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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을 발효시킨, 사무소효자동

김상호

사무소효자동의 건축을 이야기할 때면 십중팔구 일본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다. (유독 내 주변에서만, 하필 내가 갔던 건물에서만 그럴 수도 있다.) 오늘은 이야기를 좀더 진척시켜 보려고 하는데, 먼저 몇 개 작업을 소개한다. 읽고 찾아보면서 어디가, 무엇이 일본 건축을 떠올리게 하는지 독자 스스로 생각해보길 바란다. 일본적인 것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 혼란스러운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드는 이유가 무엇인지 반추해보면 어떨까 싶다.

사무소효자동의 작업 중 인상 깊은 것을 꼽으라면, 청운동 C주택과 남해 613여관을 먼저 꼽겠다. 둘 다 7~8년 전 완공작이다. 3부작을 모아본다면, 직접 보진 못했지만 하남 M주택일 것 같다. 평단의 평가와 본인의 해설로 가늠해보면, ‘평면의 적층’이라는 사무소효자동의 대주제의 최신판이다. M주택에 대한 소개와 비평은 이전의 좋은 글들로 대신하고, 이 지면에서는 다른 두 작업에 대한 감상을 회고적으로 적어본다.

청운동 C주택은 M주택과 매우 다른 집이다. M이 적층된 공간이라면, C는 흐르는 공간이다. M이 단순명쾌하다면, C는 복잡미묘하다. 사무소효자동 작업들에 M주택의 주제와 계열을 이루는 것이 더 많은데, 이는 도시라는 조건이 적층을 강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단번에 읽히는 건축보다 평면과 의도가 한겹 가려진 집’을 만들고 싶어하는 사무소효자동이라면 어쩌면 C주택의 스타일이 그 본성에 더 맞을 수도 있다.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그런 기회가 드물뿐이다. C주택은 위치가 청운동 언덕의 경사지라서 예외적인 건축을 만들게 된 것 같다. C주택은 세 채의 집이 난해하게 연결되어 있다. (실제 내부로 연결된 것은 두 채였고, 하나는 별채였던 것 같은데, 기억이 희미하다. 물론 건축가에게 물어보면 될 일이지만, 그만큼 집 구조가 복잡했다고 말하고 싶다.) 집이 복잡한 것은 땅이 어렵기 때문이다. 직접 연결된 두 채 중 경사지 아래에 놓인 집은 거의 지하 콘크리트 벙커 느낌인 데 반해, 그 위에 어슷하게 놓인 집은 평지에 가볍게 내려앉은, 혹은 살짝 떠 있는 느낌이다. 실제 건물의 구조나 설계 의도를 짐작해보면 ‘떠 있다’는 말이 더 적합할지 모른다. 집의 외형은 얼핏 보면 한옥 같기도 하고, 일본 집 같기도 하고, 둘 다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내부 공간의 구성이나 작법은 일본식 느낌이 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 스타일과 접목되어 묘한 분위기를 낸다.

흥미롭게도 C주택은 M게스트하우스와 닮았다. M게스트하우스에서 내부의 순수한 빈 공간을 그대로 두고 그것을 두르는 외부 형태, 즉 바닥, 벽, 지붕을 조합한 물리적 건축물을 둘러싸듯 만든 것 같다. 마치 이미 있는 콘크리트 덩어리에 거푸집 붙이듯 거꾸로 작업한 듯한 느낌이다. 다르게 비유하자면, M은 (이웃한 집과 바위 언덕 사이에 끼어 있는 리모델링 작업이어서) 굴을 파고들어 가는 식으로 지은 집이라면, C는 경사지를 굴다리로 연결하듯 지은 집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두 집은 완전히 다른 집이다. C에서 M을 떠올리게 하는 중요한 요소는 흐르는 공간이라는 특징이다. M에서도 C에서도 높낮이가 다른 연속된 공간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물 흐르듯 흘러내린다.

남해 613여관의 건축 주제는 단연 계단이다. 여섯 개의 객실에는 외부 계단이 개별 진입로로 달려 있다. 모두 지면에서 직접 올라가는 계단으로 서로 다른 방향과 길이로 갈라진다. 독립 기둥이 주는 개방감과 밑이 가볍고 위가 무거운 시각 효과 때문에 계단은 땅 위에 떠 있는 객실로 연결되는 ‘탑승로’ 같은 느낌을 준다. 전면 도로 쪽 큰 계단은 불규칙하게 분할된 객실 매스 사이로 말려들어 가며 깊숙한 골목을 낸다. 객실은 모두 복층인데, 저마다 다른 형태의 계단이 ‘놓여’ 있다. 완만한 호를 그리며 오르는 계단, 직통으로 뚫린 원형 계단, ㄱ자, ㄷ자로 꺾여 오르는 계단. 객실 내부의 계단들은 건축적 조각으로 주인공처럼 존재하며, 또 한번의 오름을 이끈다. 계단의 부름을 따라 위로 올라가면 객실 저마다 야외 테라스가 달린 단독 욕실이 밖을 향해 펼쳐진다.

성수동 LCDC를 잡지에서 처음 봤을 때 불현듯 613여관이 떠올랐다. (실제로 방문했을 때는 그런 느낌이 덜했는데, 한눈에 파악되는 사진으로 보는 이미지와 실제 건물로 들어가 경험하는 공간은 전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일 것이다.) 왜 그랬는지 이제 와서 뜯어보니, 그곳만의 영역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는 내향적 태도, 지면에서 건물을 분리해 들어 올리는 적극적 의지, 계단이라는 건축 요소를 공간의 주인공으로 삼는 디자인, 매스와 요소들을 분리한 후 재연결하는 구성 방식 등이 그 이유인 것 같다. 공통점에 집중하면 할수록 더 확증 편향에 빠져서 그런지 몰라도, 두 작업 사이의 개념적, 형태적, 물질적 연결고리가 많이 발견된다. (두 작업을 오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둘의 프로그램을 서로 바꿔보는 쓸데없는 상상도 해본다. 그럴싸할 것 같다.)

사무소효자동의 포트폴리오는 주택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는 퍼블릭한 작업도 많다. 최근에는 모든 이목이 LCDC에 쏠렸지만, 이전 작업 중에서 대중적으로 많이 노출된 것으로 이태원에 있는 현대카드 뮤직스토어띠어리 플래그십 스토어, 서촌의 보안여관, 안국동의 안국빌딩을 꼽을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파사드 리노베이션’ 작업이다. 입면을 디자인하지 않는다는 건축가의 ‘파사드’ 만들기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운 작업군이다. 네 작업은 스타일, 구법, 재료,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 점이 입면에 대한 사무소효자동의 일관된 태도를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굳이 말로 표현하자면, ‘무심하거나 투명하거나’. 그저 그곳 거리와 기존 건물에 반응한, 건축가의 말을 빌리면 ‘일상과 비일상의 풍경이 되고자 한’ 결과라고 해석해본다.

미뤄 놓았던 일본 건축 이야기를 해보자. 무엇이 사무소효자동의 작업에서 일본 건축을 떠올리게 할까. 전문적이지는 못한 교양 수준에서 그 요소를 나열해보면 이렇다. 서승모 건축가가 몇 차례 밝힌 바 있는 ‘평면 중심적 사고’나 입면에 대해 무심한 태도 같은 설계 방법의 특징을 비롯해, 목조나 철골조에서뿐만 아니라 철근콘크리트조에까지 걸쳐서 드러나는(혹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보이고자 하는) 가구식 구조의 경향, 규격화된(실제로는 맞춤제작 했을) 나무살로 촘촘히 마감된 반투명한 우윳빛 창호들, 어둠을 슬쩍슬쩍 드리운 내밀한 실내 공간, 면과 단으로 반듯반듯하게 분할해 드러낸 내부 공간의 단위와 질서, 입식과 좌식을 조합한(좌식이 좀더 우세해 보이는) 생활 양식을 담은 바닥과 가구, 마당의 조경과 빛을 엄밀하게 다루는 방식, 풍경을 프레임에 담아 내부로 끌어들이는 방식, 사적 영역, 공적 영역, 중간 영역에 대한 뚜렷한 구분과 인식, 미닫이문을 당연하게 가변식 벽으로 쓰는 내부 공간 등. 내 나름대로 글로 적어본 이것들이 사무소효자동의 작업에서 많이 보이는 특징이다. 앞서 소개한 작업들에서도 비슷한 면들을 ‘찾을’ 수 있다.

이런 부분들이 일본 건축의 특징으로 인식되는 것은 학습으로 각인된 효과일 거라 생각한다. 처음에는 일본에 의해서, 나중에는 오리엔탈리즘에 의해서, 아키데일리와 핀터레스트에 의해서. 그리고 역설적으로 한국 건축계가 스스로 구별하고 강화하고 고착시킨 결과다. 그리고 사무소효자동의 건축을 일본 건축이라고 단순하게 말하고 마는 것은 발전적 논의에 아무것도 보태지 못한다. 사무소효자동의 건축이 일본 건축 성분의 함량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인터뷰 중간중간 건축을 학풍과 계보가 있는 학문으로 설명하는 점이나, 크게 한 바퀴 돌고 나서야 가동되고 있는 도제식 아틀리에 운영도 그 성향을 강화한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점들이 일본스럽다고 해도 나는 이 모든 것이 20년 동안 효자동에서 숙성과 발효를 거쳐 ‘사무소효자동화’되었고, 그렇게 원래 성분의 성질과 다른 무엇이 되었다고 본다.

이번 지면을 빌려 덧붙이자면, 일본 건축은 한국 근현대 건축에 중요한 출발점이 되었다. 전통 건축의 영역에서도 한국과 비슷한 점이 많고, 물론 다른 점도 많고(이는 서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고받았다. 일본 건축에서는 지금도 여전히 배울 것이 많다. 우리는 모두 일본 건축에 감탄하고, 일본 건축을 보러 앞다투어 일본에 간다. 예전에는 이 점을 숨기거나,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이야기 하기를 피했다. 불과 몇 년 전에도 그런 모습을 봤다. 그러나 그렇게 선만 긋다가는 스스로 고립될 뿐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무엇보다 문화와 기술과 생각은 교류되는 것이 마땅하다.

몇 년 전 건축평단 <영 아키텍처 크리틱> 자리에서 한국건축과 일본건축 사이에 담담하게 자리 잡은 서승모의 모습이 나는 무척 반가웠다. 일본에서 건축을 배웠고, 그걸 자신의 것으로 소화했고, 그렇게 일본스럽기도 하고 한국스럽기도 한 사무소효자동의 건축을 만들어오고 있다. 아직도 허물어지지 않은 그 공고하고 무용한 경계를 사무소효자동이 이제는 허물어주지 않을까 기대한다.

김상호 건축신문 편집장

일본을 발효시킨, 사무소효자동

분량4,455자 / 9분

발행일2023년 4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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