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ex-cl-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우연한 공동체의 집

조재원

시나리오: 조재원

자는 것 외에는 집과 동네에서 거의 시간을 보내지 않는 하숙 같은 방, TV를 켜지 않고서는 이야기를 나누기 어색한 거실, 일주일에 몇 번 같이 식사하기 어려운 식탁과 주방, 가족이 한 공간에 모여 살지만, 대부분 시간은 가족 외의 사람들과 집 밖에서 보내는 상태를 ‘거주’라고 하고, 그 장소를 ‘집’이라고 부르는 현재. 더하여 1인 가구에게 아파트는 맞지 않는 옷과 같고, 원룸과 오피스텔은 여럿이 살지만, 더 혼자가 되는 공간이다. 대가족, 마을과 동네라는 규모 있는 공동체가 기초단위를 이룰 때는 공간, 지식, 자원의 공유가 자연스럽고 안배도 효율적이었을 것이다. 핵가족화를 지나 1인 가구가 전 가구의 1/4을 넘은 오늘날, 혼자 살아도 ‘갖출 것은 다 갖추고’ 살아야 하는, 그래서 더 협소하고, 부족한 공간과 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중복하여 저마다 소유하는 것이 ‘거주’에서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거주의 구성원이 생산하고 문화의 씨앗을 만들고, 다음 세대에 지혜를 전수하는 베이스캠프가 돼주어야 할 ‘집’이 평생의 짐이 되고, 그 때문에 진짜 가치 있는 거주의 시간을 잃어버리는 모순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모순을 해소하고자 온라인을 기반으로 자생적으로 생겨나고 있는 공간, 지식, 일상의 자원을 공유하는 플랫폼들은 새로운 ‘거주’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의미심장한 움직임이다. 이들 플랫폼이 미래 도시와 건축에 가져올 법한 변화는 가족 구성원 단위의 한 세대, 개인 유닛 공간의 벽을 넘어선 거주의 조건과 그에 의해 생겨날 유연한 공동체, 새로운 문화를 상상하게 한다. 이러한 미래 도시에서 집은 도시 안의 복수의 거점이 될 것이다. 방도 작업실도 거실도 ‘우연한 공동체’의 만남, 연대, 협력의 기반이 되고, 거주는 온·오프라인의 통합을 통해 의미 있는 시간의 구성으로 재편될 것이다. 전시는 이러한 가상의 시나리오를 구체화하여 관람객에게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우공집(우연한 공동체의 집) 복덕방에서 알려드립니다.”

저희 복덕방에서는 방 따로, 거실 따로, 서재 따로, 주방 따로, 사무공간 따로의 공간이 필요하시면 옷 딸린 드레스 룸 따로, 차가 딸린 주차장 따로, 별장 따로, 시간 혹은 월 단위로 실시간 변경 구성 가능한 패키지로 집을 고르실 수 있습니다. 책과 옷 등 가지고 있는 짐 중에서 공유 가능한 것들을 맡아주고 입주민 모두가 공유하는 창고를 가진 셰어하우스도 있으니, 짐이 많으신 분도 여행 가방을 가지고 이사하시면 됩니다. 각 공간은 물리적인 공간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과의 지식과 자원의 공유가 가능합니다. 코워킹 공간에서 멘토링과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가능성 있는 사업아이템을 발전시키신다면 투자를 받는 것도 가능합니다.

다음은 저희 우수고객 A님의 공간 활용 포트폴리오입니다.

A님은 방은 셰어하우스 ‘통의동집’에 구하시고, 서재는 ‘국민도서관’을, 주방은 ‘통의동집’의 주방을 상시 쓰시고 주말에는 홍대 소셜키친 ‘쫄깃센타’와 간간이 ‘집밥’을 이용하십니다. 사무공간은 성수동의 코워킹공간 ‘카우앤독’을 메인으로 이용하시는데, 스페이스 클라우드 프리미엄 회원 가입을 통해 서울 각지의 회의 공간을 예약해 사용하고, 옷 딸린 드레스 룸은 ‘열린 옷장’, 선생님 딸린 공부방으로 ‘위즈돔’을, 차 딸린 차고로 ‘소카’의 광화문 존을 선택해 쓰십니다. 그 외에도 스페셜 옵션으로 별장을 사용하시는데, 제주의 소셜호텔 ‘오이지’를 선택해서 한 해 중 가장 날씨 좋은 5월 한 달은 ‘건축과 도시’라는 워크숍을 열고 지내십니다. 제주에 계신 동안은 소셜라이브러리 ‘카우앤독’ 제주에 임시 사무소 베이스를 만드십니다. 저희 팝업오피스가 12월 9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 3층에서 열립니다. 오셔서 집 만들어 가세요.

사진: 김용관
사진: 김용관

인터뷰

전시 주제인 ‘협력적 주거 공동체’를 어떻게 해석했나?

가족 체계가 핵가족화되고 그마저도 1인 가구로 더 작아지고 있다 보니, 옛날처럼 대가족, 마을이나 동네가 최소 단위가 되는 거주 영역이었을 때에 비해 나누는 것들이 굉장히 제한적으로 되잖아요. 저희가 이미 SNS를 통해서 공간적인 담 너머의 파편화된 개인들 간의, 그룹 간의 연결을 통한 공유의 노력을 자체적으로 하고 있어요. 공유는 사실 거주의 기본 조건인데 그게 더 이상 공간적으로는 뒷받침이 안 되고 있다는 거죠. 지식이나, 자원, 공간을 나누려는 온라인 기반의 공유 플랫폼들이 생기고 있고, 흥미로운 것은 이들을 기반으로 생기는 공동체는 계획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고, 가치를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우연한 공동체라는 점이에요.

앞으로의 ‘협력적 주거 공동체’를 어떻게 예상하나?

이미 여기 와 있는 미래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희가 이번 전시에서 특별하게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은 거주 프로그램을 가능하게 해주는 공유플랫폼들이 생기고 있다는 거죠. 개인 간의 공간 공유, 지식 공유, 자원 공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온라인 기반의 플랫폼들이요. 전시에서는 이들 공유 플랫폼을 거주 프로그램으로 새롭게 범주화해보려 합니다. 공유 플랫폼을 이용해서 방, 거실, 서재의 역할, 혹은 주방 역할을 하는 집 밖의 집, 가족 아닌 우연한 공동체를 만나는 가상의 ‘집’을 구축해 보는 것이죠. 여기서 거주는 공간 기반이기보다는 일상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고, 위로와 휴식을 취하는 양질의 시간으로 재편될 겁니다. 저희가 단위 세대 평면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공유하는 것이 거주 공동체이냐, 그 공간을 소유하고 유지하는 것이 거주이냐, 라고 했을 때 그러기 위해 쏟는 노력이 오히려 진정한 거주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저희 시나리오의 시작이에요. 개인과 가족의 틀이 점점 유연해지고 있고 이에 따라서 다양한 양태의 ‘협력적 주거 공동체’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오늘의 주거 문제는 무엇이고, 새로운 가능성은 무엇일까?

아까 말씀 드렸듯이 최소 거주 공동체의 영역이나 범위가 대가족, 마을, 동네, 지역이었을 때는 한 가족이 모든 걸 소유하지 않아도 열려 있는 공동체 안에서 분명히 자연스러운 공유가 이루어졌어요. 그런데 원룸에서 사는 1인 가구라고 했을 때 단독의 화장실을 가지고 있고, 단독의 주방을 가지고 있고, 단독의 침실을 가지고 있고, 그렇게 혼자 살아도 모든 걸 다 갖추고, 결국은 모든 사람이 자원을 중복해서 가지고 있으면서 사용빈도는 현저히 낮아지잖아요? 도시 안에서의 생활 비용이 점점 올라가고 있고, 저성장의 시기에 맞물리면서 그 비용이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고 있어요. 공유가 가능한 주거 양식에 대한 모색은 그런 절실한 필요에 근거한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개별적으로 누려왔던 어떤 것을 내놓고 무엇을 대신 얻을 것인가는 개인과 그룹마다 다를 수 있을 텐데요. 이 과정을 통해 새롭게 생겨나는 공동체의 구성을 통해 이전의 공간 기반의 주거 공동체가 급속하게 해체되면서 채 형성되지 못했던 시민 의식이 재생되고, 새로운 문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협력적 공간에서 살거나 혹은 그러한 공간은 직접 만들면서 느낀 점은 무엇인가?

‘통의동집’에 여행 가방 3개만 가지고 입주를 했어요. 굉장히 가볍잖아요. 친구들을 초대해서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방을 갖게 되었지요. 더하여 작년부터 계획하고 감리했던 성수동에 있는 코워킹 업무공간 ‘카우앤독’도 12월에 오픈하고요. 개인적인 생활의 터전과 계획하는 프로젝트 모두에서 ‘공유’하는 공간을 깊이 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지요.
저를 포함해 많은 사람이 싱글조차도 ‘버젓한 내 집’을 가지기 전까지는 무엇인가 결핍된 상태의 거주를 하고 있다고 느끼는데요. 지난 1년 공유 주거에서 생활하며 제가 좀 더 ‘내 집을 소유하는 것’에 말랑하게 생각하면 할수록 훨씬 자유롭게 거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게 꼭 왜 한 군데여야만 하느냐 싶었어요. 제 거주의 거점을 제주도에 하나, 강원도에 작은 방 하나 등으로 다거점의 거주 양식이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아파트를 대출 끼고 산다면 이사 한 번 가기 어렵고 삶의 모든 것을 거기에 묶어야 하잖아요. 하지만 삶의 가치를 위해서 오히려 이 거주 공간 자체를 굉장히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다고 하면 삶이 얼마나 가볍고 풍요로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직접 경험하면서 느꼈어요. 이러한 양태가 확대된다면 우리의 주거 문화가 거주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지나치게 노력과 에너지를 많이 쏟는 것에서, 내가 혹은 우리 가족이 어떤 가치를 가진 삶을 살까 하는 것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질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렇게 된다면 실로 주거와 도시의 문화가 얼마나 다양하게 펼쳐질까, 하는 흥미로운 상상을 하게 됩니다.

우공집복덕방 홈페이지 (woogongzip.com)
자료: 조재원

조재원

공일스튜디오 대표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이다. 2010년 <제주돌집 Floating L>로 제주건축문화대상 본상을, 2011년 대구 <어울림 야외극장>으로 대한민국 공공디자인대상을 수상했다. 2014년 완공된 성수동 코워킹업무공간 <카우앤독>을 설계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0)에서 ‘처음의 것’(1)이 나타나는 ‘사이’에 삶의 가치를 더하는 공간의 쓸모를 탐구하고 현실화하는 것에 관심을 두고 일하고 있다.

우연한 공동체의 집

분량4,439자 / 10분 / 도판 6장

발행일2015년 2월 10일

유형작업설명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