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의미의 공공성 파빌리온씨
박성태
분량2,724자 / 5분
발행일2015년 5월 7일
유형서문
“건축가는 누구인가?”란 주제로 건축가들이 모인 자리에서 한 젊은 건축가가 앞날이 불안하다고 하자 한 원로 건축가는 “건축가라는 직업은 15년 내에 사라진다.” 는 RIBA(영국왕립건축가협회)의 연구 보고서 내용을 언급했다. 순간 여기저기에서 짧은 신음 소리가 났다. 건축은 어떤 모습으로도 우리 삶과 함께 할 것이고 그래서 소멸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말하고 있는 따옴표 ‘건축’, 즉 ‘건축가의 건축’은 현실적으로 소멸해가고 있기 때문에 무언가 애도에 휩싸인 기분이었다.
건축은 일상적으로 소비되어 없어지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그러니까 건축은 작품(work)의 영역에 속하며 우리 삶과 지속적으로 관계맺음을 하는 어떤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모든 인간의 활동을 유용성의 여부로 판단하는 세상에서의 건축 작업은 쉽게 설 자리를 잃고 소모품이 되기 십상이다. 우리의 도시는 이런 소모품 건축으로 둘러싸인 인공 환경이 되어버렸다. 마치 테마파크 같다. 그러니 건축을 지속시켜야 한다는 당위를 뒷받침할 그 어떤 공공성이 있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약하다. 우리 삶에서 건축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건축이 소멸해서는 안 된다는 당위를 건축의 공공성을 바탕으로 다시 따져 물어야 한다.
공공성의 대표적인 함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open)는 의미의 공공성과 공통의 것(commons)을 나누고 누린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의미에서의 공공성은 오늘날 그리 심각하게 숙고되지 못했다. 우리에게 공공적 공간이란 공공적인 주제를 논의하거나 그에 관련된 활동을 위한 장소이자 공통의 것을 공유하는 것이지, 공사(公私)의 경계를 둘러싼 담론의 정치나 활동이 광범위하게 벌어지는 곳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각기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다양한 층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소통하는 공간을 통해 공공성을 드러내기란 쉽지 않다. 전문가적인 발언뿐만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고 불만을 터뜨리는 아마추어적인 육성과 모든 사람들의 예술적 표현이 자유롭게 분출되고 받아들여지는 공간은 보편적이지 않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줄 타자의 존재이지만, 우리에게 타자는 여전히 두려운 존재로 남아 있다. 타자에 대한 관심보다 자신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도시 공간의 균질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균질 공간에는 타자가 없고, 그러니 대화가 낄 자리도 없다. 건축의 새로운 가능성은 이런 등질 공간에 ‘작은 균열’을 낼 때 나타난다. 그러기 위해선 ‘차이’를 옹호해야 한다. 여기서 차이란 경쟁을 위한 차별성이 아니라 공공적인 담론을 만들기 위한 조건으로서의 ‘차이’다.
건축가가 소멸한다고 우리가 걱정하는 이유는 그들의 건축에 공공성이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도자본주의 시대인 오늘날 건축이 공공적인 것과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건축가의 비장한 하소연이 사회적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공공 건축가라는 타이틀을 건축가에게 부여하고 그들에게 공공적인 역할을 맡기고, 공공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만으로 건축의 공공성을 말할 수는 없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것들이 서로 소통하는 친밀하면서도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부딪치고 반향하는 ‘파빌리온 공간’을 회복하는 일이 요구되는 이유다.
‘파빌리온씨’는 지난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요청으로 시작했다. 작은 마을 공동체를 비롯해 작은학교, 교정시설, 군부대, 농어촌 등 문화 소외 지역을 찾아가는 공연 프로그램의 임시 무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공공적인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프로그램이 분명한 프로젝트이기에 시작은 공연 단체의 의견을 듣고, 다른 기관에서의 활동을 조사하는 등의 단순한 리서치 작업부터 시작했다. 더불어 서울시립대학의 이충기 교수와 연세대학교의 최문규 교수와 AnLstudio, 김광수, 염상훈, 황경주 등 4팀의 건축가를 선정했다. 우리가 제시한 설계 조건은 간단했다. “1. 이동, 설치, 해체가 용이해야 한다. 2. 다양한 프로그램을 담을 수 있어야 한다. 3. 마을의 커뮤니티 공간으로도 활용 가능해야 한다.”가 그것이다. 우리는 이런 요구 조건에 맞는 설계를 위해 한 달에 한번 정도씩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기술적으로 더 나은 해결책을 찾기 위한 리서치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그 공간을 사용할 사람들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여기 작업들을 선보이며 이 프로젝트가 공공의 기금과 공공의 요청으로 시작한 소외계층 문화순회사업이지만, 나는 이 작업이 열린 공공성을 갖는 작업이길 한편으로 바라고 있다. 문화적이면서도 사회적인 그리고 무엇보다 정치적인 소통이 벌어질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작은 공동체에서 다양한 층위의 이질적인 대화가 오고 가기가 더 어렵다. 그곳은 이미 공통의 것에 기반한 공동체일 확률이 높다. ‘파빌리온씨’가 잠시 동안 작은 공동체에 찾아간 이방인이면서도 정치적 활동의 상징적이고 구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를 바라는 이유이다. 그 속에서 작은 균열이 생기고, 그것을 통해 우리 공동체가 삶의 새로운 전망을 볼 수 있다면, 이 작은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내는 공공성의 의미는 남다를 것이다. 물론 아직 이 프로젝트는 제안에 불과하다. 현실적으로 구현되는 것은 이번 전시를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하니 출발점에 섰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작업들이 보다 더 자주 다양한 방식을 통해 일어나길 바라고 있다. 충분히 못한 조건 속에서도 이번 전시에 참가해준 4팀의 건축가와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도움을 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이한신 본부장과 강언덕 팀장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곁에서 도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린다.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
열린 의미의 공공성 파빌리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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