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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고가 공원화,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배정한

서울시의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계획이 발표된 이후, 다수의 전문가는 그 ‘빠른’ 속도에 대해 비판적 발언을 이어왔다. ‘무엇을’ 만드는 것보다 ‘어떻게’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느린 공론화’가 필수적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배정한 서울대학교 교수는 하이라인의 설계자인 조경가 제임스 코너의 말을 빌려, “서울역 고가 고유의 맥락에 대한 사려 깊은 존중이 필요”하다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지, 있다면 어떠한 재생 방법이 보다 효과적인지, 그리고 지금 시기가 적절한지 등에 대해 치열한 토론이 선행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란과 우려를 뒤로 한 채 ‘서울역 고가 공원화 프로젝트’가 그대로 강행될 모양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9월 23일, 뉴욕의 하이라인을 시찰하며 기자회견을 하고 서울역 고가를 서울식 하이라인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에 찬 계획을 공식화했다. 박 시장은 “서울역 고가는 도시 인프라 이상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가 있는 산업화 시대의 유산”이므로 “원형을 보존하면서… (뉴욕의) 하이라인 파크를 뛰어넘는 녹색 공간으로 재생시켜 시민에게 돌려드리겠다”고 선언했다. 뿐만 아니라 “서울역 고가가 관광 명소가 되면 침체에 빠진 남대문시장을 비롯해 지역 경제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동시에 나온 서울시의 보도 자료는 “서울역 고가는 5층 높이에서 한눈에 서울 도심이 가능한 장소이자 KTX를 통해 전국에서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이므로 “도심 속 쉼터이자 대표적 관광 명소로 발전시키는 것이 목표”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많은 시민과 전문가들이 “왜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며 그 목적과 당위성에 동의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빛의 속도로 직진하고 있다. 소통과 과정과 참여를 중시해 온 박원순 시장답지 않은, 전형적인 전시 사업이라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서울역 고가 공중 공원화의 핵심은 “유산이므로 남기고 재생시켜 하이라인처럼 명소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우선, 그 의의나 당위성의 유일한 키워드인 ‘유산’의 측면에서 그 가치를 다시 살펴보자.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서울역 고가는 1960년대 후반 폭발적인 인구 집중과 이에 따른 교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 주도하고 건축가 김수근이 구상한 서울 입체 도시화 프로젝트의 하나로, 1970년에 건설되었다. 그 직전에 도쿄에서 진행된 파괴적 입체 개발의 모방작이라는 평가도 있다. 서울역 고가를 비롯한 이 시대의 고가도로들은 속도와 성장과 개발의 상징이자 근대화된 도시 경관을 과시하는 표상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은 차량 정체를 유발하고 안전을 위협하며 시민의 보행권과 조망권에 장애가 되는 천덕꾸러기로 전락했다. 2003년 청계 고가도로를 시작으로 올해의 아현 고가도로까지 서울에서만 16개의 고가가 철거되었다. 서울의 관문 경관을 가로막고 있는 서울역 고가는 이미 2007년에 철거해야 할 위험 시설로 진단받아 올해 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예정이었다. 서울역 고가는 과연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하는 근대 산업 유산인가?

이 프로젝트는 모든 것을 순식간에 지우고 버린 후 다시 빠른 속도로 그리고 만들기를 반복해 왔던 우리 현대사에 대한 반성과 극복이라는 도덕적 의미를 일면 지닌다. 그러나 11월 13일에 서울시민연대가 주최한 시민토론회에서 홍성태 교수가 주장했듯이, 서울역 고가 공원화를 통해 “박원순 시장과 승효상 총괄건축가가 내세운 ‘보존, 재생, 연결’의 개념은 서울에 꼭 필요한 것이지만, 박정희-김현옥-김수근의 과오를 보존, 재생, 연결해서는 안 된다.” 교통 수요에 대한 임기응변식 대처의 산물이자 자동차 우선의 폭력적 도시개발의 결과물인 이 고가도로를 긍정적인 산업 유산으로 평가하여 보전해야 하는지 치열한 토론이 선행되어야 한다. 우리가 그것을 기억해야 한다면 그 자리의 지면에 선을 그어 기록할 수도 있다. 고가에서 내려다보는 이색적 경관이 매력적이라면 구조체와 재료의 일부를 살려 전망대로 쓰는 방법도 있다. 완전히 철거하여 기형적인 경관을 바로잡고 서울의 하늘을 온전히 다시 찾을 수도 있다.

유행처럼 번지는 ‘재생’ 담론 점검도 필요하다. 목적이 불분명한 재생은 이미지의 소비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 도시의 재생은 쇠퇴를 전제로 한다. 수명을 다하고 방치되고 황폐해졌던 뉴욕 하이라인으로 인해 주변의 웨스트 첼시와 미트패킹 지역은 오랫동안 쇠퇴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낙후된 시절을 겪었다. 서울역 고가가 지난 44년간 무엇을 어떻게 쇠퇴시켰는지 냉철한 점검이 있어야 재생의 목적과 향방이 잡힐 것이다.

‘유산’이 당위의 가치라면, 하이라인과 같은 ‘명소’는 목적이자 동시에 효과다. “하이라인을 모델로 한 녹색 공간으로 재생시켜 관광 명소가 되게 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겠다”는 서울시의 논리는 무척 단순하다. 물론 전임 시장의 <세빛둥둥섬>처럼 극단적으로 생뚱맞은 작품이 태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청계천처럼 한번은 가봐야 할 촌로들의 방문지가 될 것이며, 한 번쯤은 유모차를 끌고 다녀야 할 것 같은 부모로서의 의무감도 불러일으킬 것이고, 모처럼 도심을 어슬렁거리며 색다른 경관을 즐기는 데이트코스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중국 관광객이 1km에 달하는 고가에 가득 찰 수도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우려하는 교통 문제도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 경제를 고사시킬 것이라는 남대문 상인들의 반대도 무마될 것이다. 노숙자 대책, 추락 사고, 투신자살, 혹서나 혹한 같은 어려움도 기술적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하이라인과 같은 명소가 된다는 보장은 없다.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하이라인의 설계자인 조경가 제임스 코너James Corner는 이렇게 조언한 바 있다(『환경과조경』 319호, 2014. 11). “명심해야 할 것은 하이라인은 쉽게 복제할 수 있는 성질의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하이라인의 성공을 가져온 것은 맨해튼이라는 하이라인의 주변 콘텍스트다. 이곳은 고밀도의 도시적 활동이 일어나는 곳이다. 첼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갤러리 밀집지역이며, 미트패킹 지구의 독특한 동네 분위기, 하이라인 아래 거리의 활력, 인접한 허드슨 리버, 자유의 여신상과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등 뉴욕 랜드마크에 대한 조망 등이 하이라인의 성공을 가져온 주위 환경이라 할 수 있다. 둘째, 건설 자금의 조달 과정과 뉴욕의 경제 상황, 정치적 과정, 리더십 등이 기묘하게 합쳐지며, 거의 철거될 뻔한 하이라인을 보존했다. 또 ‘하이라인 친구들Friends of the High Line’이 만들어지는 과정 등은 매우 독특한 역사적 현상이었다. 이것은 거의 복제가 불가능하다. 물론, 낡은 고가도로나 고가철로는 여러 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고, 개중에는 공원화로 적절한 곳도 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모습은 하이라인과 상당히 다른 유형의 공원이 될 것이다 … 하이라인이 도시 공간에 대한 창의적인 대응을 촉발했다는 점에는 의미가 있지만, 모든 도시는 반드시 스스로의 장점을 잘 인식하고 이용하여 독창적인 대답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이라인 방식은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계획만으로는 관광 명소가 쉽게 만들어지지 않고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많은 선례를 통해 경험해 왔다. 또 서울역 고가가 하이라인처럼 론리플래닛󰡕 같은여행책자를장식하는관광지가될수 있다 하더라도, ‘머니 스펀지’라는 비판을 받는 하이라인의 유지관리비는 어떻게 충당할 것인가.

우리는 ‘도시 정치’의 과정과 결과를 이미 수차례 경험했다. 이번 프로젝트도 속전속결의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9월의 갑작스러운 발표 이후 곧 서울시가 주도하는 시민단체가 활동하기 시작했고, 10월 12일에는 44년 만에 고가를 보행자에게 개방하는 <서울역 고가 첫 만남: 꽃길, 거닐다>가 열렸고, 11월 2일에는 <서울역 고가 활용 방안 아이디어 공모전>의 당선작이 발표되었다. 12월 중에 향후의 실시설계권을 내건 국제설계공모가 지명 초청 형식으로 개최될 예정이고, 내년 8월까지 설계를 완료하여 2016년 이내에 완공한다는, 토건시대를 방불케 하는 속도전이 펼쳐지고 있다. 많은 전문가가 강조하듯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만드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드는가”이다.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승효상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서울역 고가 공원화는 세운상가 리모델링, 한양도성 성벽 복원과 함께 서울을 보행자 중심의 입체 도시로 만드는 계획의 일부”이며 “성장과 개발 중심의 도시를 치유하고 서울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바탕”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선언부터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나는 말부터 먼저 해놓아야 불안하지 않다. 선언을 하고 그 안에서만 놀면 더 자유롭다”고 말했다. 하기로 했으니까 하는 것은, 한 사람의 시장과 건축가가 도시의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1960, 70년대에나 가능했던 일이다. 묻고 답하고 고민하고 토론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긴 시간과 정성 어린 과정이 필요하다.

만일 서울역 고가 공원화가 철거를 통해 도시를 치유하고 경관을 회복하는 일보다 중요한 역사적, 도덕적,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일이라면, 우선 그대로 개방하여 쓰면서 공원, 산책로, 전망대, 활성화 거점으로서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실험해볼 것을 제안한다. 그 후 필요하다면 더 많은 공을 들여 설계 공모를 열고 지혜로운 설계안을 뽑으면 된다. 이명박 전 시장의 청계천 효과를 의식한 것이 아니라면, 박원순 시장은 자신의 임기 내에 서울역 고가 프로젝트를 끝낼 이유가 없다. 하이라인처럼 근사한 명소로 완공하는 것은 다음 시장이 해도 될 일이다.


배정한

서울대학교 조경 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이며, 월간 『환경과조경』의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 『조경의 시대, 조경을 넘어』와 『현대 조경설계의 이론과 쟁점』, 옮긴 책으로 『라지 파크』가 있다. 『용산공원』, 『건축 도시 조경의 지식 지형』, 『공원을 읽다』, 『봄, 디자인 경쟁시대의 조경』, 『봄, 조경 사회 디자인』, 『텍스트로 만나는 조경』, 『LAnD: 조경 미학 디자인』, 『Locus2: 조경과 비평』, 『Locus1: 조경과 문화』 등 다수의 책을 동학들과 썼다. 행정도시 중앙녹지공간, 용산공원 등 대형 공원의 기본계획과 설계공모 관리를 진행하며 이론과 실천의 접점을 탐사한다.

서울역 고가 공원화, 치열한 토론이 필요하다

분량5.014자 / 10분

발행일2015년 1월 15일

유형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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