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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전환, 야심

양수인

데뷔작: 리빙 라이트

리빙 라이트(Living Light) / 자료 제공: 삶것

상암동 월드컵 공원에 10여 년간 유지되다가 2년 전 철거되었다. 강의 외에 다른 작업이 없던 시절이라 뉴욕과 서울을 비행기로 오가며 3년간 여기에만 몰두했다. 발주처는 서울시였고, 예산은 디자인, 제작, 설치, 운영을 포함해 약 1억 원 규모의 작업이었다. 파트너와 단둘이서 모든 과정을 직접 진행했다. 재미있었고, 지금까지도 관심 있는 분야와 맞닿아 있는 작업이다.

2007년 당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보니 한국이 서양 어느 나라보다 앞선 도시 공공 인터페이스를 갖추고 있음을 포착했다. 대중의 관심은 지금에 비해 훨씬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시에 27곳의 실시간 대기질 모니터가 있었다. LED 안내판이나 간판도 뉴욕보다 우리나라 상가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런 환경을 통합하면 훨씬 유용하겠다고 생각했다. 실시간 데이터를 공간적으로 보여주고, 이를 이용해 양방향 소통이 가능한 파빌리온을 구상했다.

보로노이 다이어그램 알고리즘1을 사용해 서울시 내 27개 대기질 모니터링 스테이션 중 자신의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스테이션을 알 수 있도록 지도를 그렸다. 이 지도를 공간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패널들을 둥그렇게 감싼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 지붕 프레임을 지지할 기둥을 어디에 얼마나 놓느냐에 따른 여러 경우의 수를 생성하는 데에는 유전자 알고리즘2을 사용했다. 생성 기준에는 지붕이 덜 처지면서 기둥에 쓰이는 재료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조건을 넣었다. 이런 다목적 최적화에서는 어느 해법이 최적이라고 할 수 없다. 설정된 다목적에 의해 적합한 ‘군’이 생길 따름이고, 전부 다 말이 되는 해법들이다. 재료를 가장 많이 사용하고 처짐이 적은 경우와 재료를 가장 덜 쓰고 처짐이 큰 경우 사이의 여러 가능성 중에서 목적과 심미성을 고려해 적절한 것을 선택했다. 이렇게 우리가 선택하는 과정에서 비논리적인 심미안이 개입하는 지점이 마음에 들었다.

이 구조를 최종적으로 선택한 후 이를 실물화하기 위해 실험을 계속했다. 구조 엔지니어링 계산을 할 수 없어서 목업을 만들어 부수어질지 올라가 뛰어보는 등, 구조 안정성, 모델링, 재료 탐구 등에서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거쳤다. 그 당시에는 당연히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하고 즐겁게 했다.

우리가 가장 원했던 것은 양방향 소통이었다. 스마트폰 사용이 활성화되기 전이라 문자 메시지를 이용하는 시스템을 구상했다. 자기 주소의 우편번호를 보내면 그곳의 현재 대기질과 1년 전 오늘의 대기질을 비교한 결과를 회신해 주는 방식이었다. 이 시스템을 만든 후에는 운영에 대해 고민하며 어떻게 해야 사람들로부터 더 재미있고,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유발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 시대를 좀 앞서간 것 같다. 대기질의 지표로 PM-10 데이터를 사용했었는데, 당시 일반 대중은 미세먼지라는 단어를 잘 모르던 시절이었다.

전환작: 컬쳐랜드 사옥

컬쳐랜드 사옥 / 사진: 신경섭

사무실을 운영해오면서 우리 클라이언트의 대부분이 기업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2017년부터는 기업 클라이언트의 비율을  85% 이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렇게 설계 규모가 커지면서 총괄적인 지휘·감독을 맡는 경험도 하게 되고, 혼자 설계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설계하는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했다. 컬쳐랜드 사옥은 소장, 책임 건축가, 팀원의 역할과 일이 분리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그리고 그것을 실천한 첫 작업이다. 벽돌을 어떻게 쌓았는지, 문고리나 페인트가 무엇인지 내가 모른 채로 끝낸 첫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기업 사옥 설계는 코어 위치와 외부에 보이는 이미지(인상)가 가장 중요하다. 컬쳐랜드 사옥에서는 코어와 업무시설 사이를 띄어 업무 공간이 쾌적하도록 배치했다. 삼성역 부근의 대지는 탄천 쪽으로 좁아지는 모양이라 아파트 한 동이 시야를 가리고 있었고, 뒤쪽의 아파트로 인해 특이한 모양의 일조 사선 제한이 있었다. 애매한 사선 제한으로 인해 건물 뒤쪽에 달린 꼬리 부분을 다목적 문화시설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제안했고, 심심한 이미지를 해결하기 위해 꼭대기에 머리를 달았다. 

디자인상 가장 두드러지는 부분인 외피에는 서향 빛을 가리면서도 시선이 아파트에서 비켜나가도록 유도하는 유리 루버를 디자인했다. 유리 루버의 디테일을 설명하자면 2박 3일도 설명할 수 있다. 디테일 하나하나를 모두 설명하려 했던 초기와 달리 프로젝트 규모가 커짐에 따라 작업을 설명하는 태도가 간결해진 것도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점이다.

컬쳐랜드 작업은 건축가가 아닌 운영자로서 건축을 바라볼 수 있게 된 전환점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건축을 하기 위해 신경 쓸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조직과 프로젝트를 어떻게 운영해야 하는가, 어느 정도 규모의 일을 하고 보수를 얼마나 받아야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같은 것들 말이다. 이를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기업 발주 프로젝트 비중이 높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어 나가려고 노력했다.

기준층 사무실 내부 / 사진: 신경섭
10층 옥상정원 / 사진: 신경섭
저층부 공연장 / 사진: 신경섭
사선제한 다이어그램 및 모형 / 자료 제공: 삶것
유리 루버 다이어그램 / 자료 제공: 삶것

야심작: 헬리녹스 크리에이티브 센터

헬리녹스 크리에이티브 센터 / 사진: 신경섭

내년 초(2023)에 완성 예정인 부산 달맞이길에 있는 헬리녹스 크리에이티브 센터다. 대수선, 증축 작업이라는 점이 내게 중요하다. 대수선과 증축에는 최근 관심이 많고 앞으로 더 야심 차게 하고 싶은 분야이다. 침투 수술처럼 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리모델링에 요즘 가장 큰 관심이 있다.

헬리녹스라는 회사가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부산 지부로 사용하기 위해 작업을 의뢰해왔다. 건축주의 유일한 요청사항은 기존 건물이 뾰족하니 둥글게 만들어 달라는 것뿐이었다. 기존 건물의 상태와 대지의 상황을 분석해보니, 육각형 보를 기본으로 해서 건물 모서리를 뾰족하게 만들기 위해 슬라브를 내민 역보가 중첩되어 있었다. 그래서 상층부에서는 둥근 발코니를 달아 ‘뾰족한’ 문제를 해결했고, 저층부에서는 공적 공간을 수직으로 뚫어 원형 계단으로 연결하고 건물 양옆의 뾰족한 부분을 완만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 설계상 중요한 내용이 있다. 건물로 걸어 들어가는 레벨이 건축법상으로는 지하 1층이라서 겉으로 보기에는 지상 주차장이지만 법적으로는 지하 주차장인 상황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천장을 덮어 진짜 지하 주차장처럼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렇게 해서 생긴 주차장 위 1층 공간에 회사 제품인 캠핑 장비와 연계되는 어반 캠프장을 놓았다. 단순 성형수술 같은 리모델링을 넘어서, 복개하고, 깎아내는 침습 수술 같은 리모델링에 관심이 많다. 앞으로 많이 할 수 있는 작업의 유형일 것으로 생각한다.

헬리녹스 크리에이티브 센터 리모델링 과정 / 자료 제공: 삶것

리모델링 작업은 그동안 꾸준히 해왔다. 지명공모에서 떨어져 아쉬웠던 성수동 공장을 아레나로 바꾸는 작업도 있었다. 리모델링 프로젝트에서 기존 건물과 구조를 완전히 분리하고, 공격적으로 실용적인 새 공간을 더해 새 이미지와 쓰임을 불어넣는 것을 즐겨한다. 초기작 중 50년 된 집을 반으로 자르고 그 밑을 파 갤러리로 만든 PKM 갤러리도 그런 방식을 볼 수 있고, 많이 알려진 인천의 코스모 40도 비슷한 사례다.

앞으로 10년 뒤엔 이런 공격적 리모델링계의 대부가 되고 싶다. 정제되지 않은, 신기하고 희한한, 눈에 띄는 스타일을 선호하기 때문에 리모델링에서도 더 공격적으로 자르고 뜯고 새로운 것을 집어넣는 유의 작업에 야심이 있다. 여러모로 우리나라 환경을 볼 때 앞으로 가장 많은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 영역이기도 하다.

인터뷰이 양수인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김보경

데뷔, 전환, 야심

분량3,825자 / 8분 / 도판 11장

발행일2023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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