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 만들기
양수인
분량4,446자 / 9분 / 도판 1장
발행일2023년 12월 19일
유형인터뷰
적당히 괜찮은 플랫폼
요즘에는 괜찮은 사무소가 점점 많아지는 것 같지만, 사실, 건축가들이 가장 못 하는 것이 적당히 행복하고 지속 가능한 ‘회사’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안정적인 사무실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그것이 더 큰 도전이다. 설계 잘 된 건물을 몇 개 짓는 것보다 어려운 일이고, 이 업계에 더 필요한 일인 것 같다.
적당한 규모의 괜찮은 회사 하나가 10년 동안 있었고, 그 회사 직원들은 적당히 재밌는 일을, 너무 힘들지 않게, 적절한 급여를 받으며 했고, 나가서도 자기 작업을 잘하고 있다는 것이 남았으면 좋겠다. 이곳에서 일하며 기계의 부품이 된 것 같거나, 시간과 급여를 바꾸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으면 한다. 이 사무실의 모두가 인간적인 근무 시간 동안 지적 욕구와 창작 욕구를 충족하며 기본적인 경제적 보상을 받는, 균형 있는 회사 생활을 하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내년, 후년에도 이렇게 일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는 곳을 만들고 싶다.
이름을 모르는 직원이 없을 정도의 규모까지 사무소를 키울 마음은 있다. 30~40명 정도가 딱 그 정도일 거다. 이를 위해서 나는 지금 개인 작가, 개인 크리에이티브로서의 일을 기꺼이 포기한다. 사무소를 처음 시작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건축가 개인으로서의 명예욕은 많이 줄어들었다. 직원들의 과도한 희생을 바탕으로 그런 것을 이루고 싶진 않다. 남들이 못/안 하는 것을 하고 싶다는 욕구는 여전히 있다. 언젠가 프랭크 게리처럼 50-60살쯤 되어서 맘껏 불태우며 신나게 설계할 수도 있겠다 생각한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언제나 열려있다. 하지만 지금은 디자인을 잘하고, 상을 많이 받고,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보다 지속 가능한 사무실을 만드는 것에 더 관심이 있다. 디자인이나 건물은 상황에 따라 바뀐다. 근본적으로 건축설계업을 서비스업이라고 생각하기에 나의 색깔을 만드는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언젠가 회사 회식 자리에 초창기 멤버부터 다 같이 모였다. 흔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이 회사를 거친 대다수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했다. 직원들의 디자인 성향과 재능이 다 제각각이라는 점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잘 갖춰진 시스템과 환경 안에서 즐겁게 일하다가 어느 정도 적절한 시기가 왔을 때 독립해서 자신의 사무소를 시작할 수 있는 플랫폼 같은 삶것이 되면 좋겠다.
기업과 일하기
우리나라에서 건축 설계를 하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직원 2~3명을 둔 극소형 아틀리에로 1년에 한두 개의 개인 주택 작업을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직원 10명 이상 규모의 사무소로 기업 클라이언트 일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다. 가장 피해야 하는 선택지는 직원 5~10명 규모로 개인 클라이언트 일을 위주로 삼는 것이다. 그 단계는 빠르게 지나가야 할 과도기적 형태다. 생존 가능한 두 갈래 길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선택해야 한다. 나는 규모 있는 건물도 설계해보고 싶었기에 기업 클라이언트 위주의 사무소 방향으로 빠르게 결심했다.

초창기 클라이언트 유형의 비율을 보면 거의 3분의 1씩이다. 일이 생기면 아무거나 다 했을 때인데, 운 좋게 모든 유형의 클라이언트를 경험해가며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관 일은 몇 번 해보고 절대로 하면 안 되겠다고 느꼈다. 의미 있는 일이지만 내 사무소 목숨 하나를 건사하기에 적합한 일은 아니었다. 피할 수 있다면 최대한 피하기로 했다. 그래서 공공건축 현상설계도 안 했다. 개인 사업자의 비율은 꽤 높다가 점점 낮아지면서 안정화되었는데, 개인 클라이언트와 기업 클라이언트의 설계비 수준 차이가 너무 컸다. 설계비 1억짜리 개인 주택 프로젝트 10개를 해서 10억을 버는 것과 10억짜리 사옥 프로젝트 하나로 10억을 버는 것, 두 가지 경우에서 설계 일의 양을 비교한다면 후자가 전자의 반의반도 안 된다. 개인 클라이언트의 일은 규모가 작지만 재미있는 일은 한다. 기업 일은 재미있는 것도, 적당히 괜찮은 수준의 것도 있다. 그 밸런스가 잘 맞아야 한다.
지금은 환골탈태 리모델링 작업을 몇 년 안에 한두 개 하고 싶다. 코스모40 작업 이후부터 공격적 리모델링 작업이 너무 재미있다. 내 성향과도 잘 맞고 앞으로 계속 커질 시장이라고 생각해서 기회가 보이면 뛰어들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잘 안 하던 설계공모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 일은 당선되지 못해도 아깝지 않은 투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면 선택의 기로에서 조금씩 그쪽으로 가게 되는 것 같다. 지금 뒤돌아 생각해보면, 기업 클라이언트의 일을 주로 해야겠다고 결심했을 때도 그랬다. 당장 설계비를 더 주고 흥미로운 개인 클라이언트 일이 있었어도 조금 재미없어 보이지만 기업 클라이언트가 의뢰한 일을 선택했다. 그렇게 내가 분명히 원하는 쪽을 계속 선택해 나가고, 좋은 기회가 왔을 때 과감하게 많은 자원을 투입해 그 기회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게 노력한다.
테디 찾기
사무소의 운영 방향을 연예기획사에 비유하자면 SM, JYP, YG 중 YG처럼 운영하고 싶다. SM은 전형적인 회장과 경영진의 방식인 것 같고, JYP는 대표가 주주이면서도 작곡, 안무를 직접 하면서 가수도 한다. YG는 대표가 직접 안무, 작곡을 하지 않지만, 프로젝트에 관심을 쏟으면서 테디, 용감한 형제 같은 능력자들을 키우며 운영한다. 내가 모든 부담을 짊어지지 않고 주변의 능력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아틀리에 정신을 유지하며 규모 있는 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당연히 테디를 찾으려면 먼저 테디를 찾을 마음이 있어야 한다. 테디를 찾아서 내 밑에 두더라도, 우리가 아는 그 테디가 되도록 만들어 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덜해야 테디를 만들 수 있다. 이에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예측 가능한 시행착오와 비효율을 감수해야 테디가 성장할 수 있다. 심적으로 이를 감수하는 것뿐 아니라 경제적인 여건도 마련해 놓아야 한다.
분산 시스템
사무소 규모를 더 키우고 싶어서 내가 컨트롤하는 부분을 최대한 줄이려고 하고 있다. 핵심적인 것만 논의를 통해 정하고, 나머지는 내가 없어도 팀장이 알아서 끝낼 수 있도록 한다. 어렸을 때는 모든 걸 잘하고 싶었다. 큰 희생을 감수하면 다 잘할 수 있긴 하다. 하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각 분야의 잘하는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더 즐겁고, 많은 것을 배우며, 결과도 더 좋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은 내가 다 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게 건강하지 않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내가 다 했을 때의 결과물보다 나눠서 같이 했을 때의 결과물이 더 좋기 때문도 있다. 이런 분산적인 시스템이 오히려 행복하고 좋다. 회사가 개인의 천재성에 의지할 만큼 나 자신이 뛰어나지 않다. 그리고 섣불리 말하긴 애매하지만 내가 경험해보니 그런 스타일의 사무소 운영은 잘 되거나 직원들이 불행하지 않기가 힘든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의 창의성이든 나의 어떤 것이 우선이 되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다. 과연 그것이 바람직한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것만 하려고 하고 있다.
책임 건축가 체제
처음에는 모든 작업을 나 혼자 할 수 없게 되면서 ‘불가피하게’ 책임 건축가 체제로 변했다. 3년 전쯤에는 아예 팀을 나누어서 운영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바꿔봤더니 훨씬 괜찮았다. 한 사람이 두 작업씩 세 명이 총 여섯 개 작업을 진행하는 것보다 세 명이 함께 여섯 개의 작업을 함께 하는 것이 리스크가 적었다. 그러기 위해서 작업마다 리더가 있어야 했다.
프로젝트의 관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든 직원이 함께 관심을 두고 있다. 우리 사무소에서는 프로젝트의 설계비 측정을 팀장들이 한다. 팀장들은 내가 현실적으로 받아올 수 있는 설계비보다 언제나 더 측정한다. 그러면 나는 최대한 받으려고 노력도 하지만, 팀장들한테는 그것이 왜 현실적이지 않은지도 설명해 준다. 그러면 팀장도 자신이 생각하는 능력과 수준을 이 업계의 상황을 비교하며 더 배울 수 있다. 그들이 나중에 독립해서 일할 때도 도움이 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실적인 설계비 측정과 그 비용 안에서 프로젝트 운영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감대를 형성하고 같이 헤쳐 나갈 수 있다.
최종 현장의 퀄리티 컨트롤에 대해서는 그 작업의 책임 건축가와 스태프들을 믿는다. 내가 모든 작업을 신경 쓸 것이 아니라면 팀원을 신뢰해야 한다. 그래서 애초 채용 단계부터 그 부분을 신경 쓰는 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과연 어디까지를 퀄리티 컨트롤로 볼 것인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300억 규모의 건물을 짓는데 벽 한쪽 돌이 수직 수평이 맞는지까지 건축가가 신경 써야 할 부분일까? 그런 부분은 당연히 시공자가 기본적으로 챙겨야 하는 부분이지만, 많은 건축가가 이를 신경 쓰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아예 무시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건축가의 다른 역할도 많으니 어느 정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인터뷰이 양수인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김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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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2023년 12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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