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드하우스
백상훈
분량7,225자 / 14분 / 도판 3장
발행일2023년 7월 6일
유형인터뷰
현실 세계의 건축
백상훈 김영준 도시건축(yo2)에서 8년 가까이 일한 것이 개소 전 주요 경력이다. 그전에 대학원에서는 구영민 교수님 밑에서 건축에서의 추상적 개념과 공간, 물성에 관해 공부했고, 현실 건축보다는 페이퍼 건축과 이론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었다. 졸업 후에는 dmp 창립 시 멤버로 합류해 dmp 초기 주요작 IFEZ ARTS Center 및 노들섬 예술선터 등을 같이 했었다. dmp가 처음에는 50명 규모에 디자인을 추구하는 회사라고 생각해서 갔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케치 한 장에 담긴 의도를 추정해서 도면화하고 모형을 만드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사무소 규모가 커지면서 담론은 사라졌고 여느 대형 설계사와 비슷해지면서 설계가 시스템화 되어가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 상황에 신물이 나서 영국으로 유학을 준비했고 바틀렛(UCL)에 입학하게 되었지만 개인 사정으로 그만 두었고, 일본에서 잠시 일할 기회를 얻게 되었는데, 내 위치가 너무 애매했다. 페이퍼 건축에 관한 공부를 한 데다가 대형 설계사 경험만 있다 보니 도면 한 장을 제대로 그리지 못했다. 그래서 국내 아틀리에의 작품과 도면을 찾아서 들여다봤고, 가장 눈에 들어왔던 게 김영준 도시건축의 작업들이었다. 그래서 그곳에 직접 일하고 싶다는 메일을 보내서 입사를 하게 됐다.
당시에 김영준 도시건축은 평일 퇴근 시각은 일이 있든 없든 저녁 9시였고, 토요일에도 출근해서 악명 높은 곳이었다. 물론 연봉도 dmp에 비해 턱없이 적었다. 김영준 소장님에 대한 세간의 평판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가 그곳에서 건축적으로 배운 것이 많고, 고마운 점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김영준 소장님은 현실 건축에 대해서만큼은 정말 디테일하다. 설비, 전기는 물론이고 난간, 문 하나의 디테일까지 고민한다. 나도 처음에 일을 할 때는 이런저런 불만이 많았지만 지금은 사무소를 이끌면서 그의 입장을 이해하게 됐고, 요즘은 가끔 연락을 하곤 한다.
건축주가 떠밀어준 독립
백상훈 처음엔 독립할 생각이 없었다. 개소 이후에 직원들, 협력업체 사람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프로젝트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을 지에 대한 의문으로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김영준 도시건축에서 담당했던 ZWKM BLOCK을 보고 다른 광고회사의 대표님이 아내를 통해서 프로젝트를 맡겼다. ZWKM 블록 프로젝트는 네 명의 건축주로 인해서 상당히 분쟁이 많았는데, 내가 담당자로서 책임지고 마무리하는 모습을 좋게 본 주변 사람들 덕분에 기회가 주어졌고, 아무것도 없는 나에게 사무실 공간도 마련해주는 등 전폭적으로 지원해 줘서 일을 시작하게 됐다. 처음 6개월 정도는 회사에 다니면서 저녁에 개인 프로젝트를 하는 식으로 병행했다. 그러다 업무를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퇴사했고 본격적으로 내 일에 집중하게 됐다. 그렇게 첫 작업인 광고회사 사옥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그 건축주의 지인들 덕분에 현재까지 여러 개의 광고회사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었다.
신축 프로젝트들 사이사이에 리모델링 프로젝트도 많이 했다. 회사에 다닐 땐 리모델링 프로젝트를 해본 경험이 없고, 사무소를 유지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다. 신축 일만으로는 사무소 운영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첫 프로젝트를 하면서 직원들이 고생을 많이 했지만, 리모델링에 대한 감을 잡았고, 잘 마무리했다. 이 작업을 계기로 리모델링 포트폴리오가 많아졌다.
S.A.L.T. 하우스
백상훈 지금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S.A.L.T. House 프로젝트다. 처음에는 건축주가 안도 타다오와 오천 평 규모의 마스터플랜과 건축물 설계 계약을 맺으면서 내게 로컬 파트너를 해달라고 연락을 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했는데 그 시점에 안도 선생님의 건강이 악화되었고 코로나 팬데믹이 터져서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시간이 좀 흐른 뒤, 건축주가 그 대지에 위치한 오래된 레스토랑 겸 연회장으로 쓰이던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싶다는 연락을 주었다. 현장에 가서 점검해 보니 건물 자체가 너무 오래돼서 리모델링은 어려운 상태였다. 그래서 신축을 하자고 제안해서 400평 규모로 계약을 맺고 시작했지만, 진행하다보니 650평 규모가 되었고, 설계비는 변경된 기준에 못 미치는 금액을 받았지만 디자인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을 실현해 본다는 차원에서 도전적으로 일했다. 이런 결과물이 하나쯤은 있어야 그 이후의 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설계만 1년 가까이 했고, 재료 스터디나 업체 조사를 많이 할 수 있었다. 여기에 쓰인 루버는 일본의 건축가와 일본 내 프로젝트를 다수 수행했던 영남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가 제작 및 시공을 했고, 지붕의 징크는 모두 수작업으로 발색했다. 징크 발색을 수작업으로 하면 색상에 미묘한 차이가 생긴다. 이 점을 이용해 새 건물이 아니라 원래 있었던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었다.
김영준 도시건축에서 일할 땐 공간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고, 노출콘크리트를 주재료로 썼기 때문에 다양한 재료를 다뤄볼 기회가 없었다. 이제는 우리만의 무언가를 찾아야 하니까 의도적으로 여러 가지 재료를 많이 다뤄보려고 한다. 새로운 재료 실험에는 위험 부담이 따르게 되는데 시공 과정에서 뭔가 잘못되면 설계를 잘못한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우리가 치른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나는 그게 어찌 됐든 한 번은 거쳐야 하는 경험의 과정이라고 여기고 감내했다.


조경과 조명, 건축과 도시의 접점
백상훈 도시환경, 특히 건축과 도시의 접점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조경과 조명에 신경 쓰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설계사무소에서 외부 업체에 맡기지 않는 분야가 조경과 조명이다. 둘 다 디자인의 영역이라 외주비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아무리 작은 프로젝트라도, 설사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두 영역만큼은 거의 협업으로 진행한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는데, 기본적으로 건물이 도시와의 접점에서 외벽만으로 관계를 맺는 게 너무나 삭막하다는 생각이 깔려있다. 그래서 우리는 프로젝트 대지 경계에 항상 조경을 했다. 조경이 있어야만 봄에 피는 꽃으로, 가을의 단풍으로 계절과 시간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건물의 인상도 좌우된다. 그러므로 조경은 건물 사용자뿐만 아니라 곁을 지나는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도시적 요소이다.
조명, 그 중에서도 외부 조명은 소외되는 영역 중 하나다. 그런데 조명이야말로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영역이다. 조경이나 건물 외관과 만나는 부분에 조명 디자이너의 손길이 닿은 것과 아닌 것의 차이가 엄청나다. 도시의 저녁 풍경을 만드는 중요한 요소는 조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경험을 한두 번하고 나서는 조명은 전문가에게 맡긴다. 파트너는 국내 1세대 조명 회사인 매버릭스다. 최초에 이 회사 대표에게 ‘비용을 많이 드리긴 어렵지만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제안을 했고 ‘더 나은 디자인을 위한 투자라고 생각해달라’고 얘기했다. 그렇게 대표의 허락을 받았고, 다른 회사들에 비해 부족한 금액이지만 최대한 비용을 맞춰 드리려고 하면서 협업을 하고 있다. 비용적 측면을 떠나서 조명 디자이너들도 우리와 프로젝트를 하면서 새롭게 시도하는 부분에 만족하고 즐겁게 일을 하고 있다. 조경 파트너는 디자이너이자 작가로 활동하는 최재혁 소장으로, 최 소장이 조경회사의 실무자였던 시절 프로젝트 담당자로 만났고, 그가 독립한 이후에도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렇게 주변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같이 일하고 있다. 이제는 나의 역할이 코디네이터에 가깝다고 느낀다. 도면을 직접 그릴 기회는 줄고 있지만, 좋은 사람들과 같이 일할 기회를 만들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게 앞으로 나의 주요 역할일 것이다.
공감대로 엮은 조직
백상훈 김영준 도시건축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두 명과 경력, 새롭게 들어와 함께하는 직원 두 명, 이렇게 넷이 씨드하우스 소속이다. 그리고 아내가 직원 한 명과 인테리어 회사를 운영하는데, 우리와 협업하는 프로젝트의 비중이 높다 보니 총 여섯 명이 한 팀처럼 일하고 있다.
처음 개소했던 시점에 내가 목표로 삼은 규모는 원래 다섯 명이었다. 왜냐하면 그 이상의 규모로 회사를 키우기 어려울 거라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많지는 않더라도 월급을 제대로 주고, 직원들이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게 내 몫이라고 생각했을 때 다섯 명에서 최대 열 명 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실제로 운영하다 보니까 현재 규모를 유지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특별한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영업을 할 수 있는 성격도 아니다 보니 결국 우리에게 주어진 프로젝트를 잘해냄으로써 일을 꾸준히 이어가는 게 목표가 됐다. 다행히 김영준 도시건축에서부터 손발을 맞춰온 멤버들이 있어서 적어도 부끄럽지 않은 퀄리티로 건축을 하겠다는 공감대와 기준이 있다. 도면을 그 어떤 회사보다 많이 그리고 시간도 많이 투자하기 때문에 그만큼 결과물에 대한 자신감이 있다. 이 모든 게 동료들 덕분이고 정말 든든한 파트너이다.

일감 부족, 경험 부족, 기회 부족
백상훈 1980년대, 건설 경기가 좋았을 때만 해도 엘리트 건축가에 대한 대우가 괜찮았을 것이다. 일도 많았고, 공간, 정림 출신들이 건축가로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에 전문가로서 존중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IMF를 기점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게 됐고, 무한경쟁의 시대가 왔다. 지금 설계비 기준이 1997년 수준에서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하는데, 설계 대가가 물가에 비해 상대적으로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 설계를 시작하는 세대는 경쟁이 더욱 치열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저렴한 대가를 받기 때문에 더 많은 일을 악착같이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건축일이 점점 줄고 있는 게 현실이다.
그렇다 보니 실무 경력이 적은 친구들도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개소를 하고 있다. 내가 볼 땐 제대로 일을 배울 자리가 없기 때문에 이러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취업을 고민하던 때만 해도 공간, 정림 등의 설계사무소는 연례행사처럼 20명 정도씩 신입 직원을 뽑았고, 졸업 예정자들이 회사를 골라서 갈 수 있었다. 이제는 그런 게 거의 사라졌고, 대부분의 회사가 경력직을 더 선호한다. 과거에는 신입 직원을 뽑아서 성장시키는 것을 설계 사무소의 사회적 책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그런 비용을 감수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취업을 준비하는 세대는 어떤 측면에서는 불행하다. 일을 밀도 높게 배울 기회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틀리에 중에서 실시설계에 시간을 들여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사무소 또한 줄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유명한 사무소 중에서도 도면을 충분히 그리지 않고 현장에서 처리하는 곳이 있고 그러한 사무소의 건물에 가 보면 빈틈이 많이 느껴진다. 한편 몇몇 설계사무소는 너무나 잘하고 있지만, 그곳에서 일을 배울 수 있는 자리는 한정돼 있다. 경험치는 결국 실력으로 드러난다. 내가 100을 경험했는데 1000을 디자인하기는 어렵다. 1000을 디자인하는 것을 몇 번 보고 경험해야 그 근처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본다. 결국 제대로 된 설계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는 사무소가 줄어든 것이 사회적으로 큰 손실이라는 생각이 든다.
짧은 경력으로 개소한 젊은 건축가에게도 당장은 자기 시장이 있다. 냉정하게 말하면, 건축주 입장에서는 젊은 건축가가 저렴하고 적극적이기 때문에 일을 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젊은 건축가는 계속 공급된다. 그러니 그 정도 수준과 시장을 타깃으로 일을 계속 할 수는 없다. 최소한 추구하는 건축적 완성도에 대한 생각과 그에 따른 비용에 대해서 건축주에게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게 중요할 것이다.
경관을 살피는 눈
백상훈 얼마 전, 대학로를 걷다가 그 지역의 주요 대지에 세워진 흉측한 건물을 보았다. 알고 보니 건설사가 시행을 하면서 최소한의 비용으로 건물을 짓기 위해 비용을 맞춰줄 수 있는 설계사를 정했고, 그로 인해 건설비라는 측면만 고려하여 디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땅 주인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아무리 악조건에서 설계를 했다고 하더라도, 건축가가 도심 한가운데에 도시환경을 전혀 고민하지 않은 디자인을 내놓은 것은 도의적으로 잘못한 것이라고 본다. 건축가라면 건물을 설계할 때 건물 자체의 퀄리티뿐만 아니라 주변을 지나는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줄 것인지, 도시적 맥락에서 발생하는 사회적인 의미까지도 생각하고 책임져야 한다. 왜냐하면 한번 지은 건물은 오랜 시간 그곳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책임과 비용
백상훈 건축가의 책임은 훨씬 커졌고, 설계비는 오르지 않았고, 대우는 나빠졌다. 요즘은 현장에 문제가 발생하면 건축가는 절대 약자가 된다. 시공사들도 분쟁이 생기면 건축가 탓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설계 실수에 대한 책임을 지려면 그에 상응하는 비용을 받아야 하는데, 설계비는 지금도 현실적으로 건설비의 몇 % 또는 한국엔지니어링 협회가 정한 인건비를 기준으로 계산된다. 그런 것들이 사실은 불합리하다. 우리의 하루 인건비가 많아야 30만원 정도이다. 현장에서 일하는 인부의 인건비를 비교해 봐도 적은 금액이다. 이런 상황에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서 무료로 견적을 내주고, 저가의 설계비를 받고 시공까지 해주는 업체들도 많다. 그들은 무슨 근거로 비용을 산정하는지, 왜 그렇게 시장을 오염시키는지 모르겠다. 건축주의 입장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시장이 열린 게 이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된 업체를 만났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건축주에게 돌아가고, 누군가가 제대로 설계할 기회는 사라지게 된다. 결국 남겨진 건축물은 도시의 일부가 되어서 흉물스럽게 존재하게 된다.
인터뷰 심미선 / 원고화 및 편집 심미선
씨드하우스
씨드하우스(S.E.E.D haus)는 건축이 가지는 의미를 건축을 만드는 사람들과 경험하는 이들과의 관계, 그리고 건축물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존재함으로 발생하는 주변과의 관계 속에서 만들어 내고자 한다. 어렵고 거창한 형이상학적 담론보다 좀 더 작고, 낮고, 친숙하고, 친절하며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관계를 고민하는 작업을 함으로써 사회적 역할을 하고자 한다. 주요 작업으로는 논현동 플랜잇 사옥, 삼성동 원더랩 사옥, 명동 아텍스 사옥, 압구정 복합문화시설 등이 있다.
백상훈은 인하대학교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치고 디자인캠프문박 디엠피, 김영준 도시건축에서 실무 경력을 쌓은 뒤 2016년 씨드하우스를 설립했다.
- 개소 연도: 2016년
- 주로 활동하는 도시: 서울
- 현재 인원: 5명
- 프로젝트 수주 비율:
(현황) 민간 신축 40%, 민간 증개축 40%, 건축기획 20%,
(희망) 민간 신축 40%, 민간 증개축 20%, 건축기획 20%, 도시계획 20%
씨드하우스
분량7,225자 / 14분 / 도판 3장
발행일2023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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