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풀소의 집
이지연
분량13,803자 / 영상 37분 43초
발행일2024년 8월 27일
유형강연록
포럼 개요
- 제목: 공존의 환경으로서 집
- 일시 및 장소: 2023년 11월 8일 오후 7:30~9:00, 정림건축문화재단 라운지(온/오프라인)
- 발표: 김지현(밭멍 대표), 이지연(동물해방물결 대표)
타임코드
- 00:00~11:25 동물해방물결의 철학과 꽃풀소 보금자리 프로젝트 배경
- 11:25~17:09 소 구출부터 터전을 마련하기까지
- 17:09~29:33 보금자리를 만드는 과정
- 29:43~33:26 프로젝트가 마주한 고민
- 33:37~36:05 동물권 운동을 가시화하는 매체이자 실체로서 건축의 역할
스크립트
동물해방물결과 소 보금자리 프로젝트
(00:00~03:07) 안녕하세요. 저는 동물해방물결이라는 동물권단체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는 이지연입니다. 저희도 2017년 겨울에 설립해서 만 6년이 되어가고 있어서 밭멍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이 많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작년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영어로는 생추어리(sanctuary)라고 하는 소들을 위한 보금자리를 만들었어요. 오늘은 이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저희의 활동에 대해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보통의 시민단체는 대시민 활동, 국회나 대정부적인 활동 그리고 거리 캠페인을 주로 하는데 많은 경우에 이게 서울을 기반으로 이루어집니다. 저희도 마찬가지였고요. 동물권 이슈로 그런 시민단체 활동을 하다가 왜 지금 소 보금자리를 만들게 되었는지가 오늘 제가 드릴 설명의 주요 내용이 될 거예요.
저희가 동물해방을 주장하고, 소들이 고기가 아닌 존재로서 살 수 있어야 된다고 얘기하지만, 저희 활동가 중에 아무도 소와 반려해본 경험이 없다 보니 당연히 소들의 집을 지어본 적도 없어서 많은 고민이 있었거든요. 이제 11월 11일이면 소들이 이사한지 딱 1년이 되는데, 저희가 꼬박 1년동안 많이 배우고 느낀 것들을 나누고자 합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과 지금 상황이 어떠한지 위주로 들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는 정말 처음에 이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는데, 소를 구해서, 소들이 살 수 있는 곳을 찾으려다가 청년 활동가들이 마을로 이주하게 된 케이스예요. 저는 평생을 도시에서 살았고, 재작년까지도 내가 농촌에서 살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을 못하던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탈서울은 좀 하고 싶었지만요.) 지금은 저를 포함한 활동가들이 마을로 이주를 해서 이제 마을 생활을 시작해 나가는 단계에 있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의 사상적 배경: 비거니즘
(03:09~06:17) 일단은 저희의 활동에 대한 사상적인 배경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 저희는 2017년 11월에 발족을 했습니다. 비거니즘에 대해서는 요즘에는 많이 들어보셨을 텐데요. 17년 당시에는 동물복지나 동물보호라는 개념으로 많이 이야기를 했지 저희가 얘기하는 동물해방, 종차별 철폐 그리고 무엇보다 비거니즘 관련된 이야기를 한국에서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아직 운동이 발생하기 전이어서요. 지난 3년 간의 활동을 돌아봤을 때 한국에서 비건 지향인, 그러니까 채식을 지향하거나 비건을 지향하는 사람이 기후든 건강이든 동물권이든 그 이유야 다양하지만 전반적으로 크게 늘어났다고 생각하고 그런 제품들이 출시되는 등 시장의 변화도 눈에 띕니다. 사실 이렇게 동물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비건을 지향하는 동료들을 늘리기 위해 시작한 거에요.
저희 단체가 한국에서는 제일 처음으로 모든 동물의 해방을 이야기했습니다. 이 해방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은 착취, 학대, 살상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종차별로부터의 해방입니다. 우리가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인종차별이라고 하고, 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성차별이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종이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는 행위를 종차별이라고 하는데, 그걸 철폐한다는 거죠. 그 이유인 즉슨, 이 모든 동물권 사상의 핵심은 사실 동물을 지각 있는 존재,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산업적으로 먹기 위해, 입기 위해, 아니면 전시하기 위해, 감금하고 도살할 때 모든 동물들은 고통을 느낍니다. 꼭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인간도 결국은 동물이기 때문에 같은 경험을 했을 때 비명을 지르거나 회피하려는 반응을 보면 이런 경험을 원하지 않는다는 걸 명백히 알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동물도 지각이 있는 존재이고, 이 동물 안에 인간도 포함되어 있다면, 종이 다르다고 해서 같은 동물끼리 차별하면 안 된다는 것이 동물권 사상입니다.
이 사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삶의 양식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게 비거니즘인데, 기후 위기나 동물권을 위해 개인이 실천할 수 있는 차원에서 동물성 제품을 하나씩 없애나가는 거예요. 그리고 비거니즘의 완벽성에 대한 논란을 차치하고 궁극적인 형태를 한번 상상해보면, 내가 사용하는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동물의 학대나 죽음을 없애고, 그런 제품과 서비스를 내 삶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장려하는 철학이자 생활 방식인 거죠. 저희는 이러한 사상을 기치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동물 산업의 구조와 생추어리의 대두
(06:20~08:15) 사실 동물권 운동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카테고리는 반려동물입니다. 강아지 공장, 고양이 공장이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텐데요. 이런 것처럼 반려 동물도 다 공장식으로 상품처럼 생산을 하거든요. 그래서 동물과 연관된 산업 카테고리를 반려, 축산, 전시, 실험, 모피 식으로 나누어서 보고 있습니다. 용도는 다르지만 동물을 특정한 목적으로 이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번식해서 감금하고 사육하다 도살한다는 공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어요. 그랬을 때 산업적인 착취로 가장 많은 동물들이 죽는 산업이 사실 축산업이고, 머리수로 보면 압도적이죠.
우리나라에서 한 해에 11억 명1 정도의 소, 돼지, 닭, 오리, 양 등의 동물들이 도살되는데, 한국 인구의 약 22배에 달하는 수준입니다. 그래서 동물해방을 생각했을 때 축산업을 가장 먼저 다룰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러면 이 산업이 없어진다고 했을 때 고기가 아닌 존재로서의 동물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는 거죠. 저희가 구조 현장에 나가보면 고통 받고 있는 동물들이 너무 많아요. 이 동물들을 구조해야 하는데, 사실 구조를 하고 나면 당장 그 다음부터 어딘가에는 살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럴 수 있는 공간이 이 나라에 없는 거예요. 사실 외국에는 꽤 오래 전부터 이런 생추어리들이 설립이 되기 시작해서, 세계적으로는 제법 많이 분포해 있습니다. 이 생추어리의 정의는 농장 동물이 고기가 아닌 동물로서 인정받아 평생 도살의 위험 없이 자연사 할 때까지 살 수 있는 공간이에요. 한국에서는 돼지가 살고 있는 새벽이 생추어리가 한국에서 가장 먼저 생겼고요. 저희는 소들이 살고 있는 보금자리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08:20~11:25) 해외에는 좋은 사례가 많은데 우리나라에 도입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자연에 사는 동물들의 생활 반경이 굉장히 넓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일단 땅 자체가 작다보니, 그렇게 넓은 자연 면적을 동물에게 내줄 수가 없죠. 적어도 아직은 그런 사례가 없습니다.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 가서 보금자리를 방문하고 왔는데, 유럽이나 미주를 보면 일단 땅 자체가 기본적으로 만 평을 넘어가요. 그게 굉장히 다릅니다.
저희가 왜 생추어리를 지을 생각을 처음 하게 됐냐면,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 19년도에 대대적으로 수해가 나서 축사에서 도망친 소들이 섬으로 헤엄쳐서 가다가 발견이 되고, 지붕에 올라가서도 발견이 되면서, 뉴스에 굉장히 많이 났었어요. 소들이 이렇게 살기 위해서 도망쳤다, 소들의 삶에 대한 의지, 같은 제목의 기사들도 많이 나왔고요. 그 소들이 구조됐다고 뉴스에는 나왔지만, 이 소들은 결국은 상품이자 재산이기 때문에 농장주들에게 돌아가서는 결국 다 도살되는 운명을 겪은 것이죠. 이 사태를 보면서 만약에 해외에 있는 보금자리가 우리나라에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 도망친 많은 소들 중에 단 한 명이라도 구조가 돼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 수 있었다면, 우리가 미션으로 생각하는 동물해방의 일환으로서의 축산의 점진적인 축소와 종식에 커다란 진보가 되었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때의 아쉬움이 너무 커서 이걸 직접 만들자는 이야기를 내부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만들자는 생각을 하는 것은 쉽죠. 그런데 무슨 돈으로, 어디에 만들 것인가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도전을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던 와중에 운명처럼 기회를 맞이하게 되는데요. 인천 계양산에서 불법으로 운영되던 개농장이 이슈가 되면서, 200여 명의 개들을 다른 동물단체에서 구조를 했어요. 그 단체에서 연락이 와서, 같은 농장에 소도 15명이 살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저희도 개농장을 많이 갔었지만 소를 같이 키우는 경우는 처음이었습니다. 동물해방물결은 동물 해방의 연장선에서 탈축산, 비거니즘 이야기를 많이 하니까 소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없겠냐는 취지에서 연락을 주신 거였어요.
개농장에 살던 여섯 명의 소들을 구출하다
(11:25~13:04) 처음 현장을 방문했을 때, 한둘도 아닌 열다섯을 전부 구조하기는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내부적인 논의를 통해 어떻게든 해보자는 결심을 하고 장소도 대책도 없었지만 일단 구조에 나서게 됐어요. 일단 소들을 그해 추석까지 키우고 도살장에 보낸다고 해서, 일단은 도살장에 가는 것만큼은 어떻게든 막자, 인위적인 개념이긴 하지만 소유권을 우리가 넘겨받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무작정 모금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열다섯 중에 몇을 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취지에 공감하시는 시민 여러분들이 모금에 동참해 주시면, 저희가 살릴 수 있는 만큼 살려보겠습니다고 얘기를 하고 모금함을 설치했습니다. 아직 위치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사실 홍보도 많이 안 했거든요. 그런데도 두 달여 남짓 동안 1,684명이 참여를 해서 4,600만 원 가량이 모였어요. 그렇게 예산은 어느 정도 확보를 했는데 추석 직전까지도 부지 선정이 난항이었습니다. 땅이 없으면 몇을 구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 백방으로 뛰었는데도 참 쉽지가 않았어요. 그러던 찰나에 농장주분께 연락이 왔습니다. 다음 주에 도살장에 보낼 건데 몇을 데려갈 거냐고요. 청천벽력이었죠.
(13:04~15:04) 그동안 연락을 하며 지내던 분 중에, 강원도 인제군 서화면에 있는 DMZ 평화생명동산의 정성헌 이사장님이라는 분이 계신데요. 조금만 뉴스를 검색해보시면 바로 찾으실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생명살림과 민주화를 위해 운동을 해오신 분이세요. 이분이 2000년대 초반부터 인제군에 자리를 잡고 계셨는데, 이 분이 저희를 도와주셨습니다. 생명살림 운동을 계속 해오신 분이라 직접적으로 동물권이나 비거니즘 같은 말을 쓰지는 않으셔도 저희가 소들을 살리고 싶다고 얘기했을 때 바로 이해해주셨어요. 일단 땅을 못 구했고 소가 살 집도 없으니 임시보호할 곳이 필요한데, 합법적으로 하려면 농장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이사장님이 본인 마을에서 한우 농장을 운영하고 계신 분들을 수소문해서 상황을 설명하고, 그 중에 권충규 대표님이라는 분이 맡아주시기로 했습니다.
운영 중이신 농장에서 두 칸을 내어 주셨는데, 한 칸에 세 명씩 총 여섯 명이 들어갈 수 있는 구조였어요. 공간의 한계 상 안타깝게도 아홉 명은 도살장에 보낼 수밖에 없었지만 그 이야기를 전부 시민들에게 전하고, 한겨레 신문에서도 기사가 나왔습니다. 이 친구들에게는 다 이름이 있어요. 이름 없이 죽어가는 동물들이 태반인 상황에서 이름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의미를 가집니다. 이름이 있으면 개성이 보이고, 하나하나가 고유한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연결이 시작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안타깝게 먼저 떠난 친구들도 굉장히 특별한 존재들이었고요. 이런 과정을 거쳐 저희가 여섯 명을 구조해 아이러니하게도 한우 농장에서 임시 보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 인연으로 인제에 가게 되었고, 어쩌다보니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신월리 달뜨는 마을과의 인연
(15:05~17:09) 정성헌 이사장님의 도움으로 인제군청을 포함한 마을 네트워크에 가닿을 수 있었습니다. 그 인연을 바탕으로 저희랑 협력할 수 있는 마을을 물색했어요. 두세 마을 정도를 방문했는데, 어느 마을은 어르신분들이 별로 탐탁지 않아 하시고, 또 어떤 마을은 마땅히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딱 이 신월리 달뜨는 마을에 2019년에 폐교된 부지가 있었어요. 행정명칭으로는 신월리고, 한글로는 달뜨는 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이에요. 약 3,000평 규모의 부지 운영권이 마을에 주어져서 운영을 하긴 해야하는데, 무엇으로 해야할지가 미정인 상태였습니다. 전형적인 인구 소멸 위기에 처한 마을이라 운영위원회 어르신들께서는 청년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어요. 그동안 하도 거절을 당하다보니 만나면 딱 느낌이 오는데, 신월리 운영을 맡고 계신 김경림 사무장님과 당시의 이장님을 만났을 때 뭔가 잘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희의 취지를 설명드리고 운영위원회에도 소들과 함께 이 마을로 오겠다는 제안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소들이 살 수 있는 보금자리를 짓기 위해 시작했지만, 마을과 협력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통해 사람들이 더 마을에 방문하도록 유도할 수 있는 콘텐츠도 개발을 해야 했어요. 그런데 그게 또 저희 미션과 잘 맞았습니다.
보금자리 프로젝트의 시작
(17:09~19:36) 저희가 보금자리를 처음에 지으려고 했던 취지가 물론 특정 개체들의 집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그 공간의 존재를 통해서 사람들이 고기가 아닌 존재로서의 동물을 만날 수 있는 일종의 교육 공간이자 캠페인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인데요. 청년들을 불러모을 만한 콘텐츠가 필요했던 신월리의 니즈와 우리의 취지가 잘 맞아떨어져서 업무협약을 체결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공사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거죠. 소들의 자연 수명이 통상 20-30년 정도이기 때문에 업무 협약도 30년으로 맺었습니다.
저희는 소들을 꽃풀소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를 잠시 설명드리면, 보통 이 소들을 육우, 말 그대로 고기 육(肉)에 소 우(牛)자를 써서 불러요. 이 소들과 한우의 차이점은, 우유를 생산한다는 겁니다. 우유는 여성2 소들이 임신을 해야 나오기 때문에, 생애 7번 정도의 임신과 출산을 연달아 하며 우유를 생산한 뒤 고기로 도축이 됩니다. 임신을 하면 우유도 나오지만 새끼도 태어나죠. 그때 여성 소가 태어나면 똑같이 착유되고 도축되는 어미소의 삶을 살고, 남성3으로 태어나면 고기용으로 길러집니다. 이 모두를 통틀어 ‘육우’라고 불러요. 그래서 저희는 육우가 아닌 다른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시민분들과 함께 고민한 끝에 살아남으라는 의미로 ‘꽃풀소’라는 새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이 꽃풀소들이 신월리로 이사를 할 때, 서울을 기반으로 생활하고 계시던 돌보미 가족도 함께 이주를 하셨습니다. 원래 캐나다에서 사시다가 퍼머컬처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에서 퍼머컬처를 실천하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땅을 찾고 계시던 분들인데 저희랑 타이밍이 잘 맞았던 거죠. 그래서 저희한테 먼저 소들을 돌보면서 자급자족하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지금도 소들의 상시 돌봄을 추현욱 돌보미님께서 해주고 계신데, 정말 아이들을 키우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소를 돌봐주고 계세요.
공간에 대한 고민들
(19:36~20:47) 이주를 한 후 소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고민은 있어요. 소와 사람이 말 그대로 한 지붕 아래에 사는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지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많습니다. 3,000여 평이 되는 분교 부지 안에서 우리 활동가 청년들도 거주를 하고, 문을 열면 바로 소들이 보이는 그런 공간을 꿈꾸고 있어요.
일단 저희에게 주어진 조건을 간단히 소개드리면, (여러 번 말씀드린 것처럼) 학교 부지(20:20)입니다. 운동장이 있고, 교실이 있던 폐교 건물, 그리고 교사들이 이용하던 관사 두 동이 있어요. 뒤뜰에는 실습장이 있었는데, 이 부지의 절반 정도에 비닐하우스로 소집을 지어서 일단 이주를 시켰습니다.
(20:47~23:16) 저희가 신월리에 청년 보금자리 조성사업을 맡으면서, 인구 소멸 대응 기금이라는 정부 지원금을 받게 되었어요. 지자체들이 개발한 콘텐츠로 지원해서 중앙정부에서 선정이 되면, 지방 정부로 기금이 내려와서 마을 단위로 돈이 집행될 수 있게 하는 시스템이에요. 그래서 저희가 지원한 내용을 몇 가지 소개해드리면 관내 청정 농산물과 산채를 활용한 다양한 농촌 체험 활동 및 관광사업 확대를 통한 마을 소득 증대와 농촌 경제 발전, 비건 관계 인구 발전을 위한 청년 보금자리 조성, 귀농귀촌 정착 지원으로 지방소멸 위기 극복 등이 있습니다. 그래서 귀농귀촌 모델로 시작을 하긴 했지만, 마을로 사람을 불러들여서 농촌을 살리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예요.
이 목적을 위해 내려온 예산이 총 26억 원인데 대부분을 시설비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지금 이 신월분교가 작은 방 6칸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통으로 트는 방식으로 리모델링을 해서 여기에서 교육을 하거나 세미나를 하는 등 각종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으로 사용할 예정이에요. 관사의 경우 너무 노후되었고 활용하기에는 구조도 애매한 부분이 있어 철거를 하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그 위치에 저희 활동가들과 돌보미 가족이 살 수 있는 임대주택을 건설하고, 그 옆에는 소집을 지을 예정입니다. 지금 저희가 임시로 지은 소집은 부수고, 넓게 소 운동장도 만들고 내실도 만들어서 제대로 된 집을 만들어주려고 합니다.
이렇게 지금은 이 사업 덕분에 주어진 조건을 바탕으로 공간적인 상상을 키워나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설명드린 것처럼 이 공간에서 사람들과 소들이 함께 복작거리며 살아가고, 사람들도 불러서 교육도 하는 공간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고요.
소들을 위한 건축
(23:20~26:42) 저희 소들의 현재 무게가 1톤인데, 점점 크고 있어서 다 자라면 1-2톤 사이가 될 거예요. 풀로 모든 영양소를 충족하면서 이 무게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풀을 굉장히 많이 먹어요. 풀을 먹고 되새김질을 하는게 일상인 동물이다보니 넓은 반경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용하고 있는 임시 공간의 규모는 약 300평 정도이고, 이게 늘어난다고 해도 600평 남짓이 될 텐데 사실은 터무니없이 부족하죠. 지금은 저희가 건초를 수입해서 먹이는데, 저 정도 규모라면 건초를 주지 않는다면 굶어 죽을 겁니다. 풀이 자랄 새 없이 다 먹어버릴 테니까요.그래서 불완전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시설로 저희의 보금자리를 인식하고 있습니다.
장애 운동 쪽에서는 장애인분들을 자립하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탈시설 운동이 주가 되고 있어요. 그런데 동물은 아직 ‘탈시설’을 할 수 있는 시설 자체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보금자리를 짓는 거고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보면 시설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사실 시설이라는 말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해외의 사례를 보면, 원래 굉장히 넓은 부지를 사용하던 축산업자가 자식에게 물려주면서 이 넓은 부지를 생추어리로 전환하고 거기서 관광 사업을 덧붙여 운영하는 케이스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이런 시설 자체가 별로 필요가 없고, 있더라도 운동장 부지가 워낙 넓어서 자연에 사는 것과 별로 다를 바 없게 느껴져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앞으로 건설될 보금자리들은 적어도 당분간은 그렇게 넓어지기 어려울 거예요.
그래서 당장은 이렇게 건초를 보급하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대동물로 분류가 되는 소는 몸집이 커서 많이 먹기도 하지만, 먹는 것들 자체의 무게도 무거워요. 저희가 이 집을 지으면서 충분히 예상을 못한 부분 중에 하나가 건초의 무게였어요. 건초 한 단을 둘이 드는 것도 무겁습니다. 이 정도 되는 물품을 원활하게 이동하려면 사실 하우스 안에서 트랙터와 지게차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확보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현재 지어진 공간에서는 그게 안 되기 때문에 활동가들이 손수 들어서 옮기고 있습니다. 내년에 공사를 해서 새로운 소집이 지어졌을 때 가장 기대되는 부분도 사실 이거에요. 건초를 직접 옮기지 않아도 된다는 거.
(26:42~28:19) 그래도 일반적인 축사에는 스탄치온이라는 구조물이 있거든요. 보통은 파이프 사이에 아무것도 없는데, 스탄치온에는 이런 고리가 있어서 소들이 진짜 정말 목만 빼낼 수 있어요. 건초를 먹기 위해 코로 밀어서 스탄치온으로 고개를 빼미는데 저희는 그걸 설치하지 않았기 때문에 소들이 비교적 자유롭게 오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운동장에는 땅과 관련된 문제가 있습니다. 저희가 한번 이 땅을 다 밀었거든요. 현재는 합법적으로 축사를 운영하기 위해서 반드시 시멘트를 깔아야 하기 때문에 내실에는 시멘트가 깔려 있어요. 그런 공사를 하기 위해서 이 300평 부지 전체를 한번 땅갈이를 했는데, 그러고 나니 1년 동안 풀이 잘 안 납니다. 이 소들이 콘크리트 위에 분변이 쌓인 똥 바닥에서 살지 않고 자유롭게 흙을 밟을 수 있다는 건 굉장한 차이이긴 하지만, 여기서 풀을 뜯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저희가 계속 풀을 주고 있는 상태고요.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이게 건축이라면 건축이고, 조경이라면 조경일 텐데 앞으로 어떻게 소들이 풀을 뜯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운영할 것인가가 큰 화두입니다.
(28:19~29:33) 지금 생각으로는 공사를 할 때 여기까지(수목이 남아있는 대지 경계까지) 파이프를 둘러 되도록 땅갈이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기계가 들어가지 않아도 되는 수준으로 파이프만 몇 개 박을 생각이에요. 이쪽에 수목을 좀 남겨놔서, 두 곳을 왔다 갔다 하게 하면 한 쪽이 좀 쉴 수 있으니까요. 땅이 넓지 않을 때의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분변인데요. 소들이 많이 먹는 만큼 많이 싸잖아요. 똥을 치우지 않으면 밭이 비옥해지는 것과 썩는 것이 한 끗 차이더라고요. 저희가 매일매일 치우지만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땅이 군데군데 썩어서 이번에도 한번 전체적으로 흙을 교체했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다보니 작업을 할 때나 땅을 며칠이라도 쉬게 해주고 싶을 때, 다른 데로 소들을 옮겨줄 수 있는 구분된 제2운동장이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고 있습니다.
행정 절차 상의 어려움
(29:43~32:10) 사실 이 사업의 실행 주체가 저희가 아니에요. 사업의 예산이 마을과 저희의 시설을 개선하는 데 쓰이지만, 이걸 집행하는 주체는 인제군청이거든요. 건축하시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무조건 입찰제로 진행해야 하고 업체를 저희 마음대로 선정할 수가 없습니다. 입찰가와 절차에 따라서 정해져요. 사실 26억 원도 큰 돈이지만, 건설 규모만 놓고 보면 더 큰 예산도 많잖아요. 그랬을 때 기존에 비슷한 건축 경험이 있으면 가산점을 받는다거나, 위원회를 운영하여 질적 평가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는데 저희 상황에서는 여의치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자원이 부족했어요.
일부는 소들 때문이기도 합니다. 이 소들은 당장 오늘이라도 집이 필요하니까요. 그리고 프로그램을 해서 우리가 마을을 살려야 하는데, 실험을 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고 있거든요. 처음 이야기할 때에는 흙집을 짓고 살자, 이런 이야기도 했었는데 행정 절차 상 지금 이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저희만 어려운 것이 아니라, 관에서도 어려워하고 계세요. 우리는 계속 자연친화적으로 만들어져야 동물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온다, 이런 분들은 인위적이고 못생긴 공간은 싫어한다고 말씀을 드려도 잘 이해를 못하시더라구요. 마치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처럼요. 아직 서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보니 초기에 소통하는 게 어렵게 느껴졌어요.
(32:10~33:26) 올 한 해가 실시설계 단계입니다. 올해 봄-여름까지 기본 계획을 진행했고, 2023년 11월 현재 실시설계 막바지 단계에 있어요. 올해 말에 실시설계가 완료되면 시공업체 입찰이 시작되는데요. 약 6개월 간 소통을 해오면서 저희도 서로 양보할 게 어느 정도인 건지 이해하게 되고, 이제는 좀 손발이 맞아가는 것 같아요. 여러 레퍼런스를 찾아보면서 시도하고 싶은 게 많았지만, 한정된 예산 안에서 분교도 리모델링하고 5가구를 위한 주택도 짓고 축사도 지어야 하니 일단 갖출 수 있는 것부터 먼저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 안에서 생활을 하면서 자체적으로 바꿀 수 있는 부분들이 무엇인지 활동가들끼리 논의하고, 시행착오를 거쳐서, 고치고 가꿔나가게 될 것 같아요.
대한민국 최초의 비건마을로 거듭나기 위해
(33:37~36:05) 저희가 처음에 신월리 달뜨는 마을에 갔을 때 너무 좋았어요. 저는 물을 보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라, 만약에 산만 있었으면 좀 답답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 마을은 산이 소양호를 감싸주고 있는 모양이라 참 좋았어요. 소들의 운동장에서도 물이 보여요. 그 전경이 너무 좋아서 이 마을을 저희가 동물해방의 실제를 보여주는 지역 사례로 구축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모든 동물을 해방한다고 하면 쉽게 상상하기 어렵죠. 너무 멀고, 추상적으로 느껴지고. 그런데 이게 실재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기 있는 다섯 명의 꽃풀소들은 전국에서 최초로 마을분들 전체의 인정 하에 공동체의 일부가 된 소예요. 그렇게 살아가는 동물이 있다는 걸 보여줄 수 있는 마을이고, 여기에 점차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귀농귀촌을 하거나 동물 인구로 형성이 되면 대한민국에서 가장 비건친화적인 마을이 될 것이라는 장기적인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저희가 집회를 하고 캠페인도 하지만, 결국에는 우리가 외치는 변화의 구체적인 사례가 없으면 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축산업이 탈축산이나 탈육식으로 정의로운 전환을 이루려면 결국에는 협력해야 합니다. 농장주들과 싸우고 반목할 것이 아니라 힘을 합쳐야 해요. 이 분들도 사실은 업으로 하고 계신 거고, 저 역시 옛날에는 고기를 먹었던 사람이니까요. 접점을 찾아 뜻을 모았을 때 정의로운 전환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어떻게 생업을 전환할 수 있을지에 대한 가능성, 미래의 구상을 함께 쌓아나가는 것이 정책화와 제도화에 있어 중요한 사례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동물을 살리려고 시작한 일이 마을을 살리고, 마을에서 시도하는 자연친화적이고 비건적인 삶의 양식이 결과적으로는 지구 살림에 도움이 되는,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점차 현실화시켜 나갈 거예요.
(36:15~37:37) 마지막으로는 건축과 연결되는 지점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를 짓고 싶습니다. 신월리에도 보면 산이 많아요. 그런데 저희가 이번에 미국에 가서 보니 소들이 반드시 평지에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더라구요. (축산업에서도 임간축산이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경사가 있어도 소들이 충분히 오르내릴 수 있고, 살 수 있다고요. 직선이 아니라 사선으로 길을 뚫으면 소들이 충분히 다닐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점차 확장해나갈 거고, 그러려면 어떤 구조물은 최소화하고, 어디에는 구조물이 덧붙이게 되겠지만 계속 건축과 맞닿을 것 같아요. 한 번도 내 집을 짓는다는 생각을 안 해봐서, 이곳을 설계하라고 했을 때 상상하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웠는데요. 앞으로도 이걸 계속 해나간다고 생각하니 건축 쪽과도 더 연결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도 활동만 하지 않고, 건축에도 더 관심을 가질 거고요. 건축하시는 여러분들도 본업에 집중하시면서도 자연친화적인 건축과 축사나 동물원이 아닌 다른 방식의 동물의 집 건축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크립트 정리 최정원
이지연
열악한 환경에서 단독 사육, 전시되던 호랑이를 만난 후, 동물 권리와 복지, 인간-동물 관계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고려대학교 국제학부와 영국 옥스퍼드대학 지리환경대학원(생물다양성 보전 및 관리에 대한 이학 석사)을 졸업한 후 시민사회운동에 참여, 현재 동물해방물결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동물을 대상으로 벌어지는 구조적인 차별과 착취를 근절하기 위한 인식 개선 및 입법 활동과 더불어, 시민 모금으로 구출된 5명 ‘꽃풀소’들이 평생 안식할 ‘달뜨는보금자리’(강원도 인제 신월리 소재)의 초기 조성을 여러 동료, 후원·지지자와 함께 일구어 나가고 있다. donghaemul.com
꽃풀소의 집
분량13,803자 / 영상 37분 43초
발행일2024년 8월 27일
유형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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