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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랭크, 동네와 이웃을 잇는 공간

문승규

우리는 ‘건축’이라는 틀에 우리의 역할을 한정하지 않는다.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 사람들의 참여, 운영되는 방식,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등에 관심을 두고 건축가의 지역적,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있다.
– 문승규 공동대표, 대한건축학회 「 건축 」 2019년 12월호 ‘프로젝트 블랭크’ 中

블랭크는 건축사사무소를 중심으로 다양한 지역의 공간 비즈니스를 펼쳐나가는 건축 스타트업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에서 여러 의미와 가치를 찾으며 열심히 해나가고 있습니다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생존일 겁니다. 아마 오늘 발제자로 참여한 분 모두 플랫폼 스타트업 투자유치 생태계 그래프(투자유치 퍼넬 차트)를 보면 많은 생각이 드실 겁니다. 스테이폴리오나 어반플레이는 이미 ‘죽음의 계곡1’을 거쳐 시리즈 단계 투자를 받아서 생존을 이어 나가는 구조이고, 블랭크는 창업한 지 10년 만에 처음으로 시드 투자를 받았습니다. 죽음의 계곡을 열심히 지나가는 중이고요. 건축을 업으로 하면서 투자를 받고 계속해서 성장해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몸소 체험하면서 사업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선택한 전략은 문어발식 경영 확장이었습니다. ‘동네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한 번씩 다 해보자’는 것이죠. 건축가 혹은 기획자, 운영자로서 우리가 필요로 하거나 지역에 필요한, 더 나아가 국내에서 의미가 있을 만한 프로젝트라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달려들었고, 좋은 공간을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건축가의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서 공간이 만들어지기 이전의 기획 단계, 공간이 만들어진 이후의 운영 단계를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간’을 중심으로 공동체와 동네를 어떻게 연결할까, 이왕이면 지역에 버려지거나 방치된 공간을 중심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적, 지역적 임팩트를 어떻게 낼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블랭크의 사업 영역 / 자료 제공: 블랭크
블랭크의 업무 범위와 추구하는 가치 / 자료 제공: 블랭크

초반에 주로 했던 프로젝트는 공공이나 민간 협력 공간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일이었습니다. 공공 공간을 만들면서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동네의 작은 공간을 동네 사람들과 함께 기획하고 만들어 나가는 방법이었습니다. 저희는 2013년 동작구 상도동에 처음 자리 잡은 이후로 쭉 그곳에서 사무실 운영을 하고 있는데, 그 일대에 작은 가게를 열고 싶어 하시는 분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여러 설계 프로젝트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게 되면서 우리가 자리 잡은 지역에 작은 공간을 운영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일상에서 건축을 접하고 만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그때 했던 프로젝트가 ‘우리동네 생활공간 대살림’이었습니다.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작은 공유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가장 처음 시도했던 프로젝트고, 10평 정도 되는 공유 부엌이었어요. 통의동집의 라운지와 비슷한 용도로 쓰였는데, 공연이나 문화 활동, 포럼 등을 저희가 주최하면서 이 공간에 커뮤니티를 모으는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지역에서 여러 문화 활동이나 작업을 하는 분들을 알게 되면서 함께 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든 것이 청춘캠프입니다. 방치돼 있던 pc방을 리모델링해서 운영했고요. 그 이후에는 청춘 파크라는 셰어하우스를 만들어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가고 싶은 술집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비슷한 생각을 가진 이웃을 모아서 공집합이라는 이름의 커뮤니티 바를 차렸고,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습니다. 저희에게도 본업이 있으므로 이런 공간의 운영은 최소한의 에너지를 쓰면서도 커뮤니티를 느슨하게 모을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서울에서 저희가 운영하는 공간이나 설계에 참여했던 작은 가게들, 팀원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이 대부분 반경 500m 내에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동네 생활권과 커뮤니티를 만들어 왔습니다. 

서울 상도동을 중심으로 만들어 온 동네 생활권과 커뮤니티 / 자료 제공: 블랭크

창업하고 5년 정도 지나니까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하나둘 지방으로 이주하기 시작했어요. 이런 흐름을 흥미롭게 지켜보다가 우리도 꼭 서울에서만 프로젝트를 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다양한 지역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여수에 180평 규모의 빈 상가를 5년 동안 최저 임대료로 빌려주겠다는 디벨로퍼가 나타났어요. 그곳을 포트타운이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요.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맞닥뜨린 실질적인 문제는 우리가 살 집을 찾는 문제였어요. 그때 프로젝트 기획을 하면서 팀원 3명과 여수로 이주하게 되었는데, 집 구하기가 정말 어려웠습니다. 지방으로 가는 김에 단독 주택에 한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임대 매물을 찾아보았는데 거의 매매 위주였습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아파트뿐이었어요. 이를 계기로 지역에도 주택 다양성이 부족하다고 느껴졌고, 저희가 건축가로서, 기획자로서 지방 소도시에 지속 가능한 정주 환경을 만들어 보자는 미션을 세우게 되었어요. 그리고 이게 저희 사업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저희는 지방의 빈집 문제와 연 20만 명 정도 되는 실질 귀촌 인구의 거주 문제를 복합적으로 해결하는 방향으로 접근했습니다. ‘살고 싶은 동네, 시작하는 새로운 일상’이라는 슬로건 아래, 빈집을 필요한 사람에게 연결해 주는 유휴라는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빈집 중에서도 단독주택에 초점을 맞추고 거주 성능을 높일 수 있는 방식을 고민하면서 빈집 매물 데이터를 확보하는 데 집중하고 있습니다. 올해 10월에는 빈집 관련 애플리케이션을 론칭할 예정입니다. 앞으로 전국에 있는 빈집 정보를 확보하여 리노베이션해서 성능을 개선하고, 저희가 임대관리를 해서 가볍게 거주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는 것을 집중적으로 할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이 플랫폼을 통해서 귀촌 커뮤니티를 만들어 나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단계별 귀촌을 타겟으로 삼아 사업을 확장해 나갈 계획도 하고 있고요. 

‘유휴’ 사업 개념도 / 자료 제공: 블랭크

이와 연계해서 작년까지 전국의 빈집을 수리하는 경험을 했어요. 남해나 제주, 여수, 속초 지역 단독 주택 건물주와 협의를 통해 장기로 빌리고 수리해서 단기로 빌려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요. 현재는 영주를 베이스로 삼아서 안동과 단양에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에 저희가 공간을 운영하면서 227명 정도가 공간에 머물렀고, 평균 거주 기간은 26일 정도였습니다.

저희의 일은 고객이 찾아오기를 기다리기보다는 건축이 필요한 이들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저희는 계속해서 저희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갈 예정이고 그런 것들이 저희의 원동력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편안하고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공간을 계속해서 만들어 나가는 건축 스타트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저희의 바람을 말씀드리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문승규

문승규는 서울대학교에서 건축과 도시를 공부하고 2013년 블랭크를 창업했습니다. 블랭크는 ‘건축’이라는 틀에 역할을 한정하지 않고 공간이 만들어지는 과정, 사람들의 참여, 운영 방식,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력 등에 관심을 두고 건축가의 지역적,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공유부엌 ‘청춘플랫폼’, 공유작업실 ‘청춘캠프’, 공유주택 ‘청춘파크’ 등을 운영하였고, 현재 커뮤니티 바 ‘공집합’, 빈집 큐레이션 플랫폼 ‘유휴’ 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블랭크, 동네와 이웃을 잇는 공간

분량3,632자 / 7분 / 도판 4장

발행일2023년 11월 17일

유형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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