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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아파트를 위해 포기하지 말아야 할 노력과 시도들

김태영

‘노력’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애쓰는 과정으로, 결심과 같은 정신적 활동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에너지, 시간, 자원의 투입을 포함한다. 반면, ‘시도’는 특정 목표를 이루기 위한 행동으로, 이전의 노력이 실패했을 때 새로운 방법을 시도하는 것을 의미하며,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이 글에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지속적인 노력과 실패를 감수하며 시도하는 행동을 구분해 논의하려 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과 시도가 포기되어서는 안 될 대상으로서 ‘더 나은 아파트’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더 나은’ 아파트는 단순히 ‘새로운’ 아파트와 다르다. 급진적이거나 전복적인 제안이 아니라 기존 아파트의 단점을 보완하고 개선한 제안으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더 나은 아파트는 단순히 더 아름답고, 안전하며, 실용적인 아파트일까? 기존 아파트가 반영하는 현재의 삶과 가치 기준을 성찰하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탐구하며, 그 변화를 일상 공간인 아파트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해보면서, ‘반 층 도시, 복도 공동체’ 프로젝트를 이런 노력을 위한 하나의 시도로 설명하려고 한다.

아파트가 정형화한 현재의 삶으로부터

더 나은 아파트에 대한 단일한 정의는 어려울 수 있다. 노후한 아파트에 사는 사람에게는 새로 지은 초고층 아파트가, 학군이나 도시 기반시설을 중시하는 이들에게는 좋은 위치의 아파트가 더 나은 아파트일 수 있다. 다양한 시간의 흔적을 담은 집들 사이를 걷거나 독특한 내부 구조의 집을 경험해본 이들은 덜 획일적인 아파트를 바랄 수도 있다. 이렇게 각자의 상황과 기대에 따라 더 나은 아파트의 정의는 달라지겠지만, 지금의 아파트가 제시해놓은 삶의 방식과 가치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않을 듯하다.

1~2인 가구를 위한 소형 평형의 평면을 생각해보자. 현관에서 시작되는 복도를 중심으로 주방과 화장실이 마주보며 배치된 것이 보통인데, 일상의 품격보다는 넓어보이는 거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일정 면적 이상의 평형에서는 방 세 개, 화장실 두 개의 4베이 구성이 이상적인 평면으로 간주되고, 그에 따라 거실과 주방의 관계, 안방과 작은 방의 위계, 각 방의 창문 크기와 개폐 방식이 거의 자동으로 결정된다. 평형이 달라져도 방의 개수만 달라질 뿐 배치는 동일하다. 남향 배치와 함께 표준화된 평면 덕분에 직접 방문하지 않고도 그 공간을 쉽게 상상할 수 있으며, 지어지기 전에도 사고팔 수 있다. 이런 틀 속에서 ‘더 나은’ 평면을 탐구할 수 있는 자유는 매우 제한된다.

하나의 가치 기준과 방향을 강조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성취는 그 기준에 얼마나 부합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그 결과는 표준화와 정량화라는 ‘공정한’ 평가를 거쳐서, 교육과 취업에서의 좌절, 결혼과 가족 형성에서의 포기 같은 개인의 사회 활동에, 그리고 상가, 공공공간, 도시설계 같은 물리적 환경에까지 이르는 획일성으로 나타난다. 대안적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거나 무의미하게 여겨진다. 예를 들어, 아파트가 자산 가치의 주요 척도가 될 때, 위치, 면적, 방의 개수 등 측정 가능한 요소만 중요해지고 정성적 차이는 간과된다. 사회구조의 가치 기준이 아파트의 형식을 결정하고, 그렇게 지어진 아파트에서의 삶은 다시 그 가치를 강화하는 구조가 형성된다.

고고학자 데이비드 웽그로는 인류학자 데이비드 그레이버와의 공동 연구를 통해 농업혁명 이전 수천수만 년 동안 인류가 남긴 흔적에서 발견한 공통점은 ‘떠날 수 있는 자유’, ‘자의적인 명령이나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자유’, ‘새로운 사회 구조를 상상하고 탐구할 수 있는 자유’라고 말한다. 이 세 가지 자유는 무제한적인 개인적 자유가 아니라 상호 중재와 조정이 필연적인 ‘사회적 자유’이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떠나온(벗어난) 이들을 환대하는 문화, 문제를 인식하고 소통할 수 있는 체계, 상상과 탐색을 보장하는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다수의 가치가 공존하는 삶, 즉 선택이 가능한 삶을 더 나은 삶으로 전제한다면, 개인과 가족과 공동체가 더 나은 삶을 상상하고 탐색할 수 있는 아파트를 더 나은 아파트로 정의할 수 있다. 더 나은 아파트는 개인이나 공동체가 크고 작은 선택을 통해 일상을 변화시키는 시도를 지속할 수 있도록 돕는다. 따라서 더 나은 삶을 위한 아파트에 대한 노력은 사회적 자유의 실천이라는 연속선에서 이해해야 한다. 인류가 하나의 사회구조에 갇히지 않고 다양한 방식을 모색해 올 수 있었던 역사를 기억한다면, 이런 접근은 더욱 의미가 있다.

더 나은 아파트를 위한 노력

더 나은 아파트를 위한 노력은, 아파트가 위치나 브랜드보다 개인과 공동체의 특정한 삶과 정체성을 담아낼 수 있는 공간으로 인식되는 때가 오리라는 믿음과 그에 대한 준비로부터 시작한다. 공급의 효율성보다 고유한 개체성이 우선될 때, 대단지의 획일적 공급 방식은 다수 블록을 여러 건축가가 설계하는 방식으로 바뀔 수 있다. 이에 따라 마스터플랜과 공공공간의 통합적 디자인이 비로소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

두 번째는 아파트 공용공간을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그 설계 기법을 개발하는 노력이다. 공용공간은 세대와 외부를 연결하는 통로로서 안전과 피난이 우선시되지만, 이웃과 만나는 사회적 장소로서의 중요성도 간과할 수 없다. 그러나 보통 비상통로로 구획된 계단은 사용하기 꺼려지고, 효율을 위해 최소화된 엘리베이터와 홀의 내밀함은 오히려 이웃 간 자연스러운 접촉을 어렵게 만든다. 이웃 간 배려와 소통은 적정한 거리와 선택지를 전제로 한다. 복도와 계단실, 혹은 그 결합 가능성에 대한 탐색이 필요한 이유다.

세 번째는 세대 평면을 더 유연하게 만드는 노력이다. 필수적인 요소는 고정하되, 나머지는 개인의 생활방식과 가족 구성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미 공공주택 법제에 반영되어 있지만, 준공 후 즉시 입주나 입주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는 시장 특성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마이너스 옵션, 라멘조 및 건식 벽 산업의 발전과 함께 맞춤형 벽체 제작과 재사용이 보편화되면, 개인이 스스로 공간을 조정하고 일상을 변화시킬 기회가 열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아파트를 단순한 제품 조합이 아닌 ‘건축’으로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현재는 조달청 등록 제품 조합이 디테일을 대체하고, ‘갱폼’ 시공법이 매스와 재료를 결정하며, 색상 계획이 입면 계획을 대신한다. 창호와 난간은 에너지 성능 또는 피난 및 안전 기준을 맞춘 대량 생산된 제품이다. 건축이 사라진 아파트가 우리가 가진 아파트의 전부가 될 때, 우리가 잃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고 성찰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시도들

‘반층도시, 복도공동체’에서는 ‘복도’를 걷고 싶은 길로, ‘계단’을 이웃의 범위와 밀도, 거리를 결정하는 장치로 제안했다. 10~15세대를 연결하는 복도가 하나의 단위가 되고, 이 복도들이 반 층으로 간격으로 이웃 복도들과 이어진다. 위아래 복도를 동시에 오르내리는 경험은 계단참이나 중간층에 사는 느낌과 비슷하다. 대지 외주부를 따라 또는 중정을 둘러 7개 층의 이웃 복도를 걸어오르면 옥상 정원에 도착한다. 반 층 계단은 걷는 즐거움을 더한다. (나선형 외부 계단은 중정까지의 지름길을 제공한다.)

중정을 내려다보는 복도는 바닥부터 천장까지 전창이 놓이고 평철 난간이 설치된다. 각 세대의 입구는 알코브 형태로 복도와 만난다. 알코브의 마감이나 색칠은 각 세대의 자유다. 복도면 파사드는 다양한 색상, 재료, 가구가 채우는 알코브의 집합이 되어 전창을 통해 중정에서 보인다.

가운데 중정을 둘러싸는 연속된 띠 모양의 연도형 건축물과 그 위로 이어지는 타워들은 하나의 통합된 건축물로 단일 블록을 형성한다. 저층 세대에는 개방 발코니와 확장 발코니를 필수로 제공함으로써 내부 면적 확보와 근지층의 장점 사이에 균형을 맞춘다. 중정을 가로지르는 외부 복도의 교차점에는 공동체 공간이 마련되어 있고,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거나 우회하는 선택이 가능하다. 이러한 선택은 시간, 날씨, 계절의 기억과 결합되어 다양한 보행 경험과 다채로운 일상을 제공한다.

일상에서의 선택은 세대 내부에서도 이어진다. 샤워가 결합된 최소한의 욕실을 세대 중심에 배치하고, 이를 둘러싸는 동선이 자연스럽게 순환하도록 설계했다. 현관에서 주방을 거쳐 식당과 거실에 이르는 동선과, 현관에서 드레스룸, 코너 작업실, 파우더룸을 거쳐 침실에 이르는 동선 사이에는 가로지름과 우회를 가능하게 하는 선택지가 있다. 미세기문 또는 커튼을 이용해 드레스룸, 파우더룸, 코너 작업실을 열거나 닫을 수 있어, 열었을 때는 복도로, 닫았을 때는 방으로 활용할 수 있다. 개인의 필요나 함께 사는 이들을 위한 배려에 따라 유연하게 변형 가능한 공간이다.

‘반층도시, 복도공동체’ 조감도 / 자료 제공: 김태영
‘반층도시, 복도공동체’ 개념 / 자료 제공: 김태영

맺으며

우리가 꿈꾸는 반 층 복도가 과연 위, 아래, 옆집 간의 경계를 넘어 ‘중간 이웃’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나뉘어 있지만 연결된 복도들이 소속감과 자유를 동시에 줄 수 있다는 믿음이 실제로도 유효할까? 중정을 끼고 나선형으로 돌아 이웃집을 지나고, 옥상 정원에 도달하고, 다시 내려가 중정에 이르는 경험이 아파트의 폐쇄적 느낌은 극복하면서 공동체의 무게감을 덜어줄 수 있을까? 이 새로운 임대주택이 막다른 골목의 끝이 아니라, 하늘과 땅, 이웃과 도시를 만나는 변화의 방향성을 가져올 수 있을까? 복도를 걸어 오르는 일상에 주민들은 얼마나 동참할까? 세대 내부의 순환 복도의 선택과 변용이 개인을 일상의 주체로 만들 수 있을까? 우리는 그 과정의 유효함을 믿지만, 결과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더 나은 아파트를 위해 노력과 시도를 우리는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다양한 사회구조와 거주방식을 탐색하며 사회적 자유를 실천해온 인류의 일원으로서 더 나은 삶에 대한 탐색과 상상을 멈출 수 없듯 말이다.


김태영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및 대학원 졸업 후 기오헌건축사사무소를 거쳐 겐슬러 런던에서 시니어 어소시에이트로 근무하며 바틀렛건축학교에서 디자인 박사과정을 밟았다.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의 교수로 건축 설계를 가르치며 유토포건축사사무소와의 설계 협업을 병행하고 있다. 주요 작업으로 은혜공동체주택을 포함한 다수의 공동체주택과 성동구 책마루 프로젝트, 방배동 스퀘어181 근린생활시설, 그리고 2022년 대한민국 공공주택설계대전 왕숙 A-23 블럭 당선안인 ‘반층도시, 복도공동체’가 있다.

더 나은 아파트를 위해 포기하지 말아야 할 노력과 시도들

분량5,079자 / 10분 / 도판 2장

발행일2024년 10월 22일

유형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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