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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rd Scape

김영옥

시나리오: 김영옥

건물은 고정되어 있는 사물이다. 그곳에 시간의 기억이 더해지면 유체가 된다. 시간이 더해진 장소는 기억으로 채워져 다양한 관계를 만든다. 그 관계 속에서 우리—하늘, 식물, 길, 사람, 건물, 동물, 땅, 공기, 사물—모두는 여전히 세심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를 삶 자체의 유동성과 불안으로 인해 공동체가 해체된 불안정의 시대, 곧 ‘액체 근대’로 특징짓지만, 우리는 여전히 유토피아를 꿈꾼다.

개인이 꿈꾸는 이 시대의 유토피아를 생각해본다. 세상은 부유하는 수많은 시그널로 이해되고 개인이 그것을 인식함으로써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각각의 네트워크로 만들어진 관계는 인식의 장치를 공유하는 하나의 부족을 이룬다. 기억을 공유하고 불안의 경계를 나누며 대부분은 우연과 선택으로 결정된 한시적 관계이다.

계획의 사례로 든 <장충동집> 또한 1년 단위 거주 계약으로 맺어진 한시적 부족이다. 건물에는 7개의 1인 주거(co-housing)와 2개의 공동 사무실(coworking), 그리고 하나의 상점이 있다. 함께 거주하는 사람은 16명 정도이고, 공유 공간은 지하마당과 연결된 공용주방, 그리고 4층 옥상과 연결된 서재로 모두 12개의 방이 있다. 개인의 집인 방은 전체 20~30㎡ 면적에 1㎡의 발코니와 간이주방, 욕실, 2.4m의 옷장과 침대, 책상, 3개의 의자, 4개의 창, 3개의 문 그리고 30~50개의 물건을 가지고 있다. 개인은 완전히 혼자일 수 있고 스스로 고독할 수 있는 생산적인 집을 소유한다. 소유하는 집은 완전히 독립적이고 공유하는 장소의 경계는 유동적이다. 집 앞과 문 앞, 계단과 그 사이, 집으로 가는 길, 옥상과 지하의 마당, 창과 발코니는 제3의 사물과 사건이 생성되는 지점이고 사람과 삶과 공간이 관계 맺어지는 장치이다. 12개의 방은 긴 복도와 복잡한 계단으로 연결되고 그 사이 확장된 공간에서 멈추거나 모인다. 지하마당에서 강연이나 공연이 있는 날은 건물에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50~60명으로, 건물은 골목까지 이어지면서 집 전체가 하나의 분위기를 가진다.

삶과 분위기는 늘 미묘한 가변성 속에 있다. 집과 도시 그리고 사람도 우연과 발견이 기대될 때 매력적이고, 변하는 것과 변치 않는 것이 적절할 때 그만의 생명력을 지니게 되는 것 같다. 계획되지 않는 빈자리, 집으로 가는 몇 가지 길, 개인의 삶의 경계를 조절할 수 있는 집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삶의 영역을 나누고 기억의 영역을 공유하는, 함께 부분을 나누면서 사는 집을 제안한다.

자료: 김영옥
사진: 김용관

인터뷰

전시 주제인 ‘협력적 주거 공동체’를 어떻게 해석했나?

주제와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진행 중인 작업이 있어요. 대지 면적 60평, 건물 면적 35평, 연면적 110평 정도 되는 작은 규모의 건물인데 시나리오에서 소개한 구성처럼 1인 주거들과 공동 사무실, 상점, 지하마당과 공용주방, 옥상과 서재 등 삶에 필요한 공간적 요소가 최소 단위의 면적으로 나누어진 건물이에요. 주거, 업무, 상점, 문화시설이 한 건물에 다 있는 셈이어서, 논리적으로는 이상적인 건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이번 제안을 통해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

저는 개개인이 완전히 독립적일 때 공유나 공공, 협력적 주거라는 함께 사는 시스템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개인이 소유한 사적인 공간은 완벽하게 닫을 수 있고 스스로 공유를 조절하는 그런 느슨한 장치로서의 함께 사는 집을 계획하고 있어요. 그 장치는 개인이 가진 닫힌 공간 이외에 연결되는 어떤 부분, 복도이거나, 계단이거나, 작은 마당이거나, 골목과 연결된 어떤 곳, 집 앞이거나 혹은 발코니의 어떤 곳인데, 의자가 나와 앉거나 화분 하나가 놓이거나 사람이나 사물이 공간에 자리하면서, 제3의 접촉으로 우연과 기억이 발생할 수 있는 접점을 많이 만들려고 한 거죠. 너무나 현실적인 주거의 문제에 대하여 이상적인 생각일 수 있지만, 사람과 그의 삶과 공간이 다양한 관계를 맺는 것이 개인이 소유하는 전용면적의 크기만큼 소중한 것이 아닐까 해요.

오늘날 주거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지금 우리가 주제로 하는 공유, 공동이라는 현상이 주거뿐만이 아니라 사회, 문화, 정보, 음식 등 거의 모든 방면에서 관심을 가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이전에는 가족과 함께 사는 집이 자연스럽게 있었고, 혈연이나 지연으로 자연스럽게 공동체를 이루었지만, 지금은 도시화, 개인화되면서 함께하는 관계나 공간과 시간의 개념조차도 전혀 다르게 인지되는 세상에 살고 있잖아요. 따라서 삶에 필요한 많은 것들을 다 지니고 살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고, 가족을 위해서 집을 마련해야 하는 필연성도 약해졌어요. 그래서 이제는 거주라는 것도 하나의 도구처럼 되어버린 게 아닌가 해요. 이런 사회적인 현상은 옳고 그름으로 판단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회적 질문에 최소한의 건축적 대답 중의 하나가 협력적 주거 공동체가 되어야겠죠.

가능성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내면의 자유로움입니다.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도 장소가 요구하는 그러한 부분을 가장 존중하고 싶고요. 그것이 밖에서 다시 읽어 보면 그 장소에서 각각의 개인이 모두 다양한 삶을 사는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우리는 모두 각각 완벽히 다르잖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말투, 음식, 옷차림 등 삶을 사는 모습들이 너무나 획일적이 되었어요. 서로 다른 가치가 존중되는 세상이 좋은 시대이겠죠. 건물은 대단히 물질적인 것이잖아요, 어디에 어떤 재료로 어떤 형태와 크기로 있는지를 가지고 건물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죠. 지난해 셰어하우스 <통의동집>을 만들고 올해에 <장충동집>을 설계하면서 함께 사는 공간의 크기와 그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관찰하고 고민했어요. 큰 그림의 담론은 아닐지라도 사람과 삶이 건물인 장소와 깊이 관계 맺을 수 있는 장치로서의 건축이 새로운 가치라고 생각해요.

무엇이 ‘협력적 주거 공동체’를 가능하게 할까?

함께 사는 공간에서는 개인이 완벽하게 독립적일 수 있고 그 안에서 스스로 생산적인 삶을 만들어낼 수 있는 보호된 공간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개인이 공유하는 장소나, 공공의 장소에 대한 성격을 더 단단하고 바람직하게 만들지 않을까 해요. 이런 생각은 지금 대상이 되는 1인 또는 2인 주거로 사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떠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요. 가족 관계와는 다르게 어떤 영역의 필요나 공유를 위해 한시적으로 형성된 관계가 많아지고, 네트워크를 끊거나 새로운 관계를 만들 때 사람 사이의 감정적 관계와 무관하게 작동하는 사회적 커뮤니티에 점점 익숙해지죠. 그러나 여전히 간접적으로라도 삶의 영역을 나누고 기억의 영역을 공유하며 갖는 유대감이 삶을 의미 있게 하지 않을까요?

전시를 기점으로 공유나 공동체에 대해 생각의 변화가 있었나?

전시장에는 창문을 의미하는 조명과 책상이 있고, 책상에는 앨범과 모니터가 있어요. 앨범은 집에 대한 계획과 경험, 기억을 스케치로 기록했고, 모니터는 <장충동집>에 계획 도면과 모형을 무대로 이번 시나리오의 영상을 만들었어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기보다는 공간과 그 기억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기회가 되었어요. “언어의 본질은 함께 부분을 나누는 것에 있다”는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를 ‘함께 부분을 나누면서 사는 집’이라고 주거 공동체에 적용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영옥

건축과 도시와 색채를 공부했고, 지금은 건축과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다. 경북 안동 낙동강 가에서 정규초등교육을 받지 않고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99년에 로담(Rodemn A.I)을 설립 후 첫 프로젝트인 <문화공간 Tube2000>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주요 작업으로는 <Lycos Music>, <Mercure Sodobe Hotel>, <Cherry Hotel>(Japanese Design Award 대상, 2003) 등의 상업공간 디자인, <석촌호수 프로젝트>(Asia Pacific Space Award 대상, 2010), <서원어린이집>, <잠실환경디자인>, <산집>(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공간상) 등의 건축, 환경작업이 있다. 2008~2011년 4년 연속 Korea Best Design 금상을 수상했고, 좋은 집 짓기와 살기에 대한 책 『숨쉬는 집』을 출간했다. 수학책 읽기를 잘하고 식물에 대해 공부하기를 좋아한다. 현재 로담 대표이고 건국대학교 건축대학원 스튜디오 교수로 있다.

3rd Scape

분량4,128자 / 10분 / 도판 8장

발행일2015년 2월 10일

유형작업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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