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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학교의 다음을 위한 회고

최정원

건축학교는 2012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정림건축문화재단, K12 건축학교의 의기투합으로 시작되었다. 어린이와 청소년을 비롯하여 전문가가 아닌 일반 시민을 위한 건축 교육이 드물었던 시기, ‘건축가를 기르지 않는 건축 수업’을 모토로 아르코미술관에서 첫발을 내디딘 이래, 지난 10여 년간 건축학교는 LG아트센터, 세종시교육청, 국립현대미술관 등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장소를 넓혀가며, 학교의 경계를 넘는 건축-교육 실험을 지속해왔다.

건축학교는 전공자 양성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 모두가 건축 전문가가 되기를 바라기보다는,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건축을 매개로 공간과 도시, 자연을 새롭게 바라보는 감각을 계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건축을 통한 교육’을 지속해왔다. 지금까지 700회가 넘는 수업이 열렸고, 7,400명 이상의 시민이 건축학교를 거쳐갔다. 참여한 건축가만 해도 600명이 넘고, 그 과정을 함께 설계하고 운영해온 예비교사는 1,200명을 훌쩍 넘는다.

처음 문을 연 이래로 주강사–예비교사–운영진의 삼각 구도는 건축학교 시스템의 근간이자, 다른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과의 중요한 차별점이었다. 건축 수업은 대체로 작업의 규모가 크거나, 스케일이 작더라도 섬세한 작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주강사 한 명이 서른 명 안팎의 참여자를 모두 책임지기에는 물리적·정서적으로 어려움이 크다. 이로 인해 탄생한 예비교사 제도는 단순한 보조교사를 넘어, 참여자 4~6명으로 구성된 소그룹을 온전히 맡아 건축가의 언어를 일상적인 말로 풀어주고, 수업 흐름에 깊이 몰입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가까운 건축 교육의 목격자’로 기능해왔다.

그러나 건축학교는 지금, 분명한 변곡점에 서 있다. 처음 시작했을 때와 달리, 건축학교는 더 이상 ‘유일한’ 건축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다. 서울도시건축학교이타미준 마스터클래스를 비롯해 다양한 기관과 단체들이 어린이와 시민을 위한 건축 교육을 활발히 시도하고 있으며, 이는 매우 고무적인 변화다. 건축가가 아닌 일반 시민에게 건축 교육을 퍼뜨리는 것이 태초의 목적이었다면, 이미 어느 정도는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무엇을 지향하며, 어디로 나아가야 할까?

이 질문은 필연적으로 ‘지금의 건축학교’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 여전히 건축 교육을 접할 수 있는 대상이 수도권에 밀집해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동안 고집해온 주강사-예비교사-운영진의 삼각구도를 과감히 깨트리고 더 가볍고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건축학교가 직접 가지 못하는 곳에서도 기꺼이 건축 교육을 함께해줄 동료 교사들을 더 많이 양성하고, 이들과 함께 양질의 교육을 고민하고 또 끊임없이 실험해야 한다.

형식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변화 역시 필요하다. 전 인류가 피할 수 없는 기후 생태 위기를 비롯해 국내에서 특히 심각한 문제로 대두된 인구 절벽 앞에서 “건축=짓는 것”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인간을 위한 건축”이라는 관념에 대해서도 재고해야 할 것이다. 건축학교에서는 이미 씨앗꿈 과정의 6-7세 어린이들과 함께 인간이 아닌 존재를 위한 건축을 이야기해왔다. 이제는 그 시도를 더 확장하여, 더 다양한 대상들과, 더 깊이 있게, 진지하지만 유쾌한 방법으로 이 논의를 이어갈 때다.

이번 특집호는, 건축학교가 다시금 방향을 고민하게 된 지금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새로운 도약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건축학교의 지난 12년을 누구나가 볼 수 있는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었다. 무언가를 완벽하게 기록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시도지만, 그 불가능한 시도 속에 각자가 발견할 수 있는 실마리를 최대한 많이 담을 수 있는 방식을 고민했다. 결과적으로 이 책은 건축학교의 철학을 말하기보다, 그 철학이 어떻게 작동해왔는지를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로 “보여주는” 형태를 취한다. 수업에 참여한 어린이, 주강사, 코디네이터, 외부 협력자와 나눈 인터뷰는 여러 사람의 생각과 마음이 모여 이루어지는 교육 현장의 입체적인 풍경을 담고 있다. 아울러 지난 수업의 일부를 간단히 정리한 아카이브는 이 교육이 무엇을 어떻게 시도해왔는지를 한눈에 보여주는 지도이자 기록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건축학교는 다소 느슨하고 모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그 여백 속에서 건축 교육의 다음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한다. 건축을 ‘짓는 기술’로 가르치는 대신, ‘살아보는 방식’, ‘사유하는 틀’, ‘존재를 새롭게 감각하는 방법’으로 제안하고 싶다. 건축학교는 그런 실험을 함께해온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미 다음 장을 열고 있다.

최정원 정림건축문화재단 건축학교 팀장

건축학교의 다음을 위한 회고

분량2,250자 / 4분

발행일2025년 6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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