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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적이되 협력하는 이들의 공동체

박성태

『강아지 똥』, 『몽실언니』 등을 쓴 아동 문학가 권정생 선생은 교회에 딸린 5평짜리 흙집에서 수십 년 넘게 혼자 살다가 7, 8년 전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그 흙집은 무욕, 절제, 가난 등 선생의 삶과 동일한 의미로 읽히며 여전히 그 뜻을 기리는 방문자를 맞이한다.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호숫가의 오두막이나, 퇴계의 도산서당 내 완락재(玩樂齋)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어떤 집을 짓고 산다는 말 속에는 “어떻게 살 것인가?”란 질문에 대한 그 사람의 가장 솔직한 답이 숨겨져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어떤 집을 지어 살고 싶어 할까? 교과서적인 대답은 소박하고 건강하고 튼튼하며 이웃이나 자연과 소통이 잘 이루어지는 집일 것이다. 그러나 급속한 경제 성장기를 보내며 우리는 집을 과시의 대상이자 투자의 대상으로 여기며 균질한 주택 상품을 남들보다 하루라도 빨리 장만하고자 노력했다.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관을 주거공간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가로세로로 열 지어 서 있는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기성복 같은 그 공간을 맹목적으로 열망했다. 그런 집에 인생 전부를 걸기도 했고, 다른 지역으로 집을 옮기기 위해 발버둥 치기도 했다. 서로 전혀 다른 존재로 태어났으나 서로 비슷비슷한 붕어빵 삶을 원하게 됐다.

지난 몇 년간 우리 사회는 급격한 가족 해체를 겪으면서 전통적 의미의 집이 상실되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도시화와 개인화, 저출산과 고령화는 사회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다. 4~5인 가족은 급격하게 줄었고, 그 자리에 1~2인 가구가 들어섰다. 이미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1~2인 가구이며(2012년 기준), 20년 후에는 70%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이 해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열심히 노력해 마련한 집에서 가족 구성원은 이리저리 떠나고, 홀로 사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가족 구성과 대안적인 주거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집에 대한 개념과 접근 방식을 전반적으로 수정해야 하는 때가 된 것이다. 더 큰 우려는 지금의 도시 공간이 공동의 터전으로 작동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포용보다는 배제가 주를 이루고, 대다수 삶의 공간은 이웃과 단절되어 있다. 임대주택은 게토화되고, 고급 주상복합아파트는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자처하며 외부와의 관계를 끊고 있다. 도시 공동체가 함께 누려야 할 공공 공간마저 줄다 보니 대다수의 교류 공간은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해야만 머물 수 있다. 활력이 떨어지는 교외 지역, 나날이 늘어나는 노인 빈곤층, 고립되는 청년층에 대한 고민은 설 자리를 잃었다. 각자의 닫힌 방으로 들어가 연대와 교류 없이 살다가 홀로 죽어가는 것이 우리의 어둡고도, 가능성 높은 미래상이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 대해 이미 여러 지역 공동체들은 “우리의 삶터에 이웃과 협력하는 주거 공동체는 요원한 것일까?”와 같은 물음을 던지면서, 닫혀 있는 획일적인 주거 공간을 공유의 개념으로 재구성하는 ‘협력적 주거 공동체’의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해 왔는데, 이런 움직임이 우리의 주거 문화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현실적인 문제를 전시를 통해 제시하되, 주거에 대한 막연한 인상이 아닌, 실현 가능한 제안을 할 수 있는 건축가 9명/팀과 “내 공간의 1/3을 이웃과 공유하자”란 슬로건 아래 내 살림과 옆집 살림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협력하고 연대하는 삶의 터를 상상해보고자 한다. 전시에 초대된 건축가들이 ‘완성된 작품’이 아닌 ‘고민의 흔적’을 보여 주기에 1/3 공유가 새로운 제안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했고, 그 결과, 각기 다른 시선과 언어로 보다 다양한 방식의 주거 공동체에 대한 제안이 나왔다. 더불어 삶의 공간을 고민하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이 건축가이기에, 이들의 제안은 낭만적인 동시에 오늘날 뿔뿔이 흩어진 개인들이 살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생태계를 구성한다는 점에서 ‘협력적 주거 공동체’의 명암을 잘 드러내고 있다. 

9개의 시나리오는 그간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집이라는 개념과 제도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그동안 재테크의 수단이 된 주거 문제는 쉽게 비판했으나, 그 고립된 공간 자체를 의심하거나 구체적인 대안은 그려 보지 않았다. 예로, 비슷비슷한 내외부를 가진 아파트를 문제아 취급했으나 그것의 또 다른 가능성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9명/팀의 건축가들은 삶의 공간에 개인의 소외를 최소화하는 반면 ‘생성과 만남의 여지’가 있고, ‘미지의 새로움’에 적극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다양한 단초를 보여준다. 흥미롭게도 이들의 제안에는 자율적인 개체로 독립적이되 협력하는 사회적인 주체가 공통적으로 등장한다. 다시 말해, 각자의 개인성과 자율성이 협력적 주거 공동체의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공동체의 모습은 이미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혼자 책임지는’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공감대가 점차 넓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함께 아이를 키우는 주거 공동체(성미산 소행주, 부산 일오집)와 정부와 지자체가 추진하는 협동조합형 임대주택(가양동 육아형, 만리동 예술가형, 천왕동 여성형), 그리고 이들 주변으로 골목마다 들어선 자그마한 상점과 공방, 배우고 나누는 지역도서관 등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부담스러운 임대료나 집값을 절감해주기도 하고,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누리는 위안과 공유 가치의 실천에 따르는 유대감을 형성하게 한다.

오늘날 대도시 사람들은 공동의 삶을 시작했어도 각자에게 나뉠 몫이 적다고 생각되면 대부분 다시 낱개의 공간으로 돌아가기 쉽다. 철학자 한병철이 말하는 것처럼 “공동체 또는 협력적 공유경제의 이념이 공동체를 전부 자본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고, “아름다운 ‘나눔’에서 역설적이게도 아무도 자발적으로 무언가를 내놓지 않는다”는 진단이 옳은 것으로 판명될 수도 있다. 이러한 벽을 넘어 새로운 문화·사회적 가치를 만들어 보고자 2014년 한국 주거(living)의 현실과 문화에 대한 리서치를 진행했고, 전문가들을 만났으며, 현실을 더 면밀하게 관찰하고 구체적인 대안적 주거를 상상하기 위해 같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9명/팀의 건축가와 관계 맺음을 이어왔다. 이 책은 그러한 과정, 즉 아홉 가지의 건축적 제안, 국내외 공유주거에 대한 리서치 등 전시장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와 준비 과정을 정리한 것이다. 이번 《협력적 주거 공동체 Co-living Scenarios》 프로젝트를 통해 주거가 ‘더불어 사는 삶’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가장 가깝고도 실천 가능한 공간이라고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사무국장


시나리오

“당신이 점유하는 공간의 3분의 1을 타인과 공유해야 한다. 당신의 아이디어를 보여달라.”

2014년 12월 9일부터 2015년 1월 25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협력적 주거 공동체»의 기본 골격이다. 이에 대한 9명 건축가의 ‘제안’이 전시로 발표되었는데, 말하자면 아홉 가지 ‘공동주거 시나리오’(Co-living Scenarios)인 셈이다. 공유공간은 서재가 될 수도, 주방이 될 수도, 온실이나 서재 혹은 지역의 대안 학교가 될 수 있다. 이 공간은 낮과 밤에 사용자가 바뀌며 지역의 사람들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동네 사람들의 우연한 마주침을 중첩시키고 감흥의 순간을 공유하는 매개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공간을 통해 내 살림과 옆집의 살림이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그것을 통해 연대하는 삶터를 상상해보자는 것이 전시의 의도다. 이런 전시 의도에 직면해 9명의 건축가/팀은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했을까? 그들 아이디어의 핵심은 무엇이고, 어떻게 그러한 ‘시나리오’를 창조하게 되었을까? 전시를 위한 생산물과 인터뷰를 통해 알아본다.

토크

정림건축문화재단은 2014년 봄, «협력적 주거 공동체» 전시의 연계 프로그램이라는 성격을 가진 일련의 강연을 기획했다. 현실의 건축 실천이 이 시대 구성원의 삶의 조건 속에서 출발해야 한다면 우리 시대의 성격을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 일환으로 ‘협력과 공존’이라는 테마 아래 건축가를 비롯해 여러 분야의 인사를 초청해 개별 건축 프로젝트에 대한 논의부터 우리 사회를 어떻게 볼 것인가, 라는 사변적 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성격의 강연을 열었다. 그들이 생각하는 ‘지금 여기’에 대한 진단과 평가를 듣고자 했고 더 나은 삶의 조건에 대해서도 알고 싶었다.

이 장에서 우리는 여러 강연자 중 사회학자 김홍중과 노명우, 문화인류학자 조문영의 발표와 토론 내용을 지상 중계한다. 이 사회의 시대 징후와 우리가 당면한 경제구조, 이 시대 청년들의 경험에 대한 이들 강연자의 논의에선 우울하고 병리적인 우리 사회의 무력함이 아프게 드러나기도 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공존 가능성’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일 또한 우리의 몫일 것이다.

레퍼런스

오늘날 우리가 이해하는 공동주거, 즉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마을이나 주택을 매개로 모여 사는 것에 대한 관심은 200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다. 직접적으로는 한국보다 앞서 일어난 일본의 영향을 많은 부분 받았으나, 거슬러 올라가면, 산업혁명 이후 유토피아를 꿈꾸었던 19세기 유럽과 북미의 커뮤니티 운동, 그리고 20세기 사회 개혁의 도구로 출발한 러시아와 북유럽(스웨덴)의 공동주거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왜 공동체 계획을 실현하고자 했는지, 그 역사적 배경을 정리해 자료로 삼고자 한다. 한편, 한국에서 공유주거는 1994년 서울의 성미산 마을이 조성되고, 특히 이곳에 공유주거 소행주가 2011년 만들어지고 여러 언론에 소개되면서 급증하기 시작했다. 이는 하나의 트렌드 또는 취향이기 전에, 곧 도래하게 될 우리의 미래 주거 환경에 대응하기 위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흐름은 물론 우리나라 가족 구조와 주거 환경의 변화로부터 온다. 각종 데이터를 통해 주거 문화에 영향을 준 요인, 그리고 ‘주거 공동체’의 현황과 사례들을 살펴본다.

독립적이되 협력하는 이들의 공동체

분량4,889자 / 10분

발행일2015년 2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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