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search close
https://archnews.manualgraphics.com/v34-cover/
문단구분
글자크기
  1. -
  2. +
배경
  1. 종이
글꼴스타일
출력
  1. 출력
목차

공공의 사막에서 당선작 경로 찾기

김상호

공공 프로젝트의 존재 이유는 사회 불균형을 해소하고 사회가 지향하는 공동의 가치를 한발 앞서 선취하는 데 있다. 공익과 공공성을 담보로 추진되고, 필수불가결하지만 이윤을 내기 어려운 취약 지대를 커버하고, 당장의 필요뿐 아니라 미래의 필요까지 수용하는 중요한 사회적 수단이자 문화적 생성물이다. 그러나 알다시피 이런 추상적인 개념은 현실에서 스스로 작동하지 않는다. 세금과 예산, 절차와 행정, 운영과 관리 같은 기획 레벨을 거쳐, 설계, 납품, 견적, 회의, 공사, 입주 같은 실행 레벨에 이를 때쯤, 사회적 불균형이니 공동의 가치니 미래의 필요 같은 말은 어느새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실리콘 코킹과 시멘트 코킹 사이의 선택 따위만 눈앞에 덩그렇게 놓여 있게 된다. 개념과 실제,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세상 모든 곳에 흔히 있기 마련이나, 공공 프로젝트에서 결정적 한 방은 개념과 실제의 간극을 좁히며 총체적 난국을 풀어나가는 주체(주인)가 없다는 점이다. 주인은 없는데 어떻게 애초에 프로젝트가 생성된단 말인가? 생각하는 주인은 없으나 프로젝트를 생성하는 요인은 있기 때문이다. 섬뜩하기까지 한 이 말은 어떤 기시감을 주기도 한다. 여기에 공공 프로젝트의 모든 어려움이 수렴한다.

공공 프로젝트의 세계에서 공공건축 부문은 특히 난이도가 높다. 개념과 실제 사이의 거리가 멀고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거기에 비례해 주인 부재의 문제가 심화되기 때문이다. 건축 계획은 광범위한 사회 흐름을 아우르는 데서부터 시작되어야 하지만 몇 장의 보고서와 계획서로 압축되어야 하고, 그것은 다시 여러 사람의 상상과 주관과 욕망이 뒤섞인 역장으로 들어갔다가 최종적으로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귀결해야 한다. 하나의 아이디어는 몇 장의 그림으로 표현되어 있고, 그것을 여러 갈래의 영역으로 분해해서 여러 사람들이 해석한 다음, 다시 하나의 그림으로 합친다. 그렇게 그림과 문서로 표현한 설계도를 또다시 여러 단계와 파트로 나누어 실물로 조합하기 시작한다. 이때쯤 되면 프로젝트에 관여하는 사람이 적게는 수십, 많게는 수백 명에 이르게 되고, 최초의 그림을 그렸던 사람조차 자신이 그린 것이 무엇인지 다 알지 못 한다. 여기까지만 생각해도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아직 공공건축에 들어가는 시간과 돈과 싸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쓰지 않았는데 말이다. 일단 시작하면 멈추기 어렵고, 짓고 나면 바꿀 수도 없앨 수도 없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매시간 돈이 들고, 그렇게 몇십 년 몇백 년을 갈지 모를 주인 없는 건물이 생긴다.

당선작은 어쩌면 공공이라는 모래사막에 떠 있는 신기루 같은 것일지 모른다. 공공성이라는 목적지는 막연해 보이고, 잡히는 것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뿐이고, 내리쬐는 태양과 뜨거운 땅에 숨이 막히고, 갑자기 불어닥치는 모래바람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게 눈을 가린다. 당선작은 그 허공에 떠 있다. 거기 있는 것 같지만 없고, 곧 다다를 것 같지만 여전히 멀리 있고, 한순간 실재 같다가도 어느새 환영처럼 너울거리는 환상의 건물이다. 운좋게 만나는 좋은 공공건축은 그야말로 오아시스나 다름없다.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 어떻게 멀쩡하게 유지되고 있는지가 불가사의다. <당선작들, 안녕하십니까>는 그 불가사의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당선작들, 안녕하십니까> 포럼은 공공건축물의 설계공모 당선작의 핵심 디자인과 실현 과정, 나아가 완공 후의 운영 상태까지 모니터링함으로써 건축의 공공성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사회에 건강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돕고자 마련되었다. 공공성의 이해가 필요한 사람이 일반 시민이라고 언뜻 생각하겠지만, 아니다. 시민들은 이미 공공성의 충만한 실현을 기다리고 있다. 이를 정확하게 이해하고 움직여야 하는 사람들은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정부 부처, 공모를 대행하는 회사, 당선안을 선정하는 심사위원, 건물을 설계하는 건축가, 예산을 집행하는 공무원, 건물을 짓는 시공자, 완공된 시설의 운영자 들이다. 이들이 저마다 목표로 삼는 것들을 보면 공공성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것 같다. 사람들이 필요한(알고 싶은) 것은 당선과 완공이라는 단편적, 일시적, 피상적 결과가 아니다. 너무 당연하게도, 당선작을 발표하기 위해(공공을 선전하기 위해) 설계공모를 여는 것이 아니고, 건물을 완공하기 위해(건설 현장을 돌리기 위해) 당선작을 뽑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작품을 남기기 위해 공모에 참여하는 것도 아니고, 돈을 벌려고 시설을 운영하는 것도 아니다. 개별적인 단순 목표들은 모두 공공건물이 이바지하고자 하는 바(앞에서 설명한)를 달성하기 위해 거치는 여러 단계와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가 궁금한 것, 알아야 할 것은 당선과 완공의 앞과 뒤, 그리고 거기서부터 연결되는 프로젝트 전반에 걸친 결정과 협의의 지점들이다. 이것들이 모여서 당선작들이 지나는 불가사의한(불가능해 보이는) 경로들을 표시해 준다. 

건축은 긴 시간에 걸친 과정의 연속체라는 사실을, 설계와 공사의 과정만 아니라 설계가 시작되기 전과 공사가 끝난 후에 더 길게 이어지는 시간 속에 있는 영구 미완의 프로젝트라는 사실을 <당선작들, 안녕하십니까>는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어느 한 시점에 얼어붙은, 잡지에 인쇄된,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온, 당선 기사에 실린, 준공 기념사진에 찍힌, 뮤지엄에 전시된 것은 건축의 본모습이 아니다.

건축신문 편집장 김상호

공공의 사막에서 당선작 경로 찾기

분량2,614자 / 5분

발행일2023년 9월 11일

유형서문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모든 텍스트는 발췌, 인용, 참조, 링크 등 모든 방식으로 자유롭게 활용 및 사용할 수 있습니다. 다만, 원문의 출처 및 저자(필자) 정보는 반드시 밝혀 표기해야 합니다.

『건축신문』 웹사이트 공개된 이미지의 복제, 전송, 배포 등 모든 경우의 재사용을 위해서는 반드시 원 저작자의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목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