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이라는 문제
양수인
분량2,375자 / 5분
발행일2023년 12월 19일
유형인터뷰
미끄러지는 공공성
공공건축과 공공성은 비슷하지만, 별개의 문제다. 공공건축 시스템 내에서 이상적으로 생각하면 공공의 돈으로 공공을 위한 프로젝트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누구의 돈인지 모를 돈으로 누구를 위한 것인지 모를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느낀다. 또한, 지금 상황에서는 건축가가 너무 많은 희생을 하면서 일을 해야 한다. 일단 건축가와 발주처가 생각하는 좋은 공공공간이 너무 다르다. 건축가들은 공공에 개방된 공간을 설계하는데, 관에서는 안전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자고 했다는 이야기는 너무 많다. 다음으로는 공공건축 작업에 책임 없이 한마디씩 얹는 플레이어들이 너무 많다. 심의를 말하는 게 아니다. 다양한 유관 부서의 요청이 잘 관리되어 전달되지 않고 산발적으로 내려오는데, 공모전을 통해 당선된 건축가가 그것을 다 책임져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이유로 굳이 공공 작업을 안 해도 된다면 그 고생을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더 힘이 생겨서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전까지는 관심 없다.
물론 건축물은 공적이기에 어느 정도의 공공성은 당연히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과하게 공공성을 강요하는 모습 또한 좋지 않다. 각자 생각은 다르겠지만 나는 스스로 지나친 공공성에 대한 부담을 지고 싶지 않다. 프로젝트의 상황은 다양하기 때문에 그때그때 필요한 태도를 취한다. 공공성이 필요한 작업이라면 공공성을 고려하며 작업해야 하겠지만, 그런 작업은 극히 일부이다.
건축가의 다면성
최근 유튜브로 젊은건축가상(2022) 심사를 봤다. 심사 과정에서 작가의 공공 작업에 대한 부족을 아쉬워하는 언급이 여러 번 있었다. 나는 『공간』에 피어 리뷰를 하러 가면, 공공성이 아닌 이 작업에 내가 여태껏 보지 못했고 설파할 만한 아젠다나 새로움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본다. 설파할 만한 새롭고 좋은 것은 사적인 방식으로 이룰 수도 있고, 혹은 사적으로만 성취할 수도 있다.
건축가는 다각적 면모를 가지기 때문에 매력적이다. 건축가는 예술가와 혁명가 그사이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한 사람이 예술적 건축가 상부터 사회적, 혁명적 건축가에 이르는 스펙트럼 사이 어디든 점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가 맡은 작업에 따라 그 역할이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예술적 작업과 공적 작업을 동시에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지점에서 개인에 대한 과대평가를 주의해야 한다고 본다. 공공 건축가라면 사회적 책임감을 가지고 작업을 수행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 자금이 필요한 건축가라면 누구보다 더 자본에 충실한 작업을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사회적 역할을 언제나 당연하게 떠맡아야 한다고 보지 않는다. 건축가는 ‘약간’ 예술가이면서 ‘약간’ 혁명가이고 ‘약간’ 건축가일 수도 있다.
기대치의 오차범위
공공건축 시스템이 잘 운영되면 건축가와 지자체 모두에게 좋은 제도다. 다만, 건축가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문제다. 공공건축에서 건축가와 지자체가 원하는 것이 서로 다르다. 기대치의 오차범위가 작다면 서로 도움이 되니 당연히 좋다. 그런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관의 기대나 기준이 꼭 틀렸다고 말할 수도 없다. 그런데 건축가 개인 혹은 집단이 생각하는 공공성의 수준이나 기준이 있다. 그럴 때 문제가 된다. 나는 내게 요구되는 기대치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그것을 넘어서서 대단한 기준을 주장하거나 고집부리고 싶지 않다. 건축가가 그렇게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비유하자면, 굶어 죽게 생겨서 죽을 먹어야 하는데 거기에 굳이 고급 레스토랑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과 같다. 조심스럽고 세심하게 상황을 판단하고 거기에 맞게 작업하고 처신하려고 하는 내 기본적인 성향상, 나는 건축가가 대단한 선구자로서 사회를 이끌고 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대중성의 착시
전시를 자주 보러 다니는 편인데, 내게 직업적으로 지적인 자극을 주어서 좋은 전시도 있고, 아이들을 데리고 신나게 놀 수 있어서 좋은 전시도 있다. 전시에 대한 평가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르다. 현재의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시민 입장에서는 별로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 차라리 가서 느끼고 즐기며 생각할 거리가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YAP, 서울마루 공공개입 그리고 이번 과천 현대미술관 프로젝트 유의 것들이 시민들에서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우리가 하는 일이 모두 대중의 시선에 맞춰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의 레벨에서 논의가 필요한 것도 있다. 그런 차원에서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가 필요할 수 있다. 비엔날레가 더 잘되려면 애매하게 대중적이려고 하지 말고 오히려 더 깊이 있고 전문적인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나 싶다. 베니스 건축 비엔날레의 경우 사람들이 많이 몰리니까 대중적이라고 착각하지만 사실은 전 세계의 건축가들이 가서 보는 것이다.
인터뷰이 양수인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김보경
공공이라는 문제
분량2,375자 / 5분
발행일2023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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