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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인스타그래머블한 건축가입니까?

심미선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이라는 신조어가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지금, 많은 젊은 건축가가 웹사이트 제작보다 인스타그램 계정 운영을 우선한다. 다른 소셜미디어에 비해 특히 인스타그램은 이미지로 소통하며 정체성을 구축해 가는 곳으로, 좋은(예쁜) 공간과 장면, 특별한 순간을 끊임없이 소비하는 장이다. 인스타그램의 소통 방식과 특성이 자신의 적성에 맞는지와 상관없이, 공간을 소비하고 누리는 데에 관심이 많은 젊은 세대에게 자신의 작업을 어필하기 원하는 건축가라면 적극 활용해야 할 소셜미디어가 되었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요즘 건축가는 스스로 기획자, 브랜드 디자이너, 스토리텔러, 에디터가 되어 미디어 콘텐츠를 생산하기에 이른다. 건축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스케치, 다이어그램, 도면부터 투시도, 조감도, 모형, 사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매체를 다룬다. 이제는 여기에 더해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여러 플랫폼에서 자신을 잘 보여줄 수 있는 표현 방식까지 고민하고 제작하게 된 것이다. 건축가들이 소셜미디어상에서 풀어놓은 말, 글, 그림, 사진, 영상은 매우 정제되어 있는 경우도 있고, 날것에 가까운 경우도 있다. 어떤 태도를 취하든 그 총체는 각자가 좇는 건축적 가치나 건축가상(像)의 밑그림이다. 여기에서 발생한 차이가 어느 순간 건축으로 발현된다면 건축가로서 독자성을 구축하는 바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젊은 건축가들이 인스타그래머블한 길만 쫓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보이는 이들도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면 내적 갈등과 자기검열에 시달리고 있다. 건축가로서 인스타그래머블하기 위해서는 시각적 소통 방식의 감도를 계속 높게 유지해야 하는 피로가 있다. 또한 이 방면으로 열심이라는 것은 자칫 일종의 낙인이 될 수도 있기에 섣불리 취할 수 없는 태도이기도 하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인스타라는 속세와는 연을 끊고) 건축 본업에만 집중하며 묵묵히 노력하는 이들도 있다(그러나 내심 인스타를 완전히 무시하지는 못한채 어떤 액션을 취해야 할지 계속 고민한다). 젊은 건축가가 소셜미디어와 이미지의 시대에 대응하는 입장을 대략 분류하면, 1) 시류에 흥미를 느끼며 본인 콘텐츠를 적극 제작하고 대중과 소통하거나, 2) 인스타그램을 업무 중 생산되는 시각 자료의 아카이빙 도구로 쓰거나, 3) 현상을 인지하고 지켜보는 정도 사이에 (젊은) 건축가들이 점점이 위치한다. 

‘당신은 인스타그래머블한 건축가입니까?’는 <등장하는 건축가들> 시즌 4에서 건축가를 선정한 기준이라기보다, 앞서 이야기한 경향을 반영하여 이번 시즌에 새로 추가해본 질문이다. 실제로 인터뷰나 포럼 자리에서 각자의 건축적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나 소셜미디어 활용에 관해 많이 물어보았다. 여기에 발행되는 글에는 다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르나, 오늘날 젊은 건축가를 읽어내는 하나의 필터로 유효하리라 생각한다.

이번에 만난 여섯 팀은 이런 면에서 태도의 차이가 분명하다. 이들 사이에도 세대가 세분되고, 각자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노말은 소셜미디어를 활용하는 방식과 자기표현이 가장 요즘 건축가다운 팀이다. 건축 콘텐츠를 쉽게 가공하여 인스타그램에 연재하는 방식으로 대중의 눈길을 끌었고, 공식 웹사이트에서도 건축사사무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건축가와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대중적인 영상으로 소개한다. 최근에는 유튜브 브이로그까지 시작했다. 이른바 건축 커뮤니케이터를 자처한 것이다. 다양한 팀들이 이런 방식을 시도하는데 그중에서도 노말은 마치 친구가 얘기해주는 것처럼 친근하고 부담 없다는 점이 눈에 띈다. 자신들의 건축 프로젝트를 설명하는 일러스트 작업도 빼놓을 수 없다.

공기정원은 프로젝트마다 콘셉트와 스토리를 (공간) 이미지로 시각화하는 과정에 중점을 둔다. 그래서 이 팀이 생산한 언어와 이미지에는 공간과 장면을 상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인터뷰 자리에서 클라이언트 미팅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엽서책 형식의 이미지 묶음, 주어진 대지를 배경으로 촬영한 컨셉 영상 등등)을 보았는데, 아이디어를 전달하기 위한 최적의 매체를 선택하고 가공하여 내놓은 결과물이었다. 이들이 개념과 감각을 시각화하는 데 얼마나 공을 들여왔는지 알 수 있었다. 이런 자료가 웹사이트나 인스타그램에 공개될 때마다 많은 이의 호응을 얻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구현된 공간도 마찬가지다.

갓고다의 두 소장은 본업 이외에도 아파트 연구, 글쓰기, 독립 출판, 회화 작업 등 완전히 다른 영역의 취미 활동을 이어가면서, 이로부터 건강한 건축하기에 몰두하고 있다. 본업과 취미에 따라 개별 운영 중인 인스타그램만 훑어보아도 분화된 자아가 이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이 느껴진다. 두 소장은 언젠가 이런 에너지가 자신들의 건축으로 집중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대부분의 건축가는 여력이 되는 한에서 작업 아카이브에 집중한다. 인로코도 웹사이트와 인스타그램 등에 작업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는데, 특히 웹사이트 홈페이지 섬네일은 의도적으로 작업 사진이 아닌 드로잉으로 채웠다. 이는 사무소의 첫인상이자 정체성을 만들어보기 위한 실험이었다. 이 드로잉은 프로젝트가 종료된 이후 별도의 작업을 거쳐 한 장으로 재구성한 개념적인 그림이다. 여기에 쓰인 점선면이 기호화된 것은 아니어서 의사소통에는 어려움이 있다(이런 한계는 본인들도 알고 있으며, 앞으로 나은 방법을 찾아 나갈 것이라 말했다). 그럼에도 또다른 세계를 이뤄가려는 시도가 흥미롭고, 앞으로 이들이 그려갈 커다란 건축적 정체성을 더욱 기대하게 한다.

개소 11년 차인 제로리미츠는 요즘 미디어 환경과 사뭇 다른 조건 속에 사무소를 열었고, 손수 제작한 웹사이트로 첫 프로젝트를 수주했다. 김종서 소장이 사진에 관심이 많고 조예가 깊어 한동안 직접 프로젝트 준공 사진을 촬영했다. 그는 요즘 제로리미츠 인스타그램도 관리하고 있다. 현장과 일상 소식들 가운데 제로리미츠 특유의 매스스터디 모형 사진이 툭툭 튀어나와 시선을 잡는다. 그는 지금 개소했다면 이런 치열한 환경 속에서 어떻게 버텨나갔을지 자신이 없다고 했으나, 내가 볼 때, 그의 관심사나 감각이라면 진작에 인스타그램 신(scene)을 평정했을 것 같다.

씨드하우스는 이러한 세태와 동떨어져 있다. 웹사이트도 인스타그램도 없이 아키데일리에 몇몇 주요 프로젝트만 공개한 정도다. (워낙 베일에 싸여 있다보니 국내 어느 매체는 이 팀이 외국 건축가인 줄 알고 연락했다고 한다.) 백상훈 소장이 원래 독립 생각이 없다가 우연한 기회로 개소한지라 초기부터 사무소 홍보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요즘 같은 시절에 웹에서 검색되지 않는 사무소라서 유령 사무소 취급을 받고, 구인도 어렵다고 한다. 그는 인스타그램은 잘 모르는데 꼭 해야 하는지를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보다 못해 최소한 웹사이트만이라도 만들기를 권했으나, 아직 소식이 없다. (이런 분을 등장시키기 위해서라도 이 시리즈를 이어가야 한다.)

<등장하는 건축가들> 시즌 4는 2022년 5월 사전 인터뷰를 시작해 8월에 포럼을 끝냈다. 행사 종료 1년이 지난 시점에, 다음 시즌을 진행하면서 책을 마무리하다 보니 이것이 끝인지 시작인지 헷갈린다. 시즌 4 기획 단계에서 앞서 진행한 세 번의 시즌보다 단출하지만 다채로운 팀과 만나기 위해 고심했던 기억이 가장 크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 모두에게 심각했던 불경기를 지나는 동안에는 등장하는 이들 소식보다는 버티는 건축가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위기를 기회로 삼아 다양한 방면으로 관심사를 펼쳐나가는, 그리고 내실을 다져나가는 건강한 팀이 어딘가 꼭꼭 숨어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팀들을 만나보고 싶다. 그럼 다음 <등장하는 건축가들>을 만날 채비를 서둘러야겠다.

심미선 건축신문 편집자

당신은 인스타그래머블한 건축가입니까?

분량3,745자 / 7분

발행일2023년 7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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