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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비용: 공동체 주거에 공동체는 필요한가?

조성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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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빙 설계자로서 가끔 강연을 하곤 하는데, 청중으로부터 받은 가장 신랄한 질문은 이것이었다. 

“나는 당신이 설계한 코리빙이 경제적으로 취약한 나 같은 사람들의 주거 문제에 해답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결국 임대료가 만만치 않더라. 단순히 가격으로만 비교하면 오피스텔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럼 오피스텔보다 뭐가 더 좋길래 코리빙에 살아야 하나?”

질문자는 실제로 꼼꼼하게 코리빙에서 사는 이유를 체크해봤는지, 질문을 이어갔다. 

“코리빙이 차별점으로 내세우는 것은 ‘거주자 커뮤니티’더라. 당신이 생각하기에 커뮤니티라는 것을 경험하자고 주거 비용을 추가로 내야 하는가?” 

질문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다. 나 혼자 잘 살고 있는데, ‘이웃과 사귀는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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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에 이미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가족들과 외식을 하거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데 드는 비용이 그런 것이다. 실익을 너무 따지고 드는 것 같지만 결혼식 축의금도 그렇다. 축의금에는 축하를 표하는 비용뿐 아니라, 결혼식장에서 그동안 만나지 못했던 친구를 만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지불하는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이 모두가 남들과 어울려 살도록 도와주는 ‘관계 비용’이다.

코리빙에는 관계 비용이 임대료에 포함되어 있다. 공용주방에서 요리를 하며 이웃을 만나고, 건물 내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며 인사를 나눈다. 굳이 대화를 하거나 무엇을 함께 하지 않아도 좋다. 스치며 눈인사를 할 수 있는 사이만 되어도 의미가 있다. 열심히 운동하는 이웃을 보며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고 스스로 동기부여를 할 수 있을 테니.

우리가 이웃을 두는 일에 비용을 지불하면서 살고 있다는 데 어느 정도 수긍한다면, 비용의 효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같은 건물에 사는 이웃은 ‘가성비’가 좋다. 주말에 누군가를 만나러 일부러 멀리 가지 않아도 되고, 코리빙처럼 비슷한 나이대, 비슷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면 서로 친해질 확률도 높다.

나는 이웃이 필요 없는데?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미 친한 친구들과 가족이 충분히 있는 사람들은 왜 주거 이웃이 필요할까? 남과 다름없는 이웃과, 그것도 눈인사 정도 하며 사는데 비용을 지불할 필요가 있을까?  

주거 이웃에는 혈연, 지연, 학연으로 맺어진 ‘끈끈한’ 사회적 관계 속에는 없는 장점이 있다. 친구와 가족과는 다른, 느슨한 연대가 그것이다. 시시콜콜 내 사정을 알고 ‘선을 넘어’ 조언하는 가족이나, 만나면 개인사 대화에만 열을 올리는 친구들. 이들과는 달리 주거 이웃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너무 간섭하지도 외면하지도 않는 관계다. 가족과 친구를 근거리 관계라 부르고, 단순히 명함만 받은 사람을 원거리 관계라 부른다면, 주거 이웃은 그 중간쯤 되는 ‘중거리 관계’라 할 수 있다. 얼굴을 알고 친근하게 인사하지만 이름이나 사생활까지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단골 과일 가게 사장님 같은 사람이 중거리 관계다.

생각해보면 살면서 이런 중거리 관계를 맺을 기회는 의외로 드물다. 서구 사회에서는 파티라든가 지역 모임 등이 비교적 활성화되어 있어서 중거리 관계의 창구가 된다. 반면 우리나라는 대부분 지인의 소개로 만나고, 한 번 친해지면 끈끈한 인간관계가 되곤 하므로 중거리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별도의 모임이나 장소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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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 공간을 함께 쓰면서 짧게 인사하고 스치는 기회가 많은 공동체 주거는 중거리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 특히 이삼십 대 또래 집단이 주거 공동체가 되면 관심사를 나누며 활발한 교류가 일어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재반론이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옆집 사는 이웃과 친밀한 사이가 되는 것이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중거리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 항변하기도 한다. 함께 강변을 달리는 러닝 크루, 책을 읽고 토론하는 독서 클럽에서 충분한 중거리 관계인들을 만날 수 있으니, 편히 쉬어야 할 집에서까지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요즘 부쩍 늘어난 취미나 취향 커뮤니티도 물론 중거리 관계라 할 수 있다. 다만, 특정한 목표를 전제로 만나는 목적성 관계는 그저 한 공간에서 머무는 것만으로 유대감을 느끼는 관계와 다르다. 퇴근 후 어느 외로운 밤, 공동의 거실에서 부담 없이 자잘한 일상사를 나누는 관계는 삶에 큰 위안이 된다. 하나의 주거 공간에 있다는 소속감, 그리고 특별한 목적 없이 만나는 무목적성은 마음의 장벽이나 긴장을 허물고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중요한 요소다.

물론, 이런 관계가 맺어지기 위해서는 공간의 설계와 공유의 규칙이 잘 정비되어 있어야 한다. 코리빙의 식당은 음식을 만들고 밥을 먹는다는 기능을 넘어, 거주자 간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한다. 서로 간의 거리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공간 분위기와 가구 배치를 해야 한다. 공간의 운영자는 거주자들 사이에 친밀감을 조성하고 갈등을 쉽게 해결하도록 운영방침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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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나라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40%, 인구수로는 1,000만을 돌파했다. 그동안 혼자 사는 외로움과 관계 단절은 개인의 문제로 치부되어 왔다. 외로움 같은 개인적인 문제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1천만 인구가 겪는 단절은 더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외로움은 잠재적인 사회적 위험 요소기 때문이다. 2018년 영국은 세계 최초로 ‘외로움 부서’를 신설하고 문화부 장관이 업무를 맡았다. 외로움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제도적 대응을 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핵심 하나가 있다. 이름 때문에 오해를 할 수 있는데, 외로움 부서가 내세운 목표는 ‘외로움 타파’가 아니다. 부서의 목표는 ‘사회적 연결’이다. 삶의 만족도를 높이고 구성원들 사이의 유대감을 만드는 사회적 연결이야말로 개인화된 외로움의 시대에 국가적으로 추진해야 할 가치가 되고 있다. 

1인 가구를 위한 공동체 주거는 단순히 주거 시설을 넘어 사회적 연결을 만드는 인프라가 될 수 있다. 눈인사만 하는 사이지만, 사고 같은 위급 상황에서 서로를 돌보는 사회 안전망 역할을 할 수 있다. 청년층이 서로의 성장을 돕고, 노년층이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로 발전해 저마다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물론 1인 가구라고 다 외로운 것은 아니며, 공동체 주거가 모두에게 필요한 것도 아니다. 누군가는 혼자 잘 살고 있고, 누군가는 타인과 주고받는 삶에서 더 큰 보람을 느낀다. 누군가는 내 집이 넓고 편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누군가는 집이 조금 좁더라도 근처에 다른 사람들과 섞여서 살고 일하는 멋진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1인 가구를 하나의 범주로만 규정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의 스펙트럼에 맞추어 공동체 주거 형식이 다종다양하게 등장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동안 집을 고르는 기준은 면적, 위치, 편의시설이었다. 공동체 주거를 고를 때는 ‘이웃과의 끈끈함 레벨’ 같은 기준이 있어서 자신이 원하는 주거를 선택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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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리빙에서 거주자의 피드백을 조사하던 중, 가장 인상적인 사연은 이런 것이었다. 20대 대학생인 그녀는 이전에는 원룸에 혼자 살았다고 한다. 그런다 혼자 사는 외로움에 지쳐 코리빙으로 이사했다. 그런데 그녀가 코리빙에 살면서 느낀 가장 큰 위안은 공용 주방에서 함께 먹는 저녁 식사도 아니고, 거실에서 함께 보는 영화도 아니었다. 그녀에게 힘을 북돋워 준 것은 아침 일찍 학교를 가려고 집을 나설 때, 누군가 등 뒤에서 “잘 다녀와요”라고 건네는 그 한마디였다고 한다.

이 아침 인사는 돈으로 환산하면 얼마의 가치일까? 딱 잠만 잘 수 있는 고시원의 한 칸짜리 방과 코리빙의 임대료 차이를 40만 원이라 가정하면 아침 인사는 (다른 서비스가 동일하다고 가정하면) 40만 원일 텐데, 과연 그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답을 하자면, 누군가에겐 그럴 수 있고 누군가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처음에 청중이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이웃의 가격은 적절한가’를 질문했던 청중을 나중에 우연히 다시 만났다. 이웃의 가격에 대한 내 생각을 전달했지만, 표정을 보니 크게 납득한 눈치는 아니었다. 이웃의 중요성을 아무리 외쳐본들, 우리는 계속 주거 임대료를 입지, 방의 면적, 편의시설과 견준다. 여기서 살면 나와 중거리 관계를 맺게 될 사람이 어떤 사람들일지 체크하고 집을 선택하는 사람은 아마 앞으로도 많지 않을 것이다.

결국 이 비용이 적당한지는 자신이 직접 살아보기 전엔 알 수 없다. 어쩌면 질문을 던졌던 청중도 그때까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살아보고 나면 가치 있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웃의 비용은 사람마다 다르며, 기꺼이 비용을 지불해도 좋은지 알려면 살아봐야 한다. 이것이 공동체 주거의 가치를 널리 알리는 일에 주어진 어려운 과제다.


조성익

서울대학교와 예일대학교 대학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뉴욕 SOM 설계사무소에서 일했고, 2011년 TRU 건축사 사무소를 설립하여 교육과 실무를 병행하고 있다. 건축 설계를 통해 발견한 생각을 도시로 확장하기 위해 ‘매력도시 연구소’를 설립하여 연구를 함께 하고 있다.

이웃의 비용: 공동체 주거에 공동체는 필요한가?

분량4,486자 / 9분

발행일2024년 10월 22일

유형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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