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김상호
분량3,656자 / 7분
발행일2024년 6월 17일
유형서문
와이즈 건축의 에센스는 ‘실천’이다. ‘행함’에 악센트가 있는 실천은 순전히 생각을 행동으로 옮긴다는 뜻에서 출발해 사회를 바꾸고 윤리를 담아내는 데까지 확장되는데, 건축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표현이다. 보통 건축의 말들 속에는 ‘실현’이나 ‘구현’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 실현이 가리키는 대상은 ‘마인드’가 아니라 ‘아이디어’고, 실현 ‘했다’고 하기보다 ‘됐다’고 쓴다. 건축가라는 주체와 건축물이라는 대상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럼으로써 건축물도 건축가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로 분립한다. 그런데 와이즈의 건축은 그렇지가 않다. 와이즈의 초기 작업들은 ‘실천’의 정수가 날것의 상태로 담겼고, 지금도 와이즈의 코어에 자리잡고 있다. 박스 모바일 갤러리, 최초의 이상의 집, 포이동 모바일 원두막,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에서 그것이 발아하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박스 모바일 갤러리는 지금 생각해도 순수하고 순박하다. 이삿짐 상자에 쓰는 플라스틱 패널로 만든 이동, 설치, 해체, 재사용이 가능한 임시 구조물이다. 다소 조야해보였지만, 모 프로젝트였던 <이상의 집> 이벤트와 어울리게 소박했고, (요즘 말로) 팝업 전시에 필요한 기능을 적정하게 갖춘, 장소와 매체 친화적 작업이었다. 아름지기 재단에서 추진했던 <이상의 집>의 최초 버전은 기존 건물의 철거(혹은 리모델링)를 앞두고 기획된 이벤트였다. 와이즈가 그 일을 맡게 되었고, 건축적이면서도 예술성을 접목한 장소 특정적 공간을 만들었다. 골목에 면한 벽 전체를 유리 미닫이문으로 만들어 닫혀 있던 공간을 개방하고, 기존 도시한옥의 특징적 요소들을 드러내 이상의 집이라는 기억을 살렸다. 한편에는 별도의 통로로 연결되는 옥상(그래봐야 2층) 전망대를 설치해 지붕 위의 설치작품과 동네 풍경을 감상할 수 있게 했다. 와이즈의 작업이 ‘너무’ 성공적이었던 덕분에 철거 후 신축으로 새로운 기념관을 짓는 계획은 취소되었고, 와이즈의 생각을 이어받아 현재의 이상의 집으로 리모델링되었다.
포이동 모바일 원두막은 박스 모바일 갤러리와 궤를 같이한다. 프로젝트의 동인과 과정을 보면 더 급진적이고 실천적이며, 공간 활용은 더 넓고 빠르고 자유롭다. 장영철은 판자촌에 직접 가서 주민들과 같이 원두막을 만들었고, 이후에도 보수와 설치를 돕고, 마을 행사에 참석하기도 하고, 구호 활동을 언론에 알리기도 했다. 이런 수준의 건축가의 사회참여는 이전에도 이후에도 좀처럼 보기 어렵다. (이일훈의 만석동 공부방과 조성룡의 세월호 모형이 기억난다.) 포이동 원두막 작업을 하게 된 배경이 와이즈건축 웹사이트에 남아 있다.
“이 프로젝트는 건축 혹은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로, 사회 문제에 대한 건축가의 또 다른 접근 방식을 보여주었다. 지난 6월 12일 서울 강남구 개포4동 1244번지(포이동 266번지)에 화재가 발생해 판자촌 96 가구 중 74 가구가 전소됐다. 포이동 공부방 아이들을 돕기 위해 논:템포러리(non:temparary)라는 이름의 일종의 구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논:템포러리가 추구하는 구호 물품은 잠시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 아니라 상시와 비상시에 모두 유연하게 적용 가능한 일상용품이다.”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도 실현보다는 실천에 가까운 작업이다. 박물관 계획은 와이즈의 손에 올 때까지 많은 역경과 좌절을 겪었다. 1994년 ‘여성과 전쟁 사료관’ 준비로 시작되어 2004년에 정부 차원에서 건립위원회가 발족되어 긴 시간 협의 끝에 어렵게 구했던 부지가 2011년에 뜻밖에도 독립운동단체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건축 설계도 선뜻 맡으려는 건축가가 없어 지지부진하던 차에 우연한 인연으로 와이즈가 맡게 되었다. 설계 당시 와이즈의 생각이 웹사이트에 남아 있다.
“설계가 한참 진행 중이던 2011년 8월 둘째 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시민단체 참가자들, 어린 학생들이 어김없이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 문 앞에서 수요시위를 진행하고 있었다. 1시간이 넘도록 시위가 진행되었지만, 대사관의 폐쇄회로 카메라만이 시위를 주시할 뿐 아무런 반응도 찾아볼 수 없었다. 비지땀을 흘리며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과 붉은 벽에 굳게 닫힌 일본대사관의 모습을 보며, 작아도 큰 존재감을 가질 수 있는 박물관을 세우고 싶었다. 그렇게 성미산 자락에 한 덩어리로 보이는 박물관이 그려졌다.”
몸소 직접 만들고, 프로젝트 속으로 뛰어들다시피 하는 실천의 밑바탕에는 ‘일상의 건축’이라는 모토가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보편적인 말이 되었지만, 2008년에만 해도 건축의 일상성에 관한 이야기는 막 시작되던 시기였고, 그 중심에 와이즈가 있었다. 16년 전 우리 건축계는 작고 평범한 것에 별 관심이 없었고, 특별하거나 거창하거나 심오한 것을 좇았다. 당시 와이즈가 만든 것 중 가장 큰 것이 금호동 Y하우스였고 이 건물로 데뷔했지만, 다세대나 다가구 주택 같은 것은 아직 건축 작품의 범주에 들이기를 꺼리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전숙희와 장영철과의 건축 이야기는 늘 거대담론에서 시작된다. 이번 인터뷰 동안에도 지구적 기후변화 시대에 ‘와이즈는 앞으로 어떤 건축을 해야 하는가’가 늘 저변의 화두였다. 초창기 ‘smallness’라는 주제 이면에도 ‘bigness’에 대한 비판적/반성적 입장이 놓여 있고, 그것은 세계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서 와이즈가 찾은 길이자 전략이었다. 와이즈는 거대담론의 구름 속에 존재하는 건축 단서들을 일상의 레벨로 끌어내리고 실천의 영역으로 옮겨간다. 그런 식으로 ‘루이스 칸의 벽돌’을 가져다가 와이즈식 벽돌벽을 쌓고, 누군가 붙인 별명대로 ‘잡철 장인’이 되어 오래된 집을 리모델링하고, ‘움직이는 건축’을 적재적소에 적당한 플라베이나 건축으로 만들고, 지속 가능성이라는 방만한 클라우드에서 ‘의식 있는 건축주’라는 조건문을 추출해냈다. ㄱㅁ집, ABC 사옥, 어둠속의대화, 남해 돌창고, 아산나눔재단, 수안커피, 모두 저마다의 세계 속에 와이즈가 낳은 집이다.
‘일상의 건축’이라는 배는 돌고 돌아 2023년에 도착했다. 15년의 시간과 경로를 지나오면서 그것은 둘로 분화되었다. 빼빼집으로 대표되는 장영철의 건축과 노무현시민센터로 대표되는 전숙희의 건축이다. 각자의 실천 방식으로 만들어낸 최근 결과물이자 두 사람의 중간 기착지이기도 하다. 빼빼집은 다시 ‘smallness’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노무현시민센터는 더 높은 공공성을 추구하는 방향을 향하고 있다. 하나는 좀더 직접적인 실천을 통해서 기민하게, 하나는 좀더 건축적인 실천을 통해서 둔중하게 움직인다. 이 모두가 ‘실천’인 이유는 둘 다 어떤 외부 동인에 의해 피동적으로 구현된 것이 아니라, 각자의 내적 동기와 에너지의 자발적 발현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두 갈래의 길은 어디선가 하나로 합쳐질 수도 있고, 저마다의 경로를 따라 심화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인터뷰를 통해 와이즈를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오랫동안 알아왔다지만 지금까지 와이즈의 16년의 날들 중 며칠이나 알았을까 새삼 깨달았다. 기자나 편집자가 만나서 알게 되는 건축가와 그의 작업이란 잠시 여행 간 해변에서 주워 온 예쁜 조개껍질 같은 것이다. 그 연유와 사정은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그 해변의 이야기를 다 알지 못한다. 오랜만에 청해 들은 이야기를 글로 옮기면서 와이즈가 지나온 길이 마치 우리네 인생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중견이 된 우리 시대 젊은 건축가들의 우여곡절, 희로애락, 생로병사. 와이즈건축이 들려주는 솔직한 이야기다.
김상호 건축신문 편집장
내 마음이 이끄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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