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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성, 공동성, 공공성

서승모

사회성의 공감대

지금은 건축가들 모두 각자의 미학이나 태도만 이야기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사회적 주제의식이 강하지 않다. 사회성과 공공성은 좀 다르다. 내가 이해하는 사회성은 ‘프라이빗’에서 ‘퍼블릭’으로 이어지는 선상에 있지만, 서로 중의적으로 겹쳐진다. 건축가의 ‘사회적’ 역할을 이야기할 때는 ‘공공성’보다 훨씬 더 넓은 범위의 이야기일 것이다. 공공성은 사회성의 하위 영역으로 볼 수 있다. 내가 사회적 역할을 말할 때는 내가 하는 건축 자체가 주변과 어울린다거나 하는 작은 부분이다. 그걸 공공성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작업과 밀접하게 맞닿는 부분에서의 아주 작은 사회성이다. 그 정도 이야기는 의식적으로 하려고 한다.

사회성을 이야기하려면 ‘왜 건축이 사회성이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공동의 감각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한테 그런 것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사회성이 가장 중요한 건축 유형이 아파트인데, 아파트에는 사회성 이야기는 없고 편의성 이야기만 가득하다. 아파트를 짓는 건축 집단은 있지만 거기서는 아무도 사회성을 이야기하지 않고 오로지 사업성만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우리 집합주택의 사회성을 (그나마 건축가들이 사회성을 언급하는) 다세대주택만 가지고 이야기할 수도 없다. 프리츠커상을 받은 라카통 앤 바살이 오래된 서민 집합주택의 바깥쪽에 발코니를 추가로 달아서 반 외부공간을 만든 것에는 분명 어떤 사회성이 들어 있다. 아이디어는 별거 아닐 수 있지만, 그것을 실제로 실행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 다세대주택에서 어떤 법규 때문에 작게나마 바깥으로 발코니를 다 낼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진다면, 그제야 우리는 어떤 사회적인 이슈로 넘어갈 수 있다.

사회성이 건축의 중요한 속성인 것은 분명하다. 도시 안에 노출되어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고, 도시의 길과 풍경을 만든다. 혼자 잘난 건축은 중요하지 않고, 너무 생각이 없는 건축은 문제가 있다. 개개인이 사회적 관계를 맺듯이 개별 건축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건축물을 세울 때 나 자신의 에고만으로 하지 않고 여러 조응을 살펴서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도시에 대해서 이런 생각으로, 지역에서는 이렇게 작동했으면’ 하는 정도의 생각은 건축가에게 있어야 한다. 건폐율, 용적률, 프라이버시 같은 이야기들 이상의 것이다. 작업에서 사회성을 더 넓혀보려는 생각은 항상 하지만, 그럴만한 프로젝트를 만나야 한다. 개인 주택을 사회적으로 만들 수는 없다. 그것은 좀 오버라고 생각한다.

모더니즘 시대의 공공건축은 도서관, 미술관, 체육관, 커뮤니티 시설 같은 것들이었다. 지금의 공공건축은 어쩌면 카페 같은 것이다. 최초의 카페(커피하우스)는 지역 주민들이 잠시 들려서 커피 한 잔과 담소를 나누는 공간이었다. 커뮤니티를 위해서 만든 공간은 아니지만 커뮤니티에 중요한 기능을 했다. 지역의 작은 가게나 술집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우리나라 상황도 비슷하다. 카페가 지금 우리의 공공공간이 되었다. 사람들은 카페에서 이야기 나누고, 공부 하고, 사진 찍고 논다. 전국 지방 곳곳에 크고 유명한 카페가 생겨나는 현상은 스타벅스가 전세계에 지점을 늘려가는 것과는 다르다. 한국만큼 카페가 커지고 많아지는 나라가 없고, 이름 있는 건축가들마다 카페를 하나씩 설계하는 나라도 없다. 이런 사회 현상 속에서 건축가들이 조금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사회성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사람이 가려지지 않는 건축을 만들려고 한다. 강한 제스처나 압도하는 이미지의 건축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풍경에 녹아드는’ 이야기나 ‘배경이 되는’ 이야기를 자꾸 하는 것도 건축에서 사람이 보였으면 하는 것이고, 그것이 사회성으로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건축가들이 집합주택에서 공용공간을 넓게 만든다거나 다양한 공간을 제공하는 것도 일례다. 앞서 야심작 이야기에서 도시로 열린 발코니, 위아래로 움직이는 수직 공간, 투명한 실내 공간 같은 데서도 그런 사회성을 찾을 수 있다.

아파트, 공동성의 부재

아파트의 좋은 선례는 있다. 그리고 공모를 통해 집합에 대해, 사회에 대해 지금보다 더 깊게 고민한 제안이 계속 나올 수 있다고 본다. 요즘 민간 영역에서 많이 언급되는 입주민의 편의나 욕망에 더 충실한 것이 나올 수도 있다. 그런 영역에 건축가들이 조금씩 더 참여하게 될 것이다. 뉴욕 등 세계 대도시의 최고급 집합주택 영역은 이미 건축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런 영역에서 기존 아파트와 다른 이야기들이 나올 수도 있다. (다세대주택 영역은 한때 관심과 일이 우르르 몰렸다가 요즘은 조용해진 것 같다.)

아파트 문제의 핵심은 공공공간(공용부)에 있다. 공동성은 사람들이 다같이 인식할 때 생겨나는 것인데, 한국에는 그게 없는 것 같다. 공용공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질서 의식이나 매너를 보면 그렇다. 그게 먼저 달라지지 않는 이상 좋은 공공공간을 만들기 힘들다. 일례로, 택지개발지구에 설계한 집에 담을 만들지 않았더니, 사람들이 집 마당을 가로질러 다니고, 집안을 기웃거리며 들여다보기도 했다. 어쩔 수 없이 부랴부랴 담을 세웠다. 미국에서는 그렇게 내 마당에 낯선 사람이 함부로 들어오면 총 들고나온다. 남의 땅에 쉽게 들어갈 수 없다. 

한국에서는 내 것, 남의 것, 공동의 것에 대한 개념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 다 내 것이거나, 내 것 빼고는 다 남의 것이다. 어떤 것은 우리 모두의 것인데, 그중 이것은 오롯이 내것이고, 저것은 함께 쓰는 것이라는 개념이 없다. 고속도로 휴게소나 공공화장실에 가보면 알 수 있다. 그런 상태가 아파트 단지 내의 공용시설이나 한 동네에서 사용하는 공용공간으로 이어진다. 집 앞 파고라 같은 공간에도 담배꽁초가 가득하다. 세상에는 버리는 사람과 치우는 사람이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전혀 이해가 안 되고, 이해를 안 하기로 했다.

한국 실정에 맞는 공용공간을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다. 계획이 계획한 대로 작동해야 제대로 된 설계다. 계획만 있고 작동이 되지 않으면 계획이 실패한 것이다. 그렇다면 계획(설계)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접근한다면 아파트도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LH, SH에서 조금씩 시도하고 있는 것들도 그 변화에 당연히 영향을 미친다. 공용 면적 비율이 높아진 것만으로도 사실 좋아지고 있는 것이다. ‘내 것’이 아닌 다른 공간도 조금씩 많아지고 좋아지는 셈이기 때문이다. 이런 변화는 필요하고, 필수적이다.

공공의 장치들

총괄건축가 제도가 들어서면서 건축가가 건축 행정 실무자들과 만나게 되었다. 구체적인 건축 행위가 아니더라도 중간에서 이런저런 컨설팅을 해주고 있다. 컨설팅을 통해서 연구용역이 이루어지고, 그 내용을 기반으로 설계공모가 진행된다. 공모 과정에서 심사위원 그룹과 참여 건축가 그룹의 건축적 태도가 사업 계획에 개입된다. 이런 전체적인 행정의 과정을 긍정적으로 본다. 모든 일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지만, 전문가가 행정과 밀접한 지점에서 그 영역을 돌볼 수 있다는 점에서 대단히 좋은 장치라고 생각한다. 

공공건축가 제도는 설계비 2천~5천만 원 범위의 일을 기존의 단순 입찰 방식이 아니라 일반 공모나 공공건축가 지명 공모를 통해 공공의 작은 일들을 잘 수행할 수 있게 만든 인적 풀이라는 점에서 좋게 본다. 그 풀에 속하지 않은 건축가도 많다는 점에서 역시 그림자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에게 평등하기만 한 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기본적으로 엘리트 그룹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그 안에서 공정한 경쟁을 통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본다. 정작 나는 공공건축가 풀에 들어가 있지 않지만, 1년에 한두 번 심사위원으로 참여한다. 심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게 되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공공건축 심사에서는 그 건축이 잘 작동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공공건축은 사업도 심사도 모두 다 세금으로 진행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모두에게 도움을 주고, 나도 어디선가 서비스를 받게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프로젝트 서울 공모 시스템도 좋게 본다. 시스템의 취지는 좋은 프로젝트를 만들자는 것이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은 어디나 있기 마련이고, 어떤 건축적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헤게모니를 잡느냐에 따라 시스템의 결과물이 좋을 수도 있고, 그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행정적으로는 필요한 장치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에 대해서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부정적이다. 내가 건축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인데도 해마다 무엇을 했는지 잘 각인이 안 된다. 감독이 누구였는지 정도만 겨우 기억난다. 국제적 수준의 다른 비엔날레는 주제나 키워드가 세계의 흐름과 동기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전시 내용도, 참여 건축가의 면면도 그렇다.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는 직접 참여한 적이 있는데도, 당시의 전체적인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투입되는 예산(세금)이 너무 잘게 분산되어서 무엇 하나도 남는 게 없는 느낌도 받았다. 아무튼, 어떤 식으로든 바뀌어야 할 것 같은데, 쉽지 않다.

인터뷰이 서승모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김상호

사회성, 공동성, 공공성

분량4,411자 / 9분

발행일2023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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