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왕산 초소책방
이충기
분량5,267자 / 10분 / 도판 6장
발행일2023년 9월 11일
유형작업설명
인왕산 초소책방과 숲속쉼터는 2018년 서울시 푸른도시국, 종로구 공원녹지과, 서울시 도시공간개선단이 협력 진행한 공공 프로젝트다. 인왕산 경계초소 20개 중 2개소를 남기고 문화공간으로 리노베이션하여 2020년 개방했다. 건축가 이충기가 초소책방을, 건축가 조남호가 숲속쉼터를 설계했다. 초소책방은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2021)을, 숲속쉼터는 서울시 건축상 우수상(2021), 대한민국목조건축대전 대상(2021), 한국건축가협회상(2021) 등을 수상했다.
- 초소책방 설계자 발표: 이충기(서울시립대학교 교수)
방호 초소에서 북카페로
이충기 2011년부터 여러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수애헌, 목인헌, 선벽원, 세운상가 재생 프로젝트, 서울시립대학교 선벽원, 본관, 도서관 등 주택 리모델링에서부터 도시재생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업을 했다. 그 연장선상에 초소책방이 있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인왕산에 위치한 1970년대에 지어진 초소 건물이 공중화장실, 책방, 휴게공간, 북카페가 있는 건물로 탈바꿈한 것이다. 실제로 초소로 쓰던 건물을 새로운 용도로 변화시켜야 했기에 기술적이고 성능적인 부분에서 보강이 필요했다. 새로 짓는 건물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려움도 많았다.
초소책방은 사직단에서 자하문터널로 가는 인왕산로(스카이웨이)의 중간에 위치한다. 인왕산 초소의 역사는 1968년 북한의 김신조 일당이 무장공비로 청와대까지 침투하게 된 일명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계기로 지어진 초소로부터 시작된다. 그 사건 이후 박정희 대통령이 방호 구역을 북악산에서 인왕산 일대까지 확대하여 초소를 짓게 된다. (이후 남산3호터널을 뚫고, 그다음에 삼일로 고가도로로 피난 통로를 만들고, 강남 개발을 하게 된 계기가 된다.) 인왕산 자락의 아래쪽 길, 지금의 스카이웨이 쪽 산책길에 경찰이 방호 인력을 투입해서 초소 근무를 섰다.
그러다가 문재인 정부에 들어서면서 북한과 화해 모드가 조성되고,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고 판단해서 청와대 방호 구역을 줄인다. 자하문 터널까지 축소하게 인왕산 쪽이 개방된다. 문재인, 유홍준, 승효상이 2018년 5월 해당 지역의 개방 계획을 구체화하고 발표한다. 그러면서 조남호와 내가 건축가로 지명되었다. 우리를 지명하기에 앞서 젊은 건축가한테 설계를 맡겼는데 설계비도 1천만 원으로 작고 공사비 예산도 3억 원이라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결국 두 개의 건물을 나눠서 위쪽에 있는 초소를 조남호가, 아래쪽에 있는 초소를 내가 맡았다. 나는 사실 산을 오르기가 싫었다. 위쪽은 조남호 소장한테 미뤘다. 🙂
철거 대신 리모델링으로
이충기 내가 담당하게 된 아래쪽 초소는 처음에는 철거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방문해 보니 굉장히 수려하고 충분히 활용할 수 있겠다 싶어서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하기로 했다. 서울지방경찰서 관할 건물이었던 초소 건물은 무상양여1로 종로구로 넘어갔고,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기존 건물은 담이 아주 높았다. 길에서 보면 사람 키보다도 훨씬 더 큰 담장이 가로막고 있어서 그 너머의 초소 건물이나 서울 전경은 보이지 않았다. 방어벽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곳이 초소로 사용됐을 당시 한 소대가 주둔했었다. 낮은 쪽은 화장실, 식당, 소대장 사무실로 사용했고, 높은 쪽은 내무반이었는데 2층 침대를 두고 교대 인원들이 사용했다. 그리고 폴리카보네이트로 돼 있는 운동시설이 있었는데, 내부에서는 통하지 않고 외부 계단을 통해서 올라갈 수 있었다. 바위 쪽으로는 석축을 무단으로 쌓고 펜스도 쳐서 운동 시설을 놓고 사용하고 있었다. 기름 탱크도 있었다.
리모델링하면서 골조인 콘크리트 기둥과 슬라브만 남기고 모두 철거하기로 했는데, 흔적으로 남기고자 한 건 출입문과 북측・동측 벽돌벽 일부였다. 그러면서 내부 공간의 경계를 기존의 기둥 라인보다 1.2~1.5m 안쪽으로 후퇴시켜서 설정했다. 1층은 오히려 실내 면적이 줄었다. 프로젝트 초기에 면적이 부족한데 왜 자꾸 후퇴하냐는 얘기가 많았다. 필요한 공간 모두가 내부에 있을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설득했다. 특히 이곳은 경관이 좋기 때문에 벽을 후퇴하고 외부 공간을 늘리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조경과 데크: 경관과 산책의 연장
이충기 2층은 원래 야외 옥상이었던 곳을 증축한 것이다. 1층 증축 공간에 맞춰서 2층 공간을 새롭게 설정하고, 내부에 계단을 뒀다. 건물 밖으로 나와 대지 경사로를 따라 내려가면 사람들이 앉아서 쉬는 야외 데크 공간도 계획했지만 예산 문제로 조성되지 않았다. 대신 ‘회복의 숲’을 제안했는데 그조차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참고로 삼은 건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비행장 활주로 조경 복원 프로젝트인 ‘알터 플러그프라츠(Alter Flugplatz)’다. 활주로를 다양한 크기로 쪼개놓으니 식생이 다채롭게 자랐다. 이처럼 스스로 회복하는 방식을 우리 프로젝트에서도 제안했는데, 공사비 3억 원 안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었다. 다만 건축에 비해 조경은 예산이 넉넉하게 잡혀 있었다. 주변이 다 숲, 즉 자연 조경이었기 때문이다.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공원녹지과, 종로구 담당자들을 만났고 의견을 관철해서 공사비를 증액했다. 최종적으로는 10~11억 원 정도가 됐는데, 조경 예산을 빼서 건축에 쓴 셈이다.
이 건물은 데크가 중요했다. 산책길과 1층 공간으로 이루어진 아래쪽 레벨과 2층 공간과 테라스로 이루어진 위쪽 레벨을 연결하고자 했다. 내부가 문을 닫아도 산책길에서 바로 1층, 2층 외부 데크로 진입할 수 있도록 계단과 데크를 많이 두고자 했다. 1층 데크를 산책길 레벨과 맞추는 것부터 상당히 까다로웠다. 무장애 설계를 하고자 했다. 또한 데크의 재료를 목재로 고수하는 것이 굉장히 힘들었다. 당시 종로구청이 목재 데크는 썩기 때문에 외부에 사용할 수 없게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도 끝까지 고집을 부렸다. 잘 썩지 않는, 비중이 높은 데크목을 깔았다.
화장실은 산책길에서 바로 들어가게 했다. 화장실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중요했다. 인왕산 길에 화장실이 하나도 없는 큰 불편함을 이곳에서 해결하고자 했다. 화장실 옆으로 주방 등 물을 사용하는 공간을 뒀다. 증축이 필요한 부분은 기존의 기둥 라인에서 1.2m 정도 외부로 빼냈다. 넓지 않은 공간에서 통로가 확보되도록 설계했다.
조경은 석축부터 이야기해야 한다. 인공으로 만들어져 있던 석축을 다 긁어낸 다음 자연 바위와 인공 데크가 바로 맞닿게끔 했다. 조경도 잘 어우러지도록 바위에 이끼들, 지피류들을 많이 심어 달라 요청했는데 충분히 반영되지는 않았다. 대안으로 풀 종류를 심었고 반대편은 일반적으로 많이 심는 나무를 심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외부 공간과 데크가 바로 맞닿게 됐다.
이 지역은 경관이 뛰어나다. 투명한 유리로 계획하여 외부 경관이 내부로 흐르도록 했다. 여름에는 실내가 덥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지만, 흐르는 경관이 콘셉트다. 저철분유리를 이용해 투명하게 바깥 풍경을 볼 수 있게 하고 기존의 폐쇄적인 분위기를 개방적으로 바꿨다. 기둥은 일부는 기존의 것을 탄소 섬유 보강해서 철판으로 가렸고, 일부는 보강이 필요 없어서 그대로 노출했다. 1층 남쪽 데크를 향해서는 약 2m 높이의 슬라이딩 문이 시원하게 열린다. 봄, 가을에는 완전히 열어놓고 쓸 수 있도록 했다. 2층은 증축이다. 슬래브와 철골로 증축한 부분이 드러난다. 1층과 마찬가지로 2층도 공간이 안팎으로 흐르도록, 유리로 바깥 풍경이 보이도록 했다.
리모델링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새로운 건축적 요소가 특별히 없어서, 1층과 2층을 잇는 계단을 강조하여 디자인했다. 계단 길이가 3m 이상일 때 두어야 하는 계단참을 보통 중간에 두는 게 일반적인데, 초소책방에서는 의도적으로 아래쪽 계단 시작 부분에 계단참을 계획했다.
건축가의 손을 떠나 사용되는 모습
이충기 1층에는 바위가 보이는 북쪽에는 원래 스탠드와 책장을 만들어 놓았는데, 현재는 그 모습이 아니다. 종로구 시설관리공단에서 외부 업체에 용역을 줘서 운영하고 있는데, 용역업체가 사무공간이 부족하다 보니 공간 일부를 막아서 사무실로 쓰고, 빵 굽는 공간이 부족하다고 공간을 또 바꿔서 사용하고 있다. 그래서 1층은 현재 원계획과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2층 북쪽 지붕 일부를 하늘과 바위가 보이도록 유리로 계획했으나, 지금은 영업하는 분들이 지붕 부분을 막았다.
남측 테라스 앞으로는 주차장이 있다. 주차를 없애고 싶었지만, 종로구 측에서 주차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주차 때문에 이 공간이 많이 복잡하다. 1층 남쪽 테라스 끝에 기다란 수평 H빔 부재를 둬서 사람들이 벤치로 사용할 수 있도록 했는데, 현재는 이 요소가 마치 주차장 펜스처럼 사용되고 있다. 일부러 악센트를 주려고 빨간색으로 칠했지만 지금은 검은색으로 바뀌어 있다.
사실 ‘초소책방’은 내가 지은 이름이다. 원래 구민 공모를 했다. 담당 공무원이 나보고도 하나 제안하라고 해서 초소책방이라 했는데 그게 선택됐다. 그렇게 이름 지었던 이유는 인왕산이라는 장소, 초소라는 기억과 역사, 책이라는 문화를 모두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머리에 양식을 공급하는 의미로, 방은 개인공간이자 쉼터로서 작동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붙였다.
초소책방을 찾은 시민들이 SNS에 올린 사진을 보면 그들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가 보인다. 도심을 바라보는 풍경이 대부분이다. 2층 옥상 난간을 H빔으로, 기존 난간 높이보다 살짝 높여서 사람이 서서 기대기도 하고 커피잔을 올려놓기도 하도록 계획했는데 사람들이 너무나도 잘 사용하고 있다. 내부 공간에서 앉아서 보는 것보다 외부 공간에 서서 커피를 마시며 풍경을 보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사람들도 마찬가진가 보다. 그리고 바위 쪽을 보는 풍경들도 많다. 도심과 반대에 위치한 쪽도 굉장히 흥미 있게 보고 있는 것 같다.
아쉬운 건 숲속에서 한가로이 책 읽는 모습을 상상하며 ‘인왕산 초소책방’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책은 장식이 되었고 먹는 ‘빵’만 남았다는 것이다. 머리에 양식을 취하는 게 아닌 진짜 배를 불리는 책빵이 되었다. 책이 있는 공간에 여러 문화 프로그램이 자주 작동하는 여지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이 향유하는 공간이 되어서 기쁘다.
리모델링은 빈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과는 다르다. 현장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특히 건축가가 가진 지식과 경험, 지혜를 토대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편집해서 새로운 창조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도시의 기억과 가치의 지속이라는 측면에서 시간, 공간, 형태, 재료, 사건도 다 포함하는, 가치를 기억하고 물려줄 수 있는 작업이다. 이 가치를 발견을 하는 사람은 전문가일 수도, 건축가나 소유자일 수도 있고, 또 누구나 될 수 있다. 모두 저마다의 가치를 찾기를 바란다.




원고화 및 편집 박세미
인왕산 초소책방
분량5,267자 / 10분 / 도판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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