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도 불명의 라운드어바웃
박성태
분량2,070자 / 4분
발행일2015년 1월 15일
유형서문
1년 전에 재단의 사무실을 안국동에서 서촌의 통의동으로 옮기면서, 36제곱미터(약 11평) 크기의 공용공간인 ‘라운드어바웃’을 만들었다. 한 켠에 서가를 두어 평상시에는 동네 공부방이었다가, 매주 같은 시간에는 강연이나 공연이 열리고, 1층에 있으니 누구라도 지나다가 차 한잔 마시는 곳이면 더할 나위 없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큰 뜻을 갖고 시작했다기보다 동시대 건축가들의 말벗이 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막상 문을 열고 나니 찾아오는 사람이 예상보다 많아 어떤 날은 온종일 손님을 맞기도 했다. 처음에는 피상적 낙관론이나 위로의 말을 나눴고, 시간이 지날수록 진지한 고민거리가 하나둘씩 탁자 위로 올라왔다. 건축가 스스로 자신 작업의 본질을 돌아보게 하는 자리, 홍보가 아니라 발언하는 전시 기획, 도발적 문제제기의 미디어 센터, 젊은 건축가들의 베이스캠프 등의 주문이 그것이다.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사랑방이 공통의 이슈를 고민하다보니 정치-사회적 공간으로 변화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이었고, 이곳에서 나누는 이슈는 건축에만 국한되진 않았다.
라운드어바웃에서 열린 프로그램은 강연이나 공연, 모임 등의 형태가 가장 일반적이었다. 상징적으로 숫자만을 가지고 간략히 살펴보더라도, 수요일 저녁에 연 <프로젝트❶>이 30여 회, <건축학교> 매개자 교육을 비롯해 건축•디자인 관련 모임이 20회가 훌쩍 넘는다. 연인원으로 따져보면, 2,000명가량이 이곳을 다녀갔다. 참여한 사람들의 분야도 건축, 디자인, 인문사회과학, 문학, 현대미술, 무용, 사회적 기업, 활동가 등 다양하다.
세대를 아우르는 여러 건축가들의 프로젝트, 미술비평가의 주요 쟁점, 사회적 기업가들의 전망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누다가 늦봄부터는 서울시립미술관과 함께 ‘협력적 주거 공동체’라는 주제로 리서치 작업을 진행했다. 몇 명의 건축가들과 함께 학자, 활동가들을 초대해 “우리 사회에서 협력적 공동체는 가능한가?”에 대해 진지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2015년 1월 25일까지 열리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Co-living Scenarios>의 일환이었다. 이 전시에 참여한 9명(팀)의 건축가들은 리서치 작업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새로운 공동체를 제안하고 있다. 진행한 리서치와 학자들과의 토론 내용 그리고 건축가들의 작품을 모아 단행본으로 엮는 작업도 진행 중이다. 두 달 가까운 전시 기간 동안 20,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이 전시를 볼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니, 보다 많은 이들이 주거와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볼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건축계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의 과제는 어느 것 하나도 간단하지 않다. 건축계 내외부의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 서로 협력하고 지혜를 모아야 겨우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점점 어려워지는 설계사무소의 상황은 세계 최고 속도의 고령화, 양극화 심화, 중산층 붕괴, 노후 불안 등 사회적 변화와 맞물리면서 갈피를 차릴 겨를도 없다. 동질적인 집단뿐만 아니라 이질적인 집단이 모이고 의견을 나누고 대안을 모색하는 점이지대가 절실한 이유다. ‘협력적 주거 공동체’에 대한 리서치를 하다보니, 주거나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것 못지 않게 건축계에서도 몇 개의 중요한 이슈에서부터 협력의 장을 열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 과정 속에서 서로 힘을 모아 새로운 길을 여는 ‘협력적 공동 사무소’가 등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종로구 통의동 1층에 위치한, 사적 소유지이자 공공 공간이기도 한 라운드어바웃은 용도가 분명치 않은 성격을 갖고 시작했다. 때에 따라 도서관, 사무실, 회의실, 전시장, 강연장으로 그 모습을 달리하며 쓰이고 있다. 지하에 있는 공동 식당까지 공간의 범위를 확장하면, 이 작은 공간에 담아낼 수 있는 콘텐츠의 가능성은 더 커진다. 절반의 공간을 지역과 공유하겠다는 생각은 건축가 신승수의 말을 빌리자면 “나눗셈의 공간이 아니라 곱셉의 공간”으로 커가는 것이다. 이곳이 앞으로도 속도와 진폭이 큰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건축계의 매개공간으로 자리잡길 바라고, 이 사례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일에 참여하는 기관과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기대해본다.
박성태 <<건축신문>> 편집인
용도 불명의 라운드어바웃
분량2,070자 / 4분
발행일2015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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