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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

최재영


더퍼스트펭귄은 건축이라는 바운더리보다는 좀더 넓은 영역으로 다양하게 활동하고 있는 팀으로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희도 다른 팀들처럼 스테이 프로젝트를 위한 별도의 관점이나 태도를 취하지 않습니다. 기본적으로 저희 스튜디오의 일관된 방법론 안에서 스테이 작업에 접근하고 있어요.

통합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 / 자료 제공: 더퍼스트펭귄

먼저 저희의 디자인 방법론, 통합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무엇인지 설명하겠습니다. 통합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은 네 가지 정도로 층위를 구분 지을 수 있습니다. 첫 번째가 형상, 형태, 재료, 구조, 색입니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이야기들이 있겠지만 크게 구분해 보자면 이렇게 다섯 갈래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공간의 물리적인 형태와 형상이 분명히 존재하는 한편, 조금 더 깊게 들어가면 2행에 적은 것처럼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만 형상이나 형태가 없는 것들이 있겠죠. 조금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가면 3행의 그래픽과 어플리케이션, 음악, 향, 오브제도 다루어야 할 대상입니다. 저희는 굉장히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는 분야입니다. 2행에 있는 소리가 자연 발생적인 자연의 소리라면 3행의 음악은 BGM과 같이 우리가 의도한 혹은 어떤 목표를 가지고 공간에 울려 퍼지게 만든 인위적인 음악을 의미합니다. 다음 단계로 네 번째, 마지막 층위를 보자면 3행보다 훨씬 깊은 이야기일 텐데 어떤 브랜드 혹은 건축주가 가지고 있는 철학과 전략과 운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1, 2행에 속하는 개념이 아마도 전통적인 의미에서 건축과 공간에서 다루는 이야기일 것이고, 3, 4행은 브랜드 관점의 이야기입니다. 두 영역의 이야기를 합쳐서 한 번에 다루고 싶다는 것이 저희 팀이 추구하는 방향성이고요. 물리적인 공간 요소와 비물리적인 브랜드 요소의 화학적이고 동시적인 결합을 통한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 통합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이고, 축약하면 ‘통합’과 ‘경험’입니다. 이러한 방법론을 바탕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만든 공간을 찾은 사람이 무엇을 느끼고 또 어떤 경험을 공유할 것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설계를 해나가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저희 작업의 프레임웍을 소개하겠습니다. 

  1. 전략적 목표는 무엇인가
  2. 어떤 경험을 만들어낼 것인가
  3. 경험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4. 어떻게 화학적 동시적으로 결합할 것인가

첫 번째는 프로젝트의 전략적 목표가 무엇인지를 설정하는 데에서 출발합니다. 전략적 목표는 정량적으로 명쾌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지만, 우리가 만든 이야기가 성공했는지 아닌지, 최소한의 성패를 확인할 수 있는 정도의 목표로 가능한 구체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테면 ‘사람들이 많이 사랑해 주는 공간을 만들 거야’는 전략적 목표가 될 수 없죠. 측정 가능한 이야기에 머물기 위해 노력합니다.

목표가 설정되면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서 어떤 경험을 세세하게 만들어 낼 것인가로 넘어갑니다. 사람이 건축과 공간을 누리면서 하게 되는 원초적이고 현상적인 경험이 당연히 있겠죠. 그러나 우리가 말하는 경험은 그런 것을 넘어선, 혹은 그런 것과 선을 달리하는 이야기를 의미합니다. 무엇을 바라보게 할 것인가, 무엇을 만지게 할 것인가, 혹은 그런 것들의 합을 통해서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할 것인가와 같이 조금 더 디자이너의 의도가 가미된, 적극적인 의미의 경험이라고 이해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경험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입니다. 정확하게 표현하면 ‘건축주나 클라이언트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예요. ‘그의 취향은 무엇인가’, ‘그가 가져온 땅 또는 건물은 어떤가’, ‘어떤 사이트의 특성이 있나’부터 ‘그가 얼마의 예산이 있는가’, ‘얼마 동안 이 건물을 유지할 수 있는가’처럼 건축주가 가지고 있는 자원 안에서 경험을 만들어 내야 지속 가능합니다. 사실은 저희가 하고 싶은 것, 저희의 의도가 훨씬 많이 반영된 프로젝트를 했던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면 굉장히 멋있고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결국 공간의 수명이 얼마 못 가는 경우가 있었어요. 왜냐하면 건축주가 가진 것에서 출발하지 않았거든요. 그런 경험을 토대로 볼 때, 3번에서 핵심적인 것은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클라이언트가 가진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화학적 그리고 동시적으로 어떻게 결합할 것이냐는, 아직도 숙제예요. 모든 프로젝트에 일괄 적용되는 기준이 없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프로젝트마다의 여건과 상황 안에서 최대한 우리만의 이야기를 해내려고 노력하고요. 모든 것을 공식화하고 공간을 만들어 낼 수는 없겠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갔는지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제 남해

이제 남해는 저희가 한 최초의 스테이 프로젝트이자 작은 규모의 호텔로, 고즈넉한 남해 지역에서도 거의 왕래가 드문 장소에 있습니다. 이 지역에 대한 첫 감상은 고요했어요. 도시의 온갖 소음에 익숙해져 있다가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되어서 생경한 기분을 느끼게 됐어요. 동시에 제가 평소에 좀 잘 쓰지 않았던, 도시에서 억눌려 있던 내 감각들이 열린다고 생각하게 됐고요. 그로부터 힌트를 얻어서 이 호텔에 어떤 가치를 부여해야 하는가, 어떤 경험을 선사해야 하는가에 대한 해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이 장소에서 느꼈던 것처럼 이곳을 경험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평소에 가지고 있지 않았거나 조금 억눌려 있던 감각을 열어냈으면 좋겠고, 그것을 통해서 그 사람의 마음에 활기를 얻는다면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즐겁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의 전략적 목표이자 ‘이제’라는 브랜드의 대주제를 ‘감각을 열어 감응을 이끌어 내자’는 문장으로 끌어냈습니다.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무뎌진 감각을 깨우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여기에 클라이언트가 준 숙제는 이곳을 스파 호텔로 만든다는 것과 일본의 료칸처럼 석식과 조식을 제공한다는 것이었어요. 그 얘기가 마침 감각과 연결돼 있더라고요. 스파 경험은 피부 전체의 촉각을 깨워주는 감각 경험이고, 음식을 먹는 행위 역시 미각을 열어주는 감각적인 행위입니다. 그런 이야기들이 우리가 세운 전략과 굉장히 맞는다는 생각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실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호텔은 한 번 숙박하면 세 가지의 다른 타입의 스파를 경험할 수 있어요. 방에서 히노끼 욕조에서 하는 스파, 상체는 차갑고 하체는 따뜻하게 할 수 있는 야외 스파, 그리고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가족끼리, 연인끼리, 우리끼리만 누릴 수 있는 스파인 별채탕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저희 디자인 방법론에 네 가지 층위, 19가지 주제가 있다면, 이 프로젝트에서는 그중에서도 운영과 전략이 가장 큰 줄기였다고 생각합니다. 한 번 숙박을 하면서 세 가지 타입의 스파를 경험한다는 전략은 다소 과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스파 경험의 깊이를 만들어야 한다는 측면에서 유의미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빛과 그림자, 바람, 풍경 같은 자연 요소와 지역의 맥락과 언어를 잘 적용하려고 노력했던 프로젝트였습니다.

대지 앞쪽으로 남해의 갯벌이 펼쳐져 있는 이제 남해 / 사진: 홍기웅
이제 남해 실내 스파 / 사진: 홍기웅
이제 남해 별채탕 / 사진: 홍기웅

이제 경주

두 번째 프로젝트는 이제 경주입니다. 불국사 앞에 있는 오래된 유스호스텔을 리노베이션 했습니다. 이제 남해와 ‘감각을 열어 감응을 이끌어 내자’는 대주제가 같고, 사이트만 달라졌죠. 남해 프로젝트에서는 감각을 여는 대상이 자연이고 외향적으로 열려 있다면, 경주 프로젝트는 내향적으로 호텔 안에서의 감각을 어떻게 열어줄 것인가에 집중했습니다.

이 주변은 불국사를 비롯한 역사적인 장소가 많은데, 이 호텔을 찾는 모두가 역사적인 장소에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그래서 외부 맥락을 따오면서도, 내부에서 완결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게끔 노력을 많이 했어요. 예를 들어 호텔 내부에 조성한 수공간은 불국사에 있었던 과거의 수공간의 맥락을 이어온 것이고, 불국사 열주의 인상, 색감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실내 공간은 아무래도 관 차원에서 조금 더 전통적인, 한국적인 이미지를 요청하기도 했고, 저희 역시 불국사라는 맥락에서 조금 더 한국적인 이야기를 했으면 하는 생각에 종이 장판을 사용했고, 그 위에 콩기름을 발라서 마감했어요. 가구의 톤도 한국적인 인상에 맞추어서 설계했습니다. 이 지역에서는 꽤 규모가 있는 개발 사례였기 때문에 부담되는 부분도 있었지만, 결국은 하고자 했던 ‘감각’에 대한 이야기를 놓치지 않으면서 지역과 잘 어울리도록 노력했습니다.

전통적인 요소와 색감을 차용한 이제 경주 / 사진: 홍기웅
이제 경주 실내 공간 / 사진: 홍기웅
이제 경주 / 사진: 홍기웅

스테이 나아하

스테이 나아하의 이름은 ‘나무 아래 하루’를 줄인 말입니다. 원래는 ‘나무 아래 오후’라는 이름으로 운영되던 카페였어요. 처음에 대지에 자리한 나무 한 그루 때문에 이름을 그렇게 지었대요. 클라이언트가 브랜드의 맥락을 이어가면 좋겠다고 해서 ‘나무 아래 하루’라는 이름으로 브랜딩하며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이곳의 전략적 목표는 ‘소그룹을 위한 스테이를 만들자’는 것이었어요. 클라이언트가 처음에 ‘객실 세 개 정도로 나눠서 세 팀을 받을 수 있는 스테이를 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저희는 경쟁력이 없다고 느꼈어요. 굳이 공간을 쪼개서 가족을 위한 스테이를 만드는 것이 전략적으로 도움이 될까, 하는 의문을 갖고서 ‘여기는 소그룹을 위한 스테이라는 명확한 목표로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가족보다도 10명 정도의 그룹을 위한 독채 스테이로 설계했습니다.
여기서 가장 먼저 할 일은 대지 주위의 산만한 것을 제거하는 것이었어요. 주변에 최근 3년 새에 난립한 펜션들을 시각적으로 차단하고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담장을 길게 만들었어요. 고립된 시공간의 경험을 만들기 위한 장치로요. 실내에서 보았을 때 건물만 가리고 그 너머의 산세 풍경은 볼 수 있는 높이를 설정했습니다.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여기서는 모든 것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경험에 초점을 맞추려고 노력했습니다. 다이닝 공간도 10명 이상이 크게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이고요. 10명 이상이 실내 화롯가에 둘러앉아서 그들만의 시공간을 좀 경험할 수 있게 만들었고, 수영장도 깊이가 1,500mm로 깊고 크게 만들었습니다.

저희 디자인 방법론으로 보자면, 특히 콘텐츠에 집중했던 프로젝트입니다. ‘나아하에서 할 수 있는 12가지 경험 요소’를 만들어서 이 공간에서 느꼈으면 하는 이야기들을 아주 섬세하게 설계하기도 했고요. 그리고 함께하는 것에 의미를 둔 전략을 뒷받침하는 장치로 조명이 있습니다. 그룹이 모여서 소파에 앉아서 이야기하거나, 다이닝에 모여있는 장면, 그 너머에 있는 큰 아일랜드 주방에서 요리하면서 이야기하는 장면, 각각을 위한 조명을 따로 설계해서 각자 공간을 즐길 수 있게 했어요. 발표는 여기까지입니다.

스테이 나아하 / 사진: 홍기웅
10명 규모의 소그룹이 머무를 수 있는 실내 공간 / 사진: 홍기웅
따로 또 같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섬세하게 세팅한 조명 / 사진: 홍기웅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더퍼스트펭귄

최재영은 브랜드 관점으로 건축과 공간을 다루며, 그래픽, 가구, 조명 등 영역의 경계를 두지 않는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더퍼스트펭귄을 2012년 설립 후 지금까지 이끌고 있습니다. 근작으로 이제 남해, 무거 버거, 식스티세컨즈 라운지 등이 있습니다. http://t-fp.kr

통합 공간 사용자 경험 디자인

분량5,600자 / 11분 / 도판 10장

발행일2023년 11월 17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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