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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즈의 지금

전숙희, 장영철

5%의 건축과 95%의 건축

전숙희 요즘 ‘5%의 건축과 95%의 건축’ 사이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 건물을 잘 만들려면 5%의 건축 방식이 필요하고, 건물이 잘 쓰이려면 95%의 건축의 태도가 필요하다. 내가 요즘 힘든 이유는 정말 멋진 5%의 건축, 많은 사람이 누리는 95%의 건축, 두 가지를 다 하고 싶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열려 있으면서도 다녀간 사람의 마음속에 각인되는 곳을 만들고 싶은데, 지금의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방법으로는 그런 건물을 만들 수가 없다. 건물을 잘 만들려는 사람들은 건물을 사적으로만 쓰려고 하고, 공공이 향유하는 건물을 짓는 사람들(주로 공공기관)은 건물을 잘 만들 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이것도 싫고 저것도 싫다 하는 중이다. 건축 업계 전체가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양의 일을 할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의 자기 계발이나 일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사라졌다. 너무 답답했다. 

결국 나는 두 길을 투-트랙으로 동시에 갈 수밖에 없는 것 같다. 5%의 건축과 95%의 건축, 둘 다 필요하고, 내가 그때그때 빠르게 스위칭해야 함을 느낀다. 이 둘은 단순히 시장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사용자일 수도 있고, 생산 방식일 수도 있다. 이솝이라는 브랜드는 자기네 브랜드를 아끼고 그 취향을 좋아하는 사람들 5%를 소비자로 삼고 사업을 한다고 들었다. 일종의 마니아층이다. 단순히 상위 5%의 부자들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95%는 누구에게나 열어주는 건축의 수용적 태도를 뜻한다. 절두산 성지는 아무 날 어느 새벽에도 늘 열려 있다. 천주교의 그런 수용적 태도야말로 건축 공간이 장소가 될 때 취해야 할 태도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열려 있지 않는 장소라면 95%의 건축이 아니다. 예전에는 빨리 많이 지어보는 게 중요했는데, 지금은 그게 다는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잘 가려야, 잘 선택해야 한다.

세대 변화

전숙희 요즘 세대 변화도 크게 느낀다. 우리 세대를 경계로 앞세대와 뒷세대가 너무 다르다. 앞세대와는 어느 정도 공감대를 갖고 있고, 뒷세대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간 버퍼가 우리 세대다. 산업화 세대의 맨 끝 세대랄까. 열심히 노력하면 잘될 것이라고 믿던, 일을 소중하게 여기고 일을 대하는 태도가 그러했던 세대다. 지금은 그 부분이 완전히 달라졌다.

같은 것을 계속하면 편한데 왜 자꾸 새로운 것을 하려고 하느냐는 이야기를 팀 안에서 나눈 적이 있다. 아무래도 같은 유의 일을 되풀이하다 보면 면역력도 생기고 일도 쉬워지는 것은 사실이다. 위대한 안도 선생도 같은 디테일을 반복해서 쓰는데, 우리도 좀 그러면 안 되느냐는 말도 있었다. 맞는 말인데, 나는 계속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 안 해본 프로그램, 안 해본 종류의 건물, 안 해본 땅에 관심이 간다. 나는 단순하다. 그저 이 건축일이 좋다. 그래서 힘들어도 참는다.

동물학자인 최재천 선생은 ‘젊은 세대는 항상 나이 든 세대보다 더 나은 사람들’이라고 한다. 맞는 말일 거로 믿지만 공감이 되진 않는다. ‘더 나은’ 지는 모르겠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인 것 같다. 일례로, 나는 정말로 건축 일이 즐거워서 한다. 어떤 사람은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이 재밌어서 수학을 하고, 어떤 사람은 영어가 재밌어서 공부하고, 어떤 사람은 글을 쓰는 게 좋아서 매일 글을 쓴다지만, 우리는 그들을 다 이해할 수 없지 않나. 내가 건축 일을 좋아하는 것도 그런 것이다. 

건축 일 안에 꼭 즐거운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설계 과정은 내게 큰 즐거움을 주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과정은 매우 힘들다. 사사건건 반대하는 인허가청, 늘 돈이 없다고 하는 시공사와 건축주 등 여러 장애물이 있다. 내가 하는 일이라는 것은 그 엉킨 매듭을 풀고 적절하게 다시 묶는 일의 반복인데, 그런 과정의 어수선함을 정돈하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래서 국가건축정책위원회 활동도 했던 것 같다. 내게 정말 안 맞는 일인데 일은 맡는 동안은 정말 열심히 했다. 당시 우리 위원회가 고민하고 씨름하는 일 열 개 중 하나만이라도 잘 풀리면 좋겠다는 희망의 끈을 붙잡고 일했다.

자신이 하는 일을 좋아서 하는 사람은 주변 사람들도 그랬으면 하는 마음에 자꾸 권하게 된다. 회사 안에서도 그러길 바랐다. 그런데 이런 부분에서 새로운 세대와 거리감을 느낀다. 우리 회사 스태프들은 그래도 건축에 열정도 있고 잘하고자 하는 마음과 태도가 있는 편인데도 세대의 거리감이 있다. ‘내가 이 일을 한다고 해서 이 일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마음을 갖고 있다. 그게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 답을 못 찾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방식대로, 일을 일로 대하는 사람은 또 그 나름의 방식대로 같이 일할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한다.

기후, 기술, 인구

전숙희 우리는 세계 경제 버블이 꺼지는 것을 목도하면서 ‘smallness’라는 우리만의 이야기로 일을 시작했다. 그럼 지금은 뭘까? 우리의 질문이다. 답은 아직 갖고 있지 않다.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기후의 변화’, ‘기술의 진화’, ‘인구의 감소’라는 정도가 현재 꺼낼 수 있는 이야기다.

노무현시민센터 일을 하는 최근 5년 동안 많은 교훈을 얻었다. 설계도 오래 걸렸고, 공사도 오래 걸렸다. 보통 비슷한 규모의 작업과 비교할 때 각각 두 배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현실들이 있었다. 건축 시장이 다층화되었다는 것, 지금의 만듦새와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무형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 예를 들어 예전에는 일상적이었던 현장 목업은 이제 주문과 계약을 거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 되었다. 

몇 해 전 뮤엠 사옥 때만 해도 지금 정도는 아니었다. 벽돌 작업이 중요하다는 점을 파악한 시공사 대표가 벽돌을 잘 아는 사람을 붙여주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 차례 재시공을 해야만 했다. 재시공이 가능했던 것은 시공자들이 수용적 태도를 갖고 있었던 덕분이다. 3차원 곡면의 벽을 벽돌로 쌓는 일은 배테랑 작업자에게도 매우 어려운 일이었고, 어느 시점부터는 벽돌 장인으로서 자존심이 걸린 일이 되었고, 몇 번을 다시 쌓은 끝에 완성했다. 순전히 장인의 손과 오기로 만든 곡면이었다. 그랬던 것이 불과 몇 년 전이었는데, 지금은 그런 마인드의 작업이 완전히 불가능해졌다. 특히 CM이 붙어 있는 현장은 과정의 과정까지 작업 기록으로 남겨서 비용으로 청구한다. 누군가에게는 계약의 합리화겠지만, 내가 볼 땐 우리가 말하는 ‘좋은 건축’과는 영영 이별하는 일 같다. 그래서 요즘은 손맛을 살려 작업하던 현장을 그리워하게 됐다.

건축 재료의 생산 환경과 여건도 완전히 달라졌다. 일례를 들면, 공사 중에 우리가 주문한 돌이 도착하지 않는 이유를 물어보니 돌을 재단하는 정확한 치수를 포함해서 주문해야 한다고 했다. 심지어 내가 주문한 돌은 포천석이었는데, 중국에 있는 광산에서 돌을 들여올 거라고 했다. 그 돌은 실제로는 포천석이 아닌데도, 재료 스펙상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이제 건축가는 더 이상 광산에서 돌을 고를 수 없고, 돌을 자르는 방법을 고를 수 없고, 잘못 들어온 돌을 교체할 수 없다. 모든 것을 미리 정확하게 준비하지 않으면 현장에서 손 쓸 방도가 없어졌다. 국내 돌 광산들은 하나둘 폐광되고 있다. 유명했던 문경석은 이제 생산되지 않는다. 산지마다의 독특한 색과 결이 있지만 더 이상 그런 것을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황이 건축과 설계과정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오래 걸렸다. 

드림팩토리 프로젝트 때부터는 시공 현장의 숙련공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광화문을 콘크리트로 만들던 시절 거푸집 목수들은 지금 80대가 넘었고, 지금 현장에서는 40대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젊은 인력 대부분은 중앙아시아에서 일하러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다. 그래서 드림팩토리 현장에서는 하나의 마스터 거푸집을 조립과 해체를 반복해서 7개 층을 올리는 방법을 썼다. 덕분에 일반 거푸집으로는 한 층에 한 달 정도 걸릴 일을 12일로 줄이긴 했다. 애즈금융 사옥 리노베이션은 기존 건물에서 지적선 위반을 한 전면부 30cm를 잘라내고 껍질을 다시 씌우는 프로젝트였다. 물결치는 스킨은 GFRP인데 KTX 몸체를 만드는 한국카본이 형틀 제작을 맡았고, 레고 블록 같은 모듈 하나로 가로 세로로 반복시켜 가며 전체 스킨을 완성했다.

노무현시민센터 전경 / 사진: 노경
뮤엠 사옥 / 사진: 노경
드림팩토리 / 사진: 노경
어둠속의대화 / 사진: 김용관

우리의 다음

전숙희 다시, 나는 뭘 하고 싶은 걸까. (최근에 찾은 답이 ‘95%의 건축’이다.) 이 생각을 하면서 매우 공들여 작업했던 것이 수안커피컴퍼니 프로젝트였다. 첫 의뢰 때 70년 된 회사의 사옥과 연구소를 설계하는 일로 시작했는데 아쉽게 지어지지 못했고, 세 번째 의뢰는 모회사의 신사업을 백지상태부터 동행하는 일이었고, 결과적으로 회사가 갖고 있던 오래되고 아름다운 정원을 지키려는 건축주의 요구에 맞춰 정원의 나무들을 훼손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들어올 수 있는 집을 지었다. 

와이즈의 전환작은 확실하게 어둠속의대화였다. 사무소의 역량, 건축가로서의 역량, 협업자들과의 관계, 재료에 대한 관점까지 바꿔놓은 프로젝트였다. 야심작은 선뜻 답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마치 결론, 끝 같아서다. ‘지금까지 가장 공을 많이 들인 건물’로 대신 답한다면 노무현시민센터일 수 있지만, 진정한 야심작은 ing여야 하는 것 같다. 

지금(2023년) 와이즈는 수안커피의 짝꿍을 만들고 있다. 아름다운 정원 안에 팩토리 스토어라고 이름 붙인 작은 공간이다. 이곳이 완성되면 기존 수안커피 건물은 접객 장소로 바뀐다. 나무 풍경이 좋은 공간이어서 정원을 잘 누릴 수 있다. 아래는 공장, 위는 가게가 된다. 

진행 중인 또 다른 프로젝트로 은퇴한 과학자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기획(설계는 공모로 진행됨)하고 있다. 『지방도시 살생부』에 나오는 도시 중 한 곳에 들어설 것이다. 우리보다 한 사이클 빨리 노령화를 겪은 일본 사례들을 주목하면서 기획 중이다. 마을이 자생하기 위해서는 생산성, 지속성, 다양성을 확보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배우는 중이다. 마을 전체를 하나의 큰 집처럼 구성하려고 한다.

또 하나, 어느 발전소 외관을 새롭게 디자인하면서 옥상에 에너지 뮤지엄이라는 이름의 온실을 만들고 있다. 발전소 연돌에서 나오는 잔열로 실내 정원 겸 클린 에너지를 홍보하는 뮤지엄을 제안해서 추진 중이다. 2030년 완공 예정이다. 

이번 ‘중간점검’을 계기로 와이즈는 세컨드 사이클을 준비하고 있다고 봐주면 좋겠다. 경제적, 사회적 사이클은 파동처럼 반복된다. 그래서 그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손에 닿지 않은 위험, 기후와 인구 문제다. 뭔가를 해야 할 것 같고, 하고 싶다. 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문제를 계속 고민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좌) 수안커피컴퍼니 / 사진: 노경
수안커피컴퍼니 팩토리 스토어 / 자료 제공: 와이즈건축
하회 과학자마을 기획설계 조감도 / 자료 제공: 와이즈건축
부천열병합발전소 경관디자인, 에너지 뮤지엄 외부 부분 / 자료 제공: 와이즈건축

나의 동력

장영철 나는 지금 소상공인이다. 우리는 늘 건축을 거대 담론에서 시작한다. 사회문제라든지, 철학적인 접근이라든지, 도시적 접근을 통해 건축을 생각한다. 나는 지난 7년 정도 방황하면서 다른 경험을 하고 보니 이 모든 것이 먹고 사는 문제였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이 우리에게 설계를 의뢰한다는 것도 그 집에서 먹고 자고 사는 것을 어떻게 좀더 멋있게 할지를 의뢰하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의뢰인이 어떻게 먹고 살 것인지를 해결해줘야 한다. 빌바오 뮤지엄 같이 프로젝트도 그 나라 그 도시의 랜드마크를 통해서 그들이 먹고 살게 만드는 일이다. 그게 건축이고, 건축가의 역할이다. 요즘 내게는 가장 마음에 와닿는 개념이다. 와이즈가 앞으로 어떻게 먹고 살 건지 걱정이고, 나도 어떻게 먹고 살지가 걱정이다. 계속 이렇게(?) 살 수는 없지 않겠나. 나도, 와이즈도, 여러분도. 우리 모두의 진짜 고민이다.

전숙희 거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나도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동안 와이즈건축이 일해온 방식은 바뀌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스티브 잡스가 말한 ‘stay hungry stay foolish’에 잘 들어맞는 사람이다. 가만히 뭔가 하나 하고 나면 10년이 지났음을 알게 되는 사람, 하나의 일을 긴 시간 동안 무던하게 하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들은 일의 시간을 카운트다운하듯 세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일을 끝내고 나서야 고개를 드는 사람이다. 그런 태도가 내가 일 일하는 데 도움이 됐다. 

옛날부터 하고 싶었던 건축은 지금도 변함없는데, 그 모델은 바로 알바 알토의 건축이다. 장 소장님과 유일하게(?) 한마음으로 바라는 지점이다. 알바 알토의 건축물을 방문해 그의 작업들을 보면서 건축가로서 참 행복한 삶을 살았겠다고 생각했다. 건축의 공간, 재료, 그곳의 소품까지 다 만들었다. 타일 하나까지도 따로 구워서 붙였으니, 어느 하나도 이물감이 없었다. 그런 점이 우리는 너무 좋았고 부러웠다. 내가 노년의 건축가가 되었을 때 저렇게 이물감 없는 것들로 꽉 채워진 건물이 내 작업에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완성도나 완결성보다 요즘 내게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이 있다. 버스정류장, 지하철역, 카페, 조명기구, 가구 등 곳곳에 그의 손길이 남아 있지만, 정작 그는 자기 이름을 새기려고 그 일을 한 게 아니라 그저 좋아서 했을 거라 생각이다. 난 그 점이 가장 근사한 모멘텀인 것 같다.

내가 말한 대주제들과 연결된 거대한 건축 이야기의 기저에는 저변을 확대하고 싶은 욕구,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끌어내고 싶은 욕구가 깔려 있다. 그리고 그 일을 실현시키겠다는 의지에서 내가 하는 일의 관성이 생겼을 것 같다. 나의 동력은 좋아서 하는 힘이다. 대단한 매니페스토가 아니라 ‘이 일을 해내고 싶다’는 아주 사소한 마음이다. 지칠 때도 많고, 좌절할 때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극복해내는 힘은 그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그 마음이 멈추는 순간, 정말 멈추는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좋아서 하고 있는지 우리는 계속 자문하면서 일해야 한다. 굴곡은 계속 있었다. 내가 설계하지 않은 굴곡이다. 그런 굴곡은 나만 겪는 것도 아니고, 동년배들이 모두 같이 겪는 일이다. 그런 굴곡과 어려움은 항상 어떤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인터뷰이 전숙희, 장영철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김상호

와이즈의 지금

분량7,102자 / 14분 / 도판 11장

발행일2024년 6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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