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찾는다면?
김헌, 김현종, 최정인, 한지영, 황수용
분량2,342자 / 5분
발행일2024년 2월 23일
유형인터뷰
사회 구성원이라는 감각
김현종(ATELIER KHJ) 건축가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다. 건축가 또한 사회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지만, 건축가에게 더 많은 사회적 역할과 태도를 요구하는 것에는 공감하지 않는다. ‘건축가로서 다른 분야의 사람들보다 사회적 역할을 하고 있는가?’라고 스스로 질문을 던져보면 아닌 것 같다. 공공 프로젝트로 사회가 기대하는 건축가로서의 역할을 해낼 수도 있겠지만, 공공 프로젝트는 현상설계공모를 통해 당선되어야만 작업할 수 있기에 그 기회가 한정적이다. 나와 내가 이끄는 ATELIER KHJ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도시 전반에서 일어나는 사회적, 문화적 경험을 우리의 시각으로 전달하려고 한다. 그 경험의 형태는 건축이나 공간, 가구, 전시 등이 될 것이고,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각을 전달하는 것으로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지 생각한다.
책임과 실천
한지영(라이프) 건축은 사실 돈이 많이 든다. 개개인의 에너지도 많이 쏟아야 한다. 폐기물도 너무 많이 나온다. 환경과 주변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 그래서 건축가의 책임이 막중하다. 대지 주변 경관의 일부를 내가 책임진다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이 땅에서의 50년, 100년의 에너지와 가능성을 모아 짓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어느 것 하나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우리는 건축물 하나를 설계하지만, 그 작은 제스처로 이 건축물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사소한 무언가, 이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무언가, 이 동네의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러한 작은 변화에 주목한다.
황수용(라이프) 건축가라면 대중이 건축을 문화로 받아들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를 계속 고민한다. 사옥 일부를 개방해서 문화 행사 용도로 쓰고자 하는 것도 그런 역할을 실천하려는 하나의 방식이다. 건축 행위 자체를 공공적인 틀 안에서 보고, 우리가 건물을 세움으로써 건물 자체가 이 마을의 일원이 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다른 이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특히 우리가 자리 잡은 부암동이 그런 생각을 펼치기에 좋은 동네인 것 같고, 우리가 먼저 시도하면 재밌는 일이 더 많이 늘어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
지역의 굴레를 벗어나
김헌(일상) 나이가 젊어도 생각이 정체되어 있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전주에서 뭔가 뜻을 가지고 열심히 하려는 설계사무소가 잘 안 보인다. 나보다 어린 후배가 선배에게 로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개소하자마자 로비를 하면서 공모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전주에 좋은 공공 건축물이 없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이건 설계사무소와 발주처만의 문제가 아니다. 결국 시민들이 좋은 공간을 누릴 기회가 줄어드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집에서 느끼기 어려운 규모의 공간이나 프로그램을 공공영역에서 좋은 건축물을 만듦으로써 보완해야 하는데, 그걸 할 수 없게끔 자기들만의 리그를 만들어서 일을 나눠 가진다.
물론 나이와 상관없이 생각이 깨어 있는 사람이 있다. 전주 토박이이고, 지역 건축계에 폭넓은 네트워크가 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이들이 간혹 공모에 접수하면 ‘그거 우리가 거의 다 작업해놓은 거니까 하지 마세요’라는 연락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도 버티면서, 2, 3등 계속하면서 깨끗하게 일하고 있지만, 이런 상황을 모르는 이들은 결과만으로 평가한다. 그럴 때 ‘그 회사는 로비로 당선했다’고 말하기도 애매하고, 이런 상황이 복합적으로 돌아가니까 어느 순간 회의감이 든다는 동료 건축가도 있다.
그런 연결고리를 잘라내려면 다 같이 노력해야 하는데 다들 소극적이다. 건축하는 사람들이 잘 안 뭉치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건축사협의회에서 낸 선언문에 서명도 하긴 했다. 그런데 전문가라는 사람들이 법제가 아니라 감정에 호소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하다. (그조차도 400여 명밖에 서명하지 않았다.) 악순환을 끊을 수는 있는 건가? 못 끊는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하는 게 맞는 건가? 우리도 그냥 그렇게 해야 하는 건가? 고민이 깊다.
최정인(일상) 요즘 공모를 다시 하다보니까 나도 김 소장처럼 감정이 북받쳐 오르긴 한다. 공모에 투입하는 시간이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데, 도전하는 모든 이들이 다들 당선될 거라는 생각으로 임한다. 그런데 심한 경우에는 ‘이 현상설계에는 주인이 있다’는 얘기도 듣는다. 그것도 여러 번이다. 설계공모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계속 고민하게 된다.
이제는 직접 심사위원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는 연락이 오더라도 거절했었는데, 이제는 내 역량이 부족하다 싶어도 한번 해보기로 마음먹고 광주시, 영주시 공모 심사위원으로 참여했었다. 기회가 닿는다면 설계공모가 투명해질 수 있도록 심사위원으로 힘을 보태보고자 한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찾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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