연 흥행의 돌풍 속에서 탄생한 교육 프로그램이다. 당시 파트너였던 K12건축학교, 아르코 미술관과 정림건축문화재단이 머리를 맞대고 건축학교의 연령별 대상군을 설정했던 이야기가 전설처럼 내려온다. 6-7세 어린이에게 건축을 알려줄 수 있을까? 알려준다면 그 건축은 어떤 모습이어야 하나? 청소년에게 가르치는 건축은 대학교 건축학과 1학년이 배우는 내용과 얼마나 달라야 할까? 등등의 고민이 오래도록 축적되어 지금의 건축학교를 만들었다.

건축학교가 가르치는 건축은 광의의 건축이다. 건축설계, 건설, 토목과 같이 전문영역으로 한정되지 않는 그 무언가를 가르친다. 건축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 말하기도 하고, 도시의 다양한 불편함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결할 것인지를 묻기도 한다. 내 몸에서 뻗어나가는 건축을 상상하게 하는 한편, 인간의 몸이 아닌 생태계의 다른 친구(種)를 위한 건축을 생각하게 한다. 얇디얇은 면으로 건장한 구조물을 세우기 위한 역학을 배우기도 한다. 그리고 그것이 기왕이면 아름답기를 가르친다. 동시에 아름다운 것들만 축적되면 그 도시 자체가 아름다워질까를 반문하기도 한다. 이렇게 건축학교에는 몸으로부터 시작하여 도시까지 이어지는 질문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춤을 추기도 하고 발로 물감을 짓이기며 마을의 지도를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건축학교 교육 과정을 이루는 주요 방법론인 ‘만들기’는 간혹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만들기 위주의 커리큘럼으로 인해 건축 교육이 문화 예술 교육의 일환으로 여겨지고, 보통의 미술 수업과 혼용된 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건축학교 수업에 쓰이는 재료를 보고서 “(미술) 만들기 수업이네”하며 일축해버린다. 그러나 이 ‘만들기’야 말로 건축학교를 둘러싼 중요한 화두이다. 건축학교 교안을 구성할 때 강사와 운영진은 수업 단계를 잇는 장치를 여럿 심어놓는다. 이것을 소위 브리지(bridge)라 부르는데, 실습 1과 2 사이의 브리지가 있는지, 있다면 학생을 설득할 만한지 등을 수차례 점검한다. 하지만 촘촘히 다져놓았던 어떤 과정, 그러니까 단어 다음에 문장을 만들고 그 문장이 비로소 설계로 이어지도록 이끄는 세세한 디렉션은 결국 학생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생각의 도약으로 말미암아 쓸모 없어지는 것을 수없이 경험했다. 그 생각의 도약은 모두 만들기의 과정에서 벌어졌다.

건축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서, 우르르 들어오는 학부모님들이 학생 작품을 보고 말한다. “이게 2시간 동안 만든 거야?” 어른의 눈으로 보았을 때는 성기고 어설플 수 있는 결과물이지만, 만들기는 학생들의 손을 움직이게 하는 중요한 과정일 뿐만 아니라, 일종의 목적이기도 하며, 궁극적으로 생각 사이를 연결하는 견고한 다리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다리가 점차 세밀하게 보완되어, 학생 눈에는 다양한 서사를 담은 무엇인가로 변모하는 모습을 매번 목격해왔다. 다시 말해, 건축학교의 만들기는 ‘생각’과 ‘통찰’의 중요한 계기이자 숙고하는 순간의 스타트 라인인 셈이다. 이는 ‘너의 느낌을 자유롭게 풀어헤쳐 놓으라’라는 식의, 여느 문화예술 교육안에서 찾기 어려운 지점이라고 자신한다. 구체적인 결과물을 완성해야하는 건축학교의 수업은 분명한 인풋을 요구한다.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떠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야만 하는 건축학교 수업의 특징상 우리는 선명한 결과물로서만 종지부를 찍을 수 있다. ‘창의 발달’이라는 미명 하에 백지 위의 막연한 표출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그리드를 제공하여 학생들의 생각을 구조적으로 발전시키려 노력하는 점이 건축학교 수업의 특징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교사와 학생 관계가 역전되는 경험을 통해서 더욱 강화된다. “학생을 통해 배운다”는 빛바랜 구호가 건축학교 안에서 선명해진다는 의미다. 미취학아동부터 고등학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대중과 함께 건축적 주제로 우당탕탕 만들기를 완성하다보면, 수업에 임하는 수많은 교사와 예비교사가 건축을 다시 생각하고, 교육의 원점을 파헤치는 선순환이 가능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 콘텐츠 기획자 과정>, <예비교사 과정>과 같은 프로그램은 ‘만들기’를 통해 ‘건축’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제고하고 있다. 사람이 사람을 교육한다는 것, 그리고 하필 건축으로 생각을 단련시켜보겠다는 시도가 작게는 수업 단위에서, 넓게는 각자의 커리어 위에서 제법 다른 모양새로 부풀려가는 모습을 목도하고 있노라면, 자꾸 묻고 싶어지는 것이다. 이 건축학교가 정말 건축만을 가르치고 있는 것일까? 하고.

건축학교가 12년간 쌓아온 교안은 어떠한 교집합을 가지고 있다. 그 교집합을 언어화했을 때 4가지의 키워드로 추려진다. 문제해결력, 성취감, 지식 그리고 협동심이다. 예컨대 <아지트 만들기>는 학습을 통한 지식과 협동심을 필요로 하는 수업이다. 단단한 목재로 내 몸이 들어가는 1:1 스케일의 아지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떻게 톱질을 하고, 못을 박아야 하는지 학습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힘을 많이 쓰는 프로젝트인 만큼 팀원과 협동해 완성해야 하고, 따라서 이에 따른 성취감도 큰 수업이다. 그리하여 <아지트 만들기>에는 지식, 협동심, 성취감이라는 3가지 키워드가 교차한다. 반면 <나의 집을 지어줘>는 문제해결력이 주된 수업이다. 여러 캐릭터 카드 중에서 무작위로 몇 장을 뽑아 그 조합으로 생성된 상상 속의 친구(건축주)를 위한 집을 지어야 하니 영 골치가 아프다. “주머니가 많아서 많은 것을 저장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어두운 곳을 무서워하는” 건축주를 위해 수납공간이 매우 많으면서도 계속 밝을 수 있는 집을 디자인해본다. (실제 건축설계 과정을 상당히 따르고 있는데, 이는 6-7세 대상 수업으로 고안되었다.)

이처럼 여러 요소로 구성된 건축학교 수업을 만들고 운영하고 있노라면 이명처럼 들리는 화두가 있다. 다름 아닌 “다양한 공간 경험”이다. ‘공간’이란 것이 매우 중요하고도 동시에 추상적인 개념인지라, 이에 대한 슬로건은 셀 수 없이 많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는 ‘다양한 공간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싶다’는 결론으로 치닫는데, 이때가 참으로 난감하다. ‘공간이 다양하다’는 말은 ‘하늘은 파랗다’는 말처럼 당연한 말이라서, 이를 어떻게 교육적으로 접근할지 난해해지는 것이다. 더불어 공간을 마음껏 누려보게 해야한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공간을 마음껏 누려보는 것일까? 유명 건축가의 건물을 답사하면 충분할까? 미술관과 같은 비일상의 공간에서 눕고 앉아보고 소리쳐보면, 오감놀이처럼 만지고 느낌을 적어보기만 하면, 그 공간을 주체적으로 경험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에게 공간을 주체적으로 경험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신체를 뻗어 점유하는 방식”으로만 상상할 수 있는 걸까?

‘공간 체험’이라는 그럴싸한 문장 속에 우리가 놓치고 있는 지점을 되묻는다. 어린 나이일수록, 건축에 비전문가일수록 다양한 공간을 느껴봐야 한다는 이 슬로건은 구체적으로 공간을 무엇으로 상정하고, 그렇게 다양한 공간을 느껴서 어떤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건축학교는 건축과 교육이라는 커다란 경계 사이에 비어 있는 구석구석을 채워나가는 작업을 하고 있다. 건축가의 멋진 프로젝트를 배운 후에, 나의 일상에 복귀했을 때 내 방은, 내 주변은 왜 이런 모양인지 비판만 하는 구성원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다양한 공간 체험’이라는 빛 좋은 문장 너머의 이야기도 건축을 이루고 있음을 학생과 교사가 치열하게 배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축학교는 매 학기 노력하고 있다.

우리의 건축학교는 분명 공교육의 그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교육 시장에서 유행하는 재화라고 말하기도 애매하다. 바로 여기가 중요한 지점이다. 초등학생 때부터 건축을 과목으로 배우지 않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건축 교육을 기어코 건내고자 하는 이유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주변 환경에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와 청소년, 일반 시민 각자가 주변 환경을 탐구하면서 좋은 것이 왜 좋은지 설명할 수 있도록, 만일 부족해보이는 것을 찾게 된다면, 그것의 개선점을 자신의 연령대와 지식 기반 안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 위하여, 건축학교는 공교육, 사교육 바깥의 어느 경계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다. 언젠가는 건축을 가르치고 배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좀 더 수월하게 알리면서 건축과 교육이라는 방대한 영역 사이를 즐겁게 가로지르는 열망들이 한 데 모이기를 고대해본다.


김보현

前 건축학교 운영진. 건축학교가 2012년 생긴 이래, 아르코미술관과 정림건축문화재단에서 건축학교를 운영해왔고, 이 경험을 바탕으로 『모두를 위한 건축 교육』을 집필 중이다. 예술과 건축이 사회에 미치는 관계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전시, 워크숍 등을 만든다. 기획한 전시로 <보더리스 사이트>, <예술적 생활:H군에게>, <케이크와 쓰레기> 등이 있다.

건축학교의 건축 교육

분량4,340자 / 9분

발행일2025년 6월 27일

유형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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