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근대적 전환과 생존적 개인주의
김홍중
분량23,350자 / 45분 / 도판 2장
발행일2015년 2월 10일
유형강연록
*이 강연은 『현대사회학이론: 패러다임적 구도와 전환』(다산출판사, 2013)의 저자 중 한 명인 김홍중 교수의 논문 「후기 근대적 전환」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강연: 2014년 6월 11일)

한국식 개인주의
오늘 제가 논의하고자 하는 주제는 ‘후기 근대적 전환’에 관한 것이고, 한국 사회에서 타자들과 공존한다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운가 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어려움의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 ‘생존적 개인주의’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제안해 봅니다.
‘생존적 개인주의’는 한국식 혹은 동아시아식 개인주의를 지칭하고자 만들어 본 말입니다. 개인주의는 서구적인 의미의 삶의 형식이고 서구 중에서도 특히 프랑스적인 용어 같습니다. 저는 미국인이 대단히 개인주의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습니다. 물론 어떻게 비교하느냐에 따라 모두 달라지지만, 오히려 유럽 사람들한테 보이는, 내가 모든 걸 짊어지고 있다는 냉랭한 개인주의는 미국적인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미국에는 좀 더 공동체적인 것에 향수가 남아 있는 듯이 보이죠. 그렇다면 우리 동아시아에는 개인주의가 없느냐. 놀라울 정도로 유럽과는 다른 의미의 강한 개체중심적인 삶이 있다고 봅니다. 심지어는 병리적으로 보일 만큼 개체중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적인 공존 가능성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개인 지향성이라고 할까요? 한자 조어이기 때문에 뿌리가 없는 말인 건 마찬가지인데, 공존 가능성을 공격적으로 부정하면서까지 개체의 자율과 자유를 추구하는 것을 ‘생존적 개인주의’라고 불러보고 싶어요.
궁금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생존적 개인주의’가 왜 동아시아에서 강하게 나타날까? 왜 그토록 ‘유교적인’ 인간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강한 개체가 되었고, 또 가족을 중심으로 하는 개별 가족주의 같은 삶의 행태를 보일까? 등과 같은 고민이 한 쪽에 있고, 다른 쪽에는 더 글로벌한 차원의 소위 ‘후기 근대적 전환’에 대한 고민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도 90년대 후반 이후에 소위 ‘후기 근대적 전환’(late modern turn)이라는 글로벌 수준에서 일어나는 사회의 구조적 변동의 논리를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내용은 2013년에 『현대사회학이론』이라는 사회학 이론 교과서에도 실린 것으로, ‘후기 근대’라는 개념이 사회과학에서 어떻게 사용되느냐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를 고민도 하고 사용도 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포스트모던이라는 용어는 너무나 텅 빈 언어이고, 그보다 훨씬 더 적실한 개념으로서 우리의 당대성을 포착하는 말은 후기 근대(late modern)라고 생각합니다. 후기 근대는 길게는 1980년대부터 짧게 보면 1990년대 중반 이후에 대부분의 산업화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관찰할 수 있는 구조변동의 경향을 포괄하는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사라진 ‘피플’과 ‘사회’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서구 사회이론은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강렬한 관심을 표명했습니다. 흥미롭게도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말의 출현은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의 신자유주의가 등장한 시기와 겹칩니다. 펑크 음악이 나온 것도 70년대 후반이고요. 서구인에게 1970년대 후반은 거의 모든 게 끝난 때인 듯합니다. ‘미래는 없다’는 비관주의적 감수성이 생겨날 때이기도 하고,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의 『포스트모던적 조건』도 이때 나왔습니다. 근대적인 모든 것이 더는 기능하지 못한다는 진단이 공유되고 있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는 예술계에서 먼저 나온 말이에요. 철학적으로 이 사조는 프랑스 사상가들에 의해 대표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인이 포스트모던을 자유롭게 논할 수 있었던 것은 독일인보다 지적으로 유연해서가 아니라, 파시즘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그들이 면제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같은 시대 독일인들도 유사한 생각을 했겠지만, 그들에게는 홀로코스트(holocaust)에 대한 부채감 때문에 가장 마지막에 지켜야 할 사회적 정의, 토대, 인간, 생명 등의 가치들, 근대적인 가치들이 강박처럼 남아 있었던 거죠. 프랑스인들은 자신이 그러한 강박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20세기 중반 이후부터 가치의 토대를 해체하는 작업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사회이론 영역에서도 그랬는데, 재밌는 것이 장 보드리야르의 『침묵하는 다수의 그늘』(1978)입니다. 이 책은 우리말로 번역되지 않았지만,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여기에서 그는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라 부르는, 돌려 말하면, 근대사회를 구성하는 어떤 원리가 이제 종언을 맞이했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서 이제 사회학도 불가능하며, 그 자신이 더 이상 사회학자가 아님을 선언합니다. 여기에는 맥락이 있습니다. 70년대 서유럽은 좌파가 급진화되고 무장투쟁으로 나아가면서 여러 가지 유혈사태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10년 전인 68혁명 때에는 광범위한 군중의 시위와 자기표현이 있었는데, 10년이 지난 후에는 이 모든 사회적 사태들을 거리에서 직접 참여하지 않은 채, TV를 통해서 모두 거실에서 ‘기호’로서 소비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죠. 장 보드리야르가 시뮬라크르(simulacre)라 부른 것이 등장하는 시점이기도 하고요. 모든 것이 표상 속으로 다 걸려들어 가고, 사회적인 것이라고 하는 것, 공중이 함께 모여 항의를 하거나 집합 행위를 통해서 집합 의지를 표현하는 그런 시대가 끝났다고 본 거죠. 해서, 보드리야르는 절망적인 감정을 토로하면서 사회학이라는 것이 의미 없는 시대가 왔다고, 이제 사회 그런 것은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아이러니하게도, 1979년에 실제로 마거릿 대처가 사회 같은 것은 없다고 이야기를 하잖아요?‘후기 근대’라는 개념
그런데 독일에서는 위르겐 하버마스에 의해서 반론이 제기됩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조급하게 버린 근대(modern), 근대성(modernity) 안에는 아직 개화하지 않은 씨앗처럼 남겨진 잠재력이 남아있다고 보는 거죠. 그는 사람들에게 충분한 시간 동안 평등한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조건을 준다면 의사소통적 합리성(Communicative Rationality)이 있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그 소통에서 나올 것이라고 봤어요. 그리고 그것은 근대가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들을 만들어서 가능한 것이기 때문에 근대 자체를 버린다는 것은 근대성이 열어낸 의사소통적 합리성이라고 하는 인간 가능성의 중요한 부분과 합리성이 뿌리내리고 있는 생활세계를 다 버리는 것과 같다고요. 잘 알려진 것처럼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개념에는 약간의 낭만성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할 때에는 언제나 각자 가지고 있는 자원이 다르기 때문에 평등한 소통이 일어나지 않거든요. 부르디외가 하버마스를 비판하는 지점이 거기에요. 문화자본이 다른 사람들끼리 만나기 때문에, 소통은 항상 불평등한, 상징적 폭력을 동반하는 소통이라는 거죠. 많은 걸 알고 있는 사람들은 자기들만 아는 방식으로 세련되게 언어를 구사하면서 차별을 계속 가져오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하버마스가 말하는 이상적인 소통과 소통 합리성이라는 것은 거의 같은 양의 지적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자유롭게 즐거움을 위해서 토론할 수 있는 몇 개의 한정된 공간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시 원래의 주제로 돌아가면, 하버마스가 대표하는 사회 이론적 경향과 포스트모더니즘적 사유 사이에는 근본적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근대성의 전개 과정에 하나의 역사적 단절을 설정할 것이냐 그렇지 않느냐의 문제죠. 돌려 말하면, 당시 그들이 살아가던 80년대 이후의 세계를 무엇이라 부르고 그 세계의 기본 풍경을 무엇으로 설정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90년대로 접어들어 일련의 사회학자들이 등장하면서 포스트모던도 아니고 근대도 아닌 ‘후기 근대’라는 개념을 가지고 시대를 진단하기 시작해요. 그것이 오늘 말씀드릴 ‘후기 근대적 전환’(late modern turn)이라는 개념입니다. 제가 소개하려는 사회학자는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 영국에서 활동했지만 폴란드 사회학자인 지그문트 바우만, 이렇게 세 명입니다. 이들의 관점이 모두 같은 것은 아니지만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후기 근대적 전환을 지지하는 이론가들은 포스트모던 이론을 접했고 하버마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지만, 양자 모두에게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이들은 포스트모더니스트처럼 당시에 펼쳐진 세계가 완전히 새로운 세계라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복지국가들은 와해하기 시작했고, 금융 자본주의에 정서적 자본주의까지 더해졌다는 것을 말이죠. 금융 세계는 합리적인 계산에 의한 행위가 아니라 감각으로 운용되는 세계이기 때문에 패닉의 세계라 할 수 있는 것이었죠. 막스 베버식으로 이야기하면, 자본주의는 합리성 안에서만 등장할 수 있는데 합리성 없는 투기 자본주의가 등장했어요. 게다가 전 지구적 환경문제들, 즉 80년대 중반 체르노빌 원전사고, 70년대 후반 스리마일 섬의 원전사고로 인해 계급으로 환원할 수 없는 공통 문제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정치적 열정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미래를 열어갈 주체를 설정하지 못했어요. 노동자, 청년, 예술가, 여성, 그 어느 누구도 주체가 아니었어요. 냉전 해체, 자유주의 승리, 이데올로기의 종언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는 이 시대는 100년 전 산업사회를 진단했던 사회 사상가나 사회학자들이 목격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문제의 시대가 된 겁니다. 그들은 이런 진단에 동의하는 것이죠. 하지만 그들은 이 시대를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포스트모던이라고 부르면 모던과 그 이후 사이에 단절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근대의 결과로서 이러한 여러 문제가 제기됐다는 인과관계나 상관관계가 양 시대 사이에 삭제될 가능성이 있다는 겁니다. 이들은 지금 나타난 문제들은 그 뿌리에 모던한 것이 있고, 모던의 역동이 지금 우리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죠. 그들은 바로 그 로직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이들은 양 시대의 연관성을 사고하지 못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비판적으로 보는 겁니다. 도식적이긴 하지만 후기 근대성에 대한 논의의 핵심 테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후기 근대를 말하는 사람들에게 20세기 후반은 19세기적 근대성이 단절되고 도래한 새로운 시대가 아니라, 그것의 재귀적(reflexive) 형태일 뿐입니다. 재귀적이라는 용어는 어떤 운동의 방향성이 자기 자신을 향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근대성이 스스로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오는 것을 재귀적이라 부르고, 그런 의미에서 후기 근대는 ‘재귀적 근대’가 되는 것입니다. 즉, 근대의 성취가 악으로 돌변해서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후기 근대주의자들은 20세기 후반을 하나의 위기로 바라봅니다.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이 포스트모던 시대를 긍정적으로 본 것과 달리, 이들은 자신들의 시대를 하나의 문제이자 도전으로 파악합니다. 울리히 벡과 앤서니 기든스는 이러한 흐름을 대표하는 이론가입니다. 이들은 20세기 후반 당대 사회를 후기 근대(late modern), 재귀적 근대(reflexive modern), 2차 근대(second modern), 고도 근대(high modern) 등 여러 가지로 부르는데, 제가 봤을 때 이들 모두는 같은 사태를 지칭하고 있습니다. 울리히 벡은 ‘위험사회’라는 개념을 사용했습니다. 그는 앞서 말한 것처럼, 근대성이 진화하는 흐름을 재귀적 원환운동(reflexive circle)으로 봅니다. 이 말은 진보를 포기했다는 말이에요. 진보로 보지 않고 성취가 문제로 되돌아오는 것을 말해요. 예를 들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과학을 발전시켰는데, 이제 도리어 발전된 과학이 하나의 문제이자 위협이 되어 버린 사회가 바로 위험사회입니다. 주의해야 할 것은, 위험사회는 ‘위험한 사회’(risky society)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위험한 사회가 아니라, 위험이 가장 중심적 주제가 된 사회를 말합니다. 제가 가장 잘 드는 예는 담배입니다. 20년 전만 해도 담배는 그냥 취향, 멋, 또는 개인적 기호였어요.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지난 20년 동안 담배는 하나의 리스크가 됐습니다. 이는 담배 피우는 행위가 야기할 문제가 합리적으로 계산되기 시작했다는 거죠.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내가 위험 감수(risk taking)를 하느냐 마느냐를 선택해야 한다는 겁니다. 담배가 합리적 계산에 포섭된 겁니다. 그 책임은 담배 피우기를 선택한 자에게 있습니다. 이런 논리로 이제 아이를 낳는 것도 리스크가 됐고, 결혼도 리스크가 됐고, 사람을 만나는 것도 리스크가 됐고, 심지어 태어나는 것도 리스크가 됐어요. 무언가 리스크가 된다는 것은, 그것이 보험에 의해 보장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전에는 아이가 신의 선물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모두 애를 낳을 때 주변 상황과 미래를 치밀하게 계산하잖아요. 이처럼 무언가를 합리적 계산으로 관리하면서 그것이 일으킬 부정적 결과를 통제하는 방식을 ‘리스크’라고 부릅니다. 벡이 1986년 『위험사회』를 출판할 당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스리마일 섬과 체르노빌의 원전사고, 가슴 임플랜트, 바이오테크놀로지 확산, 오존층 구멍 발견, 온실 효과, 에볼라 바이러스, 광우병, 에이즈 확산, 챌린저호 사고, 라인 강 오염 등 이러한 대재난들이 야기한 불안을 배경으로 이 ‘위험사회’라는 개념이 유럽에서는 붐을 일으킵니다. 한국에서도 90년대 중반에 이 책이 번역되었습니다. 벡에 의하면 리스크 개념은 초기 근대와 후기 근대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지표를 제공합니다. 초기 근대에는 재화(goods)의 생산과 분배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위험(bads), 즉 나쁜 것들의 분배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계급, 인종, 국경을 넘어선 리스크의 유통이 발생했는데, 계급사회에서는 ‘배고프다’는 표어가 사람들을 움직일 수 있는 가장 큰 표현이었다면, 위험사회에서는 불안의 공동성이 그 자리를 차지하면서 정치적 동력으로 군림할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도 그렇게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고요. 벡이 말하는 위험은 위해(danger)가 아니라 합리적인 방식으로 위해가 될 만한 것들을 관리하는 양식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리스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위험사회 도래와 동시에 나타난 중요한 현상이 벡이 말하는 개인화(individualization)라는 것입니다. 벡의 정의에 의하면 개인화는, “개인으로서 그 또는 그녀 자신이 생활세계에서 사회적인 것을 재생산하는 단위가 되는 현상”을 가리킵니다. 가족이나 부부 혹은 계급과 같은 사회적 집합체로부터 떨어져 나온 개인이 스스로에게 책임을 지는 존재로 확립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벡의 부인인 엘리자베스 벡-게른샤임은 이미 이 개념을 활용하여 1980년대에 현대적 사랑의 위기를 논의합니다. 남녀 간의 낭만적 사랑은 더는 유지될 수 없는 개념이며 유일하게 남은 사랑의 대상은 이혼을 하면 남이 되는 파트너가 아니라, 아이라고 말합니다. 사실 독일은 80년대에 이르면 평생직장의 개념이 희박해지고, 노동과 친밀성의 영역이 양립 불가하게 됩니다. 리스크 개념을 쓰면, 사회적 안전과 보호를 제공하던 것들(가족, 친족, 직장, 공동체)이 모두 약화되어, 이제 자신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것은 오직 자신이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벡이 말하는 개인화는, 초기 근대에 개인들이 교회나 국가로부터 탈출하면서 리버럴한 주체로서 등장할 때 나타난 그런 개인들의 탄생과는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리버럴한 개인주의는 집단에 대한 개인의 승리입니다만, 후기 근대의 개인화된 개인들은 오히려 개인 그 자체의 존립 가능성이 위협당하는 수준까지의 개인의 승리를 체험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프랑스 사회학자 중에는 하이퍼개인주의(hyperindividualisme) 개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거의 같습니다만, 이들은 과잉개인화된 사람들을 두 부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유복한 과잉개인으로 돈, 시간, 자본, 학식, 인간성 등 모든 것을 갖추어 개인화를 즐길 수 있는 개인입니다. 그러나 결핍을 겪는 과잉개인도 있어요. 개인화로 혼자가 되었는데 삶 대부분을 비정규직으로 노동하고, 책임져야 할 것은 많은데 자원이 부족하여 끊임없이 고통받는 사람들이죠. 벡은 개인들의 이러한 양극화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앤서니 기든스는 이와 유사한 이야기를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의 핵심 테제는 20세기 후반에 이르면 탈 전통사회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벡의 이야기를 조금 더 지적인 방식으로 윤색한 것으로 들리기도 합니다. 고전사회학이 전근대와 근대성 사이의 논리적 대립 관계를 설정한다면, 다시 말해서 전통이 죽어야 근대가 나타나는 것으로 생각했다면, 기든스는 ‘발명된 전통’을 논하는 에릭 홉스봄을 원용하면서 양자의 관계를 좀 더 유연하게 봅니다. 과거는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이죠. 전통이 죽은 것처럼 보이겠지만 돌아오기도 하고, 또 19세기에 과거가 죽었다고 믿었지만 지금 보니 죽지 않았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자세하게 논의하는 것이 바로 막스 베버가 1904년에 발표한 논문입니다. 이 논문에서 베버는 자본주의가 왜 개신교로부터 나왔는가, 돌려 말해서 왜 불교, 유교, 도교, 가톨릭과 같은 다른 종교를 갖고 있던 문명권에서는 자본주의가 나올 수 없었는가, 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습니다. 베버 연구의 핵심은 개신교 교리 안에 자본주의적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윤리가 내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베버가 탐구한 자본주의 세계의 핵심에는, 끊임없이 노동하지 않으면 안 되는 강박충동에 사로잡힌 인간들이 있어요. 이런 인간상을 창출할 수 있는 윤리적 동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베버에 의하면 개신교가 유일합니다. 개신교 중에서도 특히 칼뱅주의(Calvinism)입니다. 왜냐하면, 칼뱅주의의 교리인 구원예정설에 의하면 개인의 구원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어떤 사후의 노력으로도 그것을 바꿀 수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당시의 인간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영혼의 구원’이었는데, 이처럼 구원이 사전에 불가항력적으로 결정되었을 때 극도의 불안이 엄습하는 것이죠. 이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서 칼뱅주의의 목회 과정에서 이야기된 것은, 구원의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세속적 성공을 거둔다면 그것이 아마도 구원의 유력한 징표일 것이라는 일종의 타협이었습니다. 구원이라는 초월적 가치가 이제 성공이라는 내재적 가치와 기묘하게 결합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속적 금욕주의’라고 베버가 부르는 강박적 노동, 노동하는 인간, 근면하고 성실하게 축적하는 인간이 생산됩니다. 베버는 자본주의가 그런 인간들의 몇 대에 걸친 노동과 자기 지배 속에서 등장했다고 봅니다. 이 논의를 통해서 기든스는 전통사회가 노동을 조직하는 방식과 자본주의가 등장하면서 노동이 조직하는 방식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후기 근대로 오면 이런 탈 전통성이 더 급진화된다는 것입니다. 기든스는 중독의 테마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가 여러 차례 지적했듯이, 후기 근대는 성찰성과 긴밀히 연결됩니다. 성찰성이란 기본적으로 자아가 자아를 모니터링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자기를 통제하고, 관찰하고, 성찰하는 자기와의 관계를 맺을 수 있는 힘이죠. 그런데 중독이란 이 성찰성이 마비되는 현상입니다. 중독자는 무의미하고 고통스러운 반복현상에 빠집니다.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고,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하면서, 무언가에 종속됩니다. 자아성찰성이 고도로 중요해진 후기 근대는 이와 동시에 자아성찰의 한계에서 수많은 중독현상의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모든 문제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직접 모니터링하고 관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전통이 있을 때에는 전통이 그것을 정해주었던 것이죠. 그러나 전통이 사라진 탈 전통사회가 되면 자아가 자아를 모두 관리해야 하는데, 그것은 자아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입니다. 기든스가 말하는 성찰성은 후기 근대의 자아, 순수한 관계, 사랑과 섹슈얼리티, 그리고 민주주의로서의 친밀성 등의 영역에서 핵심적 키워드로 작용합니다. 후기 근대는 전통이 발휘하던 자동적 의미 생성의 기능이 현저히 감소하던 시기이기 때문에 여기에 후기 근대성의 위험이 존재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근대성은 ‘크리슈나의 수레’(Júggernaut)처럼 맹목적으로 진화해가는 것입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모더니티와 홀로코스트』라는 주저를 통해 90년대까지 포스트모던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들어서 『액체 근대』(Liquid Modern)를 저술하면서 약간의 변화를 보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포스트모던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은 세상을 밝게 봅니다. 이성과 합리성을 이야기하는 근대주의자들을 비판하면서 감성, 표면, 피부, 욕망과 같은 새로운 개념과 가치로 세상을 더 좋게 만들어 갈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바우만은 포스트모더니스트에서 액체 근대를 저술하는 시기로 오면 매우 상이한 접근법을 시작합니다. 그 핵심 메타포는 공산주의 선언에서 나오는 견고한 모든 것이 대기 중으로 사라진다는 ‘액화’, ‘기화’의 상상력입니다. 액체적인 것의 반대편에는 고체적인 것(solid)이 있어요. 서구의 경우는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70년대 중반까지, 그러니까 1945~1975년까지 자본주의가 가장 견고한 복지국가체제의 조직 자본주의로 구성되었던 시기입니다. 진보와 발전이 끝없을 것 같은 가장 행복했던 30년이에요. 한 번 직장에 들어가면 끝까지 다니고, 사회관계도 실체가 있는 굉장히 낙관적이고 단단한 시기예요. 그러나 70년대 중반 이후에 이것이 붕괴하기 시작하여 모든 것이 액체적인 것으로 변합니다. 고체 근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계급이 살아있고, 직장과 가족이 살아있어서 사람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그 세 가지에 묶어둘 수 있었던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 이후에 펼쳐진 액체 근대성에는 무엇보다도 고체적인 삶의 형식이 사라졌습니다. 장기적 예측이 불가능해져 30, 40년 후의 삶을 꿈꾸는 것을 포기하는 사회가 만들어지죠. 세계화는 국민과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사회관계가 네트워크 중심으로 전환되고, 성과의 단위가 프로젝트가 됩니다. 2~3년으로 분할된 프로젝트들이 작은 결과를 낳고 다른 계획으로 옮겨가는 시스템이 되었어요. 오늘날 그 대표적인 선수들이 ‘팀장’이죠. 액체 근대라는 것은 결국 장기 시간성이 붕괴한 시대를 가리킵니다. 공동체나 국가, 사회의 진보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자신 삶에서의 진보만을 의미 있는 진보로 말할 수 있는 시대이죠. 그래서 시간도, 공간도, 사랑도 액화됐고, 친밀성의 관계가 불가능해졌어요. 이런 식으로 바우만은 우리 시대를 묘사합니다. 결과적으로 노동이 액체화되었다는 것은 삶의 근원적 불안이 일상화됐다는 이야기인데, 바우만은 고체 근대는 무거운 자본주의 시대 상호 의존성으로 강화된 자본·노동이 결합한 시대였다고 말합니다. 자본과 노동은 결속되어 있었고, 그 안에서 꿈과 희망을 키워나갔고, 공장이 그들에게 서식지인 동시에 참호전을 벌이는 전투장이었던 거예요. 바우만의 액체 근대 개념은 포스트모더니즘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생각보다 세상이 불안하고 어둡다는 것을 정확하게 보여줍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말하려고 했던 후기 근대의 큰 밑그림입니다. 한국 사회도 90년대 후반 이후에 앞에서 설명한 후기 근대의 징후들을 보입니다. 탈전통화, 위험사회화, 그리고 액체 사회화를 겪고 있는 셈이죠. 이런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개인이 안전망으로부터 유리된 채 불안하고, 불안정한 삶에 던져지는 현상, 즉 개인화 현상이 발생합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개인화 앞에서 개인들은 공존의 가능성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이야기처럼 들리기 때문에, 아주 강한 생존주의적 가치를 갖게 됩니다. 그런데, 사실 한국 사회의 이 생존주의, 즉 각자도생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삶의 방식이라는 믿음은 후기 근대의 개인화로 완전히 설명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것이 서구적 의미의 개인주의보다 오히려 더 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에게 가령, 다윈주의적 발상이라고 할 만한 생각들, 그러니까 열등하면 도태되는 것이고, 결국 이 세상은 힘 있는 자들의 무대이고, 그것은 개인이나 국가나 마찬가지이며,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인식이 역사적 뿌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기본적 사회철학을 규정하는 것이 바로 이 감각, 강력한 개인주의, 생존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 핵심에는 자신이 죽으면 안 된다는 절박한 느낌이 있는데, 이 느낌은 사실 한국의 민중이 지난 백여 년에 이르는 근대의 어려운 경험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한 지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문제는 더 심각하다고 느껴집니다. 이것은 동아시아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19세기 후반에 동아시아 삼국이 서구를 만나면서 체험하는 비극, 즉 강력한 유교 이데올로기의 대체는 난국을 돌파할 가능성을 준 것으로, 새롭게 등장한 사상의 핵심에 다위니즘과 진화론이 있었어요. 적자생존, 우승열패(優勝劣敗)의 사상이지요. 우리가 가진 문제의 핵심을 진단해주는 동시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언어가 바로 힘, 생존 등의 개념에 집약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동아시아는 그 필터를 가지고 서구의 근대적 가치들을 수용합니다. 자유, 평등, 박애, 민주주의, 공화주의 등. 그래서 저는 한국, 중국, 일본의 각 사회가, 다윈이 사회사상이자 최종심급의 사상으로 성공한 지구상의 유일한 세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프랑스, 독일, 스웨덴, 미국 등 서구는 다위니즘을 다른 방식으로 끌어가서 재구성하거든요. 사회가 삶을 보장해주기 위해서 사회를 발명해서 생존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구성하는데 적어도 나름의 성공을 거두니까요. 그런데 이에 실패한 사회들, 특히 동아시아는 지난 100년간 자신들의 과거를 부정하고, 새로운 근대에 민족적 단위의 생존을 위해서 모든 것을 걸어야 했던 사회이고, 그 과정에서 세계는 결국 힘의 각축장이라는 신념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민족이나 국가 단위뿐 아니라, 민중들의 개인적 삶에서도 생존 중심의 다윈주의가 지배적 이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민란부터 국권의 상실, 정치 공동체의 부재, 식민지, 이념투쟁, 내전, 독재정권, 민주화, 세계화 등 한 번도 경쟁과 투쟁으로부터 자유로운 어떤 삶의 상태를 살아보지 못하고, 늘 약하면 도태되고 죽는 세계를 지속해서 경험한 한국 민중은 과연 어떤 삶의 가치를 자연스럽게 학습했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정의보다는 일단 살아남는 것, 나서지 말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위기를 모면하는 것이 결국에는 중요한 것이라는 인식이 아니었을까요? 어떻게 보면 한국 사회는 이미 오래전부터 액체 사회였고, 위험 사회였고, 탈전통화 사회였을지도 모릅니다. 신자유주의 이후에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되는 수많은 요소가 사실 한국 사회에는 지난 100년간의 역사적 기억과 체험 속에 체화되어, 우리에게 배어 있는 ‘생존에의 절대적 복종’이라는 태도 속에 녹아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 복종 속에서 과연 우리는 공존을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가, 아니면 사실 서구보다 더 강력한 개인주의적 삶, 가령 ‘생존적 개인주의’적 삶에 함몰될 수밖에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는 역사 속에서 형성된 이러한 개인주의가 해체되기 위해서는 향후 10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서구와는 기원과 양상이 다른 공격적 개인주의 말입니다. 이런 생각이 더욱 착잡한 것은 이것이 단순한 이념이나 사상,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는 한국의 민중이 생존주의를 일반의지의 수준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종의 시대착오(anachronism)입니다. 왜냐하면, 후기 근대가 우리에게는 근대의 핵심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Q. 큰 범위의 질문이 하나 있고 작은 범위의 질문이 하나가 있습니다. 우선 정치경제학이라는 커다란 담론이 있고요, 그 안에서 사회학자들이 가능한 대안과 담론을 만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말씀하신 ‘생존적 개인주의’도 신자유주의라는 커다란 담론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인데, 그렇다면 역으로 사회학자가 어떤 어젠다를 만들었을 때 그것이 정치경제학적 담론을 뒤집을 수 있을까요? 다른 하나는 ‘생존적 개인주의’를 말씀하셨는데요. 한국 사회의 큰 특징 중에 하나는 세습인데, 가족으로부터 물려받은 권력과 부만으로도 계급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습도 큰 범위에서는 생존주의의 결정체라고도 볼 수 있지만, 가족이 해체되는 것과는 다른 문제라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A. 거시적인 구조에 대한 논의와 실천/행위에 대한 논의로 나누어서 이야기하셨는데, 저는 둘 다 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실천/행위는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치경제학적 수준에서 우리를 규정해 들어오는 힘이 있습니다. 대개 사회학에서는 그것을 파라미터(parameter)라고 부릅니다. 예를 들면, 자살률, 소득률 등 수치화할 수 있는 것이죠. 모든 수치가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구조, 제도적인 수준에서 중력처럼 우리에게 발휘되고 있는 힘입니다. 이 힘 안에서 우리가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구조주의적인 관점이 강한 분들은 그런 상황에서 대개 그런 힘 속에서 한 가지의 중요한 행위 패턴이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의 신자유주의 체제 안에서 젊은이들은 스펙을 쌓는 자기 계발 방식으로 행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구조가 행위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구조라는 것도 결국은 행위의 결과로 형성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행위가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느냐는 물음이 계속 제기되는 것이고요. 기든스는 그것을 ‘구조화 이론’이라 칭하면서 구조가 행위를 결정하는 것과 동시에 행위가 모여서 구조를 변화시키는 순환 고리를 이야기합니다. 근데 저는 이 순환 고리에서 한쪽을 포기했어요. 행위가 구조를 바꾸거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구조를 바꾸는 힘은 구조 그 자체의 동력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입니다. 예를 들어, 금융 자본주의는 금용 자본주의의 자체 운동 과정에서 발생한 어떤 문제에 의해서 변화할 수 있지만, 금융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시위가 그것을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행위가 구조를 바꾼다면 세계를 바꾸는 것은 훨씬 더 쉬운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이 곧, 우리가 무언가에 대항해서 행위를 한다는 것조차 무의미하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왜냐하면, 행위가 바로 우리의 삶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정치경제학적 구조의 메커니즘은 사회학적 혹은 행위나 실천의 수준을 통해서 변화시킬 수 없다는 전제를 수용했을 때 오히려 실천 공간의 애틋한 의미가 잘 드러난다고 생각합니다. 안 되지만 부딪쳐 보는 겁니다. 최근에 노래방에 갔다가, 제가 지도하는 학생들이 부르는 불나방스타 쏘세지클럽이라는 그룹의 노래 <Q. 후기 근대와 ‘생존적 개인주의’, 결국은 같은 현상을 설명하는 것이지요? 후기 근대는 근대가 고도화되어 나타난 것인데, 그것이 어떤 사회적 현상과 만나서 ‘생존적 개인주의’라는 결과가 나온 것 같습니다. ‘생존적 개인주의’는 결국 생존주의와 연결되어 있고요. 사실 우리에게는 고도화된 근대가 없었음에도 같은 상황이 나오게 되었는데, 현상을 설명하는 다른 단어인지 아니면 후기 근대 자체가 석유파동 이후 서구가 겪은 위기에 대한 정반대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생존적 개인주의 자체가 포스트모더니즘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개인이 원하는 자신의 로직 대로 움직이는 것 중에 어떤 위험한 사회 상황과 맞물려서 하나의 방향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가지고 갈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A. 두 가지가 병렬적으로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하는 후기 근대는 유럽과 일본을 중심으로 큰 사회 변동에 대한 논리를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봤을 때에는 19세기적인 동력이 완전히 꺼지고 새로운 동력이 생긴 게 아니라, 이 동력이 너무 잘 가동하다 보니 나타난 것들이 도리어 굉장히 네거티브한 방향으로 드러나더란 말이죠. 이런 변화된 사회적 환경 안에서 승리했던 개인들, 19세기에 이 동력을 만들어냈던 해방된 개인들은 이제 더욱 해방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더 예속된 역설적인 개인으로 재구성된 아이러니가 등장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입니다. 그렇게 보는 것이 IMF 이후의 한국 사회를 보는 데도 일정 부분은 맞는 것처럼 보이고요. 왜냐면 급격하게 일어난 삶의 의료화 같은 것을 생각해 보세요. 예전 같으면 술 먹고 치웠을 만한 일을 우울증 약을 타먹기 시작한 사람들을 보면 우리의 마음이라는 것도 리스크로 재구성된 것 같고 가족생활을 포함한 친밀성 일반이 리스크로 재구성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말하자면, 한국 사람들이 보여주는 강력한 개인주의는 후기 근대론자들이 이야기하는 해방된 개인의 불안도 있지만, 그 보다 더 깊은 뿌리를 가진 것 같습니다. 울리히 벡, 앤서니 기든스, 지그문트 바우만이 이야기하는 개인주의는 사회나 공동체라는 것을 숨기고 있습니다. 개인은 언제나 사회와의 짝 속에서 사고 되지요. 그런데 우리가 개인주의라고 말했을 때는 이기주의라는 말을 무색하게 할 정도의 절대적 개인주의가 들어간 행태들이 많이 관찰되는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들은 10년, 20년 단위로 생각하는데 사고의 역사적 폭을 더 확장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지난 100여 년의 삶을 통째로 살펴봐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거죠. 사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인들의 삶은 수많은 이념과 시대정신으로 점철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들의 배후에서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결국 다위니즘이 아닌가 합니다. 우리는 궁극적인 수준으로 가면, 그리고 내 자식의 문제가 되면, 그래도 너는 힘도 있고 공부도 잘해서 살아야 하지 않겠니, 어쩔 수 없지 않겠니, 그게 삶인데, 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있거든요. 이 느낌이 생존해야 하는 인간으로서는 보편적인 것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사람들이 어려운 삶의 상황을 몇 대에 걸쳐 돌파해 나가면서 저절로 체득하게 된 한국 사회의 철학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 사회적 경험은 남한이 독특하다고 봅니다. 19세기 말 중반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다양한 민중이 겪어야 했던 삶의 문제들을 가지고 살펴보면 아마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은 그런 종류의 생존주의를 체득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존주의에서 나올 수 있는 개인주의의 형태는 뭘까?, 굉장히 극단적이고 공격적인 개인주의는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후기 근대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풀어내기에는 좀 미약한 느낌이 있는 거죠. 우리한테는 저런 종류의 행위 패턴들이 역사적 형성물로 오랫동안 반복적으로 나타난 걸로 봐야지, 20세기 후반의 사회변동에 의해서 갑자기 톡 튀어나온 거라고 보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Q. ‘생존적 개인주의’가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 예술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A.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매우 많은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20세기 후반에는 글로벌한 수준에서 미적(美的)인 것과 경제적인 것이라는 두 범주 사이의 관계가 전도되어버렸습니다. 근대에 미적인 것은 경제적인 것과 대립하며 등장합니다. 근대적 아방가르드는 사실 시스템과 싸우면서 나온 것이고 시스템 외부에서 외롭게 싸우다 무너지기도 하는 등 미적인 것과 경제적인 것 사이에는 항상 강력한 갈등이 있었죠. 결국, 미적인 것은 정치적인 것과 결합을 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으로 가면 이 대립관계가 포섭관계로 전환됩니다. 모든 예술가가 그렇다는 게 아니라, 구조적인 차원에서 보면 20세기 후반 자본주의는 미적인 것을 동력으로 해서 돌아간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을 ‘문화적 자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자기 변신 과정에서 미적인 것이 자본주의의 핵심으로 파고듭니다. 후기 자본주의는 베버식의 노동 윤리를 통해서 축적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굉장히 감각적인 차원들, 욕망 그리고 소위 디자인적인 것들을 통해서 스스로 갱신하고 또 동력을 얻기 때문에, 예술가 대 자본가라는 대립구도는 구세대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예술가 대 자본가가 아니라 예술적인 자본가거나, 자본가에게 대단히 큰 영감을 준 예술가, 이렇게 되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좋은 예술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차단되었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좋은 예술을 할 수 있고, 우리는 항상 즐겁게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갈 수 있고 그런 일에 때로는 자신의 신명을 다 바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구조적 수준에서 전개되는 운동들이 이러한 행위들의 결과로 변할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인문학도 똑같아요. 인문학도 리더십 담론과 잘 결합되어 있습니다. 좋은 리더십은 굉장히 예술적이고 어떤 의미에서 정말 좋은 기업인들은 자기 삶을 마치 아티스트들이 자기 삶을 경영하면서 살았던 것처럼 살 줄 아는 시대로 변화하는 것이죠. 우리 시대는 철학자나 예술가가 어려운 위치에 처해 있는 시대입니다. 싸울 수도 없고 안 싸울 수도 없는 상황이죠. 싸우는 것이 오히려 적(敵)에게 포섭될 수도 있고, 안 싸우는 것이 가장 큰 저항이 될 수도 있는, 정말 고민스러운 사회적 위치로 재구성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Q. 한국 사회가 세대 차가 심하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예를 들어, 미술계에 40~50대 작가들이 목숨을 걸고 작업했다는 어젠다가 있다고 하면, 지금의 20~30대는 너무나 작고 사소한 일상에만 매달린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거대 담론과 미시 담론 간에 갈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생존이 이즘이 된 것은 지금의 20~30대에 의해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가 갖고 있는 세대적 단절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A. 최근에 제가 계간지 <문학동네>에 박솔뫼라는 소설가에 대한 평론을 하나 썼어요. 그 분의 소설 중 재밌는 것이 하나 있어요. ‘구름새 노래방’이라는 노래방이 있는데 그곳 사장이 노래를 너무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노래에 목숨을 건 사람이죠. 그래서 노래방을 차렸는데, 얼마나 노래에 진정성을 걸었냐 하면, 누가 들어와서 노래를 성의 없이 부르면 가서 두드려 패요. 감금을 시키고 고문을 하는 거죠. 넌 노래가 뭐라고 생각하냐, 넌 노래를 왜 그렇게 부르냐, 하면서요. 영어로 부르면 맞아 죽고 살해당하기도 해요. 그런데 어떤 둘이 그런 줄 모르고 가서 날라리처럼 노래를 부르다가 주인한테 만신창이가 되게 맞고 묶였어요. 주인이 하는 말이, 영혼을 가지고 불러야 되지 않겠냐, 열심히 좀 불러라, 라며 지금의 40~50대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쭉 하는 거죠. 듣고 있는 사람은 젊은 여학생인데, 우여곡절 끝에 탈출해요. 탈출해서 무언가를 들고 가서 주인을 때려 눕혀 놓고 뭐라고 하냐면, 난 절대로 열심히 안 할 거다, 네가 시키는 거 절대로 “안 해, 안 해!” 이 글의 제목은 ‘안 해’예요. 제가 그 짧은 단편 소설을 읽는데 전율이 오더라고요. 왜냐하면, 제가 어쩌면 학생들에게 그런 괴물 같은 선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서 학생들은 하고 싶은 게 없는 거예요. 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가 없는 그런 원초적 박탈을 겪는 세대일지도 모르니까요. 할 수 있는 것은 하고 싶다 해서 되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능력이거든요. 욕망은 능력인데 이 능력을 박탈당한 애들이 너무 많은 거예요. 그 능력은 사회적 능력이거든요. 저는 이런 친구에게 탈존(脫存)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생존의 대척에 있는 삶의 형식입니다. 박솔뫼의 소설에는 전부 그런 애들이 나와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사라지고 싶어, 라면서요. 심지어 세 명이 만나는 것도 견디질 못해요. 둘과 다르게 셋이 만나면 사회가 만들어지기 때문에 관계를 깨고 도망가 버리는 덧없고 연약한 애들이 나와요. 그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못하고 있는지를 제가 느낄 수 있게 만든 소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감히 ‘이들의 탈존주의는 사상’이라고 썼습니다. 탈존주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생존주의에 대한 가장 ‘등신 같은’ 저항인 것이에요. 생존은 몇몇 애들이 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들도 결국 도태되고요. 나머지는 끝없이 도태되다 못해 사라지는 것을 꿈꿔요. 그냥 전원 딱 끄고 사라지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각종 우울, 병리들이 나타나는 거죠. 그래서 이 병리를 사상으로 읽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던 겁니다. 돌려 말해서 네거티브하고 병리적인 사상인데 그렇게 이해하지 않으면 계속 그들을 루저라고 볼 수밖에 없어요. 이것을 나쁜 것으로 보는 순간 저는 그 노래방 사장 같은 사람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나에게 나의 사상이 있듯이, ‘너희에게는 너희의 사상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상의 한 유형이 탈존주의겠구나, 너희가 그 느낌이 좀 더 발전되면 이런 세상에서 애 낳고 살아가는 건 부도덕한 일이라는 사상으로 연결될 수 있구나, 이제 그만 발전하고 성장하자, 지구상에 인간이 너무 많아, 그냥 사라지자, 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생태와 탈성장주의, 그것의 바탕에는 병리적인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는 종류의 무기력증이 있어요. 어떤 의미의 깊은 체념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치유해야겠지만 그것을 하나의 목소리로 인정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SNS에도 <R&B> 노래를 올리면서 그들의 사상이 담겨 있다고 썼어요. 이렇게 하나씩 발견해 나가면서 그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거죠. 왜냐하면 저도 어떤 의미에서는 탈존주의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에 그냥 이렇게 서서히 사라져주는 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지구에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잘 사라지는 방법을 사고하는 게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서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개인의 죽음뿐만 아니라 인류 전체 종의 소멸을 사고의 대상으로 삼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드는 것이죠. 현실 안에서는 굉장히 병리적이지만, 모든 처음에 나타나는 좋은 생각들은 병리적인 것과 결합되어 있으니까 그것을 잘 털어내서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우리의 생각과 가치를 흔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사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최근 1년 사이에 20대에 관한 관점을 많이 바꿔나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등신 같은’ 모습을 하나의 사상으로 인정하는 방법으로요.중요한 사회학자들
‘위험사회’의 징후
개인화와 현대적 사랑의 위기
맹목적으로 진화하는 근대
끈적한 시간과 공간의 시대
생존 강박의 한국 사회
‘생존적 개인주의’의 극복은 가능할까

후기 근대적 전환과 생존적 개인주의
분량23,350자 / 45분 / 도판 2장
발행일2015년 2월 10일
유형강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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