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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어떻게

서승모

사무소의 지속 가능성

사무소효자동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는 특별히 따로 생각해보진 않았다. 다만 지금(2022년 3월)부터 3년 9개월 후에는 은퇴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때면 만 56세다. 선배 세대 중 건실하게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서너 곳 정도다. 지금 시대는 그들의 시대보다 더 빠르게 변하고 있으니 얼마 전 내가 사무소 조직을 개편했던 시점으로부터 5년 후 정도에는 내게 타임 리미트가 한 번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규모와 매출이 내가 염두에 두고 있는 선을 넘어선다면 그 고비를 넘기고 ‘회사’가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련없이 탁탁 접어서 상자 속에 넣으려고 한다. 나는 조만간 우리 모두 그런 사회적인 요구를 마주하게 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사람,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일한다. 옛날 스타일의 건축가다. 내 건축주는 대부분 내가 알만한 사람, 신뢰가 쌓인 사람들이다. 나는 불특정 다수에게 오픈되어 있는 건축가는 아닌 것 같다. 지인의 지인으로 이어진 네트워크에서 일해왔다. 초창기 네트워크의 중심에는 한 열 명 정도가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 보니 회사가 안 커졌던 것 같다. 사무소효자동이라는 이름이 일찌감치 알려진 것에 비해 지금과 비슷한 규모에서 오래 머무르고 있다. 최근 들어 LCDC 같은 큰 프로젝트를 했지만 작은 주택 작업들을 주로 해왔다.

사무소를 처음 시작할 때 이런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하는 옛날 수주 방식을 염두에 두긴 했다. 건축 일이라는 것은 어쨌든 서로 취향이 맞아야 시작될 수 있다. 이탈리안 요리를 잘하는 셰프를 찾아가서 프랑스 요리를 만들어달라고 하면 안 되는 것과 같다. 나는 단아하고 미니멀하고 따뜻한 분위기의 공간을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인데, 요란하고 복잡한 건축이 나올 리 없다.

구조 조정과 조직 개편

2021년 사무소 조직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 건축 설계 조직의 구성을 완전히 바꿨다. 지금 우리 사무소에는 팀장이나 프로젝트 담당자가 없다. 팀장이 프로젝트를 담당하던 예전 방식에서는 팀장이 어떤 문제가 생기면 프로젝트가 같이 무너졌다. 지금은 내가 아침 6~7시에 출근해서 두 시간을 할애해 모든 프로젝트를 살펴보고(전날 작업들 확인하고, 프로젝트 일정 정리하고, 현장 사진 검토하고), 그날 나를 포함한 9명의 업무분장을 하나하나 직접 한다. 그 내용을 9시 전에 모두에게 뿌린다. 그러고 나서 사무실에 있는 동안 그 내용을 계속 체크하고 이야기한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에는 구글 채팅을 쓴다. 모든 것에 대해 보고받고, 검토하고, 확정을 내린다. 그래서 모든 프로젝트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예전에는 그게 두루뭉술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나는 5시 반에 퇴근한다. (목표 퇴근 시간은 4시다). 가장 큰 변화는 모두 다 야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렇게 운영한 지 이제 2년째다.

2~3년 전 사무소효자동은 야근을 많이 하는 곳으로 정평이 나 있었는데, 워라밸 같은 사회 분위기에 영향을 받아 사무소 분위기가 약간 흐트러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직원들과 함께 근무 시간을 줄여나가기로 했다. 모든 외부 미팅을 나 혼자 소화하기 시작했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관리 체계를 만들었고, 책임을 지지 못하는 일에 대한 권한을 없앴다. 그렇게 해서 A4 반쪽이었던 일일 업무 분장의 목록은 점점 불어났다. (지금은 보통 A4 세 장 정도 나온다.)

사무소효자동의 평균 근속연수는 5~6년이다. 작은 사무소로서는 긴 편이다. 최근에는 3년 정도고, 주로 2~3년차들이 일하고 있다. 시스템을 바꾼 결과이기 때문에 별문제는 없다. 소장이 아침부터 꽥꽥대니 업무 강도는 높지만, 소장도 열심히 일하고 일 끝나면 칼같이 쉬니까 다들 큰 불만은 없고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다. 요즘은 점점 빨리 독립하려고 하는데, 예전 시스템을 고수해서는 서로 안 맞는다.

예전 프로젝트 담당제에서는 팀장의 자율권이 많아지지만 그가 혼자 머리로 문제를 해결해가야 하고, 거기에 쓰는 시간만큼 프로젝트 일정이 늘어졌다. 프로젝트의 질이 담당 팀장 한 사람의 능력에 좌우됐다. 내가 팀장을 믿을 수 없게 되면 팀장도 힘들어진다. 지금은 누구는 이걸 잘하고 누구는 저걸 잘하는 상태를 내가 조합해서 팀을 운영한다. 내가 힘들긴 하지만, 디자인이 좋아졌고, 모두의 만족도도 더 높아졌다. 내가 움직일 때 조직이 가장 잘 작동한다.

자율성을 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모두를 위해서 어쩔 수 없다. 새로운 것이나 정말 좋은 것이 쓸데없는 짓을 할 때 나오는 경우도 있는데, 이 시대가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래서 내 머리를 최대한 쓰면서 다른 여덟 명 각자가 잘하는 것을 모아서 네트워크로 일하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관리하는 방식이 예전과 크게 달라졌고, 회사의 존속이 여기에 달려 있다.

큰 회사들도 직제가 많이 바뀌었다. 옛날처럼 조직 체제가 촘촘하지 않고, 책임자와 책임자가 아닌 자, 크게 두 그룹으로 이루어져 있다. 조직 관리나 운영에서 요즘 중요한 것이 ‘코칭’이라고 한다. 요즘 세대는 어릴 때부터 전문가의 도움을 항상 받으며 자라왔다. 늘 ‘코치’가 옆에 있는 것에 익숙한 세대다. 옛날 사람인 나로서는 다 이해는 안 되지만, 요즘 세대에게 내 뜻을 관철해 끌고 가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기 때문에 내 방식을 바꿀 수밖에 없다.

회사는 돈을 벌어야 한다. 아직은 그 목표는 달성을 못 했다. 15년 전에는 아틀리에가 20명이면 컸는데, 지금은 40~50명 규모도 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자기 사무소를 시작한 사람들은 대부분 10인 안팎의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을 것이다. 그 정도 규모가 안 되는 곳도 있는데, 거기는 기업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사무소일 것이다. 나는 사무소의 규모를 늘려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최소 10명은 되어야 한다. 소장 한 사람이 돌볼 수 있는 (최대) 인원이다.

이번에 ‘중간점검’을 해보니 나 자신은 별로 변한 게 없다. 크게 바뀐 것은 조직이다. 조직의 형태가 바뀌면 그것이 건축 작업에도 영향을 준다. 하지만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완성도는 포기할 수가 없다. 수익률을 높이긴 해야 하니까 조금 포기하는 지점들이 있긴 하다. 질이 나빠진 것은 아니고, 엄정성이 예전에 비해 약간 느슨해진 것들이 있고, 건축적인 이야기에 강약이 생겼다.

협업의 기술

한국에서 작은 건축 집단은 슈퍼맨이 되어야 한다. 영역별로 내 일, 네 일을 구분하면 안 되고, 건축가가 일단 헤드가 되어 전체를 잘 꾸려야 질 높은 결과가 나온다. 거기에는 안목과 기술뿐 아니라 복잡한 인간관계 형성 능력이 복합적으로 개입된다.

팀은 각 조건에 맞는 팀이 있다. 그 팀을 유지할 수 있는 경험치와 능력치는 우리 사무소에 있다. 시기별로 보면 주로 같이 일했던 곳이 몇 군데 있는 것 같다. 개인이 운영하는 작은 시공사는 지속적으로 같이 일하기가 어려운 면은 있다. 협력 업체와의 관계는 상하 관계가 아닌 협업 관계다. 서로를 필요로 하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기대감으로 연결된 관계다. 부족한 점도 서로 나서서 보완해주어야 한다.

품질과 리스크 관리는 페이퍼 워크, 문서 양식을 통해서 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실시 설계나 구조 설계를 외부에 맡길 때 그냥 건축 도면을 보내지 않고, 상대방이 작업에 들어갈 때 먼저 고려할 건축적 우선순위를 문서로 표현해서 넘긴다. 그렇게 생각과 작업의 범위를 우리가 먼저 정해준다. 실시 설계를 바깥에 맡길 때는 더 신경 쓸 게 많다. 계획 설계가 계속 바뀌고 있는 도중일 때가 많기 때문에 서로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 처음에 얼개를 잡아주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 같이 일하는 회사 동료들과 대화할 때도 구멍이 있고, 건축주와 대화할 때도 구멍이 있다. 그래서 내가 하려고 하는 이야기의 얼개를 먼저 상대방 머리에 넣어주어야 한다. 그래야 이해가 쉽고 구멍이 ‘덜’ 생긴다. 그러려면 내 머릿속이 먼저 정리되어 있어야 한다. 품질은 거기에서 출발한다. 

시공팀과도 마찬가지다. 중성적인 일반 도면 정보로는 제대로 커뮤니케이션하기 어렵다. 능력이 뛰어난 시공사라면 물론 기본 도면으로도 가능하겠지만, 그런 시공사와 일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부분 2군이다. 그들에게 내 기준에 맞는 이해력과 품질을 바라는 것 자체가 잘못이다. 그래서 얼개를 최대한 이해시킨 다음에 일을 시작해야 한다. 현장 감리 때 감리할 목록을 작성하는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 조직이 근래에 달라졌기 때문에 앞으로 1~2년 동안 더 탄탄하게 다져가야 하는 일이다. 이것만 잘 자리 잡히면, 일이 훨씬 수월해질 것 같다.

‘만족’이라는 것은 나에게 없다. 만족하려면 내가 혼자, 직접 다 해야 할 텐데, 그건 불가능하다. 최선을 다할 뿐이다.

인터뷰이 서승모 / 인터뷰어 김상호 / 원고화 및 편집 김상호

언제까지, 어떻게

분량4,257자 / 8분

발행일2023년 4월 18일

유형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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