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적 사고 너머의 건축가 김종성
김종성 × 천장환
분량9,398자 / 20분 / 도판 6장
발행일2015년 1월 15일
유형인터뷰
건축가 김종성은 간결하고 정갈한 인상을 가졌다. 서린동 <SK 사옥>, 경주 <선재미술관>(현 우양미술관), <국립 역도경기장> 등 그의 작업도 그 인상을 닮았는데, 이는 탄탄한 기초를 바탕으로 완벽함을 추구한 결과다. 출발은 미스의 “더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Less is More”였지만, 다시 보니 그의 고유 건축언어가 곳곳에 드러난다. 2014년 보관문화훈장과 제1회 건축가협회 골드메달을 수상한 그는 가을부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회고전을 열고 있다. 경희대학교 건축학과 천장환 교수가 그를 만났다.
김종성 한국의 근대건축 발전에 선구적 역할을 한 건축가로 평가받고 있다. 미스 반 데어 로에 Mies van der Rohe의 유일한 한국인 제자이자 동료로서, 그의 모더니즘 건축을 체험하고 습득한 김종성은 특히 드로잉, 재료, 비례, 구조 등 건축의 기본 요소들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며, 테크놀로지와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절제된 미학을 보여준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1935년 서울에서 출생해 일리노이 공대를 거쳐 미스 사무소에서 10여 년 근무 후에는 일리노이 공대의 건축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한국에 돌아와 서울건축을 설립했고, 이후에 베니스 건축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2002)를 비롯해 국내외 굵직한 프로젝트들의 국제현상설계의 심사위원장을 지냈으며, <힐튼 호텔>, <역도경기장>, <선재미술관>, <서울대학교 박물관>, <아주대 부속병원>, <에너지시스템연구소>, <아트선재센터>, <SK 사옥> 등을 설계했고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다.
인터뷰어 천장환 연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의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건축학 석사(M.Arch)를 받았다. 졸업 후 5년간 뉴욕과 보스톤에서 실무를 익힌 후 2009년 가을부터 네브라스카 주립대에서 3년간 조교수로 근무했고, 2012년 9월부터 경희대학교 건축학과에서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아울러 이머시스(www.emer-sys.com)를 통해 건축과 도시 및 가구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스케일을 넘나들며 리서치 및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 『현대 건축을 바꾼 두 거장』(2013) 이 있다.
천장환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의 《테크놀로지와 예술의 조화_건축가 김종성》에 전시된 도면의 완벽함에서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IIT(일리노이 공과대학교)에서의 교육과 미스 반 데어 로에(1886~1969)의 사무실에서 받은 훈련 때문이겠지요.
김종성 미스가 만들었던 5년제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처음 학부 3학년까지는 아주 기초적인 것들, 가령 짓는 방법, 벽돌, 목재, 돌, 철근 콘크리트, 강철 등의 필수 기초과목을 배우는 기간이 있어요. 특히 2학년 올라가면 일반역학, 구조역학 등을 배우고요. 그것이 근간을 이룬 다음에 4, 5학년이 되면 ‘미스의 공간학Miesian Spatial Concepts’을 배우는 거죠. 5학년이 되면 단일 건물이 아닌 몇 개의 건물이 도시 환경에서 어떻게 연결이 되고, 또 시설물이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 전기나 수도는 어떻게 들어와서 나가는지에 대한 원칙을 가르쳐요. 4학년이 되면 건축 스튜디오 중심에 있게 되고, 별도의 도시계획 스튜디오도 있는데, 이곳에서는 건축보다는 조금 더 앞서서 큰 도시 규모의 프로젝트를 맡기도 했죠.
같은 시기에 다른 학교의 건축과에서는 1학년 때부터 주택을 가르쳐요. 그것도 나름의 이점이 있을 수 있지만 저는 찬성하지 않아요. 건축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창의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은 좋지만, 기초를 탄탄하게 하는 미스가 지향한 IIT 교육과정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당시 많은 건축 학교는 학부 4, 5학년 때 ‘디자인다운 디자인’을 시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미스를 공격했지만요.
천장환 국내 작업들을 보면 미스의 정신을 이어받되 한국적 감성이 많이 들어간 듯 보입니다. 가령 미스는 커다란 단일 공간 위주이지 작은 공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아트리움 공간이 없지요. <SK사옥>의 입면 디테일이 창호지의 창살을 연상시키는 것이 대표적이지 않나 합니다.
김종성 미스와 다르게 하려고 의식한 것은 없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에 몇몇을 모아놓고 보니 내가 봐도 미스에게서 많이 벗어난 것을 느껴요. 예를 들면, 미스는 아트리움을 통해 공간이 수직으로 상호 관입하는 것은 하지 않았어요. 천공창skylight도 쓰지 않았고요. 그러니까 베를린의 신국립미술관Neue Nationalgalerie도 자연광이 들지 않기 때문에 그 내부 공간은 상당히 어둡다고 봐야지요. 그리고 미스의 실현되지 않은 프로젝트 중에 시카고 컨벤셔널센터가 있는데 그게 무려 가로 세로 216mx216m에 높이가 약 220m거든요. 미스는 이 프로젝트에 자연광 도입을 거부했지만, 나는 건물 폭이 깊어지면 가운데로 자연광이 들어오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서 다양한 천공창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서부터 내 건물이 미스의 영향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해요. 국내에서는 경주 선재미술관(현 온양미술관)과 서울역사박물관, 그리고 국립 역도경기장(지금의 우리금융아트홀)에 적용했죠. 나는 자연광을 어떻게 도입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천공창 말고도 다른 중요한 것은 21살 미국에 가기 전까지 머릿속에 담아 놓은 시각적인 기억들입니다. 그 기억들로 자꾸 회귀하면서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고 이들이 작업에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죠. 그러다보니 거인 같은 규모는 의도적으로 피하려 했고, 높은 로비를 만들어야하는 상황이더라도 6m 이내에서 그치지 8~9m까지는 올리지 않는단 말이에요. 현대건축이라 하면 극단적인 비례로 인한 충격을 떠오릴 수도 있지만, 나는 한국적 감성에서 제일 중요한 요소는 비례이고, 내 또래가 보고 생활한 시각적 요소에서 크게 벗어나는 것은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이죠.


미스 반 데어 로에, 작업의 출발점
천장환 저는 미스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판스워드 주택>이 그의 예술적 감성과 공간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미스의 최고 작품과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종성 지금의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을 최고로 꼽을 수 있겠습니다. 1929년의 것을 재현한 것이지만 원본 못지 않은 가치를 갖고 있죠. 그 다음은 <시그램 빌딩>(1958)이 될 겁니다. (천장환: 저는 <시그램 빌딩>이라고 하실 줄 알았습니다.) 전자가 더 중요한 이유는 학술적으로 분석이 안 되는 공간, 다시 말하면 물질적으로quantitative 분석하기 힘든 공간이지만 이 파빌리온이 <판스워드 주택>으로도 연결되고, 여기서 미스가 제시한 공간 콘셉트는 지금까지도 널리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시그램 빌딩>은 전세계 대도시의 고층빌딩 중 할아버지 뻘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죠. 이후에 그보다 3배, 4배 더 높은 건물을 짓는 기술을 갖게 되지만, 고층건물을 지을 때 <시그램 빌딩>을 벤치마킹하지 않는 건축가는 아마 없을 겁니다.

천장환 건축의 디테일과 그 디테일이 만나서 이루는 공간은 양 극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의 작업이 대단한 이유는 이 두 가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시는 점은 무엇입니까? 건축가에 따라 어떤 이는 시작 전에 해당 현장에 가서 그곳의 기운을 느끼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최신 과학이나 생물학에서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김종성 나는 분석적으로 접근합니다. 우선 사이트를 보고, 설계 요건을 중점적으로 분석한 다음, 보편적인 기법이 필요한지, 아니면 특수 구조 기법이 동원되어야 하는 건지 살펴봅니다. 특수 구조는 <국립 역도경기장>을 예로 들 수 있겠습니다. 이 경기장은 올림픽위원회의 요구를 반영했는데, 무려 가로 세로 60mx80m 공간을 기둥 없이 장스팬으로 해결해야 했어요. 당시 올림픽 시설은 김수근 씨가 총괄했는데, 실내체육관 자문을 위해 데이비드 가이거 박사를 서울에 종종 초대했습니다. 한번은 저녁식사 때 가이거 박사가 내 옆자리에서 식사를 했는데, 내 고민(쌍방향 대각자형 격자방식two way diagonal grid)을 얘기했더니, 그가 뉴욕 자연사박물관 전시를 위해 설계했던 입체 트러스 사례가 참고가 되겠다며 조언해주었고, 뉴욕에 돌아가자마자 복사한 것을 보내주었어요. 우리 쪽의 구조 전문가들도 그걸 보고 찬성했고요. 그의 제시를 적용하면, 덮는 면적 당 철골도 줄고, 지붕 아래의 구조 간격이 위의 구조의 1.4배로 듬성듬성하게 가기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방해가 되지 않아요.
다음으로 보편성을 고려해야하는 경우는 오피스빌딩들이 그러합니다. 제가 설계한 게 10층 정도의 중간 크기도 많았고, 20층짜리도 2년 사이에 4개 정도를 했어요. 서울에는 <대우증권 여의도>, 힐튼호텔 옆 <대우문화재단>, 을지로 2가에 <동양투자금융>가 있는데, 모두 같은 해에 디자인했습니다. 오피스빌딩은 공통적으로 중심부의 효율성이 매우 중요하고, 면적에 따라 기둥 간격을 7.2m, 8m, 9m 등으로 배치합니다. 즉 요구되는 건축의 요소가 무엇인가 파악한 다음, 거기에 제일 타당한 구조기법을 동원하는, 분석적이고 예리하게 접근하죠. 그러니까 어떤 섬뜩이는 영감을 가지고 스케치해 만들어내는 스타일은 아니지요.
천장환 <역도 경기장>의 구조는 제가 이제껏 본 건물 중 가장 아름다운 것 중 하나로 매우 명쾌하고 시원합니다. 표현 역시 적절하면서도 확실한데,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도 항상 숙제이고요.

김종성 그런데 아쉬운 것은 이 경기장이 지금은 <우리금융아트홀>로 개조되어 뮤지컬극장이 됐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충격을 받았는데, 시간이 지나며 생각해보니 가이거 박사가 추천해준 입체 트러스의 수명이 50년, 80년 등 굉장히 깁니다. 그러니 그 구조는 계속 남아있을 텐데, 보통 문화사업의 예산이 적지 않으니 그 뮤지컬극장이 오래 갈 것인지는 알 수 없죠. 그렇다면 다른 용도를 찾을 텐데, 그땐 이 투명한 스팬을 활용해서 다용도 공연공간이 되기도 하고, 극장처럼 어둡게 해서 조명을 쓰기도 할 겁니다. 또다른 개조의 가능성을 기대해볼 수 있는 것이죠.
힐튼 호텔, 선재미술관 등의 분석적 접근
천장환 <선재 미술관>은 선생님의 대표 작품 중 미스의 영향이 가장 적게 드러난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선생님이 단순히 모더니스트나 미스 양식Miesian의 건축가라고 정의하기 이전에 합리주의자로 볼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합니다. 특히 <선재 미술관>은 철과 유리만을 사용한 장스팬의 기둥 없는 공간이 아니라 기둥으로 공간을 적절히 구분했고, 자연채광을 내부로 적극 끌어들인 점이 높이 살만 합니다. 이 미술관을 디자인 할 때 가졌던 공간과 빛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김종성 80년대 말에 미술관과 박물관이 많이 신축되었고, 당시 주요 이슈 중 하나가 자연광 허용 여부였습니다. 1978년에 지어진 아이엠 페이I.M. Pei의 <내셔널갤러리> 이스트윙이 그 예인데, 여기에는 펜트하우스 갤러리에만 자연광이 들어오고 다른 부분은 완전히 블랙박스예요. 형태와 디테일은 매우 감탄스러웠는데 나머지 부분을 블랙박스로 만든 것은 아쉬웠습니다. 그후 8년 뒤 <선재 미술관>을 시작하게 되었고, 저는 천공창에서 자연광이 들어오도록 처음부터 방향을 잡았습니다.
천장환 <힐튼 호텔>의 내부 아트리움은 보면 볼수록 우아한 공간입니다. 지금도 이 정도의 공간감을 가진 호텔 로비가 흔하지 않은데요. 로비-아트리움-라운지-후정으로 연결되는 시퀀스는 단순히 앞과 뒤의 고저 차이를 극복하는 장치 이상의 호텔 안 투숙객에겐 잊지 못할 남산에서의 경험을 선사하는 듯 합니다. 후정으로의 연결이 좀 더 적극적이어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만, 1983년도 당시에 어떤 생각으로 이런 공간을 만드셨는지요?

김종성 설계작업을 시작한 게 1977년이었는데, 서울로 오기 전 약 10개월 정도 이미 시카고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 사이트를 갔는데, 진입구가 퇴계원에서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길이었는데 원래는 그곳이 쓰레기 적치장이었어요. 그래서 아침마다 쓰레기 트럭들이 오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대우 측에 남산순환도로 쪽의 작은 땅 몇 개를 (비싸더라도) 사야한다, 남산 쪽에서 진입로를 만들어야한다고 적극적으로 권고를 했고, 다행히 받아들여졌어요. 아주 작은 필지들이었죠. 그리고 대지의 앞과 뒤 낙차가 12m예요. 그 차이를 활용해서 여기를 지하라 부르지 않고 지금도 로어lower 로비로 부르는데 여기에서 천공창까지 높이가 18m가 되요. 이는 제가 시카고에 있을 때부터 착안을 했던 건축적 도구이고, 이걸 공부하면서도 시간을 많이 보냈죠. 당시 건축주와 힐튼 인터내셔널에게 설계 과정과정마다 설명을 드렸는데, 특히 힐튼 측에 아트리움을 설명할 땐 그들도 딱히 비교되는 비슷한 호텔이 없으니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어요. 결과적으로는 그들도 좋다고 판단해서 진행이 되었습니다. 그때 힐튼 인터내셔널의 주주가 오스트리아 출신의 커트 스탠리라는 사람이었는데, 아주 실험적인 호텔을 지은 것으로 유명하거든요. 그가 호텔 오프닝에 와서도 내게 아주 좋다고, 예상 외로 만족한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천장환 <SK 사옥>의 절제된 형태와 뛰어난 비례감, 독특한 외부 디테일 등은 언뜻 보면 미스의 <시그램 빌딩>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것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도시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시그램 빌딩> 앞에 펼쳐진 널찍한 마당은 뉴욕의 빽빽한 고층 건물들 사이에서 오아시스 역할을 하지만, 아쉽게도 그 광장은 관상용에 가깝습니다. <SK 사옥>은 (주차장은 아쉽지만서도) 청계천에 면한 아기자기한 공원이 주는 친밀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는 도시에서의 대규모 상업시설이 갖는 미덕은 무엇인가요?
김종성 시그램 프라자와 비슷한 전정이 <SK사옥>에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건물 앞쪽은 북향이거든요. 그리고 나는 동대문에 옛 한양이던 시대의 기록을 유지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종로를 면한 건물을 후퇴시키지 않기로 했고, 일단 건물을 후퇴시키는 것은 좋은 어반디자인이 아닌 것으로 결론을 냈어요. 다행히 그것을 짓고 난 다음에 청계천이 살아났기 때문에 지금은 상승효과가 있지만 나로서는 향이 남쪽을 향했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있었습니다.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조금 더 개선할 방법이 있겠지요. 근데 이 건물이 앉아있는 1층 면과 청계천 면이 약 4m의 낙차가 있습니다. 만약 층면(레벨)이 비슷했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풍경이 될 수 있었지요.
천장환 하지만 지금도 청계천에 온 많은 사람들이 그 정원에 와서 많이들 쉬곤 하거든요. 저는 그렇게 공간을 작게 나누어 놓은 것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더 좋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김종성 규모가 큰 오피스 빌딩이 도시에 속해 있으려면 보행인과 건물을 사용하는 사람 모두를 도울 수 있는 도시디자인의 제스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사회적 예술 건물마다 부여된 과제
천장환 선생님의 작업이 늦게나마 이렇게 조명이 되어 젊은 건축가들이 좀 더 들여다볼 수 있는 게 매우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대부분의 건축가가 구축 부분을 경시하기 때문에 (물론 그것을 제대로 표현할 만한 프로젝트가 없기도 하겠지만) 대부분의 건물이 노출 콘크리트나 벽돌 등으로 구조를 가립니다. 결과만 놓고 보면 어느 것이 누구의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비슷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개선할 수 있다고 보십니까.
김종성 4층 정도의 규모가 작은 근린생활시설에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꼭 덕목은 아닌 것 같아요. 부분적으로 말하자면 유리창이 없어도 되는 곳이면 외벽체가 벽돌이든, 돌이든 막아주는 것이 구성을 더 아름답게 만드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학급이 25개 정도 되는 학교의 구조는 교실 하나가 모듈일 텐데, 그 모듈을 살리면서 외관을 디자인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예를 든 근린생활시설 모두에 구조를 살린다면, 거기서 충돌하는 리듬이 더 아름답지 않을 수 있죠. 그래서 그러한 작은 스케일의 건물에는 구조를 드러내는 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천장환 한국의 많은 젊은 건축가들이 어려운 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경기가 안 좋은 데다가 특히나 설계사무실 구조의 양극화가 큰 문제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젊은 건축가들에게 해주실 충고 내지는 격려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김종성 가르치는 일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일이 없을 때엔 그 시간을 교육활동에 쓰는 것이 좋은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여가에는 좋은 건물들을 보러 나가는 것이 중요하고요. 물론 수입이 없으면 그런 여가를 만들기 어렵겠지만, 주변 친구들 몇몇이 기획한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몇 년 사이 지어진 화제작들을 보고 올 수도 있을 겁니다. 나는 서울건축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과 1년에 한 번은 건축들을 보러 여행하는데, 가까운 일본만 해도 3박 4일로 충분히 좋은 건축들을 보고 올 수 있습니다. 받은 설계비를 그런 데 투자하는 것이 미래를 위한 투자이기도 합니다. 멘탈 레퍼토리를 축적하는 첩경이기도 하고요.
천장환 선생님의 존함과 작품은 예전부터 유명했지만,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와 한국 건축가 협회 1회 골드메달 수상을 계기로 다시금 주목을 받으셨습니다. 사실 이제껏 한국 건축계의 풍토 자체가 어떠한 성취를 이루신 분에 대한 예우가 좀 부족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한국 건축계의 원로로서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김종성 그렇게 이야기 하니까 갑자기 10년 정도가 늙은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어영부영 하다 보니 나에게 선배가 되는 분들도 한분 두분 안 계시게 됐고요. 김수근 선생도 28년 전에 갔고, 김정철 회장도 가신 지 4년쯤 됐지요. 그리고 이승후 회장도 가신지 얼마 안 되고… 나보다 2년 즈음 위의 선배들이 가기 시작하니까 나도 조금 초조해요. 현재 우리 건축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으니 젊은 후배들은 효율적으로 시간을 잘 써야 합니다. 앞서도 여행을 권했지만, 건축을 실제로 보고 판단력을 기르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건축에 대한 중요 서적들도 다양하게 접하면 좋겠습니다. 컴퓨터 그래픽에 너무 빠져 있지 말고요.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들은 형태 만들기가 재미 있으니 잘 빠지더라고요. 나는 일부러 그것을 피하려고 학부 때 읽던 책을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좋은 건축들이 왜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주목받는가 그리고 건축의 불가결한 책들하고 비교해보며 지금 사람들한테 주목받는 건축이 왜 주목을 받는지 판단하는 자기 능력을 갖출 수 있습니다. 환경은 시계추처럼 다시 자리를 잡아 호전되기 마련이니 본인이 열심히 준비했다가 시기를 만나면 그 때 도약하면 된다고 봐요.
천장환 그렇지요. 경기는 언제든 좋아질 것이고요, 그때 가서 준비된 사람과 준비 안 된 사람은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렇게 많은 세대들이 같이 건축 선배님들을 자주 뵐 수 있는 자리들이 많이 생겼으면 어떨까 합니다. 서로 예우도 해주고. 예를 들면 영화계나 음악계는 선후배가 챙기고 이런 것들이 있는데. 건축계는 그런 것들이 있지만 참 파편적이라서. 큰 자리들이 있기를 기대해봅니다. 끝으로, 좋은 건축가란 어떤 걸까요?
김종성 건축도 예술이지만, 회화나 조각과는 다르게 사회적 역할을 하는 예술이거든요. 좋은 건축가라면 그 사회적인 역할의 요체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 건물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 다음 만들 때는 그동안 열심히 배우고 수련해서 터득한 것을 적용하는 것이지요.
*모든 이미지는 <시그램 빌딩>을 제외하고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제공 받았다.
논리적 사고 너머의 건축가 김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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